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역사를 구석기 시대, 신석기 시대, 청동기 시대, 철기 시대로 나눕니다. 이 분류의 기준은 바로 ‘재료’예요. 당시 사람들이 사용하던 도구의 재료로 문명의 발달 정도를 나눈 거죠. 그만큼 재료는 인류의 역사에서 가장 중요하게 다뤄져 왔습니다.”
주영창 서울대 재료공학부 학부장은 재료공학의 중요성을 이같이 설명했다. 그렇다면 지금은 무슨 재료의 시대일까. 흔히 ‘실리콘 시대’ ‘플라스틱 시대’ 등으로 부른다. 주 학부장은 “지금은 바이오, 금속, 세라믹 등 거의 모든 산업 분야에서 재료의 혁신이 필요한 ‘소재의 르네상스’”라며 “모든 재료가 다 중요해 재료공학에서도 다양한 재료를 다룬다”고 말했다.
특히 최근의 화두는 지속가능한 발전이다. 지구의 자원은 한정돼 있는데, 인류는 점점 더 많은 재료를 소비한다. 예를 들어 유기발광다이오드(OLED)에는 이리듐이라는 금속이 꼭 필요하지만 이리듐은 매우 희귀하다. 그래서 다른 재료를 개발해 이리듐을 쓰지 않고도 OLED를 만들 수 있도록 연구하고 있다.
스마트폰, TV 등 첨단 기술에 꼭 필요한 희토류 금속도 마찬가지다. 희토류 금속은 채굴 과정에서 환경 파괴가 매우 심각해 이를 쓰지 않고도 같은 기능을 하는 재료를 개발해야 할 필요성이 대두되고 있다. 주 학부장은 “지구의 자원을 현명하게 활용해 에너지와 환경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학문이 재료공학”이라며 “재료공학자는 ‘현대판 연금술사’”라고 말했다.
● 교수진 - 거울상 대칭 구조 입자 제작, 인공 촉각 신경 구현
서울대 재료공학부의 연구 분야는 크게 재료과학, 구조재료, 전자재료, 에너지·환경재료, 바이오 및 소프트 재료 등 5가지로 나뉜다. 각 분야에 걸쳐 43명의 교수진이 포진해 있다. 주 학부장은 “재료공학 전공뿐만 아니라, 물리학, 전자공학, 화학공학 등 다양한 분야를 전공한 교수들이 모여 시너지를 내는 것이 우리 학부 교수진의 가장 큰 장점”이라고 말했다.
재료공학부는 정부나 산업체와의 협력 연구, ‘핫’한 논문 게재, 국제 교류 등에서 골고루 성과를 내고 있다. 2017년에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추진하는 국내 유일의 미래 소재 연구개발(R&D) 사업인 ‘미래소재 디스커버리사업’에 주 학부장의 연구팀과 강기석 교수팀, 남기태 교수팀이 선정됐다. 주 학부장은 “연간 연구 과제를 6개 선정하는데, 한 학부에서 3개나 뽑힌 것은 서울대 재료공학부가 유일하다”고 말했다.
2018년에는 ‘네이처’ ‘사이언스’ 등 국제 학술지에 논문을 게재했다. 남기태 교수팀은 LG디스플레이와 공동연구를 진행해 세계 최초로 거울상 대칭 구조를 가진 금 나노입자를 만드는 데 성공했다.
오른손과 왼손처럼 서로 거울 대칭상이지만 겹쳐지지 않는 특성을 ‘거울상 이성질’ 또는 ‘카이랄성’이라고 한다. 단백질의 기본 구조인 아미노산을 포함해 생명 현상에 관여하는 모든 유기 분자는 카이랄 구조를 하고 있다.
카이랄 구조의 재료는 촉매, 광학 등 광범위한 분야에서 차세대 핵심 재료로 주목 받고 있다. 특히 초박막 디스플레이나 센서를 만들 때 꼭 필요하다. 하지만 금, 은, 니켈과 같은 금속 무기 재료에는 카이랄 구조를 인공적으로 만들기가 어려웠다.
