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양평군과 강원도 횡성군이 맞닿은 덕갈고개 해발 550m 고지. 1951년 2월 이곳에서는 ‘횡성 전투’가 있었다. 남북한군을 비롯해 유엔군, 중국군이 뒤얽혀 치열한 전투를 벌였다. 덕갈고개를 비롯해 한반도 곳곳에는 나라를 지키기 위해 하나뿐인 목숨을 바친 선조들의 유해가 묻혀있다. 현재까지 1만 구가 넘는 유해를 발굴했지만, 이 중 이름을 되찾은 건 127위뿐이다. 차디찬 땅속에서 68년 동안 기다려 온 선조들에게 과학이 다시 빛을 선물할 수 있을까. 바로 지금이 이들을 조국의 품으로 다시 초대할 ‘골든타임’이다.
“저기 만년필이 보입니다!”
붓으로 땅을 훑던 유지호 상병의 목소리가 커졌다. 뚜껑만 남은 만년필의 자루를 발견했기 때문이다. 보통 만년필 자루에는 각인을 새기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어쩌면 전사자의 신원을 즉각 확인할 수 있는 기회였다.
60년이 넘게 흘렀지만, 만년필 속에는 아직 마르지 않은 잉크가 가득 차 있었다. 조심히 펜을 집어든 유 상병은 안타까움의 탄식을 내쉬었다. 아쉽게도 이름 각인은 없었다. 전방에서도 가슴에 만년필을 품었던 그가 적으려고 했던 편지는 어떤 내용이었을까.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국유단)의 발굴현장에는 이처럼 기대와 실망이 계속 교차했다.
전투기록, 참전용사 증언 통해 발굴지역 선정
때 이른 여름이 찾아온 5월 10일. 다져지지 않은 산길을 따라 40분가량 산을 올랐다. 흙 속으로 발이 푹푹 빠져, 걸을 때마다 신발 속에 흙이 가득 찼다. 숨이 턱 끝까지 차올랐지만, 내쉬는 숨소리조차 조심스럽다. 68년 전 이곳에서 기자보다 어린 나이였을 선조들이 마지막 숨을 내뱉었을 것이라고 생각하니, 힘든 티조차 내기 어려웠다.
현장에 도착했다. 나무에 기대서지 않으면 아래로 미끄러질 정도로 가파른 발굴 현장에서 병사들은 삽질이 한창이다. 과거 전투기록, 지역주민과 참전용사의 증언을 토대로 이곳에서는 중공군의 ‘2월 공세’를 촉발한, 일명 ‘횡성 전투’가 있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전쟁에 쓰인 개인호, 교통호, 유품 등이 발견되자 국유단이 본격적으로 발굴에 나섰다. 횡성 전투에는 남북한군은 물론 유엔군, 중국군 등이 참여했기 때문에 미군의 유품도 다른 지역에 비해 유독 많이 발견됐다. 이주현 국유단 발굴팀장(육군상사)은 “미군과 중국군의 보급품이 뒤섞여 출토됐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곳에서 미군과 함께 근접전투를 벌였을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이 지역의 유해를 수습하기 위해 장병들은 산의 밑동부터 삽질을 해가며 해발 550m 고지까지 도달했다. 고된 작업이지만, 곳곳을 살피는 세심함도 요구된다. 부패한 시체가 양분으로 작용해 나무가 자라기 때문에, 나무뿌리 밑에서 유해가 발견되는 경우도 많기 때문이다. 이날 오전 9시 10분 경, 전사자로 추정되는 유해의 정강이뼈가 드러나면서 본격적인 정밀 발굴이 시작됐다. 오랜 세월에 썩어버린 살갗이 흙과 함께 달라붙어 뼈는 검은색을 띠었다.
"약 12만3000여 위의 호국용사들이 땅속에
묻혀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중 신원이
확인된 전사자는 127위뿐이다"
정강이뼈 주변 3m 지역에 수사현장을 연상케 하는 노란색띠가 둘러졌다. 이 발굴팀장은 “당시 평균 신장과 인체 뼈 206개가 이루는 해부학적 요소 등을 고려해 최초 식별 지역 주변으로 정밀 발굴 지역을 좁힌다”며 “이 과정에서 전사자가 착용했던 유품이 함께 발견되기도 한다”고 말했다. 만년필 뚜껑도 정강이뼈가 있던 자리에서 북쪽으로 50cm가량 떨어진 위치에서 발견됐다. 이어서 만년필 자루도 함께 발견됐다. 이 주변에서 정강이뼈와 함께 3개의 뼈가 발견됐지만, 동일 인물이라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결과는 국유단 중앙 감식소에서 진행될 유전자 검사 이후에야 확인된다.
