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가장 잘 팔리는 비디오의 리모콘 버튼수는 보통 40~50개. 그러나 이를 제대로 활용하는 사람은 의외로 적다. 십여가지 이상되는 서비스기능을 활용하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비디오 기능 중 어느 정도를 활용하고 계십니까"라고 물으면 "글쎄요. 아마 반정도도 쓰고 있지 못 할걸요"라고 대답하는 사람이 많다. 이렇게 말하는 사람은 그래도 나은 편이다. 일부는 "테이프 넣고 트는 것밖에 몰라요. 비디오 살 때 광고에서는 10여가지 기능이 있었던 것 같은데 뭐가 그리 복잡한지…"라며 볼멘 소리를 하는 사람도 있다. 왜 그럴까.
이러한 현상은 최근 비디오 TV 등 가전제품의 기능이 점차 다기능화되면서 더욱 보편화되고 있다. 불과 5~6년 전까지만 해도 TV의 기능이라는 것은 켜고 끄는 기능과 채널 선택, 음량조절 등이 고작이었는데 요즘은 그렇지 않다. 최소한 자동으로 켜지고 꺼지는 타이머기능은 기본이고 화상과 음량을 다양한 방법으로 조작해보는 기능이 덧붙여져 있다. 특히 최근에는 음성다중 문자다중 방송이 실시되고 유선TV와의 연결 사용도 필요하므로 TV 하나를 사용하는데도 골치 아픈 경우가 많다.
더구나 가전제품 중 사용이 가장 복잡한 비디오의 경우 리모콘의 버튼 수만 40~50 개씩 달려 있어 지레겁을 먹는 경우가 허다하다. 서로 자사 제품이 더 좋다고 홍보하는 제조업체측의 광고도 소비자들의 기를 꺽는데 한 몫을 담당한다. 듣지도 보지도 못한 영문 약자를 남발하면서 이 제품을 사지 않으면 과학기술의 혜택을 입지 못한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소비자들을 협박(?)한다.
이러한 당혹감은 제품을 선택하면서 최고조에 이르지만 제품을 선택하고 나서도 완전히 가시지 않는다. 수십가지 기능을 가졌다고 하는데 실제로 소비자가 이용하려 하면 벽에 부딪치는 것이 한두가지가 아니다. 그러다보니 괜히 돈만 더주고 비싼 제품 산 것만 같아 속이 아린 것이다.
물론 세탁기나 냉장고 전화기 식기건조기 등도 여러가지 기능을 갖추고 있지만 이들은 비디오에 비하면 대부분 사용이 간편해 이용도가 상대적으로 높다고 할 수 있다. 국내 보급률 33.4%(89년 기준)를 기록하고 있는 비디오(VCR)를 중심으로 여러가지 기능을 활용하는 방법을 일아보자.
기본기능과 서비스기능
VISS 한글OSD 슈퍼파인4헤드 디지털다화면 OTR 고화질HQ 하이파이고음질 등은 국내 가전3사(금성사 대우전자 삼성전자)의 비디오 선전문구 중 일부다. 많은 소비자들은 이 뜻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그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제조업체에서 기본기능과 서비스기능을 제대로 구분해 소비자들에게 홍보하지 않기 때문이다. 가격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기본기능은 가전3사 모두 비슷하고 부가적으로 서비스되는 기능이 약간씩 차이가 있는데, 차별성이 있는 서비스기능에 광고포인트가 맞춰져 소비자들에게 전달된다. 주객(主客)이 바꿔 셈이다. 여기에 '영문(英文)은 고급품' '한글은 저가품'이라는 왜곡된 의식구조가 소비자와 제조업자 모두에게 공통으로 자리잡고 있어 한글화작업 없이 그대로 선전되고 있는 것도 기능이 제대로 전달되지 못하는 중요한 이유다.
현재 시판되고 있는 비디오의 기능은 크게 화질 음질 편의성기능으로 구분된다. 화질과 음질은 기본기능이고 편의성기능은 보너스. 화질을 결정하는 것은 비디오테이프의 영상을 일어내는 헤드(head)다. 이는 비디오의 심장으로서 헤드수가 많을수록 고급품이다. 초기에는 2헤드가 주류였으나 최근에는 4헤드가 대종을 이루고 있다(일부 유럽에서는 3헤드도 판매). 음질은 기본적으로 모노(mono)냐 아니면 하이파이스테레오(Hi-Fi stereo)냐로 구분한다.