남 교수팀은 거울상 구조를 포함하는 생체 분자 펩타이드를 응용해 새로운 기하 구조 형태의 금 나노입자를 만드는 데 성공했다. 이렇게 만든 카이랄 구조는 편광 제어 특성이 있어 여러 색을 낼 수 있다. 이 연구는 ‘네이처’ 2018년 4월 19일자 표지논문으로 선정됐다. doi:10.1038/s41586-018-0034-1
2018년 6월에는 이태우 교수팀이 미국 스탠퍼드대 연구팀과 함께 유연한 유기 소자로 생물의 촉각 신경을 모사한 인공 감각 신경을 개발해 ‘사이언스’에 게재했다. 연구팀이 만든 인공 촉각 신경은 생물의 촉각 수용체처럼 압력을 전기 신호로 변환하는 압력 센서, 뉴런처럼 전기 신호를 만드는 유기 링 오실레이터, 인공 시냅스 역할을 하는 유기 시냅스 트랜지스터로 구성돼 있다. doi:10.1126/science.aao0098
이 교수팀은 인공 촉각 신경을 죽은 바퀴벌레의 다리에 연결해 압력에 따라 다리의 운동 뉴런을 제어해 다리를 움직이게 하는 데 성공했다. 이 연구는 복잡한 회로 대신 간단한 구조로 실제 신경을 그대로 모사해 전력 소모를 크게 줄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앞으로 신경 장애가 있는 사람들을 위한 인공 신경 보철 장치나 로봇 개발에 도움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주 학부장은 “이들 연구는 최근 재료공학부 성과의 일부일 뿐”이라며 “재료공학부의 가장 중요한 역할이 국내 산업 발전을 책임지는 일인 만큼 교수진 모두 각 분야에서 최고의 성과를 내고 있다”고 강조했다.
● 교육프로그램 - 미대와 컬래버레이션 수업 시도
동일한 철이라도 어떤 재료는 단단하고, 어떤 재료는 무르다. 공정과 처리에 따라 미세구조가 바뀌고 결국 성질이 달라진다. 이처럼 재료에서 원하는 성질을 얻기 위해서는 재료의 구조, 공정, 성질 사이의 관계를 알아야 한다. 재료공학부에서는 각 재료의 구조와 특성, 공정 등을 각종 이론과 실험을 통해 교육한다.
주 학부장은 “재료공학을 이론으로만 접해서는 학생들이 실제 재료공학이 무엇을 하는 학문인지 잘 모를 것 같아 새로운 시도를 했다”고 말했다. 바로 2018년 여름 서울대 미대와 공동 기획한 금속공예 실습수업이다. 이 프로그램은 창의융합교육이라는 이름으로 미대에서 10주간 진행됐고, 결과물도 전시했다.
주 학부장은 “처음에는 학생들이 실제 금속을 손으로 만지고 다루는 것을 어색해 했지만, 금방 적응하고 열정적으로 수업에 참여했다”며 “그동안 수업에서 배운 이론들을 일상생활에서 만나는 친근한 재료들과 연계해 좀 더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게 됐다며 반응이 매우 좋았다”고 말했다.
2019년부터는 재료공학부에 공간을 따로 마련하고, 금속공예뿐 아니라 세라믹 세공, 유리 세공 등으로도 컬래버레이션 수업을 확대할 계획이다.
● 진로 지원 - 학부생 인턴과 산업체 인턴 프로그램 운영
88명이 정원인 재료공학부에서는 평균적으로 졸업생의 절반이 대학원으로 진학하고, 나머지 절반이 취업을 한다. 학생들의 진로 설계를 돕기 위해 재료공학부는 여름방학 동안 연구실 인턴과 산업체 인턴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1~3학년 학부생은 관심 있는 연구실에 지원해 2개월 동안 인턴 생활을 하며 이론으로만 배웠던 연구를 실제로 진행하고 대학원 생활을 미리 경험해 볼 수 있다.
또 산업체 인턴을 통해 SK하이닉스와 삼성전기 등의 기업체에서 2개월간 근무할 수도 있다. 주 학부장은 “여러 산업에서 재료공학이 중요한 역할을 하는 만큼 다양한 분야로 진출할 수 있다”며 “다만 학부 지식만으로는 한계가 있기 때문에 전공을 살려서 진로를 정하고 싶어하는 학생의 경우 대학원에 진학해 좀 더 심화된 지식을 배우라고 권하기도 한다”고 덧붙였다.
