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라이브러리









[Culture] 가을 불청객 은행나무를 위한 변명

우리나라 도로변이 어쩌다 은행나무 천국이 됐을까. 은행나무는 1980년대 말부터 본격적으로 가로수로 사랑 받기 시작했다. 도로 바로 옆에 심는 가로수의 첫 번째 조건은 일단 살아남는 것이다. 도로변은 대기가 건조하고 공기 질이 나빠 일반적으로 식물이 쉽게 죽는다. 하지만 이런 악조건에서도 잘 자랄 수 있는 나무가 은행나무다. 은행나무 외에 양버즘나무(플라타너스)도 오염된 환경에서 잘 자라는 종이다. 그렇게 은행나무는 양버즘나무와 함께 우리나라 가로수의 양대 산맥으로 자리 잡았다. 1995년 서울시 가로수 현황 분석에 따르면 은행나무(41.4%)와 양버즘나무(47.8%)는 전체 가로수의 89.2%를 차지했다.


하지만 가을마다 열매에서 뿜어져 나오는 냄새 때문에 은행나무는 ‘가을 불청객’으로 불린다. 차량이나 보행자에 밟혀 으깨진 은행나무 열매에서는 빌로볼과 은행산이라는 물질이 배출되는데, 이들 물질이 악취의 진원지다. 


서울시는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1994년 가로수 기본 계획을 처음으로 실시했다. 이때부터 지금까지 가로수 연구에 참여하고 있는 한봉호 서울시립대 조경학과 교수는 “가로수를 선정할 때는 생육 환경 조건뿐만 아니라 도로 및 보도의 규격과 토지 용도 등을 종합적으로 판단해야 한다”고 말했다.

 

 

넓은 도로엔 두꺼운 나무, 좁은 도로엔 얇은 나무
서울시 마포구 성미산로(연남동 일대)

 


서울시 마포구 성미산로는 보통의 도시 주택가다. 학계에서는 ‘근린주구(近隣住區)’라고 부르며, 도보 통학이 가능한 초등학교를 중심으로 어린이 놀이터, 상점 등 공공 시설이 적절히 위치한 구역이다. 한 교수는 “가로수를 선택할 때 도시가 교외보다 고려해야 할 점이 더 많다”며 “나무가 자라기에 토지와 대기 환경이 더 열악하고, 토지 용도가 구역별로 차이가 크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가장 먼저 살펴봐야 할 부분은 토지 용도다. 성미산로와 같은 주거지 인접가로인지, 상점들이 주를 이루는 상업가로인지, 또는 자동차중심가로나 역사경관가로인지 등 토지 용도에 따라 가로수 수종을 달리 해야 한다. 


주거지 인접가로는 주민들에게 풍부한 녹음을 통해 쉴 공간을 주고, 다양한 색상의 꽃과 단풍 등의 볼거리로 즐거움을 줘야한다. 반면 상업지구는 다니는 사람과 차량이 많기 때문에 2.5m 이상 지하고가 높은 수종을 선택해야 한다. 한 교수는 “상업지구의 경우 가로수가 간판을 가리는 경우 민원이 많이 발생한다”면서도 “예쁘고 큰 나무를 심어 그늘이 충분할 때 사람들이 더 많이 찾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도로와 보도의 폭도 고려 대상이다. 도로와 보도의 폭에 따라 가로수로 적절한 나무 기둥의 굵기가 다르다. 


통행에 방해가 되면 안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보도 폭이 3m 미만이고 왕복도로가 6차선 미만인 곳은 매화나무나 목련 같은 비교적 가느다란 나무를, 폭이 이보다 넓은 곳은 은행나무나 양버즘나무 같이 굵은 나무를 심는 게 좋다.


여기에 더해 성미산로에는 차이나타운이 있다는 점도 고려 대상이다. 한 교수는 “가로수의 역할은 지역의 이미지를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인 만큼 그 지역의 특성을 반영해야 한다”며 “성미산로의 경우 주택가의 좁은 도로에는 중국을 상징하는 매화나무가 가로수 수종으로 적합하다”고 말했다. 

