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 중 가장 많은 부피를 차지하고 있는 질소는 지구에서 가장 흔한 원소 중 하나다. 또한 단백질을 이루는 아미노산의 구성 원소 중 하나로, 생명체에 없어서는 안 될 필수 원소이기도 하다. 질소를 다루는 방식은 과학 연구뿐만 아니라 산업, 농업 등에 큰 영향을 끼쳤다. ‘세상을 바꾼 원소’ 중 하나로 이름을 올릴 만한 자격이 충분하다.
원자번호 7번인 질소는 주기율표에서 탄소 바로 옆에 자리한 비금속 원소다. 상온에서 주로 이원자 분자로 존재하며 무색무취의 기체 상태다. 질소는 지구 대기의 약 78%를 차지하며 대기 중 부피비가 가장 크다. 우주 공간에서도 질소는 여섯 번째로 풍부한, 매우 흔한 원소다.
이런 질소는 생명체에게 아주 소중한 존재다. 지금까지 알려진 지구 생명체는 여섯 가지 필수 원소를 반드시 갖고 있어야 하는데, 그중 하나가 질소다. 나머지는 탄소, 수소, 산소, 황 그리고 인이다.
케네스 닐슨 미국 서던캘리포니아대 지구과학과 교수는 국제학술지 ‘사이언스’ 2006년 5월 5일자에 게재한 기고문에서 “지구 이외의 다른 행성에서 생명체의 존재 여부를 연구하기 위해서는 물이나 탄소보다도 질소의 흔적을 찾는 데 집중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doi:10.1126/science.1111863
생명체가 가진 질소 중 상당량은 대기에서 기원한다. 지구 암반도 많은 양의 질소를 공급한다. 벤자민 홀튼 미국 데이비스 캘리포니아대(UC데이비스) 토지대기수자원과 교수팀은 지구 암반 또한 대기 못지않게 많은 양의 질소를 토지와 나무에 공급한다는 사실을 ‘사이언스’ 2018년 4월 6일자에 발표했다. doi:10.1126/science.aan4399 연구팀에 따르면 지표면 생태계 질소의 최대 26%가 지구 암반의 풍화 과정에서 공급된다.
‘질식시키는 기체’로 알려져
질소는 산소와 마찬가지로 연소 실험을 통해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산소를 발견했던 영국의 화학자 조지프 프리스틀리는 1772년 연소 실험을 통해 밀폐된 공간에서 숯을 태우면 공기의 약 5분의 1이 소모되면서 이산화탄소가 만들어지고, 나머지가 연소 반응 없이 그대로 남는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연소와 관련 없는 이 기체가 바로 질소였다. 비슷한 시기에 스웨덴의 화학자 칼 셸레는 공기가 크게 두 종류의 기체로 구성돼 있음을 발견하기도 했다.
하지만 질소를 최초로 발견한 과학자로 이름을 올린 사람은 대니얼 러더퍼드다. 영국 에든버러대 의학과 학생이었던 그는 1772년 공기의 연소 반응에 관한 연구를 진행하던 중 연소 반응이 끝난 뒤 남은 기체에서 실험용 쥐가 죽는 광경을 목격했다. 이 때문에 러더퍼드는 질소를 처음 발견할 당시 질소가 독성을 가졌거나 부패한 공기라고 생각했다.
나중에 밝혀진 사실이지만 러더퍼드가 목격한 것은 연소로 인해 공기 중 산소가 없어지면서 발생한 결과였다. 하지만 연구가 부족했던 당시 질소는 생명체를 질식시키는 독성 기체라는 오해를 받았다.
이후 1789년 프랑스의 화학자 앙투안 라부아지에는 질소는 산소와 달리 호흡에는 관련이 없다고 생각해 ‘생명을 지속한다’는 뜻의 그리스어(zotikos)에 부정을 뜻하는 접두사(a)를 붙여 질소를 ‘azote’라고 명명했다.
오늘날 질소를 지칭하는 영어 ‘nitrogen’은 1790년 프랑스의 화학자 장 샤프탈이 질소가 초석의 주성분이라는 사실로부터, 초석을 뜻하는 라틴어(nitrum)와 생성한다는 뜻의 그리스어(gennao)를 합쳐서 ‘nitrogene’으로 제안한 데서 유래했다. 한편 동양권에서 부르는 ‘질소(窒素)’라는 한자명은 러더퍼드가 목격했던 ‘질식시키는 기체’에서 붙여진 이름이다.
질소 비료 대량생산으로 인구 증가
일상생활에서 질소를 포함한 물질보다 포함하지 않은 물질의 수를 세는 것이 더 쉬울 만큼 질소는 흔하다. 수많은 질소 화합물이 있지만, 인류에게 가장 큰 영향을 미친 물질을 하나 꼽으라면 아마 암모니아(NH3)일 것이다.
암모니아는 질소 원자와 수소 원자의 결합으로 이뤄진 가장 기본적인 질소 화합물 중 하나다. 우리가 대기 중 질소를 이용해 비료 등에 이용할 수 있는 유용한 질소 화합물을 생산하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할 물질이 암모니아다.
하지만 암모니아를 만드는 일은 굉장히 까다롭다. 질소 분자(N2)가 화학적으로 워낙 안정하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대기의 대부분이 질소로 이뤄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과거에는 이를 제대로 사용할 수 없었다.
