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겹겹이 닫혀 있는 두꺼운 철문을 열고 어두컴컴한 지하로 내려가겠지. 왠지 모를 으스스한 분위기에 등골이 오싹할지도 몰라….’
아주대 의대 해부학교실을 방문하기로 한 날, 기자의 상상은 공포영화 속 한 장면 못지 않았다. 그런데 이 상상은 여지없이 빗나갔다. 문을 하나 열자마자 눈앞에 시신이 누워있는 테이블 12개가 줄지어 놓여 있다. ‘워낙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 놀랄 틈도 없다. 지하는커녕 커다란 창밖으로 캠퍼스가 훤히 보인다.
하지만 한걸음씩 옮길 때마다 바깥 세상과는 다른 공기로 숨쉬고 있음을 실감한다. 시신이 부패하지 않도록 처리한 포르말린 냄새와 그래도 조금씩 부패중인 시신 냄새가 뒤섞여 있다. 비위가 약하지 않은 것이 천만다행.
조교가 시신을 덮고 있던 검은 천을 들추니 반쯤 해부된 인체가 그대로 드러난다. 혈액을 제거하고 포르말린 처리를 했기 때문에 시신이 전체적으로 누런색을 띠어 흡사 미라를 연상케 한다. 심장은 주먹보다 약간 크고, 간 아래쪽에 붙어 있는 쓸개는 진한 녹색이다.
아주대 의대 학생들은 3학년 때 5명씩 조를 짜서 인체 해부를 한다. 1주일에 10시간 넘게 해부를 계속해도 시신 한구를 구석구석 살펴보기까지 꼬박 4달이 걸린다고. 시신과 한참 씨름하다 배가 고프면 식사하고 와서 또다시 시신 옆에 앉는게 이들에게는 일상생활이다.
어려서부터 만화를 좋아했던 정민석 교수는 20년 넘게 해부학을 가르치다 겪은 재미있는 일화를 소재로 만화를 그린다. 해부학 지식을 쉽게 알리기 위해 이 만화를 과학동아에 연재하고 있는 그는 “생김새를 알아야 쓰임새와 질병에 대해 알 수 있다”며 해부학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아울러 “받은 원고료를 과학동아 보내주기에 쓰겠다”는 뜻도 밝혔다.
요즘 정 교수는 시신을 세밀한 간격으로 연속 절단해 각 단면 이미지를 컴퓨터에 입력하고, 이를 모아 인체의 3차원 입체영상을 얻는 연구에 한창 몰두하고 있다.
(주)비주얼에이드의 박광현 실장도 미국 아나토미 트래블사에서 이와 비슷한 방법으로 인체의 모양, 근육이나 장기의 움직임을 재연해내는 기술을 익힌 3차원 의학영상 제작 전문가다. 만화를 그리는 해부학자와 인체를 그리는 디자이너의 만남이 예사롭지만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