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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양이 내뿜는 입자들이 미는 힘으로 우주를 항해하는 ‘우주 돛단배’ ‘라이트세일(Lightsail) 2호’가 미국 동부 시간으로 7월 31일 계획대로 방향과 속도를 조절하며 우주 항해 기술을 완벽하게 선보이는 데 성공했다. 우주 돛단배는 미래 장거리 우주여행에서 연료 걱정을 해결해 줄 유력한 기술로 꼽힌다. 우주 돛단배를 타고 우주를 탐험할 날은 언제쯤 올까.
2015년 ‘라이트세일 1호’는 돛 펼쳐
우주에서 움직이는 돛단배를 처음 상상한 사람은 400년 전 독일 천문학자 요하네스 케플러다. 혜성을 관찰하던 그는 혜성의 꼬리가 태양빛에 떠밀려 태양에서 멀어지는 것이라고 생각했고, 1608년 갈릴레오에게 보낸 편지에서 “바람을 이용해 배가 항해하는 것처럼 언젠가는 태양빛을 이용해 우주를 항해하는 배가 나올 것”이라고 썼다.
생소하기만 했던 우주 돛단배의 개념이 대중에게 알려진 건 1960년대부터다. ‘스페이스 오디세이’로 유명한 SF 작가 아서 클라크는 1964년 발표한 단편 소설 ‘태양발신기(Sunjammer)’에서 우주 돛단배를 소재로 삼았다.
이후 미국항공우주국(NASA)의 행성 탐사 실험연구원이자 우주 교양서인 ‘코스모스’를 쓴 칼 세이건이 1976년 TV 쇼에 출연해 핼리 혜성을 쫓을 우주선으로 우주 돛단배를 소개하면서 본격적으로 알려지기 시작했다.
돛을 이용해 우주를 항해한다는 개념은 과학적으로 실현 가능할까. 천문학자들은 지구의 대기(바람)를 대신할 물질을 태양에서 찾아냈다. 태양계 전역에는 밀도는 다르지만 태양에서 나온 입자의 소용돌이, 바로 태양풍이 존재한다. 우주 돛단배의 동력으로 태양풍을 이용하면 된다는 것이다.
우주 돛단배 개발을 실제로 진행한 건 1980년 칼 세이건 등이 주도해 설립한 미국의 비영리 국제민간우주기구인 행성협회(The Planetary Society)였다. 행성협회는 1999년부터 러시아와 공동으로 우주 돛단배 개발을 진행했다. 행성협회는 2005년 처음으로 우주 돛단배 ‘코스모스 1호’를 발사했지만, 코스모스 1호를 실은 로켓이 궤도에 오르지 못하고 추락하면서 기능 검증조차 하지 못하고 실패로 끝났다.
이때 일본이 가세했다. 일본은 그리스로마 신화에서 밀랍으로 만든 날개를 이용해 태양을 향해 날다가 추락한 이카로스(IKAROS)의 이름을 딴 우주 돛단배 ‘이카로스’를 금성 탐사용으로 개발했고, 2010년 발사했다. 이카로스는 태양풍을 이용해 항해하는 ‘솔라 세일링(solar sailing)’ 기법으로 움직이는 데는 성공했지만, 방향 제어에는 실패했다. 이카로스는 현재 동면 상태이며, 지구와 연락도 끊겼다.
2015년 행성협회는 ‘라이트세일 1호’를 우주에 보내 돛을 펼치는 데까지는 성공했다. 그리고 이번에 라이트세일 2호를 이용해 마침내 돛을 펴고 원하는 대로 움직이는 데까지 성공시켰다. 라이트세일 2호는 태양풍을 이용해 궤도 상승은 물론 방향까지 완벽하게 제어한 첫 우주 물체가 됐다.
4만 명의 후원이 만든 ‘라이트세일 프로젝트’
라이트세일 2호의 성공은 크라우드 펀딩으로 모금을 통해 예산을 충당했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있다. 행성협회 측은 라이트세일 프로젝트를 설명하기 위해 발사 5일 전인 6월 20일과 솔라 세일링 기술 검증을 완료한 7월 31일 등 두 번에 걸쳐 텔레콘퍼런스를 진행했다. 제니퍼 본 행성협회 최고운영책임자(COO)는 “2009년부터 2019년 3월까지 약 10년 간 전 세계 4만 명 이상의 사람들이 700만 달러(약 85억 원)를 후원했다”며 “새로운 우주 모험을 꿈꾸는 시민들의 염원이 라이트세일 프로젝트를 완성시킨 것”이라고 강조했다.
라이트세일 2호의 발사부터 기술 검증까지는 총 37일이 소요됐다. 라이트세일 2호는 미국 조지아공대가 개발한 큐브샛(Cubesat·소형위성) ‘프록스(Prox)-1’에 탑재돼 6월 25일 오전 2시 30분(현지 시각) 플로리다주 케네디 우주센터에서 스페이스X가 개발한 ‘팰컨 헤비’ 로켓에 실려 발사됐다. 팰컨 헤비 로켓에는 프록스-1 외에도 소형위성 23기가 더 실렸고, 프록스-1은 약 6시간 뒤 지상에서 710km 떨어진 궤도에 안착했다.
