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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통혁명 몰고 올 마법딱지 전자태그

2010년까지 모든 제품에 태그 붙이기로

 

전자태그 내부구조. 칩(가운데 검은 점)과 안테나(구리도선들)로 구성된다.


아마도 올해는 전자태그(RFID, Radio Frequency IDentification)의 해가 될 것으로 보인다. 전자태그의 정식명칭은 ‘비접촉식 식별기술’. 국내에선 전자태그라고 흔히 불린다. 제품 정보가 담긴 전자칩을 물체 안에 심어 무선으로 인식하는 기술이다.

최근 전자태그 분야의 불모지나 다름없었던 국내에 심상찮은 기류가 형성되고 있다. 지난 2월 대한상공회의소는 ‘RFID, 유통물류정보화도구’라는 독특한 제목의 보고서를 내놨다. 상공인들이 보기엔 꽤 전문적일 것같은 기술 보고서다.

중앙대 권영빈 교수는 이 보고서에서 “RFID가 5년이내에 전세계 물류 유통 부분에 엄청난 지각변동을 일으킬 것”이라고 전망했다. 무선전자태그의 도입이 물류관리에 소비되는 시간과 비용을 획기적으로 줄여 유통혁명을 가져올 것이라는게 이 보고서의 내용이었다.

하루전에는 RFID를 중심으로 첨단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유비쿼터스센서망(USN) 기본계획이 발표되기도 했다. 2월초 정부와 대학, 기업 관계자들이 한자리에 모여 관련 기술 현황을 교환하는 국제회의가 열린지 불과 2주만의 일이었다. 최근 전자태그에 대한 관심이 이처럼 폭증하고 있는 배경에는 다 그만한 사연이 있다.

지난 2월 정보통신부 주최로 열린 RFID국제세미나에 보고된 자료에 따르면 2010년 전세계 전자태그 시장 규모는 7백68억달러. 이를 겨냥해 미국 일본 유럽은 10여년 전부터 이미 전자태그를 활용하는 각종 연구와 기술 개발을 추진해왔다.

실제 메트로와 월마트 등 미국과 유럽의 대형 유통회사와 할인마트들은 지난해부터 RFID기술을 이용해 판매와 재고 관리를 해오고 있다. 또 텍사스인스트루먼트, IBM, 필립스, 히타치 등 IT기업들은 앞다퉈 핵심기술인 전자태그와 인식용 단말기, 이를 운용하는 소프트웨어 개발에 나서고 있다.

이에 비해 국내 여건과 기술 수준은 거의 미미한 상황. 칩생산 계획은 고사하고 자체 개발한 칩도 없는 실정이다. 선진국과 기술격차도 적잖이 벌어져 있다. 이같은 상황이 계속된다면 수출 물량은 물론 국내 소비량 전체가 외국계 기업 수중에 넘어갈 수밖에 없다고 전문가들은 진단한다. 한마디로 위기라는 것이다.

센서와 통신 기능을 가진 전자태그는 사람으로 따지면 일종의 말초신경 역할을 한다고 할 수 있다. 전자태그 기술의 발전은 사람이 정보를 입력하지 않아도 모든 물체가 혼자 스스로 정보를 교환한다는 유비쿼터스로 가는 첫 관문과도 같다. 연구자들과 첨단 IT기업들로부터 ‘반도체 발명 이래 최고의 발명품’이라는 찬사를 받는 것도 이 같은 이유 때문이다. 반도체가 마법의 돌이라면 전자태그는 마법의 딱지 정도가 되지 않을까.

반도체칩 이후 최고 발명품
 

히타찌 뮤(Mu-chip)칩. 가로세로 0.4mmX0.4mm 크기의 칩안에 1백28비트의 정보를 담고 있다.