이 발굴팀장은 “전신이 온전히 발굴되는 유해는 전체의 1%에 불과하다”며 “둥근 모양인 머리뼈의 경우 비탈을 따라 굴러가는 경우가 많고, 설치류가 뼈에 이를 갈면서 사라져 버리기도 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발굴된 유해는 한지로 곱게 싼 뒤, 관에 담긴다. 관을 태극기로 관포한 뒤에는 전통주 한 잔과 명태를 식탁에 올려 약식제례도 지낸다. 후배 병사의 손에 들려 한 걸음, 한 걸음 산을 내려올 때면 병사들은 일사분란하게 정렬해 거수경례로 예를 표한다.
이후 임시봉안소가 위치한 경기도 양평 20사단으로 향했다. 맞은편 도로에서 달려오는 군용차량들은 유해 봉송 차량을 발견하면 깃발을 흔들거나, 라이트를 켜고, 거수경례를 하는 등 저마다의 방식으로 예를 표한다. 하지만 일반 차량 중에는 봉송 행렬 사이로 끼어들거나 위험하게 추월하는 일도 부지기수다.
김민성 20사단 중령은 “봉송 차량을 도로에서 지나칠 경우 비상 점멸등을 켜는 식으로 예를 표해준다면 좋겠다”며 “태극기로 관포된 전사자를 직접 옆에서 보는 경우에는 가슴에 손을 얹어 예우를 다해준다면 좋을 것 같다”고 말했다.
신원 확인된 전사자는 1%에 불과
발굴된 유해는 임시봉안소에 머문 뒤, 현장의 기초감식소로 보내진다. 성별, 연령 등 육안으로 감식할 수 있는 정보를 확인한 뒤, 유해는 다시 중앙감식소로 이동한다. 중앙감식소에서는 정밀 장비를 이용해 과학적 감식을 진행한다. 이 과정을 통해 신원이 확인되면 ‘호국의 영웅 귀환 행사’를 진행하고, 화장 후 현충원에 안장된다. 하지만 신원이 확인되지 않는다면, 확인이 될 때까지 중앙감식소에 보관된다.
약 12만3000여 위의 호국용사들이 아직 수습되지 않은 채 땅속에 묻혀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6·25전쟁이 북한의 기습적인 남침으로 시작된 만큼, 전사자 수습을 위한 여건이 제한 됐다는 이유도 있지만, 전쟁 후에는 경제 개발이 시급해 전사자 수습 필요성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되지 않았던 것도 사실이다. 국토를 개발하는 과정에서 과거 지형의 모습이 사라지기도 했다.
정부는 2000년, 6·25전쟁 50주년을 기념하며 한시적으로 유해 발굴 사업을 진행했고, 2008년 유해 발굴에 관한 법률을 제정한 뒤 본격적으로 사업을 시작해 올해로 10년째 진행하고 있다. 현재까지 국군, 북한군, 유엔군, 중국군을 모두 포함해 총 1만1206구의 유해를 발굴했고, 이중 국군은 9875구다. 하지만 2017년 9월 기준 이 가운데 신원이 확인된 전사자는 127위로, 1%에 불과하다.
신원 확인은 늦어질수록 더 어려워진다. 전사자가 매장된 위치를 식별하기 위해서는 지역주민, 참전용사의 증언을 참고하지만 6·25세대가 고령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또, 직계 유가족이 사망함에 따라 신원 확인을 위한 유전자(DNA) 자료를 확보하기도 어려워진다. 한시라도 빨리 신원 확인이 진행돼야 한다는 의미다.
