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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로운 옷 지어 세상에 베풀 수 있다면

이옥선 오픈플랜 대표

내 이름은 이옥선이다. 할아버지께서 법관이 돼 세상에 이로운 일을 하라고 지어주셨다. 그 시절에는 ‘지은’ ‘혜란’ ‘주희’처럼 현대적인 이름을 가진 친구들이 많았고, 옥선은 흔치 않은 예스러운 이름이었다. 한때는 다소 촌스럽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까지 이름의 의미를 되새기며 살아가려고 노력하고 있다.

 

록 스피릿으로 이과를 선택한 호기심쟁이


나는 읍 단위 작은 시골 마을에서 초등학교를 다녔다. 지금은 보기 힘든 목화밭이 있었고 여름에는 푸른 보리밭이 바람에 출렁이는 곳이었다. 초등학교는 하나가 전부였고 번듯한 학원도 없었다. 친구 집에 한 번 가려면 논두렁 밭두렁 사이를 한참을 건너가야 했다.


그 덕분인지 주말마다 우리 가족은 여행을 떠나고는 했다. 여행이라니 거창하게 들릴 수 있지만 작은 중고차에 몸을 싣고 전국 방방곡곡을 돌아다니는 일이었다. 목적지는 대부분 역사적으로 의미 있는 사찰이나 유적지, 박물관이었다.


이 추억은 마치 선행학습 같았다. 교과서에 등장하는 것들을 직접 가보고 경험하니 자연스레 많은 것들을 배울 수 있었다. 조급해 하지 않고 내가 직접 느낄 수 있도록 믿고 기다려주신 부모님 덕분에 나는 자유롭게 생각하고 판단할 수 있는 사람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


나는 여느 또래 아이들처럼 다양한 분야에 관심이 많았다. 노래, 그림, 피아노, 웅변…, 나갈 수 있는 대회는 모두 나갔다. 모든 게 재밌었고 꿈도 많았다. 과학동아 같은 잡지와 아이큐 점프 같은 만화잡지를 동시에 즐겨 보는 아이였다.


고등학생 때는 록 음악을 좋아했는데 ‘너바나’라는 얼터너티브 밴드에 푹 빠졌다. 그야말로 질풍노도의 시기였다. 괜한 반항심으로 공부에 소홀했다. 왠지 공부만 잘하는 착한 학생이 되고 싶지 않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남들이 하지 않는 다른 선택을 하는 데 이때 듣던 음악이 영향을 미치지 않았나 싶다. 고정관념에 얽매이지 않고 자신의 꿈과 이야기를 노래하는 아티스트처럼 살고 싶었다.
내가 다닌 고등학교는 남녀공학이었는데 12반 중 4반이 여학생 반이었다. 그중 이과반은 단 하나였다. 나는 이과a를 선택했다. 우리 사회에 존재하는 성에 대한 고정관념을 따르기도 싫었고, 왠지 이공계 여성이 멋져 보였다. 뭘 딱히 하고 싶은지 몰랐던 나는 ‘멋져 보이는’ 선택을 했다.


그 결정은 대체로 만족스러웠다. 무엇보다 다양한 과학 과목을 배울 수 있다는 점이 좋았다. 하지만 잠시 흥미를 잃어 페이스를 놓친 수학은 자신감을 다시 찾기 어려웠다. 지금도 스트레스를 받으면 수학 시험을 앞둔 꿈을 꾼다.

 

잡지 한 권으로 시작된 패션 디자이너의 길


생일을 맞아 친구로부터 잡지 한 권을 선물 받은 건 고등학교 2학년 가을이었다. ‘톱모델’이라는 잡지였는데 외국 패션모델을 다뤘다. 내 인생이 바뀐 순간이었다. 당시 나오미 캠벨, 신디 크로포드 등 슈퍼모델이 문화적으로 큰 영향을 미치던 시기였다. 국내에서도 모델들을 앞세운 브랜드가 우후죽순 생겨나며 한국 패션계의 르네상스를 이끌고 있었다. 내 눈에 패션은 단순히 옷을 만드는 일이 아니라 문화와 라이프스타일을 창조하는 매력적인 일로 느껴졌다.