이 문제를 해결한 주인공이 독일의 화학자 프리츠 하버와 카를 보슈다. 공기 중 질소로 암모니아를 만드는 특별한 화학 반응을 개발한 것이다. 공기 중 질소 분자를 이용해 암모니아를 만들기 위해서는 먼저 질소 간의 강력한 삼중 결합을 끊어낸 뒤 질소-수소 공유결합을 만들어야 하는데, 이를 위해서는 매우 높은 활성화 에너지가 필요하다.
하버와 보슈는 산화철과 철을 주된 촉매로 사용하고 고온·고압의 환경을 이용해 활성화 에너지를 낮추고 반응 속도를 높여 암모니아를 대량으로 합성하는 방법을 찾아냈다. 현재 이 방법은 이 둘의 이름을 붙여 ‘하버-보슈법’으로 불린다.
이렇게 합성된 암모니아는 질소 비료를 생산하는 기본 원료로 사용됐다. 이 혁신적인 화학 반응은 식량 생산 증대에 꼭 필요했던 질소 비료의 희소성 문제를 단번에 해결했다.
그 결과 공장에서 질소 비료를 대량 생산할 수 있게 됐고, 인류의 식량난이 획기적으로 개선됐다. 20억 명 남짓이던 전 세계 인류는 한 세기 만에 70억 명으로 늘었다. 산업혁명 못지않은, 가히 농업혁명이라 할 만한 업적이다. 이를 인정받아 하버는 1918년, 보슈는 1931년에 각각 노벨 화학상을 받았다.
질소는 산업 발전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1847년 처음 합성된 질소 화합물인 나이트로글리세린(C3H5(NO3)3)은 외부 자극에 큰 폭발을 일으키는 액체 폭발물이었다. 이 물질의 폭발성이 가진 잠재력은 무궁무진했으나, 통제할 방법이 없었다. 여기서 나이트로글리세린의 폭발성에 주된 역할을 하는 원소가 바로 산소 원자에 둘러싸인 질소다.
알프레드 노벨은 실험을 통해 나이트로글리세린에 규조토를 섞으면 폭발력을 제어해 안전하게 운반할 수 있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이를 토대로 그는 폭약의 대명사 다이너마이트를 개발했다. 다이너마이트가 개발되면서 도로, 철도, 터널, 운하 등을 건설하기 쉬워졌고, 이는 건설 산업의 급격한 발전으로 이어졌다.
이후 다이너마이트로 막대한 부를 축적한 노벨은 노벨재단을 만들었고, 오늘날까지도 노벨상으로 이어져 전 세계 사람들에게 과학기술의 중요성을 일깨워주고 있다. 따지고 보면 질소가 과학기술의 발전에 큰 공을 세운 셈이다.
암모니아 자동차부터 냉동인간까지
미래에도 질소의 역할은 결코 작지 않을 것이다. 깨끗한 환경을 지켜줄 친환경 에너지원으로 주목받고 있기 때문이다.
석탄, 석유 등 지구온난화의 주범으로 지목되는 탄소 에너지원에서 벗어나기 위한 대체물질로 수소가 주목을 받고 있다. 하지만 수소는 가연성이 높아 장거리 수송이 어렵고 액체로 만들기 어렵다는 단점이 있다.
이 문제를 해결할 열쇠로 최근 암모니아가 주목받고 있다. 질소와 수소의 화합물인 암모니아는 수소와 달리 액화가 쉽고 안정적인 저장이나 수송이 가능하다. 하버-보슈법 개발 이후 암모니아에 관한 공정 기술이 충분히 축적됐다는 것도 장점이다.
이 때문에 암모니아를 친환경 에너지원으로 사용하려는 노력이 전 세계에서 이뤄지고 있다. 일본 도호쿠대 유체과학연구소 연구팀은 2016년 암모니아만을 연료로 이용한 가스 터빈 발전 기술을 세계 최초로 개발했다. 일본 기후대 화학및생체분자과학과 연구팀과 호주연방과학원 연구팀은 각각 2016년과 2018년 암모니아에서 순수한 수소를 추출해 연료로 사용하는 기술을 개발했다.
질소는 인간의 영원한 꿈인 불로불사를 현실로 만들지도 모른다. 그 중심에는 영하 196도의 차디찬 액체 질소가 있다. 산소나 수소에 비해 훨씬 안정적인 액체 질소는 냉동 및 건조가 필요한 곳에서 널리 쓰이고 있다. 예를 들어 미국 알코어생명연장재단은 불치병을 고칠 수 있는 미래를 기다리며, 냉동 인간 190여 명과 냉동 반려동물 30마리를 액체질소 탱크 안에 보관하고 있다.
현재 과학자들은 냉동 인간을 만들 때 가장 큰 기술적 장애물인 세포가 얼면서 발생하는 세포 조직 파괴를 최소화할 방안을 연구 중이다. 어쩌면 머지않아 병에 걸리면 냉동 인간 상태로 치료법 개발을 기다리는 시대가 올 수 있다. 인류의 농업과 산업, 에너지와 건강까지 책임지는 질소야말로 원소계의 ‘슈퍼 히어로’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