나라를 위해 희생된 군인을 국가가 끝까지 책임져야 한다는 점에는 한국전쟁 참여국이 공통적으로 공감대를 이루고 있는 부분이다. 싱가포르에서 열린 6·12 북-미 정상회담에서도 이런 내용이 언급됐다. 북-미 정상의 공동성명 4항에는 ‘미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신원이 이미 확인된 전쟁포로, 전쟁실종자들의 유해를 즉각 송환하는 것을 포함해 유해 수습을 약속한다’고 명시됐다. 전쟁실종자를 발굴하기 위한 미국 측 기관인 ‘국방부 전쟁포로 및 실종자 확인국(DPAA)’에는 한국전쟁프로젝트를 위한 부서가 따로 존재할 만큼 유해 수습에 적극적이다. 한국전쟁 당시 북한 지역에서 전사한 미군은 약 4100명으로 추정된다.
북한은 단독 혹은 북-미 공동 발굴 사업을 통해 1990년부터 2007년까지 미군으로 추정되는 443구의 유해를 발굴, 미국으로 송환했다. 하지만 발굴 사업은 11년째 멈춘 상태다. 국유단은 2016년 4월 신원이 확인된 미군 2위를 미국으로 봉환했다.
4·27 남북 정상회담 이후 남북이 경협 국면에 들어서며, 유해 발굴에 박차를 가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도 나오고 있다. 2007년 11월 2차 국방장관회담에서 남북은 유해송환에 합의했지만, 한국전쟁 이후 남북한의 유해 상호 송환이 실제로 시행된 적은 없다. 국유단은 북한군의 유해로 확인될 경우 임시 매장하고 있다.
4·27 판문점선언에서 비무장지대(DMZ)를 평화지대로 전환한다는 내용이 채택된 만큼, 지뢰제거 작업과 함께 DMZ 전사자 유해 발굴 사업이 시작될 가능성도 높다. 국유단은 DMZ에서 전사한 국군은 1만여 명, 미군은 2000여 명에 이를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법과학 총동원해 신원 확인
6월 7일 서울 국립현충원에 위치한 국유단 사무실을 찾았다. 연세가 지긋한 어르신이 국유단 사무실에 들어왔다. 외삼촌이 한국전쟁에 참전했다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아직 유해를 확인하지 못했다고. 국유단에는 이처럼 전쟁에서 희생된 가족의 뼈라도 다시 만나고 싶다는 사연을 가진 유가족들이 종종 찾아온다. 이들은 군부대나 지역 보건지소에 방문해 DNA 시료를 채취한다. 현재까지 4만273명이 시료 채취에 참여했다.
장유량 국방부 중앙감식소장과 함께 중앙감식소를 둘러봤다. 감식소에 들어서자 알싸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발굴된 유해는 감식소로 이동해 세척 과정을 거친 뒤 중성지 박스 안에 담겨 보관된다. 현재 8200여 구의 유해가 보관된 상태다. 세계에서 가장 많은 아시아인의 인골이 보관된 장소다.
산성도(pH)가 중성인 중성지 박스는 유해가 공기 중에 노출돼 부식되거나 부패하는 것을 지연시키는 역할을 한다. 보관소에는 항온항습 장치가 설치돼 있어 온도 20도, 습도 55%미만으로 유지된다.
신원 확인에는 법과학 분야의 첨단기술이 총동원된다. 일차적으로는 세척된 뼈를 계측해 해부학적인 특성을 파악하고, 이를 토대로 인종을 확인한다. 뼈의 손상이 심각한 경우에는 3차원(3D) 스캐너로 손상 부위를 정밀하게 복원하고, 이후 3D 프린팅으로 유해의 상실 부분을 재생한다. 이후 계측된 정보를 통계 프로그램과 대조해 뼈의 길이, 두께, 두개골의 크기 등 정보를 확인하고 인종을 파악한다. 생전 사진과 복원된 뼈의 모습을 비교해가며 신원을 확인하는 시도도 가능하다.
X선 치아 파노라마 장비 등을 이용해 치아를 정밀 분석하기도 한다. 분석 결과는 유가족의 증언과 비교해 생전 치아의 특성과 비교하는 식으로 활용된다. 또 한국전쟁 당시 한반도에는 설탕이 보급되지 않았던 만큼, 충치 치료를 위한 아말감 등의 성분이 발견되면 미군일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본다.
