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화점, 대형 마트, 또는 식당의 한편을 차지하고 있는 어린이 놀이공간 볼풀(ball pool). 색색의 플라스틱 공이 풀 안에 가득 들어있고 어린이들은 신나서 점프를 하며 공을 던지고 논다. 멍하니 볼풀을 바라보고 있을 때 불현듯 말도 안 되는 생각이 든다.
‘어? 점프했을 때 튀어나오는 공의 개수는 왜 항상1, 2, 3 같은 정수지? 분수는 안 되나? 당연히 안 되지! 공이 쪼개질 수는 없잖아! 왜 쪼개질 수 없는데? 글쎄…’ ‘그럼 튀어나오는 공의 개수가 왜 3, 7, 9 같이 어떤 정해진 숫자가 아니지?’
양자역학의 핵심 개념 2가지
플랑크, 아인슈타인, 보어, 드브로이, 슈뢰딩거, 하이젠베르크를 포함한 수많은 과학자들도 이같은 생각을 했다. 그 결과 만들어진 것이 바로 양자역학(quantum mechanics)인데, 그 중심에는 두 가지 중요한 개념이 있다. 하나는, ‘원자와 같이 아주 작은 세계에서는 많은 성질이 불연속적’이라는 것이다. 쉽게 말하면, 볼풀에서 튀어나오는 공의 개수가 1, 2, 3…과 같이 연속적이지 않고, 어떤 정해진 규칙에 따라 3, 7, 9와 같이 불연속적으로 튀어나온다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아주 작은 세계에서 우리가 100% 확실하게 알 수 있는 것은 실질적으로 거의 없다’는 것이다. 이것은 명확한 것을 추구하는 과학자에게 큰 혼란을 가져다줬다.
이 개념에 따르면 원자 안에 있는 전자의 위치와 속도를 동시에 100% 확실하게 알 수 없다. 따라서 통계와 확률에 기반을 둔 접근 방법이 필요해진다. 볼풀로 예를 들면, 눈을 감고 볼풀 안에 들어있는 공들을 만질 경우에 공의 크기는 알 수 있지만 공의 색깔은 동시에알 수 없는 것과 같다.
이렇게 과학자들의 사고 체계를 변화시킨 양자역학은 원자 구조를 설명하는 데도 큰 영향을 끼쳤다. 이제 지난 200년간 과학자들이 원자를 어떤 모습으로 그려냈는지 하나씩 살펴보자.
톰슨의 푸딩 모델
돌턴의 원자론(1803년) 이후에 오랫동안‘원자’(atom)는 더 이상 쪼갤 수 없는, 물질의 궁극적인 입자였다. 하지만 1897년 톰슨(J. J. Thompson)이 음극선 실험으로 원자보다 작은 물질(전자)이 존재한다는 것을 발견하면서 쪼갤 수 없는 원자의 위상은 흔들렸다. J. J. 톰슨은 전자가 원자를 이루는 물질 중의하나라는 것을 발견한 공로로 1906년 노벨물리학상을 받았다. J. J. 톰슨의 아들인 G. P. 톰슨은 전자가 파동의 성질을 보인다는 것을 실험으로 증명한 공로로 1937년 노벨물리학상을 받았다. 아버지는 전자가 입자라는 사실을, 아들은 전자가 파동이라는 사실을 보여준 것이다.
원자는 전하가 없는 중성이기 때문에, 톰슨은 양전하를 가지고 있는 물질로 이뤄진 젤리 같은 구조에 음전하를 가진 전자가 골고루 퍼져서 박혀있는 원자모델을 제시했다. 이 원자 모델을 ‘서양자두푸딩’(plum pudding) 모델이라고 했다(그림1). 푸딩에 서양자두가 박혀있는 것처럼 전자가 양전하 푸딩 안에 퍼져서 존재하는 구조라고 해석한 것이다.
러더퍼드의 복숭아 모델
톰슨의 제자였던 러더퍼드는 1911년 스승의 모델을 뒤집을 엄청난 발견을 했다. 러더퍼드는 덩치가 꽤 큰(?) 방사선 물질인 알파입자를 아주 얇은 금 박막에 충돌시키는 실험을 했다(러더퍼드는 방사선 물질 연구로 이미 1908년 노벨화학상을 받았다). 톰슨의 모델에 따르면 금 박막에 쏜 알파입자는 손쉽게 박막을 뚫고 지나가야한다.
하지만 러더퍼드는 알파입자가 휘어져 지나가거나튕겨 나오는 것을 발견했다. 러더퍼드는 이 실험을 두고 “믿을 수 없는 일이다. 마치 넓은 창호지한 장을 허공에 걸어놓고 투포환을 던졌는데 투포환이 창호지에서 튕겨 나오는 것과 같은 일이다”며 놀라움을 표현했다.