초창기의 비디오는 재생전용(녹화 안됨) 2헤드였다가 방송수신 튜너(tunner, 동조기)를 갖추고 녹화가 가능한 2헤드 비디오에 바톤을 넘겼다. 최근에는 4헤드가 주류. 여기에 하이파이 스테레오기능을 갖춘 제품도 선보이고 있다. 참고로 현재 우리나라 시장점유율을 살펴보면 재생전용이 6%, 2헤드가 50%, 4헤드가 40%, 하이파이가 4%다. 앞으로 당분간 4헤드가 주력기종이 될 전망이다.
화질이나 음질은 제품을 구입해 사용하면 별다른 노력없이 누구나 혜택을 누릴 수 있다. 비디오테이프를 넣고 작동만 시키면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편의성 기능은 그렇지 못하다. 사용자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현재 가전3사가 판매주력기종으로 내놓고 있는 4헤드 VCR(50만원대)이 갖추고 있는 편의성기능을 중심으로 사용방법을 알아보자.
다양한 녹화방법
녹화는 재생 다음으로 중요한 비디오 기능이다. 그러나 의외로 비디오의 녹화기능을 완벽하게 활용하는 사람은 드물다. 일반녹화는 그런대로 사용하지만 예약녹화와 즉시예약녹화(OTR, QSR 등으로 표시)를 구분해서 적절히 활용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일반녹화란 TV프로 방영시간에 맞춰 녹화하는 것을 말한다. 전원을 켠 후 안전편이 있는 테이프를 넣고 입력신호선택스위치(리모콘에는 INPUT SEL로 표시)를 튜너로 바꾼 후 녹화할 TV채널을 선택한다. 물론 중간에 녹화속도(표준속도, 장시간녹화속도)를 선택해야 한다. 이 이후에 녹화버튼(REC)을 누르면 동작이 완료된다.
테이프에 안전편이 없으면 녹화내용이 지워지지 않고 재생만이 가능하다. 결국 새로 녹화를 하려면 안전편(셀로판 테이프로 대용 가능)을 반드시 갖춰야 한다. 실제로 많은 사용자들이 잘 활용하지 못하는 것이 테이프의 속도. 예를 들어 T-160테이프를 사용해 녹화를 할 때 표준시간(보통 SP로 표시)으로 할 경우 2시간40분의 녹화가 가능하지만, 장시간 녹화(EP나 SLP로 표시)로 할 경우 SP의 3배인 8시간 까지 녹화가 가능하다. 일반적으로 오래 간직하고 싶은 프로그램은 표준시간으로 하고 장시간 드라마나 스포츠 등의 녹화에는 장시간 녹화로 하면 좋다. 다만 주의할 점은 장시간 녹화로 녹화된 테이프는 등급이 한단계 아래인 표준 시간 전용 비디오로는 재생이 불가능하다.
녹화 도중 다른 채널 TV를 시청하려고 할 경우 TV/VCR 선택버튼을 TV쪽에 맞추고 방송채널을 선택하면 된다. 보통 일반녹화는 같은 시간대에 방송되는 프로그램을 놓치지 않기 위해 사용한다. 녹화를 마치려면 정지(stop)버튼을 누르면 되고 일시 녹화를 중단할 때는 일시정지 버튼(pause)을 누르면 된다.
녹화할 때 부가되는 편의기능은 테이프카운터를 할 수 있다는 점이다. 즉 녹화시작 위치를 설정하면 재생할 때 찾기도 쉽고 녹화시 테이프 진행량도 알 수 있다. 사용방법은 리모콘을 활용하는데 제품마다 조금씩 다르므로 제품설명서를 참조하면 된다.
예약녹화나 즉시예약녹화는 일반녹화와는 다르게 현재 시간이 설정돼 있어야 한다.
