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빛이 내린다, 샤랴랄라라랄라~’
2025년 아랍에미리트 두바이. 유성우 예보도 없는데 화려한 도시 조명을 뚫고 밤하늘에서 무지개 색깔의 별똥별들이 쏟아진다. 상상 속 이야기가 아니다. 인공 유성우를 만드는 ‘스카이 캔버스 프로젝트(Sky Canvas Project)’가 진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도시에서 시간당 1~2개 관측
유성우는 별똥별(유성)이 비처럼 내리는 현상이다. 혜성이나 소행성들은 태양에 가까이 지나가면서 태양풍에 의해 쪼개지고, 그 조각들을 우주 공간에 남겨 놓는다. 지구가 공전하면서 이들을 지나게 되면 지구 대기와 마찰이 일어나 빛줄기가 만들어진다. 파편의 수가 많아 한꺼번에 많은 별똥별이 떨어진다. 이 현상이 유성우다.
지구가 1년에 한 바퀴씩 공전하기 때문에 유성우는 매년 비슷한 시기에 볼 수 있다. 예를 들면 거문고자리 유성우는 매년 4월 중순, 물병자리 유성우는 5월 초에 관측할 수 있다. 유성우의 이름이 별자리인 이유는, 밤하늘에서 유성우가 보이기 시작하는 부분에 있는 별자리의 이름을 따서 붙이기 때문이다. 유성우를 보고 싶을 땐 해당 날짜의 새벽 시간대에 그 이름을 딴 별자리 근처를 관찰하고 있으면 된다.
시간당 볼 수 있는 별똥별의 개수(ZHR·Zenithal Hourly Rate)는 유성우마다 다르다. 적게는 5개에서부터 120~150개까지 다양하다. ‘3대 유성우’로 유명한 사분의자리 유성우와 페르세우스자리 유성우, 쌍둥이자리 유성우는 보통 시간당 100~120개의 별똥별을 볼 수 있다.
하지만 아무리 유명한 유성우라도, 요즘 밤하늘에서 이렇게 많은 수의 별똥별이 떨어지는 걸 관측하기는 쉽지 않다. ZHR은 날씨가 맑고, 주위에 불빛이 없는 여러 조건이 충족된 이상적인 환경에서 볼 수 있는 숫자다.
날씨가 흐리거나, 인공조명이 많아 빛 공해가 심한 도시에서는 시간당 1~2개도 보기 힘들다. 일 년에 몇 차례, 운이 좋아야 하고, 겨울에는 추위에 떨며 기다려야 볼 수 있는 게 유성우다(서울 촌놈(?)인 기자는 아직까지도 유성우를 보지 못했다).
1cm 인공 별똥별 입자 제작
하지만 도시에서도 이런 ‘우주쇼’를 볼 수 있는 기회가 곧 생길지 모른다. 일본의 벤처기업 ALE(Astro Live Experiences) 는 2011년부터 인공 유성우를 만드는 ‘스카이 캔버스 프로젝트(하늘을 캔버스로 만들어 아름다운 것들을 그리겠다는 뜻)’를 추진해 왔다. 그리고 올해 1월, 실제 시험 단계에 돌입했다.
이 프로젝트는 ALE의 최고경영자(CEO) 레나 오카지마의 아이디어에서 시작됐다. 그는 천문학과 대학생이던 2001년 11월, 친구들과 함께 사자자리 유성우를 봤다. 사자자리 유성우는 태양 주변을 33년 주기로 도는 ‘템펠-터틀’ 혜성이 지나가면서 남긴 잔해 사이를 지구가 통과하면서 생긴다.
2001년에는 지구가 이 부근을 통과한 지점이 아시아 지역이었기 때문에 시간당 5000개 이상의 엄청난 유성우가 떨어졌다. 이 장관을 보면서 유성우에 반한 오카지마 CEO는 모든 사람들에게 유성우의 아름다움을 보여주고 싶었다. 그리고 과학기술로 유성우를 직접 만들어서 즐기겠다는 생각을 떠올리고 실행에 옮겼다.
그렇다면 ALE는 인공 유성우를 어떻게 만들까. 우선 혜성의 파편들처럼, 유성우를 만들 입자들이 필요하다. ALE 측은 과학동아와의 e메일 인터뷰에서 “1cm 구형의 별똥별 입자들을 만들었다”며 “무엇으로 만들었는지에 대해서는 철저히 비밀에 부치고 있어 알려줄 수 없지만, 매일 지구로 쏟아지고 있는 우주 먼지와 같은 성분”이라고 밝혔다.
이 입자들은 폭 60cm, 높이 80cm, 무게 65kg인 소형 인공위성에 실려 발사된다. ALE는 “위성에는 400개 정도의 입자들이 실린다”고 말했다. 인공위성은 고도 400km까지 올라가 목표한 궤도에 진입한 뒤, 탑재된 특수 장비를 통해 입자들을 우주로 방출한다.
하지만 원하는 장소와 시간에 유성우를 만드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ALE는 “정확한 속도와 각도, 방향 등을 계산해 입자를 방출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드는 일이 가장 어려웠다”고 설명했다.