유해와 함께 유품이 발견된 경우에는 신원 확인 가능성이 더 높아진다. 실제로 신원이 확인된 127위의 전사자 중 상당수는 인식표나 신분증, 도장 등을 보유한 상태였다. 하지만 이처럼 인식표를 함께 보유한 경우는 극히 일부다. 전쟁 당시 착용했던 의복이 함께 발견된다면 현미경 분광분석기를 통해 섬유의 조성을 분석하는 연구를 진행할 수 있다. 하지만 당시의 특성상 중국군과 국군의 섬유 조성이 유사해 이 둘을 구분하기는 어렵다.
비교분광장치(VSC)를 이용해 유품에 가시광선이 아닌 파장의 빛을 쪼이면 맨눈으로는 보이지 않던 글씨가 드러나는 경우도 있다. 이호연 중앙감식소 유품분석관이 발굴현장에서 발견된 빛이 바랜 메모지를 비교분광장치에 넣고 빛을 조사하자, 보이지 않던 ‘고향에서 찾아오라, 함경남도 함흥시 서상리 97번지’라고 적힌 글씨가 드러났다.
이 유품분석관은 “가시광선을 제외하고 자외선, 적외선, 방사선 등을 쪼이는 방식”이라며 “세월이 흐르며 잉크가 말라버린 글씨, 무뎌진 각인 등을 확인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유전자 비교로 가족 확인
유전자 검사는 신원 확인의 핵심 절차다. 친자 확인에 쓰이는 기술과 유사하다. 우선 전처리 과정을 거친 유골을 가루 형태로 만든다. 이어 이 시료에서 유전자를 추출한 뒤, 유전자증폭기술(PCR)로 유전자 복제본을 만든다. PCR을 거치면 아주 적은 양의 DNA로도 단시간에 특정 부위의 유전자를 기하급수적으로 증폭할 수 있다. 이후 유전자형이 결정되면, 보관된 유가족 DNA 데이터베이스(DB)와 비교해가며 가족 여부를 확인한다.
유전자 비교는 모계혈통을 기반으로 검사하는 ‘미토콘드리아 DNA(MtDNA)’ 검사를 일차적으로 시행한 뒤, 부계 혈통 기반의 ‘Y-STR’, 부모의 유전자를 절반씩 동시에 확인하는 ‘A-STR’ 검사를 차례로 시행한다. 모계혈통 기반의 분석은 개인 식별력은 97%로 상대적으로 낮지만 검사 성공률이 98% 이상으로 높다는 장점이 있다. 반면 부계 혈통 기반이나 A-STR은 개인 식별력이 99.9% 이상으로 매우 높지만 검사 성공률은 절반 수준이다.
분석에 적합한 뼈 샘플의 무게는 5~15g이다. 세월의 흐름이나 매장 환경에 따른 DNA의 손상이 많을수록 더 많은 양의 샘플이 필요하다. 유해의 DNA 추출 성공률은 뼈의 유형에 따라 달라진다. 치아의 DNA 추출 성공률이 90% 이상으로 가장 높지만, 치아의 경우 표면에 실금 등이 생기면 오염돼 시료의 신빙성이 떨어진다.
이를 고려하면 거골(발목을 이루는 뼈 중 가장 위에 있는 뼈), 족근골(발과 다리를 연결하는 부위에 있는 일곱 개로 구성된 뼈), 측두골(머리뼈를 구성하는 뼈)이나 장골(long bone)에서 DNA를 확보하는 것이 가장 유리하다.
세대가 넘어가면 DNA를 통한 식별력은 4분의 1로 떨어진다. 부모와 자식 간의 DNA를 통한 식별 성공률이 100%라고 가정하면, 조부모와 손자의 DNA를 활용한 식별 성공률은 25%라는 의미다. 장 소장은 “현재 기술로는 1~2촌 관계의 DNA를 활용하면 확실하게 가족임을 확인할 수 있지만, 3촌을 넘어서게 되면 경우에 따라 결과가 나오기도, 나오지 않기도 한다”며 “하지만 DNA 분석 기술은 빠른 속도로 발전하고 있고, 향후 더 발전할 것이라는 기대가 있는 만큼 유전자 시료는 8촌 이내로 확보하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DNA를 통한 신원 확인은 근본적인 한계가 있다. 6·25 세대가 점점 노령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전쟁이 발발했을 당시에 태어났다고 해도 현재 68세다. 한국인의 평균 수명이 81.8세라는 점을 고려하면 향후 40년 전후로 2촌 이내 가족이 사망할 가능성이 높다는 의미다. 또 DNA 검사로는 국군, 북한군, 중국군 등 아시아계 인종구분이 어렵다. 가령 아시아계 미군의 유해를 DNA로 분석하면, 아시아인으로 분석된다. DNA가 손상돼 감식할 수 없는 경우도 존재한다. 장 소장은 “일정 온도 이상의 고온상태에서 DNA는 파괴된다”며 “실제로 2003년 대구 지하철 참사 당시 화재로 인해 피해자들의 DNA가 모두 파괴돼 DNA를 통한 신원 확인이 불가능했다”고 설명했다. 시체를 보존하기 위해 방부제 처리를 하는 경우에도 DNA가 손상을 입는다.