현재 시각 맞춤은 메뉴버튼(프로그램버튼이라고도 함)을 누르면 여러가지 메뉴가 등장하는데 대개 1번에 설정돼 있다. 일부 메이커에서는 메뉴화면을 한글화해 알기쉽게 표시한 경우도 있으나(한글 OSD로 선전)대부분 영문이다. 90년 11월 5일 9시 20분인 경우 90 11 05를 입력한 후 0920를 누르면 된다 오전일 경우는 1, 오후일 경우는 2를 선택한다. 제품에 따라 시각 월 일 연 순으로 돼 있는 것도 있다.
현재 시각 설정이 끝나면 예약녹화에 들어갈 수 있는데 리모콘이 없으면 예약녹화가 불가능하다. 예약녹화에는 일반예약 매일예약 매주예약 등이 있다. 일반예약(normal program)은 날짜와 시각에 맞춰 한번만 녹화하는 것이고 매일예약(daily program)은 매일 같은 시간대의 방송을 녹화하는 것이다. 매주예약도 가능하다. 예약방법은 메뉴버튼(프로그램버튼)을 눌러가면서 화면에서 하라는 대로 따라하면 된다. 보통 여덟가지 종류의 프로그램이 예약 가능하다.
녹화된 프로그램을 확인할 수도 있는데 버튼 하나(메뉴중 예약확인, program review)로 모든 예약녹화된 프로그램이 8초씩 작동하면서 넘어간다. 예약 취소는 리모콘의 취소버튼(Clear)으로 가능하다.
예약녹화와는 별도로 즉시예약녹화라는 기능이 있는데, 이는 TV시청 중 손님이 찾아온 경우, 졸음이 올 때, 시청 중 급히 외출할 경우에 간단한 작동으로 녹화가 가능하다. 방법은 QSR(Quick Set Recording) 혹은 OTR(One Touch Recording) 관련 버튼 중 START 버튼을 누른 후 LENGTH 버튼으로 녹화시간을 입력하면 된다. 보통 한번 누를 때마다 30분씩 증가된다.
예약녹화를 할 때 사용설명서에 따라 잘 작동을 시켜놓고도 전원 플러그를 빼버려 정작 녹화가 되지 않아 항의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는 것.
편집기능도 갖춰
녹화된 비디오테이프를 재생시킬 때도 다양한 여러 가지 기능이 있다. 일시정지 화면일 경우 종래(2헤드)는 노이즈가 생겼는데 4헤드는 깨끗한 정지화면을 제공한다. 또한 느린화면(slow)뿐만 아니라 구분동작 화면도 가능해 영상이 로봇춤을 추게 할 수도 없다. 이를 가장 효과적으로 사용하는 사람은 운동선수들. 자신의 타격폼을 연속동작으로 또 구분동작으로 재생시켜 효과적으로 활용한다. 특히 느린 화면은 화면속도를 조금씩 가감할 수 있어 다양한 형태의 영상을 감상할 수 있다.
빠른 화면 또한 2배에서 21배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게 속도조절을 할 수 있다. 화면속도를 조정할 때는 음성은 나오지 않는다. 또한 속도 변환시 화면에 이상이 생기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이는 화면 떨림 조정버튼(일반적으로 tracking버튼이라고 함)으로 위아래로 조정하면 금방 없어진다.
최근에 일부 제품에서 채택된 VISS(VHS Index Search System)란 녹화 중 중요한 장면마다 색인(index)을 넣어, 이를 이용해 원하는 화면을 빨리 찾는 방법을 말한다. 대개 여러 프로그램이 녹화돼 있는 경우 프로그램 시작마다 색인신호를 입력해놓으면, 재생할 때 번호에 따라 각 프로그램 시작 부분에서 5초 동안 동작하고 다음 프로그램으로 넘어간다. VISS는 아직 일반 사용자에게 보편화된 기능은 아니다.
사용설명서 안보는 문화
제품의 특성을 파악하고 기능을 익히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사용설명서. 이를 보면서 직접 한번만 작동해 보면 손쉽게 기능을 익힐 수 있다. 실제로 사용설명서는 중학교1~2학년 정도의 학력만 있으면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 업계측의 얘기다.
금성사 고객서비스 사업부 기술과의 고영수과장은 "우리나라 사람들은, 특히 주부들은 사용설명서를 안보는 습관이 있는 것 같다. 안볼 뿐만아니라 사용설명서를 쉽게 잃어버린다"며 "이를 어느정도 보완하기 위해서는 제품을 소비자가 인수할 때 직접 시운전을 해보도록 대리점에 교육시키고 있다"고 말했다.