이를 위해 ALE는 지상에서 수많은 실험을 진행했다. 인공위성이 위치할 우주 환경을 시뮬레이션한 진공 챔버에서 진동 테스트를 실시했고, 같은 환경에서 별똥별 입자를 정확한 속도와 각도로 방출해 대기권에 진입하는 과정까지 재현했다. ALE는 “인공위성이 수명을 다 할 때까지 수천 개의 입자를 방출할 수 있을 만큼 높은 정확도를 가진 시스템을 만드는 데 성공했다”고 말했다.
방출된 입자들은 지구를 3분의 1가량 돌고 대기권에 진입한다. 그리고 대기와 마찰하면서 60~80km 지점에서 별똥별처럼 빛을 발한다(실제 별똥별이 빛을 내며 떨어지는 위치도 70km 부근이다). 이때 인공 유성우는 실제 유성우처럼 다양한 색깔의 빛을 내도록 제작됐다. 재료에 열을 가해 빛을 내는 것까지 실험으로 확인했다. 인공 유성우는 분홍색(리튬), 주황색(나트륨), 노란색(칼슘), 초록색(구리) 등 금속 입자의 종류에 따라 다른 색깔을 낸다.
인공 유성우는 자연적인 유성우보다 더 밝고, 더 느리게 떨어져 좀 더 오랜 시간 감상할 수 있을 전망이다. 보통 별똥별은 평균 초속 50km로 매우 빨라 순식간에 떨어진다. ALE는 “입자 하나가 떨어지는 데 5~10초가 걸릴 것으로 보이며, 최대 밝기가 -1등급 정도로 매우 밝아 인공 불빛이 많은 대도시에서도 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인공위성 2기에서 별똥별 입자 터뜨려
ALE는 1월 18일, 스카이 캔버스 프로젝트의 첫 번째 위성을 일본의 소형로켓 ‘엡실론 4호’에 실어 성공적으로 발사했다. 위성에는 인공 유성우를 만들 입자가 실려 있다. 현재 지상과의 통신도 문제없다. ALE는 “두 번째 인공위성을 제작하고 있으며, 올 봄에 완성해 여름쯤 발사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계획대로라면 2020년 봄, 일본 히로시마와 세토 내해 부근에서 ‘슈팅 스타 챌린지’라는 이름으로 세계 최초의 인공 유성우 이벤트가 열릴 예정이다. 이때 유성우는 지름 200km 이내의 지역에서 600만 명 이상이 관측할 수 있다.
ALE는 “아직 최종 결정은 내리지 못했지만, 인공위성 두 기를 모두 사용해 인공 유성우를 만들 가능성이 높다”며 “성공한다면 향후 한국을 포함해 전 세계에 인공 유성우 이벤트를 제공하고 싶고, 인공 유성우 외에도 미래를 위한 다른 우주 엔터테인먼트 사업을 계속 해 나갈 예정”이라고 말했다.
스카이 캔버스 프로젝트는 과학기술 연구에도 활용할 수 있다. 이 프로젝트 덕분에 정기적으로 관측되지 않는 상부 대기권을 관측할 수 있고, 대기권을 통과하는 유성 입자의 경로와 방법을 연구할 수 있다. ALE는 “많은 사람들이 우주에 대해 관심과 호기심을 가질 수 있게 하고 싶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우주 쓰레기가 가득한 지구 상공에 또 다른 물체를 추가하는 것에 대해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다. 현재 지구 궤도에는 전 세계에서 쏘아올린 인공위성 5000여 기가 흩어져 있고, 추적 가능한 10cm 이상의 우주쓰레기가 3만4000여 개, 1~10cm 크기의 우주쓰레기가 90만 개 이상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아무리 작은 크기라도 인공위성에 충돌할 경우 그 여파가 크다.
지난해 1월 21일 미국 우주개발 벤처인 로켓랩(Rocket Lab)이 발사한 인공위성 ‘휴머니티 스타(Humanity Star)’는 우주쓰레기 논란에 다시 한번 불을 붙였다. 노래방의 디스코 볼 조명처럼 생긴 이 위성은 반사율이 높은 탄소섬유 판 65개를 이어 붙인 형태여서 햇빛을 반사해 밝게 빛난다. 9개월 동안 지구를 돌며 빛을 발할 예정이었지만 그해 3월 23일, 예상보다 훨씬 일찍 지구로 떨어졌다. 다행히 대기권에서 불타 없어져 큰 문제는 없었다.
휴머니티 스타처럼 반짝이는 또 다른 인공물체도 발사가 예정돼 있다. 미국 예술가인 트레버 파글렌과 네바다박물관이 만든 ‘오비탈 리플렉터(Orbital Reflector)’다. 2018년 12월 발사 예정이었지만, 미국 연방정부 업무정지(셧다운)로 미뤄졌다.
과학자들은 이들의 발표에 우주쓰레기를 늘릴 뿐이라며 냉담한 반응을 보여 왔다. 이런 상황에서 스카이 캔버스 프로젝트도 우주쓰레기 논란을 피해가기는 어렵다. ALE는 “별똥별 입자의 경우 크기가 매우 작은 만큼 우주 환경에 미치는 영향은 거의 없을 것”이라며 “인공 유성우를 만드는 인공위성도 계획에 따라 대기권으로 진입시켜 안전하게 처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