전자태그는 크게 수동형과 능동형 2종류로 나뉜다. 주로 사용되고 있는 전자태그는 수동형이 아직까지 주류다. 물론 미국과 유럽 일부에선 능동형 태그도 소량이지만 도입된 사례가 있다. 수동형은 칩이 담고 있는 정보량이 적어 더 자세한 정보를 얻기 위해서는 네트워크의 힘을 빌려야 한다. 반면 능동형 태그의 경우 담긴 정보량도 충분하고 스스로 알아서 정보를 교환할 수 있는 능력까지 갖췄다. 대부분 용도에 따라 다르게 쓰이지만 전자태그의 가장 이상적인 형태는 주위 상황까지 감지해내는 능동형이다.

그렇다면 어떤 원리로 동작할까. 전자태그의 구조는 간단하다. 전자태그는 전파를 발신하는 안테나와 제품 정보를 담은 칩, 그리고 이를 둘러싼 포장으로 구성된다. 스스로 전파를 발사하는 능동형일 경우 여기에 작은 배터리가 추가된다. 태그를 더 작게 하기 위해서는 안테나와 배터리 크기를 줄이는 일이 관건이다.

수동형 태그일 경우 인식용 단말기가 보낸 전파를 칩을 동작시키는 전력으로 바꾼다. 전원이 생긴 칩은 자신만의 식별번호가 담긴 신호를 다시 되돌려 보낸다. 단말기는 이렇게 전파로 되돌아온 간단한 물체인식코드를 토대로 인터넷에 연결된 데이터베이스에서 필요한 정보를 찾아내는 것이다.

전자태그가 사용하는 주파수와 관련해 재미있는 사실 하나가 있다. 모든 무선장치들은 국제적으로 약속된 주파수로 신호를 주고받게 돼있다. 라디오주파수(RF)를 이용한 전자태그 역시 예외일 수 없다. 현재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RFID용 주파수대는 8백60-9백60MHz(메가헤르츠, 1MHz=106Hz) 사이에 배정된 상태. 이 가운데 한국은 9백10-9백14MHz, 4백33MHz를 사용할 계획이다. 9백MHz대역은 지금은 사라진 수신전용 전화 CT-2, 일명 시티폰이 한때 사용한 주파수 대역이다.

사실 전자태그가 우리 실생활에 들어온지는 꽤됐다. 비접촉식 태그의 원형 중 대표적인 것이 교통카드와 주차카드다. 플라스틱 카드를 센서에 갖다대기만 하면 요금지불이나 신원확인이 가능하다.

최근 의욕적으로 RFID기술을 도입하고 있는 쪽은 유통과 물류 분야. 스캐너를 가까이 갖다대야 정보를 얻을 수 있는 바코드에 비해 수-1백m 인식 거리를 가진 태그가 경쟁력이 있을 수밖에 없다. 현재 가장 적극적으로 전자태그 도입에 앞장서고 있는 곳은 미 국방성이다. 세계 최대 규모의 군수조달품을 관리해야 하기 때문이다. 미국 정부는 모든 군조달품에 전자태그를 부착한다는 계획을 갖고 있다.

민간기업인 메트로와 월마트도 올해초부터 전자태그를 이용한 판매와 물류 관리 시스템을 시범 운용하기 시작했다. 항만이나 공항에서도 RFID를 도입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일본 나리타 공항과 영국 히드로, 미 시애틀, 샌프란시스코 공항 등 유명 국제공항에서는 전자태그를 시범적으로 붙이고 있다. 수화물이나 컨테이너에 칩을 붙이면 통관시 검역 절차와 시간을 대폭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최근 유럽을 중심으로 위폐 방지에 전자태그를 도입하려는 움직임이 활발해지고 있다. 유럽연합(EU)은 현재 유로화 위폐 방지를 위해 RFID를 도입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값이 싼 전자태그를 지폐에 붙여 진위 여부를 가려낸다는 계획이다. 이렇게 되면 다량의 지폐를 빠르게 판별할 수 있는 것은 물론 유통과정도 소상히 추적할 수 있다. 현금을 동원한 불법자금 제공과 ‘차떼기’가 영원히 불가능해지는 것이다. 사용될 전자태그로 일본 히타치가 개발한 초소형 전자태그 ‘뮤칩’이 1순위에 올라있다.