KBSI, 신원확인 연구 동참
유전자 검사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국유단은 지난해 한국기초과학지원연구원(KBSI)과 공동연구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국유단이 KBSI를 통해 새로 도입하기로 한 신원 확인 기술은 치아나 뼈 속의 동위원소를 분석하는 기술이다. 동위원소는 양성자 수는 같지만 질량은 다른 ‘쌍둥이 원소’를 말한다. 신원 확인에 사용되는 동위원소는 스트론튬(Sr)으로 자연에서는 스트론튬-84, 86, 87, 88 등 4개의 안정동 위원소가 존재한다. 이중 치아나 뼈에 축적된 스트론튬-87과 스트론튬-86 동위원소의 비를 통해 생전 섭취했던 음식에 대한 정보를 파악할 수 있다.
정창식 KBSI 지구환경연구부 책임연구원은 “스트론튬-86에 대한 스트론늄-87의 동위원소 비는 0.7~0.8의 값을 나타낸다”며 “DNA가 완전히 파괴됐거나, 매몰된 지 오래돼 DNA 추출이 불가능한 경우에 동위원소 분석이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동위원소는 DNA보다 오래 보존된다. 스트론튬 동위원소의 경우 반감기가 488억 년 정도로 매우 길다. 오랜 시간이 흘러도 분석이 가능하다는 의미다. 실제로 2016년 국제학술지 ‘사이언스’에는 5300여 년 전 사망한 냉동 미라 ‘외치’의 고향을 동위원소를 이용해 찾는 연구결과가 실렸다.
당시 연구를 진행한 ‘유럽 미이라 아이스맨 연구소(EURAC)’연구진은 지중해와 대서양의 산소 동위원소 비가 매우 다르다는 점에 착안, 치아 속 동위원소 조성을 살펴 살아생전 외치의 일생의 궤적을 추적하는 데 성공했다.
"치아 속 동위원소를 분석하면, 살아생전
즐겨먹었던 음식에 대한 정보를 알 수 있다.
고향을 찾기 유리하다는 의미다"
동위원소를 이용해 고향을 알아낼 수 있는 것은 지역마다 고유한 동위원소 비를 가지기 때문이다. 빗물이나 지하수, 암석, 토양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성장한 식물, 식물을 먹은 동물은 모두 스트론튬 동위원소를 갖고 있다. 그리고 이를 섭취한 사람의 뼈나 치아 속 칼슘이 스트론튬과 치환되며, 뼈나 치아에는 스트론튬이 축적된다.
가령 생전 동위원소 비가 0.7인 토양에서 자란 식물을 섭취했다면, 치아에도 0.7의 동위원소 비가 나온다는 의미다. 토양보다는 식물, 식물보다는 동물처럼 먹이 사슬에서 가까울수록 동위원소 비가 가장 유사하게 나타난다.
동위원소 기법으로 최소한 인종은 확인
분석에는 뼈보다 치아가 유리하다. 치아는 보통 8~12세에 발달한 뒤, 더 이상 새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즉 유년시절에 먹었던 음식물에 대한 기록이 치아에 온전히 남는다는 의미다. 반면, 뼈는 일생동안 재생되기 때문에 치아에 비해 동위원소비가 변할 가능성이 더 크다.
샘플이 확보되면 초산을 이용해 오염된 부분을 제거한다. 구멍이 많은 구조인 치아의 상아질이나 뼈에는 토양이 들어가기 쉽다. 세척이 제대로 되지 않으면 유해의 동위원소 비가 아니라 토양의 값을 분석할 수 있기 때문에 세척은 첫 관문이자 가장 중요한 과정 중 하나다.