● 인재상 - 다양한 분야 잠재력 가진 학생 선호
재료공학부가 원하는 인재상을 묻자 주 학부장은 대답 대신 “공학도라고 하면 어떤 이미지가 떠오르냐”고 되물었다. 체크 셔츠를 입고, 밤새 공부만 하고, 프로그램을 짜는 연구원의 이미지가 연상됐다. 주 학부장은 “그런 정형화된 이미지를 바꾸고 싶다”고 말했다.
“공학은 점점 팀으로 움직이는 학문이 되고 있어요. 다양한 전공의 사람들과 함께 연구를 해야 하기 때문에 사람들과 잘 어울리고 소통하는 공학자가 경쟁력이 있어요.”
그래서 물리와 화학 등 과학 과목을 잘하는 학생도 좋지만, 다양한 경험을 많이 해 여러 분야의 잠재력을 가진 학생을 선호한다. 주 학부장은 “재료공학이라는 학문의 특성상 복잡한 시스템에서 핵심원리를 찾아 방향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에 종합적인 사고를 하는 능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 조언 - 기초와 응용 모두 갖춘 학문
재료공학은 영어로는 ‘Materials science& engineering’이다. 주 학부장은 “공대에서 ‘사이언스’라는 단어가 들어가는 유일한 학문이 재료공학”이라며 “그만큼 기초학문과 응용학문의 성격을 모두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재료공학부 진학을 희망하는 학생들에게 주 학부장은 다음과 같은 조언을 남겼다.
“많은 학생들이 대학 입학을 목표로 공부해서 ‘대학에 입학하기만 하면 끝이다’라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하지만 대학 입학은 또 다른 시작이자 기회입니다. 이 차이가 굉장히 크더라고요. 특히 공학은 세계를 대상으로 경쟁을 벌여야 합니다. 미래의 핵심 소재를 개발하기 위해서는 미국, 중국보다 더 잘해야 하는 것이죠. 그러려면 인류의 미래에 기여하겠다는 큰 꿈을 가지고 꾸준히 노력하는 게 중요합니다.”
[재학생 인터뷰] 기초과학과 응용과학 아우르는 재료공학부 - 우리 학부를 소개합니다
왼쪽부터 순서대로 서울대 공대 재료공학부 인터뷰에 참여한 17학번 김호현, 박찬웅, 한정현, 18학번 박유정, 하대철
아침 기온이 영하 10도까지 떨어진 12월 초, 재료공학부에 재학 중인 17, 18학번 학생들을 만났다. 관악산 자락에 위치한 탓인지 서울대의 한파가 더 무시무시한 것 같다고 말하자 재료공학부 학생들은 깨알 같이 이를 학부 홍보(?)에 이용했다.
“이런 추위에 눈이라도 내리면 ‘윗 공대’는 버스가 운행하지 않아 내려오지도 못해요. 공대 학부 중에 재료공학부의 건물 위치가 아주 좋아요. 셔틀 버스 타기에도 좋고, 주위에 카페와 식당도 많죠. 시설도 가장 좋고요.”
위치와 건물 ‘부심’뿐만 아니라 학부 자체에 대한 ‘부심’도 가득했던 이들에게 서울대 재료공학부에 입학할 수 있었던 비결을 들어봤다.
스터디 그룹 만들어 면접 대비 17학번 김호현
김호현 씨는 경기북과학고를 졸업하고 수시일반전형으로 재료공학부에 입학했다. 그는 중학생 때 과학고 지원서를 쓸 때부터 신소재를 전공해야겠다는 막연한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막상 고등학교에 진학해보니, 특별히 자신 있는 과학 과목이 하나씩 있었던 친구들과는 달리 김 씨는 두루 성적이 비슷했다. 그는 “물리와 화학 중에 무엇을 전공하면 좋을지 결정을 못했다”며 “재료공학부는 이런 고민을 하는 사람들에게 가장 적합한 학부인 것 같아 지원하게 됐다”고 말했다.
하고 싶은 게 많았던 그의 생활기록부는 중구난방이었다. 소논문(R&E)에 욕심이 많아서 1학년 때는 수학 R&E, 2학년 때는 화학 R&E를 했다. 김 씨는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어차피 진로를 정하지 못했다면, 일단 내가 하고 싶은 것에 집중하는 것도 방법”이라고 조언했다. 어떤 활동이든 도움이 되지 않는 건 없기 때문에 무엇이든 자기소개서에 충분히 녹여낼 수 있다고.
