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역에서 동대구역까지 KTX로 2시간, 동대구역에서 다시 차로 30분을 달려 경북 경산시에 위치한 무학고에 도착했다. 4월 12일, 주말을 하루 앞두고 찾아간 학교는 봄기운이 가득했다. 정원에는 봄꽃들이 피었고, 운동장에는 학생들이 활기차게 공을 차고 있었다. ‘물리 공부하기 딱 싫은 날씨군’.
개인적인 편견(?)을 잔뜩 안고 제보가 들어온 3학년 6반 교실 문 앞에 섰다. 학생들이 딴전을 피우거나 고개를 파묻고 잠을 자는 흔한 물리 수업 풍경을 예상했다. 그런데 웬걸. 교실에는 웃음소리가 끊이질 않았다.
율동과 비유로 물리를 이해하다
교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의아함은 더욱 증폭됐다. 선생님이고 학생이고 할 것 없이 모두 양팔로 머리 위에 동그라미를 만들고 머리를 앞뒤로 움직이고 있는 게 아닌가. 게다가 입으로는 “나가 나가, 휙휙” 같은 알 수 없는 주문들을 외고 있었다.
“전자기 유도현상이 일어날 때 코일과 자석의 상대적인 운동을 몸으로 표현해본 겁니다. 양팔로 만든 동그라미가 코일, 머리가 자석, 동그라미가 움직이는 방향이 코일에 유도된 전류의 방향이죠.”
정종태 교사는 “율동은 학생들이 물리 수업에 집중하게 만드는 나름의 비법”이라며 “외부에 공개한 건 처음”이라고 쑥스럽게 웃었다. 약간 민망하긴 해도 효과는 확실해 보였다. 오후 4시, 집중력이 흐트러질 시간인데도 학생들의 눈이 반짝였다. 정 교사가 담임을 맡고 있는 3학년 6반의 실장이자, 과학동아에 사연을 보내준 이예찬 군은 “몸을 움직이면 기억에 오래 남는다”며 “친구들이 율동하는 모습을 보면 웃겨서 저절로 잠이 달아난다”고 말했다.
정 교사는 ‘제물포’라는 별명이 생기지 않도록 특히 학기 초반에 애를 많이 쓴다고 했다. ‘제물포’란 ‘쟤 때문에 물리 포기했다’의 줄임말로, 물리 수업이 그만큼 어렵다는 뜻이기도 하다.
정 교사는 “학기 초에 배우는 ‘힘과 운동’ 단원에서 이미 많은 학생들이 물리를 어렵게 생각하고 포기하게 된다”며 “교재 연구를 할 때 학생들에게 재밌을만한 비유나 율동을 함께 고민한다”고 말했다.
한 예로 그는 핵융합 과정에서 일어나는 질량결손 현상을 ‘계모임’으로 설명했다. 많은 학생들이 핵자들이 합쳐지는데도 질량이 증가하지 않고 감소하는 현상을 이해하기 어려워하는데, 핵자들을 계모임 일원이라고 가정하고 핵자들의 질량을 계모임 일원들이 가진 돈, 핵자 간 결합에너지를 계모임이 운영되는 정도에 비유한 것이다. 계모임이 잘 운영될수록(결합에너지가 높을수록) 사람들(핵자들)의 수중에는 돈(질량)이 없다. 돈이 은행에 모일 테니까 말이다. 성인인 기자에게도 한 번 들으면 잊을 수 없는 찰진 비유였다.
정 교사는 “물리 개념은 깨닫기까지 많은 시간이 걸리는 만큼 학생들이 이해한 모습을 보면 더욱 큰 기쁨을 느낀다”며 “그 과정에 작게나마 기여한다는 게 물리 교사직의 매력”이라고 말했다.
물리 개념 잘 이해하려면 “익숙해져라”
정 교사는 많은 학생들이 물리를 어렵게 느끼는 이유로 “접할 기회가 적고, 익숙하지 않아서”라며 “원하는 진로가 물리와 연관이 있다면 물리를 최대한 많이 접하는 것이 성장을 위한 정도(正道)”라고 설명했다.
이를 위해 그는 아두이노 및 코딩 동아리의 지도교사를 맡고 있다. 직접 인터넷 강의를 들으며 코딩 공부를 하고, 매주 수요일 학생들과 스터디를 진행한다. 실제로 무학고 과학실 한 켠에는 동아리 학생들이 설계한 RC(Radio Control)드론, RC자동차 등이 전시돼 있었다.
“아두이노 설계에 회로와 같은 물리 지식을 적용할 수 있거든요. 물리 지식을 이용해서 트랜지스터, 다이오드 등도 구현할 수 있고요. 코딩이라는 논리적인 언어를 배우면 공대 진학에도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아두이노를 전문가 수준으로 익히는 게 올해의 목표입니다.”
듣고 있던 이 군은 또 다른 사례로 지난해 초 교내에서 열린 ‘열기구날리기’ 대회 영상을 꺼냈다. 비닐을 이용해 낙하산을 만들고 여기에 공을 매달아 공의 체공 시간이 가장 긴 팀이 이기는 대회였다. 참가한 학생들의 함성이 월드컵 한일전을 방불케 했다.
이 군은 “열기구날리기 대회를 준비하면서 처음으로 종단속도의 개념을 알게 됐다”고 뿌듯해 했다. 낙하하는 물체의 중력과 공기의 저항이 같아지면 물체가 등속운동을 하는데, 종단속도는 이 때의 속도를 말한다.
이 군은 물리 과목에 자신감을 얻으면서 건축설계사라는 새로운 꿈이 생겼다고 했다. 이를 위해 학급 동아리 시간을 활용해 친구들과 내진 설계 실험을 해보고, 방학 때는 캐드(CAD)도 배웠다는 그의 표정은 인터뷰 내내 밝았다. 그는 새로운 진로를 탐구하는 데 과학동아에 실린 최신 과학 이슈와 인터뷰 기사가 큰 도움이 된다는 말로 인터뷰하는 기자의 마음을 부레옥잠처럼 동동 뜨게 만들었다.
정 교사는 이번 인터뷰가 “평생 가장 기억에 남는 스승의 날 이벤트가 될 것 같다”고 말했다. 교내에서 오랫동안 정보 분야 전담교사를 하다가 학급 담임을 맡은 지 3년 차. 반 운영하랴, 고3 학생들 진학지도 하랴, 새로운 일에 적응하는 데 힘든 시간을 보냈는데 올해는 이 군 같은 열성적인 반 학생을 만나 인터뷰도 하게 됐다며 이 군에게 공을 돌렸다. 왜 이과생 140명 중 90명 이상이 물리II를 선택했는지 알 것 같았다. 정 교사는 “학생들이 물리 과목을 더 좋아하고, 잘 할 수 있도록 노력을 아끼지 않겠다”고 다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