이후 남은 샘플을 강산에 녹여 용액 상태로 만든 뒤, 청정실에서 크로마토크래피를 이용해 스트론튬만 분리해낸다. 이후 스트론튬을 질량분석기로 분석하면, 각 동위원소의 양을 파악할 수 있고, 이 결과를 토대로 동위원소 비를 계산할 수 있다.
류종식 KBSI 책임연구원은 “외부 오염을 최소화하기 위해 클린룸에서 스트론튬 추출을 진행한다”며 “최근 미국 DPAA에서 연구원을 방문해 클린룸 시설을 견학하고 갈 만큼 세계적인 기술력을 갖췄다”고 말했다. 물론 한계는 있다. 우선 유해가 꼭 해당 지역의 음식만 섭취했으리라는 보장이 없다는 점이다. 한국전쟁 당시만 해도 선조들은 산지에서 나는 음식을 주로 먹었지만, 흉년이 들면 유랑거식을 하며 식량을 해결했다. 또 해초의 경우 동위원소 비가 지역에 상관없이 거의 동일한데, 내륙에 살았더라도 해초만 즐겨 먹었다면 바닷가 지역 사람과 비슷한 결과값이 나올 수 있다.
즐겨 먹은 음식에 따라 결과가 달라질 수 있다는 의미다. 정 책임연구원은 “유해가 출토될 때 작은 동물의 치아나 뼈가 함께 출토되면 분석의 정확도가 높아진다”며 “가령 쥐가 지역을 이동해가며 살지는 않기 때문에 쥐의 동위원소 비와 유해의 동위원소 비를 비교해 값이 다르면 외지 사람으로 판단하는 등 동물의 치아나 뼈가 유해의 고향을 추정하는 데 유리한 단서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또 동 단위, 마을 단위의 동위원소 비를 확정하기 어렵다는 점도 한계다. 넓은 지역이 같은 값을 가진 경우도 있지만, 한 걸음만 걸어도 값이 달라지는 지역도 있다. 정 책임연구원은 “동위원소 비를 이용한 신원 확인은 수사의 범위를 좁혀주는 방식이라고 생각하면 된다”며 “시료가 매우 적고, DNA가 파괴돼 기존에는 국적조차 확인하기 어려운 유해에 대해 적어도 미국인인지 한국인인지는 확실하게 구분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연구진은 현재까지 남한 지역의 대략적인 동위원소 지도를 구축했고, 이를 세분화하는 작업을 계속 진행하고 있다. 류책임연구원은 “지역별로 미용실에 방문해 머리카락을 얻고, 지하수 샘플을 모으는 등 분석에 활용할 샘플 확보에도 적극적으로 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속초 전사자 유해 연구 시작
현재 KBSI는 국유단으로부터 속초 지역 해안가에서 출토된 전사자 유해의 샘플을 받아 시범 연구를 시작했다. 이 지역에서는 1950년 12월부터 사흘간 ‘동해 망상전투’가 펼져졌다.
해안가는 특성상 대부분의 뼈가 온전히 보존된 경우가 많다. 또 유해를 오염시킨 물질이 모래로 제한되는 만큼 최적의 전처리 방식을 도출해낼 수 있다. 만약 제거되지 않은 모래가 시료에 포함됐다고 해도, 모래의 동위원소 비는 정확히 알고 있기 때문에 이를 제외하고 분석을 진행할 수 있다. 연구팀은 각 부위별로 동위원소 비를 확보하기 위한 최적의 방식을 확보한 뒤 본격적인 신원 확인을 시작할 계획이다.
발굴해야 할 전사자의 규모가 약 13만 명, 이 가운데 연간 1000여 구의 유해를 발굴한다고 할 때 이 추세로는 130년이 걸린다. 게다가 약 1% 수준인 신원 확인 성공률이 그대로 유지된다면, 10만 여 구의 유해를 보관할 거대한 시설이 필요하다는 현실적인 문제도 있다.
정 책임연구원은 “동위원소 분석은 기술적인 분석과 역사적 사료나 증언을 바탕으로 한 문헌적인 분석이 동시에 진행되는 분야로, 이들이 잘 어우러지면 신원 확인을 위한 결정적인 단서가 나올 수 있다”며 “전쟁에서 희생된 전사자들의 넋을 기리기 위한 과학자로서의 역할을 다할 계획”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