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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대리암, 염산과 반응하면 이산화탄소를 내며 녹는 대리암~.”
7월 종영한 JTBC 오디션 프로그램 ‘슈퍼밴드’는 많은 이야깃거리를 남겼다. 그 중 ‘대리암’은 ‘과학 덕후’의 향기가 풍기는 독특한 과학 가사로 화제가 됐다. 유튜브 채널 ‘JTBC Voyage(봐야지)’에서 대리암 영상은 조회수 95만 회를 넘겼다(8월 12일 기준). 8월 8일 대리암을 탄생시킨 안성진 서울 경인고 지구과학 교사와 그가 소속된 프로젝트 밴드 ‘닥터스’의 연습 현장을 찾았다. 

 


닥터스는 ‘미친 과학자(mad scientist)’를 콘셉트로 과학을 엉뚱하면서도 유쾌하게 노래로 풀어내는 프로젝트 밴드다. 안 교사는 밴드에서 보컬과 베이스를 맡고 있다. 안 교사를 포함해 황승민(기타), 김규목(키보드), 최영진(드럼) 등 닥터스는 총 4명으로 이뤄졌다. 안 교사는 “각자 소속된 밴드가 있지만, 미친 과학자라는 콘셉트를 슈퍼밴드만으로는 끝내기 아쉬워 프로젝트 밴드를 꾸렸다”고 말했다. 

 

탄산칼슘과 염산 반응, 사랑에 빗댄 ‘대리암’


슈퍼밴드는 개인 참가자들이 라운드마다 밴드를 결성해 경연을 벌이는 형식이었다. 본선 1라운드에서 프런트맨(밴드 등 음악 그룹의 리더)으로 선정된 안 교사가 멤버들을 선발하면서 닥터스가 결성됐다. 


사실 대리암이라는 곡은 슈퍼밴드 참가 전에 어느 정도 완성된 상태였다. 지난해 국립과천과학관이 주최한 ‘2018 전국 과학송 경연대회’에서 데모(demo·샘플 음원을 녹음한 노래)로 출품해 대상을 받았다. 


안 교사는 “제작해둔 리듬 위에 무작정 가사를 붙이고 있었는데, 문득 당시 학교에서 가르치던 암석 이름을 얹어 불러보니 생각보다 괜찮았다”며 “처음에는 석회암을 붙였는데, 단어가 입에 잘 붙지 않아 석회암과 성질이 비슷하면서도 발음이 부드러운 대리암으로 바꿨다”고 말했다. 


그는 “대리석의 ‘석(石)’은 광물에 붙이는 접미사”라며 “대리암을 대리석으로 잘못 부르는 경우가 많은데, 이를 바로 잡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고 덧붙였다.


안 교사는 대리암의 성분인 탄산칼슘(CaCO₃)이 염산(HCl)과 반응하는 과정을 사랑의 감정에 빗대 가사를 완성했다. 그는 “대리암이 염산에 녹는 화학 반응이 사랑하는 사람을 만났을 때 마음이 녹아내리는 감정과 비슷하다고 생각했다”며 “힙합 비트를 살리기 위해 노래 중간에 화학식을 이용한 랩도 넣었다”고 말했다.


멤버들의 반응도 긍정적이었다. 김 씨는 “과학을 전공하지 않아서 처음에는 가사를 이해하는 데 약간 애를 먹긴 했다”면서도 “노래의 콘셉트가 확실히 살아 있어 대중에게 각인되기 좋을 것으로 예상했다”고 말했다. 


멤버들은 데모를 기반으로 음악적 요소를 보강해 곡을 완성했다. 안 교사는 “처음에는 무거운 느낌의 정통 록으로 편곡했는데, 가사의 느낌이 잘 살지 않아 밝은 느낌의 신스팝(신시사이저를 이용한 음악)으로 바꿨다”고 말했다. 황 씨는 “녹화 당시 제작진의 반응이 좋아서 대중에게 노래가 통할 수 있겠다는 예상은 했다”고 말했다. 

 

▲ 안 교사가 소속된 프로젝트 밴드 ‘닥터스’의 연습 현장. 닥터스는 8월 29일 첫 미니앨범인 ‘It’s Science!’를 발매하며 밴드 활동에 시동을 건다.

 

뉴턴의 운동법칙에서 모티프 얻은 ‘F=ma’


슈퍼밴드 2라운드에서 또다시 같은 멤버로 밴드를 결성한 닥터스는 새로운 과학 노래인 ‘F=ma’를 선보였다. 이 곡은 힘과 가속도에 관한 뉴턴의 운동법칙을 모티프로 해 가속을 얻어 우주 끝까지 날아가고 싶다는 의지를 담았다. 안 교사는 “멤버들과 닥터스의 방향을 논의하면서 과학 콘셉트를 유지하는 게 좋겠다는 데 의견을 모았다”고 말했다. 