사용설명서를 보는데 가장 중요한 것은 직접 제품을 작동시키면서 이해하는 것. 그렇지않고 책 읽듯이 하면 무슨 소린지 이해하기 무척 어렵다.
더군다나 수출 위주로 발달한 우리나라 가전제품 특성상 본체와 리모콘의 모든 표시를 영문으로 해놓았기 때문에 쉽게 이해가 안되는 측면도 있다. Display Mute Sleep Add Erase Index Reset Tracking 등이 새겨진 리모콘을 보면 정상적으로 중고등학교에서 영어를 배운 사람도 현기증을 느낄 수 밖에 없다. 그런 점에서 최근에 일부 제품에서 화면에 나타나는 표시를 한글화하고, 사용설명서에서도 가능한 한 한글을 사용하려고 노력하는 점은 높이 살만하다.
사용설명서를 보다 사용자들이 손쉽게 볼 수 있도록 만화로 만들거나 아예 사용방법을 비디오 테이프에 담아서 서비스 하는 경우도 있다.
인공지능이라든가, 퍼지(fuzzy, 애매)이론의 개념이 가전제품에 적용되면 모든 동작을 제품 스스로 알아서 할 것이므로 머리 복잡하게 사용설명서를 보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인공지능비디오나 퍼지비디오가 나온다 하더라도 상황은 크게 변하지 않을 것이다.
올 12월에 국내에서 첫선을 보일 예정인 인공지능비디오의 개념이란 고작해서 녹화가 안된 부분을 건너뛰어 넘어가고, 프로그램만 끝나면 자동으로 되감겨지고, 전원이 꺼지는 정도다. 현재 시판되고 있는 제품도 테이프끝이 되면 자동으로 되감겨지고 전원도 꺼진다. 좋은 기능이 있다는 것을 사용설명서를 보지 않아 어렵게 사용하는 것이 다 반사이므로 아무리 인공지능제품이 나온다하더라도 이용도가 크게 높아지지 않을 것이다.
고장으로 착각하기도
TV는 비디오처럼 기능이 복잡하지 않아 이용도가 크게 떨어지지는 않지만 알아두면 편리한 보너스 기능을 묵히는 경우도 많다. 직접 소비자들과 자주 만나는 삼성전자 영등포 서비스센터 안영남씨는 "88년 후반부터 출하되기 시작한 TV에서는 타이머기능이 부가돼 기상시간에 맞춰 TV를 자동으로 켤 수도 있고 예정된 시간에 끌 수도 있는데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사용하지 않고 있다"고 안타까움을 표시했다. 더욱 음성다중 TV를 사놓고도 스테레오나 다중방송을 사용하지 않는 경우도 더러 있다는 것.
일반적으로 요즘 TV에는 원하는 채널만 기억시켜 놓고 시청하는 채널기억기능을 갖추고 있다. 경우에 따라서는 아이들이 장난삼아 기억된 채널을 지워놓을 수도 있는데 이를 두고 고장이라고 신고하는 웃지못할 사태도 가끔 일어난다는 설명이다.
화면을 조정하는 방법도 여러가지다. 선명도를 결정하는 콘트라스트(contrast)와 샤프니스(sharpness), 색상을 조정하는 컬러(color)와 틴트(tint), 밝기를 결정하는 브라이트(bright) 버튼이 있다. 전체적으로 화면의 분위기를 3단계로 조정하는(warm, medium, cool)장치도 붙어있다. 이외에도 음질의 높낮이를 고음(treble) 중간음(balance) 저음(bass)으로 분류할 수도 있다.
일반적으로 소비자들은 화질이나 소리를 자신의 취향에 맞게 조정해 보는 사람은 매우 드물다는 것이 업계측의 설명. 실제로 콘트라스트나 샤프니스 틴트 등의 개념은 소비자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고 있다. 이는 소비자들의 잘못만이 아니라 제조업체에서 정확한 개념을 제대로 홍보하지 못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새로운 전자제품을 제대로 사용하지 못하고 겨우 기본기능만을 이용하는 현상은 집안에서만 일어나는 것이 아니다. 요즘 웬만한 사무실에 설치돼 있는 팩시밀리의 경우도 번호입력하고 통신버튼 누르는 것 외에 다른 기능(화질 농도 선택, 예약통화 등)을 사용하는데 많은 사람들이 익숙치 못하다. 보내는 원고의 글씨 크기에 따라, 또는 선명한 사진을 보내야 할 경우에 화질을 높이는 방법이 있음에도 무관심한 것이 보통.
