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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비의 풍류 살리는 장중한 소리 거문고

편집자주 팔음(八音)에 해당하는 악기의 소리는 동아사이언스 홈페이지(www.dongaScience.com/DS)에서 감상할 수 있다.


거문고는 그 소리가 경박하지 않고 장엄해 예부터 모든 악기의 으뜸인 ‘백악지장’(百樂之丈)으로 불렸다. 팔음(八音) 분류법 중 ‘사’(絲)부에 속하는 거문고는 명주실을 꼬아 만든 줄을 ‘술대’라는 막대기로 치거나 튕겨서 소리를 내는 악기다.

풍류와 멋을 아는 선비들 사이에서 거문고 연주는 반드시 갖춰야 할 덕목 중 하나로 여겨졌다. 절제된 멋을 풍기는 거문고는 선비의 흐트러진 마음을 추스르는 데 더없이 좋은 악기였기 때문이다.

검은 학이 내려준 이름 '현학금'

언제부터 거문고가 선비들의 정신수양을 돕는 악기로 쓰였을까. 거문고는 삼국시대에 중국에서 전해진 것으로 보인다. 거문고와 관련된 기록은 ‘삼국사기’ 악지(樂志)에서 찾아볼 수 있다.

4세기경 중국 진(晋)나라(317년∼419년, 위진남북조 시대의 동진으로 추정)는 고구려와 우호를 다지기 위해 칠현금을 선물로 보냈으나 아무도 이 악기를 연주하는 법을 몰랐다고 한다. 이에 왕이 칠현금을 연주할 수 있는 사람을 찾았고, 당시 고구려의 제2상(第二相)인 왕산악(王山岳)이 악기의 외형은 거의 그대로 두고 구조를 개량해 연주했다는 기록이 전해진다. 흥미롭게도 왕산악이 악기를 연주하자 그 소리를 듣고 검은 학이 날아들어 춤췄다고 한다. 이 악기는 검은 학, 즉 현학(玄鶴)이 날아든 악기라는 뜻에서 현학금(玄鶴琴)이란 이름이 붙었고, 현학금은 시간이 지나며 ‘학’자가 떨어져 ‘현금’이라 불렸다.

그렇다면 거문고란 이름은 어디서 유래했을까. 이에 대해서는 몇 가지 이야기가 있지만 ‘현금’에서 유래했다는 설이 가장 유력하다. 거문고의 ‘고’는 현악기를 가리키는 순우리말인데, 여기에 ‘검을현’(玄)자를 우리말로 바꿔 ‘검은고’라고 부르다가 점차 거문고라 부르게 됐다는 얘기다.

거문고의 원형으로 보이는 악기는 고구려 고분벽화에서도 살펴볼 수 있다. 황해도의 안악 제3호분(357년 축조)과 같은 4세기경 고분에는 거문고로 보이는 현악기의 반주에 맞춰 사람들이 춤을 추는 ‘무악도’(舞樂圖)가 그려져 있다. 무악도에 그려진 악기들이 중국의 악기편성 방식과 매우 비슷한 것으로 볼 때 4세기경에는 이미 중국의 음악과 함께 거문고의 기원이 되는 악기가 고구려에 전파됐음을 알 수 있다. 거문고는 7세기 말경 신라에 전해졌고 통일신라에서 삼현삼죽(三絃三竹)의 하나로 분류돼 대표적인 향악기로 자리 잡았다.

명주실 6줄과 대나무 막대의 조화

거문고는 명주실로 만든 6개의 줄을 술대라는 나무 막대기로 치거나 올려 뜯어서 소리를 낸다. 술대는 바닷가에서 자라 단단한 대나무인 해죽(海竹)으로 만든다. 보통 현악기의 줄이 만드는 파동은 진폭이 크지 않아 소리가 작다. 그래서 대부분의 현악기는 울림통에서 같은 진동수의 파동을 겹쳐 진폭을 키우는 공명 현상으로 소리를 크게 만든다. 거문고는 오동나무와 밤나무를 붙여 만든 몸체가 울림통 역할을 한다.