서울대 수시 일반전형에는 수학 문제만 출제된다. 김 씨의 경우 전년도 기출 문제가 어려워 그 난이도에 맞게 준비하느라 공부해야할 양이 많았다. 혼자 준비하기에는 무리가 있겠다고 생각한 김 씨는 서울대 입시를 준비하는 친구들과 스터디 그룹을 만들었다.
구하기 힘든 자료나 각자 가지고 있는 자료들을 공유하면서 최대한 많은 지식을 얻고, 문제 풀이 방법을 토론하는 데 중점을 뒀다. 김 씨는 “문제가 예상보다 쉽게 출제되기는 했지만, 스터디를 하면서 다양하게 생각하는 방법을 익힌 경험이 대학에 진학해 공부하는 데도 많은 도움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면접에서는 당황스러운 순간도 있었다. 수시 일반전형 면접은 답안지에 문제를 풀고 그걸 보면서 면접관에게 설명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그런데 면접관이 김 씨의 답지를 보고 싶다고 가져가더니 돌려주지 않았다. 문제지만 다시 주면서 답안지를 보지 말고 설명하라는 것이었다.
김 씨는 당황했지만 간신히 답을 설명해 위기의 순간을 넘겼다. 그는 “아무리 ‘꿀팁’을 듣고 준비를 많이 해도 이렇게 예측 불허의 상황이 튀어나올 수 있다”며 “어떤 상황이 닥쳐도 당황하지 않겠다는 마음가짐을 갖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김 씨는 재료공학의 장점으로 “재료공학은 쓰이지 않는 분야가 없고, 과학과 공학 사이에 걸쳐 있는 학문이라 순수과학이든 응용과학이든 진로의 폭이 매우 넓다”고 말했다. 그래서 보통 경영학이나 경제학을 복수전공하는 공대 내 다른 전공과 달리, 자연과학을 복수전공하는 학생들도 많다. 김 씨는 “다양한 분야와 연계되기 때문에 복수전공을 하고 싶은 친구들이 있다면 재료공학부를 추천한다”고 말했다.
마인드 컨트롤로 위기 넘겨 17학번 박찬웅
“보통 자기소개서에는 이 학과를 선택하게 된 계기를 쓰게 돼 있어요. 저는 중학교 때부터 재료공학을 전공해야겠다고 마음을 먹었어요. 딱히 특별한 이유는 없어요. 누군가와 사랑에 빠질 때처럼(?) 자연스러운 이끌림이었던 것 같아요.”
서울 재현고를 졸업한 박찬웅 씨는 수시 지역균형 선발전형으로 재료공학부에 합격했다. 중학교 때 신소재, 나노, 친환경 등의 분야가 화두로 떠오르고 있어 관심이 생겼고, 관련된 책을 한 권씩 취미 삼아 읽다가 재료공학을 전공으로 선택하게 됐다.
박 씨는 수능, 내신, 논술 등 모든 방법을 총동원해 대입을 준비했다. 수능 당일에 컨디션이 좋지 않을 수도 있고, 여러 변수가 있기 때문에 한 방법으로만 준비하는 건 불안했기 때문이다. 한정된 시간 안에 모든 것을 하기는 쉽지 않았지만, 박 씨는 내신 공부에 투자하는 시간, 다른 활동을 하는 시간 등 시간을 효율적으로 나눠 활용했다.
일반고를 다닌 박 씨는 학교에서 소논문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등 최대한 많은 활동을 하려고 노력했지만, 과학고나 영재고에 비해 학교 내에서 다양한 활동을 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그래서 그는 교내 활동에 멈추지 않고 외부에서 지원하는 프로그램을 찾아 참여했다. 박씨는 “찾아보면 서울대나 시에서 무료로 지원하는 진로 체험 프로그램이 많다”며 “일반고 학생들도 이것저것 열심히 찾아다니면서 스스로 기회의 폭을 넓혀야 한다”고 조언했다.
힘들었던 순간도 있었다. 3학년 6월 모의고사 때 수능 등급컷에 들지 못하는 성적을 받았다. 눈앞이 캄캄했다. 박씨는 “성적이 떨어졌을 때도 좌절하지 않는 마인드 컨트롤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 덕에 다행히 수능은 잘 볼 수 있었다.