패션계에서 일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안정적인 미래를 준비하기 위한 전공을 선택할 수도 있었지만 너바나의 팬이었던 나는 그러고 싶지 않았다. 새롭고 멋진 것을 만들어내는 도전적인 일이 더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잘할 수 있는 일인지도 모른 채 나는 의상학과에 들어갔다. 그렇게 나는 법관이 되라는 할아버지의 바람에서 또 한 발짝 멀어졌다.


대학교를 졸업하고 브랜드 ‘박춘무’에서 신입 디자이너로 일을 시작했다. 원·부자재 수급을 위해 동대문 시장을 다니고, 옷의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샘플을 입어보는 일을 했다. 선배 디자이너와 함께 땀 흘려 만든 옷으로 파리 컬렉션에 갔을 때는 참 감개무량했다. 내가 패션의 도시 파리에 오다니!


이후 10여 년간 여러 유명 브랜드에서 패션 디자이너로 일하며 다양한 것을 배웠다. 뉴욕 컬렉션에 참가하거나 세계적인 모델, 스타일리스트와 일하며 해외 비즈니스에 대한 감각을 키웠고, 객관적인 데이터와 정보를 기반으로 기획하는 법도 배웠다.


마지막 회사를 퇴사하고 잠시 쉬는 동안 작은 의류 매장을 경영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어떤 용기였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그 기회를 잡았다. 이후 어떤 일이 펼쳐질지 몰랐기 때문에 오히려 결단을 내리는 데 어렵지 않았던 것 같다.


나의 첫 매장은 서울 동대문에 위치한 ‘두타’ 상가에 있었다. 두타 지하 1층에는 신진 디자이너 매장이 모여 있었다. 당시는 백화점 브랜드를 선호하던 기존 소비자들이 서서히 작은 독립 디자이너 브랜드에 관심 갖기 시작한 시기였다. 내 브랜드도 점차 입소문을 타며 소녀시대, 레드벨벳, 블랙핑크 등 아이돌과 배우가 입기 시작했고(특히 드라마 도깨비에서 김고은이 입었던 코트는 아직도 문의가 들어온다), ‘아소스’ ‘탑샵’ 등 세계적인 매장에도 입점하게 됐다.

 

비건+플라스틱 프리 실천하는 브랜드를 만들다


우연히 ‘플라스틱 차이나’라는 다큐멘터리 영화를 보게 됐다. 인간이 성장과 발전이라는 이름으로 부르는 대부분의 것들이 자연을 훼손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됐다. 나는 특히 쓰레기 문제에 관심이 많았는데 자연 생태계 안에서 쓰레기를 만들어내는 존재는 인간밖에 없다는 사실이 씁쓸했다.


더욱 괴로웠던 점은 나 또한 패션이라는 이름으로 여기에 일조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폴리에스테르와 같은 합성섬유는 결국 플라스틱인데 현재 전 세계 섬유 사용량의 절반 이상을 차지할 정도로 막대하다. 내가 밤새워 열심히 만든 디자인이 ‘예쁜 쓰레기’라는 생각이 들었다.


문제는 인식했지만 해결 방법을 찾을 수 없었다. 환경을 지키면서도 패션계에 종사하는 법은 배운 적이 없었다. 그래서 이전까지의 선택과는 달리 새로운 길을 선택하는 데 시간이 꽤 오래 걸렸다. 2017년 늦은 겨울, 지속가능한 패션을 추구하는 브랜드 ‘오픈플랜’을 론칭했다. 그동안 땀 흘려 키워오던 브랜드는 모두 정리했다.