거문고 몸체의 머리쪽은 용두(龍頭), 꼬리쪽은 봉미(鳳尾)라고 부르는데, 몸체 중간에는 단단한 회양목으로 만든 괘가 16개 세워져 있다. 괘는 음을 조절하기 위해 왼손으로 짚는 부분으로 몸에 가까운 괘를 짚을수록 음이 높아진다. 현악기는 줄의 진동수에 따라 음높이가 달라지는데, 진동수가 높을수록 음이 높고 진동수가 낮으면 음도 낮다. 숭실대 소리공학연구소 배명진 교수는 “왼손으로 괘를 짚으면 줄이 짧아지는 효과가 생겨 주기는 짧아지고 진동수가 높아져 결국 높은 음이 난다”고 설명했다. 기타를 연주할 때 왼손으로 몸에 가까운 코드를 잡을 때 높은 음이 나는 원리와 같다.

거문고의 6줄은 연주자와 가까운 줄부터 문현(文絃), 유현(遊絃), 대현(大絃), 괘상청(棵上淸), 괘하청(棵上淸), 무현(武絃)으로 부른다. 그중 2, 3, 4번째 줄인 유현과 대현, 괘상청은 괘 16개에 모두 걸쳐 있다. 하지만 1, 5, 6번째 줄인 문현과 괘하청, 무현은 괘 위를 지나지 않고 안족(雁足) 에 걸쳐 있다.

거문고나 가야금 같은 현악기를 연주하려면 뛰어난 음감을 가져야 한다. 명주실은 습도와 열에 따라 수축하고 팽창해 연주하는 환경에 따라 명주실의 길이가 달라져 음이 변하기 때문이다. 또한 1, 5, 6번째 줄을 받치고 있는 안족은 거문고 몸체에 붙어 있지 않고 자유자재로 움직인다. 악기를 움직일 때마다 안족의 위치가 변해 음높이가 달라진다는 뜻이다. 그래서 거문고를 연주하기 전에 편경이나 대금 같은 악기의 도움을 받아 조율해야 한다.

거문고는 현재 관현 합주곡에 반드시 편성되며 독주악기로도 널리 쓰인다. 현악기로 이뤄진 줄풍류 같은 합주곡에서는 거문고가 합주를 이끈다. 그런데 같은 현악기라도 가야금은 피아노를 치듯 유려한 손놀림이 돋보인다면 거문고는 술대로 줄을 내려치는 모습에서 절제된 강인함과 함께 타악기 같은 느낌마저 준다.

거문고를 연주할 때 제일 많이 쓰는 줄은 2번째 줄인 유현과 3번째 줄인 대현이다. 유현은 줄의 굵기가 상대적으로 가늘어 높은 음을 내고 대현은 줄이 더 굵어 낮은 음을 낸다. 같은 힘으로 줄을 튕기더라도 줄이 얇으면 진동수가 높아지고 줄이 두꺼울수록 진동수가 낮아지기 때문이다. 이처럼 거문고는 한 옥타브 이상 차이가 나는 두 줄이 어우러져 독특한 음색을 만든다. 이런 옥타브 차이 때문에 듣는 사람은 음이 급격하게 상승하거나 하강하는 것처럼 느낀다.

선비들이 거문고를 사랑한 이유는 아마도 그 독특한 음색에서 검은 학이 비상(飛上)하며 뛰노는 모습을 느꼈기 때문은 아닐까.


 
팔음(八音)
국악기 분류법이자 악기를 만드는 재료를 지칭하는 용어로 금(金), 석(石), 사(絲), 죽(竹), 포(匏:바가지), 토(土), 혁(革), 목(木)을 가리킨다. 이런 분류법은 영조 때 편찬한 ‘증보문헌비고’(增補文獻備考, 상고 때부터 한말에 이르기까지 문물을 정리한 책)에 기록돼 있다.

삼현삼죽
통일신라 때 쓰였던 향악기 중 현악기인 거문고, 가야금, 향비파를 삼현이라 하며 관악기인 대금, 중금, 소금을 삼죽이라고 한다.

안족(雁足)
마치 기러기발처럼 생겼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2009년 07월 과학동아 정보

  • 이준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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