F=ma는 디스코 리듬의 록이다. 가사에는 ‘May the force with you(포스가 그대와 함께하기를)’라는 구절이 나오는데, 영화 ‘스타워즈’에서 영감을 얻었다. 안 교사는 “디스코에서 열정을, 열정에서 가속도라는 아이디어를 얻었다”며 “뉴턴의 운동법칙인 가속도의 법칙을 중심으로 곡을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F=ma에서 힘을 나타내는 ‘F’가 스타워즈의 ‘포스(force)’와 동일한 단어라는 점에 착안해 스타워즈의 SF적 분위기를 살리는 데도 신경 썼다. 특히 방송에서는 스타워즈 주제곡의 도입부를 곡의 간주에 삽입해 SF 느낌을 살렸다. 또 멤버들이 1970~1980년대 SF영화 마니아처럼 옷을 입어 SF 분위기를 극대화했다.    


과학을 소재로 곡을 만드는 과정은 닥터스 멤버들에게 많은 영감을 불러 일으켰다. 최 씨는 “중학교 때는 과학 수업에 흥미를 못 느껴 졸기 일쑤였는데, 슈퍼밴드를 통해 음악으로 표현하며 익히니 과학이 재밌게 느껴졌다”고 말했다. 


황 씨는 “지인 중에 친한 과학교사가 있는데, 대리암과 F=ma를 활용해 학생들을 가르친다는 얘기를 들었다”며 “청소년의 교육에 이바지할 기회가 있을 거라고 생각한 적이 없었는데, 이 얘기를 듣고 매우 뿌듯했다”고 말했다. 


김 씨는 “‘콘택트’ 등 SF영화를 좋아해 과학에 관심은 있었지만, 실용음악을 전공하면서 과학을 음악에 활용하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며 “이번 작업으로 음악을 통해 대중과 과학으로 소통할 수 있겠다는 확신을 얻었다”고 밝혔다. 그는 “대리암과 F=ma 노래를 아는 청소년이라면 시험에서 대리암과 가속도 법칙에 관한 문제가 나왔을 때 모두 맞추면 좋겠다”는 기대도 덧붙였다.

 

음악, 유튜브 통해 과학 콘텐츠 소통


안 교사는 슈퍼밴드를 통해 대중에게 얼굴을 알렸지만 본업은 교사다. 그는 서울 경인고 지구과학 교사이자 고3 담임이기도 하다. 슈퍼밴드 녹화 당시가 학기 중이어서 그가 수업을 끝낸 뒤 바쁘게 녹화 현장으로 이동하는 모습이 방송에 나오기도 했다. 


슈퍼밴드 출연 이후 안 교사는 학교에서 인기 스타가 됐다. 그는 “우리 반 학생들이 대한민국 5대 보컬은 이제 ‘김나박이안(대한민국 4대 보컬로 불리는 가수 김범수, 나얼, 박효신, 이수의 성에 안성진 교사의 성을 붙인 표현)’이라고 한다”며 웃었다. 


음악을 사랑하지만 수업에 노래를 이용하지는 않는다. 교생 실습 당시 노래를 섞어서 가르쳤다가 민망했던 기억이 강하게 남아 있어 교사 임용 이후에도 수업에서 노래를 활용하지 않게 됐다. 고3 담임인 만큼 수능이 얼마 남지 않은 제자들을 배려해 최대한 진지하게 수업에 임하고 있는 것도 수업에서 노래를 안 하는 이유 중 하나다.   


대신 학교 밖에서는 프로젝트 밴드 멤버로 변신한다. 닥터스는 8월 29일 첫 미니앨범인 ‘It’s Science!’를 공식 발매하며 밴드 활동에 본격적으로 시동을 건다. 안 교사는 “대리암과 F=ma 외에 신곡을 두 곡 추가로 담았다”고 말했다. 닥터스의 미니앨범 발매 기념 쇼케이스는 9월 6일 서울 마포구 ‘벨로주 홍대’에서 열린다. 


안 교사는 지금도 신곡을 구상 중이다. 이번에는 열역학이 주제다. 그는 “열역학 제2법칙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작곡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열역학 제2법칙은 엔트로피(무질서도)에 관한 법칙으로, 열적으로 고립된 계는 엔트로피가 감소하지 않는다는 법칙이다. 그는 “언젠가는 우주도 무질서해질 텐데, 주어진 오늘 하루를 열심히 살자는 내용”이라고 귀띔했다. 그는 “전기를 주제로 한 ‘저항’이라는 곡도 계획 중”이라고 덧붙였다. 


앞으로 안 교사는 닥터스뿐만 아니라 원래 소속 밴드인 ‘더 바이퍼스’, 개인 유튜브 채널인 ‘닥터 맘바 스튜디오’ 등 다양한 창구를 통해 창작 활동을 이어갈 예정이다. 그는 “과학교사로서 과학에 관한 이야기나 동영상을 유튜브 채널에 선보일 예정”이라며 “교사 업무와 음악 활동, 유튜브 활동을 병행하는 게 쉽지는 않지만 다양한 방식으로 과학 콘텐츠를 대중과 소통하기 위해 계속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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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09월 과학동아 정보

  • 신용수 기자 기자
  • 사진

    이서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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