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태평양 바닷속 저 아래 심해에는 어떤 생물이 살고 있을까. 한국의 무인 잠수정 ‘해미래’가 9월 서태평양 심해 4000m 깊이에서 탐사에 나선다. 한국의 무인 잠수정이 이 정도 깊이의 심해에서 탐사를 시도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지금까지 심해 탐사 임무 중 해미래가 세운 가장 깊은 잠수 기록은 3000m 수준이었다.
“해미래가 조만간 서태평양 바다로 떠납니다. 1차 테스트는 무사히 끝났지만, 탐사를 위해 모선(母船)에 실리기 전까지는 점검을 계속 할 계획입니다.”
7월 15일 휴대전화 너머로 들리는 조성원 케이오프쇼어 연구원의 목소리는 밝았다. 케이오프쇼어는 2018년 해미래 운용과 기술 향상을 위해 설립된 연구기업이다. 당초 12일부터 경남 거제시 한국해양과학기술원(KIOST) 남해연구소에서 서태평양 심해 탐사를 앞둔 해미래를 테스트를 진행할 계획이었으나, 장마로 기상 상황이 악화돼 미뤄졌다. 날씨가 좋아지면서 이날 해미래의 첫 장비 테스트가 진행됐다.
해미래는 2007년 우리나라가 개발한 6000m급 무인 잠수정이다. 해저 6000m까지 내려갈 수 있다면 전 세계 바다의 98%를 탐사할 수 있다. 해미래는 길이 3.3m, 폭 1.8m, 높이 2.2m다. 무게는 4.2t(톤)으로 초대형 상어와 비슷하다. 물속에 들어가면 자신의 무게와 동일한 부력을 받도록 설계돼 원하는 지점에서 그대로 머물 수 있다.
해미래에는 발광다이오드(LED) 조명, 카메라 8대, 로봇팔 2대 등 탐사에 필요한 장비가 달려있고, 원격으로 움직일 수 있다. 조 연구원은 “처음 개발했을 때보다 해미래의 성능이 많이 업그레이드됐다”며 “자연광과 유사한 조명으로 바꿨고, 카메라도 HD급 고화질로 교체했으며, 센서와 로봇팔의 정밀도도 높였다”고 말했다.
이날 첫 테스트에서 카메라와 로봇팔 등은 모두 정상적으로 작동했다. 그런데 수중 테스트를 진행하기 전 케이블 파손이 확인됐다. 조 연구원은 “케이블을 주문해 수리할 계획”이라며 “탐사에서도 예기치 못한 고장이 발생할 수 있는 만큼 탐사 전 만반의 준비를 하겠다”고 말했다.
최소 4000m 해저로, 서태평양 출동
해미래의 서태평양 탐사는 계획대로라면 8월 28일 시작된다. 이날 해미래는 온누리호에 실려 우선 미국령인 괌으로 향한다. 여기서 형기성 KIOST 대양자원연구센터장이 이끄는 연구팀이 한국이 보유한 서태평양 망간각 독점개발광구 인근 지역에서 해미래를 이용해 탐사를 진행한다.
탐사 기간은 9월 19일부터 열흘이다. 연구팀은 이 기간에 이동과 준비 시간을 제외하고 하루 12시간씩 최대 8일간 해미래를 운용할 예정이다. 새로운 생물의 유전자원을 확보하고, 반도체와 휴대전화 등 첨단 장비 제조에 쓰이는 희토류 금속 매장 지역을 찾아내는 것이 목표다.
형 센터장은 “지금까지 해미래를 이용한 심해 탐사는 모두 3000m 내외로 들어간 게 전부”라며 “이번에는 서태평양 해저 사면을 따라 최소 4000m 깊이까지, 가능하면 심해 5000m까지 탐사를 진행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지금까지 동해를 제외한 지역에서 해미래를 이용해 탐사가 진행된 건 2016년 마라아나 해저 화산 탐사와 2017년 한국의 서태평양 망간각 독점개발광구 탐사 등 2건뿐이었다.
한국이 보유한 5개 독점광구 중 피지 EEZ 열수광상은 2016년 한 차례 탐사가 이뤄졌고, 통가 EEZ 열수광상도 2011년과 2012년 등 총 두 차례에 걸쳐 탐사가 이뤄졌지만, 이때는 캐나다와 미국의 장비를 빌려 진행했다. 형 센터장은 “심해 6000m급으로 개발된 해미래가 이번 탐사에서 5000m까지 무사히 잠수하면 해미래의 가치를 더욱 확실하게 증명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연구팀은 최대 12m 깊이까지 시추해 퇴적물을 끌어 올리는 피스톤 코어 장비를 이용해 2000~6000m 깊이에 다양하게 존재하는 해저산과 심해저 평원에서 희토류가 묻혀 있는지도 확인할 계획이다.
형 센터장은 “만약 해미래 작동에 문제가 발생할 경우 심해저 카메라를 대신 사용할 수밖에 없다”며 “이렇게 되면 심해 생물자원의 샘플을 획득할 수 없는 만큼 탐사 전 해미래의 상태를 철저히 점검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해미래는 서태평양 망간각 독점개발광구 인근 탐사 이후 괌 인근에서 해저 탐사 임무를 추가로 수행한 뒤 11월 17일 한국에 돌아올 계획이다.
“더 정밀한 조사 위해 유인 잠수정 필요”
더욱 정밀한 심해 탐사를 위해서는 해미래와 같은 무인 잠수정뿐만 아니라 유인 잠수정도 필요하다. 무인 잠수정은 유인 잠수정보다 긴 시간 해저에서 탐사를 진행할 수 있고 기상 상황의 영향을 적게 받는다는 장점이 있다. 대신 탐사의 정확도나 효율은 유인 잠수정에 비해 떨어진다.
유인 잠수정은 사람이 직접 탐사 지역을 보면서 작업하기 때문에 정밀도와 탐사 효율이 비교적 높다. 해미래 개발을 이끌었던 이판묵 선박해양플랜트연구소 책임연구원은 “케이블로 연결돼 작동하는 해미래는 움직임에 제약이 있다”며 “로봇 기술이 많이 발달했지만 아직은 사람이 직접 탐사하는 것에 비하면 부족한 수준”이라고 말했다.
현재 6000m급 무인 잠수정과 유인 잠수정 기술을 모두 확보한 나라는 미국, 러시아, 중국, 일본, 프랑스 등 5개국에 불과하다. 이 책임연구원은 “한국이 유인 잠수정 기술까지 확보한다면 우리가 가진 광구와 해역의 심해 자원을 탐사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형 센터장은 “해미래를 이용한 탐사가 경제적으로 의미가 큰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는데, 유인 잠수정을 개발해도 마찬가지일 것이라는 비판이 있다”며 “해미래를 통해 경제적, 산업적으로 성과를 내는 일부터 힘을 쏟을 계획”이라고 말했다.
한국의 독점 광구 중 인도양 중앙해령과 북동태평양 망간단괴 광구는 지금까지 한 차례도 탐사가 이뤄지지 않았다. 형 센터장은 “올 여름 해미래의 서태평양 탐사가 끝나면 2020년 인도양 중앙해령 탐사 계획을 세워 준비할 예정”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