플라스틱 프리와 비건 패션을 함께 지향하는 디자인을 만들고 싶었다. 동물성 재료를 사용하지 않는 비건 패션에서 플라스틱까지 없애는 작업은 무척 어려웠다. 기존 비건 패션에서 동물성 재료 대신 선택하는 것이 결국 합성섬유였기 때문이다. 우리는 가격 태그를 고정하는 작은 플라스틱 고리부터 플라스틱 지퍼까지 모두 없앴다. 플라스틱 단추 대신 열매로 만든 너트(nut) 단추를 사용하고, 합성섬유 사용을 엄격히 제한했다. 지난해 기준 98% 플라스틱 프리, 100% 비건을 실천했다.


사실 아직 플라스틱 프리를 인증하는 공신력 있는 기관조차 없는 것이 현실이다. 우리는 자체적으로라도 플라스틱을 줄이려는 목표를 세우기 위해 내부적으로 평가하던 수치를 정리해 소셜미디어(SNS)에 공개했다. 업계 관계자가 아니라면 이해하기 어려울 수 있는 주제와 내용에도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얻었다.


지속가능한 패션은 패션계 트렌드로 자리 잡았지만 플라스틱 프리까지 실천하는 브랜드는 거의 없다. 우리는 섬유 단계의 실천에서 그치지 않고 염색 등 가공 공정에서 화학 물질을 사용하며 생기는 환경 문제도 최소화하기 위해 식물염색(동물성 염료를 함께 사용하는 천연염색과 구분하기 위해 식물염색이라는 말을 사용한다)의 비율을 높이려고 노력 중이다.

 

이름 속에서 다시 찾은 삶의 의미


몇 년 전 파리의 지속가능한 패션 전문 전시회 ‘임팩트’에서 만난 튀니지 바이어가 내게 물었다. “옥선, 네 이름을 무슨 뜻이니?” 아시아의 한자 문화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었다. 나는 “내 이름은 한자로 기름질 옥(沃), 베풀 선(宣)을 써. 땅을 풍요롭게 하고 거기서 얻은 것들을 사람들과 나누라는 뜻이야.”라고 답했다. 그랬더니 그가 말했다. “와우. 네 이름은 지금 네가 하고 있는 일 그 자체구나!”
생일선물로 받은 책 한 권에서 시작한 여정은 결국 내 이름의 의미를 찾게 해줬다. 과학을 좋아하는 책벌레였고, 야생을 좋아하던 아이였던 나는 늦게나마 비건이 돼 기후위기 문제에서 좀 더 자유로워졌다. 당당한 마음으로 지속가능한 패션을 추구하고 있는 즐거운 내 이름은 이옥선이다. 

 

●나만의 과학동아 활용법

과학동아 구독 기간은?
초등학교를 다니던 시절 학습지를 사러 서점에 가면 과학동아 표지를 들춰가며 관심있는 기사를 찾았다. 그렇게 하나씩 사모으는 게 좋았다. 성인이 되고 나서도 가끔씩 과학잡지 코너에 들러 책을 고르고 있으니 무려 30년째 구독 중인 게 아닌가 싶다.


기억에 남는 과학동아 기사가 있다면?
6월 비건 패션 특집 기사가 기억에 남는다. 잊고 있던 과학동아와 함께했던 어린 시절을 떠올리게 해 줬을뿐 아니라 오픈플랜이 패션 화보에 함께 소개돼 더욱 의미있었다. 


과학동아에 바라는 점은?
지구 곳곳에 일어나고 있는 기후위기 문제와 생태계 파괴 문제를 꾸준히 이야기해 주길 바란다. 바쁜 일상에 쫓기는 어른들이 늦지 않게 변화해야만 하는 과학적 이유를 날카롭게 제시해 주고, 자라나는 아이들은 과거 세대의 잘못을 되풀이하지 않을 수 있도록 올바른 방향으로 따뜻하게 안내해 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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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09월 과학동아 정보

  • 글 및 사진

    이옥선 오픈플랜 대표
  • 에디터

    이영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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