그는 면접에 관해서도 조언을 남겼다. 지역균형 선발전형의 면접은 인성 면접이다. 그런데 면접 도중 면접관은 “반도체를 설명해 보라”고 하더니 “요즘 신형 트랜지스터는 이런 것도 있는데 혹시 들어봤나?”라고 물어보며 고등학생인 박 씨로서는 전혀 들어보지도 못한 트랜지스터에 대해 물었다.
박 씨는 “당황했지만, 임기응변이 중요하다”며 “어차피 면접관은 고등학생의 수준에서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을 파악하고 있기 때문에, 아는 건 자신 있게 대답하고, 모르면 모르는 대로 ‘관심 있다’ ‘궁금하다’ ‘더 알고 싶다’ 정도로 대답하면 된다”고 말했다. 그는 또 “지역균형 선발전형은 면접이 10분밖에 안 된다”며 “시간이 지나면 말을 나누다가도 끊고 갑자기 나가라고 할 수 있는데, 당황하지 않고 그냥 나가면 된다”고 덧붙였다.
내신보다 활동에 집중 17학번 한정현
“재료공학이 4차 산업혁명 시대를 선도할 가장 유망한 분야라고 생각했어요. 앞으로의 모든 산업에 디스플레이가 필요할 거라고 해요. 액정이나 패널을 개발하는 연구를 하고 싶어서 재료공학부에 지원하게 됐습니다.”
경기과학고를 졸업하고 수시일반전형으로 입학한 한정현 씨는 재료공학부를 지원한 계기를 이렇게 소개했다. 그는 학교 다닐 때 내신 공부에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 그 대신 화학올림피아드를 준비하거나, 옹기나 화선지 등 전통 재료 연구 등 하고 싶은 활동을 많이 했다.
특히 글쓰기를 좋아했던 한 씨는 한국극지연구진흥회가 주최하고 동아사이언스가 주관하는 2015년 제6회 ‘전국학생극지논술공모전’에서 대상(해양수산부 장관상)을 수상해 북극을 다녀오기도 했다.
‘뜨거운 얼음, 북극의 열을 내리려면’이라는 제목으로 제출한 그의 논술은 극지와 기후변화를 체계적으로 정리해 높은 평가를 받았다. 한 씨는 “서울대 인재상에 맞춰서 다양한 활동을 했고, 이를 하나의 스토리로 엮어서 자기소개서를 쓴 게 합격에 많은 도움이 된 것 같다”고 말했다.
한 씨는 재료공학부의 장점으로 연구실 인턴 프로그램을 꼽았다. 그는 “다른 학과에서는 연구실 인턴을 지원할 경우 개별적으로 교수님께 연락해 일정 조율을 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는데, 재료공학부는 아예 제도가 마련돼 있다”고 말했다.
또 한 씨는 “이름으로 혼란을 주지 않는 것이 재료공학부의 본질이자 장점”이라고도 말했다. 그는 “많은 학생들이 학과나 학부의 이름만 보고 지원했다가 막상 입학한 뒤 생각한 것과 너무 달라 방황하는 경우가 있는데, 재료공학부는 기초적인 것부터 응용까지 정말 말 그대로 재료에 관한 모든 것을 배우기 때문에 그럴 일이 없다”고 말했다.
열심히 노는 자신 상상하며 공부 효율 높여 18학번 박유정
서울 상일여고를 졸업한 박유정 씨는 수시 지역균형 선발전형으로 입학했다. 그는 전공을 정할 때 서울대 홈페이지에서 모든 학과의 소개 글을 전부 읽었다. 나노 연구에 관심이 있었는데, 재료공학부가 응용분야가 넓은 것 같아 지원을 결심했다.
박 씨는 지역균형 선발전형 지원자임에도 내신 성적이 썩 좋지는 않았다. 그는 “거의 1등급만 있는 친구들에 비해 국어와 영어는 3등급도 있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그가 지역균형 지원자로 합격할 수 있었던 비결은 다양한 활동에 있었다. 박 씨는 학교에서 개최하는 행사나 영어, 글쓰기대회 등 문과 학생이 주로 참여하는 대회에도 가리지 않고 모두 참여해 좋은 성과를 냈다.