프록스-1은 가로, 세로, 폭이 각각 61cm, 56cm, 30cm에 무게는 71kg인 소형위성으로 라이트세일 2호를 싣고 올라가 궤도에 내려놓는 임무를 맡았다. 라이트세일 2호는 무게 5kg에 작은 가방만 한 크기로, 하단에는 돛과 4개의 활대가 말린 상태로 들어 있다.
라이트세일 2호의 핵심인 돛은 카세트 녹음테이프에 사용되는 필름인 마일러(Mylar)로 만들어졌는데, 찢어짐을 방지하기 위해 수cm 간격으로 나일론 소재인 립스톱이 섞여 있다. 활대는 코발트크롬 합금으로 만들어 무게는 줄이고 강도는 높였다.
프록스-1과 함께 우주에 올라간 다른 소형위성들이 각자 임무를 위해 흩어질 때까지 일주일이 걸렸다. 이는 라이트세일 2호가 임무를 수행하는 데 필요한 안전거리를 확보하기 위해서 꼭 필요한 과정이다.
일주일 뒤 라이트세일 2호는 프록스-1에서 분리됐고, 내부에 장착된 라디오와 자기장 계측기가 작동을 시작했다. 이후 20일에 걸쳐 라이트세일 2호는 솔라 세일링 기법으로 하루에 약 500m씩 고도를 높였다.
발사 약 한 달 만인 7월 23일 오후 6시 47분, 라이트세일 2호는 지구 상공 720km 궤도에 다다랐고 드디어 돛을 펼치라는 명령이 떨어졌다. 두께가 4.5μm(마이크로미터·1μm는 100만분의 1m)인 돛은 2시간 30분 만에 완전히 펼쳐졌다.
행성협회 회원으로 라이트세일 2호 프로젝트의 기술자문을 맡은 데이비드 스펜서 미국 퍼듀대 우주비행프로젝트실험실 교수는 “돛의 넓이는 32m2로 정사각형의 권투 링만하다”며 “본체 상단부에 배치된 2개의 듀얼카메라가 돛을 펼치는 과정을 촬영했다”고 설명했다.
그리고 7월 31일 행성협회는 돛을 펼친 라이트세일 2호가 솔라 세일링을 이용해 방향 조정과 궤도 수정까지 수행하는 데 성공했다고 공식 발표했다.
라이트세일 2호는 장착된 자기장 계측기와 모멘텀 휠을 이용해 나흘 동안 90도 회전했고, 공전 궤도의 최고점을 약 1.7km 높이는 데 성공했다. 20년에 걸친 우주 돛단배 프로젝트가 드디어 목적을 달성한 것이다.
심우주 탐사에 유용한 솔라 세일링
라이트세일 2호는 앞으로 최대 1년간 지구 궤도를 비행할 예정이다. 행성협회는 라이트세일 2호 이후 추가로 라이트세일 프로젝트를 계획하지는 않았다. 본 COO는 “라이트세일 2호를 통해 우주 돛단배의 새로운 가능성을 확인했다”며 “현재로서는 추가로 계획된 라이트세일 프로젝트는 없지만, 많은 나라와 기업이 솔라 세일링 기술을 발전시키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태양 입자를 이용하는 우주 돛단배 기술은 태양계 행성 탐사뿐만 아니라 심(深)우주 탐사에 적용할 기술로 주목받고 있다. 물론 지금의 솔라 세일링 기술을 바로 적용할 수는 없고, 개선 방안이 강구돼야 한다.
스펜서 교수는 “솔라 세일링은 연료 공급이 어려운 심우주 탐사에 활용할 수 있는 가장 유력한 기술”이라며 “라이트세일 2호를 통해 초기 기반 기술이 확인된 만큼 앞으로 돛을 더 튼튼한 소재로 크게 만들거나 더 높은 효율로 에너지를 전환하는 기술 등을 개발해야 한다”고 말했다.
최영준 한국천문연구원 우주과학본부장은 “가장 가까운 항성인 프록시마 센타우리도 지구에서 약 4.2광년 떨어져 있다”며 “심우주 탐사를 위해서는 먼 거리를 극복하기 위한 모든 방법을 시도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미국, 중국, 유럽, 일본 등 우주 강국이 합심해 향후 10년 이내에 건설을 계획 중인 달 기지를 활용하는 방법도 제시됐다. 빌 나이 행성협회 최고경영자(CEO)는 “심우주로 갈수록 태양풍이 감소하는 만큼 이를 증폭시킬 방법이 필요하다”며 “달 기지에 레이저를 설치한 뒤 심우주로 떠나는 우주 돛단배에 강한 에너지를 전달하는 방법도 시도할 만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