팩시밀리보다도 훨씬 대중화돼 있는 복사기도 마찬가지다. 확대 축소복사나 분할복사기능을 활용하면 훨씬 편리함에도 적극적인 태도를 보이지 않는다. 복사를 하다보면 복사지가 중간에 걸리는 경우도 있는데, 이를 바로 제거하지 않고 그냥 지나쳐버려 다음 사용자를 애먹이기도 한다.
이처럼 사무기기 사용에서조차 '기계를 부리는 능력'이 뒤처지는 이유는 사용설명서를 기기 일에 비치해놓지 않기 때문이다. 또한 처음 기기를 들여왔을 때 그 기기를 사용할 사람들에게 간단히 교육하는 분위기가 우리 사회에 정착되지 않은 것도 큰 문제.
기술이 수요를 앞서간다
미국 유럽 등에는 제품보증기간 중이라도 사용설명서를 숙지하지 않아 서비스센터에 의뢰하는 건에 대해서는 돈을 받는 것이 관례화돼 있다.
역으로 사용설명서가 소비자의 오해를 불러일으킬 소지가 있으면 당연히 기업측에서 배상을 한다. 그만큼 메이커와 소비자들의 책임이 명백히 규정돼 있는 셈. 즉 사용설명서와 품질보증서를 중시하는 문화가 뿌리를 내리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제품보증기간과 사용잘못에 대한 책임 소재가 매우 불분명하다.
소비자의 입장에서 기업측에 갖는 불만도 타당성을 갖는다. 관악구 신림동에 사는 정유진(32) 주부의 얘기를 들어보자. "사용설명서가 복잡해 친근감을 갖고 대하지 못한다. 내용이 어렵다는 것이 아니라 간략하고 명확하게 설명할 수 있는데, 복잡하고 너절하게 설명된 부분이 많다는 뜻이다. 제품 그 자체를 보아도 기능이 중복된 것이 많은 것 같다. 너절한 부분을 과감하게 줄여 소비자가 필요한 부분만을 압축해 제품화하지 못하는 것 같다. 또한 본체나 리모콘에 영문표시 일색인데 우리나라 사람이 알기쉬운 우리 표현을 개발해 표시하려고 노력해야 할 것이다."
소비자 위주로 제품을 개발한다기보다는 서로 경쟁을 하다보니 사소한 기능의 차별화에 몰두해 결국은 소비자들만 골탕을 먹는다는 얘기다.
금성사 상품기획실 비디오과의 현호만씨는 "라이프 사이클이 짧은 전자제품의 특성상 소비자의 요구 수준보다는 제품의 기술개발이 앞서가는 추세임이 분명한데, 이는 치열한 국제경쟁 하에서 불가피한 현상"이라고 설명하면서 "우리나라 소비자들의 비디오 제품 선호 추세가 미국이나 유럽보다 고급 수준이기 때문에 새로운 제품개발을 서둘지 않을 수 없다"고 밝혔다. 다만 복잡한 기능을 가진 제품이 나오기 시작한 것이 몇년 안되므로 아직 사용설명서를 보는 습관이 형성되지 않았기 때문에 제품이용도가 떨어지지만 기업측에서 노력하면 앞으로는 점점 나아질 것이라고 덧붙였다. 국민학교 고학년 이상 학생들이 있는 집에서는 이용도가 훨씬 높다는 것을 예로 들고 있다.
앞으로 점점 다기능화될 첨단 가전제품의 이용도를 높이기 위해서는, 우선 소비자들이 사용설명서를 숙지하는 습관을 기르며, 영문 위주의 기능표시를 한글화하고, 보다 간략한 사용설명서를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 또한 제품 광고를 할 때도 너절하게 과장 중복된 표현(슈퍼파인 고화질HQ)을 쓸 것이 아니라 필요한 특성만을 간단명료하게 표현해야 함은 물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