정부도 2010년까지 모든 제품에 지능형 전자태그를 붙여 네트워크로 연결한다는 계획을 갖고 있다. 가정 자동화는 물론 텔레매틱스, 동물 관리, 물류 관리, 환경 감시에 전자태그를 이용하겠다는 것. 이를 위해 2010년까지 첨단 전자태그와 이를 뒷받침할 무선망, 운용소프트웨어 산업을 적극 육성한다는 계획이다. 최근 서울시가 2006년까지 치매노인과 독거노인 보호 관리를 위해 발급한다는 새로운 신분증도 바로 RFID방식이다.

이와 관련해 삼성과 하이닉스, LG 등 주요 IT기업들도 전자태그 개발을 위한 기술 검토를 마친 것으로 알려졌다.
 

바코드와 숫자로 표시되는 구형태그.


1백28비트짜리 이름표

처음 전자태그를 고안한 곳은 미 매사추세스공대(MIT) 오토아이디(Auto-ID)센터였다. 지금은 훨씬 발전했지만 전자태그의 초기 개념은 모든 사물에 칩을 심어 인터넷으로 모두 연결하겠다는 것이었다. 오토아이디센터는 지금도 RFID기술의 첨병을 걷고 있는 자타가 공인한 국제적인 연구소로 평가된다. 도쿄대 사카무라 겐 교수가 이끄는 일본 유비쿼터스아이디센터(U-ID Center)와 국제컨소시엄인 스마트레이블도 전자태그 연구와 관련해 국제적 명성을 얻고 있다.

현재 이들을 중심으로 각국 연구기관들이 주축이 돼 국제 표준화 방안을 마련 중에 있다. 표준화 과정에서 최근 이슈는 사물과 인터넷을 결합시키는 것이다. 현재 MIT를 중심으로 모든 사물마다 고유한 생산코드를 부여하는 전자제품코드(EPC, Electronic Products Code) 표준화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EPC는 물체 형태와 고유번호를 담은 1백28비트 길이의 숫자를 뜻한다. MIT 개발팀은 전세계 인터넷에 연결된 모든 컴퓨터와 전자제품에 1백28비트 주소를 부여하는 IPv6와의 연계를 추진하고 있다. 이렇게 되면 전자제품은 물론 모든 사물들이 인터넷상에 자기 주소를 갖게 된다.

해외 연구소들의 바쁜 움직임에 대응해 국내 연구진도 표준화에 적극 참여한다는 계획이다. 유비쿼터스프런티어사업단은 1년 안에 ‘객체이름서비스’(ONS)라는 서비스를 완벽하게 실현할 계획이다. ONS는 물체 코드와 인터넷에 있는 물체 관련 정보를 서로 연결시켜 주는 서비스로 도메인네임서비스와 유사하다. 이것이 실현되면 전자태그 센서가 달린 휴대폰으로 누구나 물체 정보를 쉽게 검색할 수 있게 된다.

기술적 법적 논란 일어
 

전자태그가 전체 물류 유통 산업으로 확산되려면 지금보다 인식률을 크게 끌어올려야 한다. 최근 컨테이너항이 전자태그 주요 수요처로 떠오르고 있다.


하지만 전자태그의 발목을 붙잡고 있는 한계가 여전이 많다. 우선 현재 나와있는 대다수 전자태그의 인식률이 60-70%로 너무 낮고 인식거리도 4-5m 이내로 너무 짧다는 것. 이 정도면 수출용 컨테이너나 팔레트에 적합할 뿐 물품이 어지럽게 쌓여있는 일반 매장에서 사용은 불가능한 수준이다. 가로세로가 각각 0.4mm인 히타치 뮤칩도 단말기를 30cm 이내로 갖다대야만 하는 문제가 있다. 현재 연구자들은 반경 30-1백m 내의 모든 사물을 구별하는 기술을 연구 중이다.

이와 함께 다양한 태그들이 더 많이 개발되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우선 물체 모양과 재질에 따라 다양한 형태의 태그들이 서둘러 개발돼야 한다. 식품에 붙이기 위해서는 반드시 인체 유해성분이 없는 태그가, 전자기적 성질이 독특한 금속 제품에는 인식률을 높인 태그가 필요하다.