 

 

해안도시 가로수, 바닷바람을 이겨내라
인천시 남동구 백범로(유통센터 주변)


인천시 남동구 백범로는 왕복도로 6차선 이상으로 중간 범위의 도로 폭을 갖고 있다. 보도 폭은 좁은 편이지만, 보행자가 적어 두꺼운 가로수를 심어도 된다. 이곳의 가로수를 선정할 때 더 중요하게 고려해야 할 요소는 해안도시라는 점이다.


동서로 길게 뻗어 있는 백범로의 서쪽에 위치한 유통센터는 바다와 바로 맞닿아 있다. 바닷가에 가까운 가로수는 강한 바다 바람과 그 바람을 타고 날아오는 염분을 이겨내고 살 수 있는 수종이어야 한다.


강한 바람에 잘 견디는 가로수란 잎이 바람에 잘 떨어지지 않는 수종을 말한다. 잦은 바람에 의해 잎이 쉽게 떨어지면 가로수 경관이 훼손되고, 주변 시설물에도 피해를 입힐 수 있기 때문이다. 한 교수는 “잎의 크기보다 잎과 가지의 연결부위가 단단한 수종이어야 한다”고 말했다.


또 바람을 타고 오는 염분은 토양에도 영향을 주지만, 나무의 줄기와 잎에도 묻는다. 염분이 많으면 알칼리성 환경이 되기 때문에 이 조건에서도 생장할 수 있어야 한다. 이 두 조건에 부합하는 가로수가 바로 ‘곰솔’이다. 


해송이라고도 불리는 곰솔은 대표적인 해안가 가로수로 꼽힌다. 잎이 잘 떨어지지 않고 산성도(pH) 6.5~7의 중성 토양에서 가장 잘 자란다. 대부분의 가로수 수종이 산성 조건에서 잘 자라는데 반해 곰솔은 비교적 염분이 있는 환경에서도 잘 버틴다. 그래서 백범로에 가면 곰솔을 쉽게 만날 수 있다.

 

 

가로수가 관광자원으로
제주시 전농로

 


제주시 전농로는 왕복 2차선 도로에 보도 폭이 1.8m에 불과한 좁은 가로다. 봄이 되면 이 일대는 사람으로 발 디딜 틈이 없다. 바로 가로수인 벚나무 때문이다. 양쪽 보도에 일렬로 늘어선 벚나무는 훌륭한 관광 자원이 된다. 전남 담양군 메타세쿼이아길, 경주 보문로 벚나무, 충북 영동 감나무길이 대표적이다. 한 교수는 “꽃이나 잎이 예쁜 수종이 이에 해당한다”며 “수종뿐만 아니라 가로수 가지를 잘라내는 ‘전정’도 굉장히 중요하다”고 말했다.


전농로에 들어선 벚나무는 마치 도로를 감싸는 듯한 터널 형태를 띠도록 전정됐다. 2차선의 좁은 도로에서는 터널형 전정을 통해 가로에 안정감을 주고, 경관을 더 아름답게 만든다.


한 가지 더 주목해야 할 점은 벚나무 사이사이에 있는 상록활엽수 관목이다. 사철나무와 같은 상록활엽수는 국내에서는 남부 지방에서만 볼 수 있는 가로수다. 위도에 따른 기온이 생장에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한 교수는 “상록활엽수는 연간 평균 14도 이상이면 잘 자란다”며 “국내에서는 남부지방과 제주도가 이런 지역에 해당한다”고 말했다. 


가로수 조성과 관리에 틀이 잡히면서 최근 은행나무와 양버즘나무의 비중이 차츰 줄어들고 있다. 2017년 서울시 가로수 현황 통계에 따르면 전체 가로수 중 은행나무가 36%, 양버즘나무가 21%로 그 비중이 크게 감소했다. 한 교수는 “꽃이 예쁜 벚나무와 잘 죽지 않는 이팝나무만 급격히 늘고 있는 점은 다소 우려스럽다”며 “100여 종의 가로수 수종 중 지역 특성에 맞는 가로수를 찾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 기사의 내용이 궁금하신가요?

기사 전문을 보시려면500(500원)이 필요합니다.

2018년 10월 과학동아 정보

  • 서동준 기자 기자

🎓️ 진로 추천

  • 조경학
  • 환경학·환경공학
  • 농업학
이 기사를 읽은 분이 본
다른 인기기사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