일반고였기 때문에 과학고나 영재고 학생들처럼 심화 내용 학습이 어렵고, 연구 활동이 쉽지 않아 내세울 수 있는 게 많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실험과 연구를 해보고 싶어 최대한 기회를 찾았다. 1, 2학년 때는 서울특별시 과학전시관에서 운영하는 영재원에 참여해 수업을 듣고, 실험을 진행해 논문도 썼다. 박 씨는 “일반고 학생들이 누릴 수 있는 좋은 프로그램”이라고 추천했다.
특별한 공부 비법이 있었냐는 질문에 박 씨는 “공부하기 싫을 때, 열심히 놀 생각을 하면서 공부를 했다”고 말했다. 아이돌 그룹 ‘워너원’의 멤버 강다니엘의 팬인 박 씨는 강다니엘이 나오는 TV 프로그램을 보는 자신을 상상하며 행복하게 공부했다고. TV 프로그램을 보기 위해 평상시 7시간 동안 공부할 양을 4시간 만에 끝낼 만큼 박 씨에게는 효과가 좋았다. 박 씨는 ”이런 자극제를 만들어 두면 힘든 수험 생활을 견디는 데 많은 도움이 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반복 학습으로 우직하게 정시 도전 18학번 하대철
하대철 씨는 대구 대건고를 졸업하고 정시로 재료공학부에 입학했다. 그는 “사실 특정 학과보다는 서울대에 입학하고 싶었다”며 “처음부터 우직하게 정공법으로, 정시로 가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내신 성적이 나빴던 건 아니다. 학교 선생님들이 수능 기출 문제를 변형해서 중간고사와 기말고사 문제를 출제했기 때문에 결국 수능을 공부한다고 생각하고 내신도 공부했다.
하 씨는 고등학교 3학년 때 수학 과외를 잠깐 한 것을 제외하면 사교육을 받지 않았다. 그는 자신의 공부 비법으로 ‘반복 학습’을 꼽았다. 고3 때 모든 기출 문제를 3번 이상 풀었다. 그래서 하루에 공부한 양이 많았다. 박 씨는 “처음에 문제를 풀 때는 가볍게 훑는 정도라면 두 번째, 세 번째 풀 때는 오답노트를 작성하면서 집중해 풀었다”고 말했다.
실제 시험을 볼 때는 이미지 트레이닝을 많이 했다. 시험 전날, 잠들기 전에 시험이 끝나고 웃으면서 나오는 걸 항상 상상했다. 하 씨는 “그러면 진짜 웃으면서 나오더라”며 “상투적인 말이긴 하지만 ‘나는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게 정말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친구들도 힘든 수험 생활을 버티는 힘이었다. 기숙사 생활을 해서 친구들과 몰래 야식도 먹고, 새벽 내내 수다도 떨면서 스트레스를 풀었다. 하 씨는 “친구들과 서로 열심히 해서 좋은 대학 가자고 응원했는데, 심리적인 부분에서 많은 도움을 받았다”고 말했다.
2017년은 포항 지진 때문에 수능이 연기되는 초유의 사태가 일어난 해였다. 포항과 가까운 대구에 있던 하 씨도 독서실 조명이 흔들리는 걸 보고 지진을 체감했다. 그는 “당황하지 않고 수능이 연기된 걸 오히려 기회로 삼았다”고 말했다. 친구들과 연기된 시험일까지 남은 기간을 어떻게 보낼지 빡빡하게 계획을 세운 뒤, 바로 당구를 치러 갔다. 그렇게 적당히 놀고 다음 날부터 열심히 공부했다. 수능 전에 물리가 불안했었는데, 연기된 덕분에 부족한 물리 개념을 다시 공부해 좋은 성적을 얻을 수 있었다.
하 씨는 2018년 재료공학부의 큰 행사였던 ‘재료한마당’을 소개했다. 재료공학부에는 연구실도 많고, 연구 분야도 다양해서 어떤 연구를 하는지 다 모르는 경우가 많은데, 재료한마당에서는 각 연구실마다 직접 어떤 연구를 하는지 쉽게 소개해주고 1, 2학년 학생들에게도 이후의 진로를 친절하게 알려준다. 하씨는 “연구뿐만 아니라 여러 기업에서도 취업에 대한 정보를 제공해 준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