또 싸구려 물품에까지 전자태그를 붙이려면 태그 가격을 매우 낮춰야 한다. 예상되는 가격은 적게는 10원에서 높게는 10만원까지. 소비재에 붙이는 태그의 최고가는 50원선에서 책정될 전망이다. 일본에서는 1백개 기업이 컨소시엄을 형성해 5엔(5백원)대 미만으로 값을 낮춘다는 히비키(Hibiki)계획이 한창 진행 중에 있다.

이렇게 풀어야 할 숙제가 많은데도 생활에 큰 변화가 곧 닥칠 것처럼 묘사하는 것은 문제가 많다고 유비쿼터스프런티어사업단 유승화 교수는 말한다. 유 교수는 “너무 호들갑을 떨다가 IMT2000처럼 자칫 보랏빛 청사진만 그린채 실리를 잃는 결과를 낳을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프라이버시권 침해 문제도 여전히 미해결 과제로 남아있다. 상품이 판매된 뒤에도 포장에 남아있는 태그를 통해 얼마든지 위치추적과 소비패턴을 훔쳐낼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 3월초 유럽 대형 소매유통회사인 메트로가 소비자들의 항의를 받고 독일 일부지역에 설치된 전자태그 시스템 운용을 중단한 일도 있었다. 월마트를 중심으로 전자태그를 활발하게 도입하고 있는 미국에서도 RFID기술에 대한 규제입법이 추진 중이다. 캘리포니아주 하원 데브라 보든 의원이 제안한 이 법안은 소비자의 동의 없이 전자태그를 이용한 개인정보수집을 금지하는 것을 골자로 하고 있다. 이 법안은 전자태그의 이용과 개발에 관한 최초의 법으로 기록될 전망이다.
 

지금의 전자태그는 여기저기 널려있는 물건을 구별하는데 한계가 많다. 소매점에서의 전자 태그 사용은 시간이 좀 걸릴 것으로 보인다.


후발 핸디캡 극복이 우선

후발 한국으로서는 태그와 단말기 관련 기술과 인프라를 서둘러 갖춰야 한다는 문제를 안고 있다. 현재 태그와 단말기를 생산하고 있는 국내 기업은 거의 없다. 기술력 격차도 적잖게 벌어져 있는 상황. 정보통신부가 2월 17일 발표한 USN관련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은 태그, 단말기, 소프트웨어 부분 모두 선진국과 1-3년 가량 격차가 벌어져 있다. 이 때문에 정통부가 전자태그용 주파수를 확정짓지 않고 있는 것도 외국 회사의 국내 시장 잠식을 우려했기 때문이라는 추측도 나오고 있다. 섣불리 주파수를 확정했다가 남의 배만 불리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이에 대해 유승화 교수는 “모든 기술을 다 개발할 필요는 없다”고 잘라 말한다. 초고속 통신망과 휴대전화 보급률이 높은 국내 특성을 살리면 충분히 경쟁력이 있다는 것이다. 특히 휴대전화 산업이 발달한 국내 실정을 고려해 단말기 기술을 개발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누구나 들고 다니기 쉬운 휴대전화 만큼 전자태그 단말기로 적당한 것이 없다는게 유 교수의 생각이다. 이와 관련해 세계 최대 휴대전화 메이커인 노키아도 지난 3월 독일 하노버에서 열린 세빗 2004 전시회에 전자태그 단말기 기능이 있는 휴대전화을 선보여 연구계의 주목을 끌었다. 특히 이번 전시회에는 각국 IT기업들이 출품한 다양한 전자태그와 단말기들이 대량 선보여 국내 기업들의 부러움을 샀다.

최근 정보통신부와 대한상공회의소 등 정·재계 모두가 나서 전자태그에 대한 여론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것은 국내 전자태그 기술 개발과 시장 활성화에 긍정적인 효과를 줄 것으로 관련 종사자들은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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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04월 과학동아 정보

  • 박근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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