이 발견을 토대로 러더퍼드는 푸딩 모델을 수정했다. 양전하를 띤 커다란 알파입자가 튕겨 나왔기 때문에, 원자 안에는 양전하가 퍼져있는 것이 아니고 알파입자를 튕겨버릴 정도의 밀도를 가진 양전하 덩어리가 존재해야 한다고 믿은 것이다. 즉 푸딩(양전하)에 서양자두(전자)가 박혀있는 구조가 아니고, 양전하 덩어리가 한곳에 고밀도로 모여 있는 복숭아와 같은 구조라는 얘기다(그림2). 이때 복숭아씨를 원자핵(nucleus)이라고 부른다. 원자가 중성이기 때문에 원자핵의 전하는 주위의전자 개수에 맞춰 정해진다. 예를 들어 전자가7개 있다면 원자핵의 전하는 +7e일 것이다. 원자안의 전자의 개수(Z)에 따라서 원자핵은 +Ze의 전하를 가지며, 이때 정수인 Z를 원자번호라고 한다.
질량수는 양성자수+중성자수
$-1.60 X {10}^{-19}$ 쿨롱(C)의 전하를 가지는 전자와 같은 크기의 양전하를 가지는 원자핵으로 이뤄진 원자는 중성이지만 질량은 어떠할까. 원자 중에서 가장 작은 수소원자(H)를 예로 들어 보자. 수소원자핵은 양성자 1개로 이뤄져 있는데, 전하는 당연히 1.60× ${10}^{-19}$ C으로 전자와 부호만 반대다.
하지만 질량은 1.67×${10}^{-27}$kg으로 전자 질량(9.11×${10}^{-31}$kg)의 1836배 정도 된다. 즉 원자 대부분의 질량은 원자핵의 질량인 셈이다. 따라서 양성자를 원자 질량의 단위로 사용하면 수소원자의 질량수(mass number)는 1이라고 표현할 수 있다.
수소 다음 원자인 헬륨(He)의 경우는 어떨까. 양성자와 전자가 각각 두 개 있는 헬륨(원자번호 2)은 이상하게도 질량수는 2가 아닌 4다. 왜 그럴까. 이 결과를 설명하기 위해 러더퍼드는 1920년 원자핵 안에 양성자와 비슷한 질량을 가지고 있으면서 중성인 입자(중성자, neutron)를 제안했다.
얼마 뒤인 1932년 러더퍼드의 제자였던 채드윅이 중성자를 발견했다(이 공로로 채드윅은 1932년 노벨물리학상을 받았다). 즉 헬륨의 질량수 4는 원자핵의 양성자 2개와 중성자 2개에 기인한 것이었다. 일반적으로 원자핵은 양성자 Z개와 중성자 N개로 이뤄져 있으며, 많은 경우에 N은 Z와 같은 값을 가진다. 따라서 원자의 질량수는 Z+N으로 계산된다.
Z결론적으로 원자는 ${}^{Z}_{N}X$ 으로 표시하며, X는 H, He와 같은 원소의 화학기호, Z는 원자번호, 그리고 N 은 중성자수다. 예를 들면 수소는 ${}^{1}_{1}H$로, 헬륨은 ${}^{4}_{2}He$로 표시한다.
발머의 수소 스펙트럼이 남긴 숙제
1885년에 발머는 원자 내부에 있는 전자 구조에 대한 정보를 줄 수 있는 중요한 실험 결과를 발표했다. 수소의 방출스펙트럼을 관찰했더니 가시광선 영역에서 연속적인 스펙트럼이 아니라 불연속 선스펙트럼이 나온 것이다. 볼풀을 예로 들면, 볼풀에서 3, 7, 9와 같은 특정 개수의 공이 튀어나오는 것과 같다.
즉 양자역학의 개념 중의 하나인 불연속성과 관련된 실험 결과인 것이다. 발머는 불연속 선스펙트럼의 파장들이 1/λ= ${R}_{H}$·(1/2² - 1/n²), (n = 3, 4, 5…) 같은 식으로 표시될 수 있다고 발표했다. 여기서λ는 파장이고, RH은 특정값(109677.57cm${}^{-1}$)을 갖는리드버그(Rydberg)상수다.
왜 특정한 파장의 스펙트럼만 관찰된 것일까(왜 특정한 개수의 공들만 볼풀에서 튀어나올까). 과학자들은 이 숙제를 거의30년 동안 해결하지 못했다. 이 의문은 1913년 보어가 어느 정도 해결했다. 보어는 운이 참 좋았다. 왜냐하면 1912년 1년 동안 톰슨과 러더퍼드 연구실에서 있으면서 최신 실험과 이론을 습득했기 때문이다.
사실 보어의 이론은 간단하다. 다시 볼풀의 공을 예로 들어보자. 볼풀에서 점프를 할 경우에 당연히 1, 2, 3…과 같은 숫자의 공들이 튀어나올 것이다. 하지만 만약에 공들이 각각 독립적으로 볼풀 안에 있지 않고, 공들이 3개, 7개, 9개 등의 규칙을 가지고 하나로 묶여 있다면 의심의 여지없이 4개, 5개, 6개의 공은 튀어나올 수 없고, 3개, 7개와 같은 개수의 공들만 튀어나올 것이다.
과학적으로 이야기하면, 볼풀에서 튀어나오는 공의개수는 연속적인 것이 아니라 불연속적인 것이다. 보어는 이런‘불연속성’의 개념을 도입해 발머의 수소선스펙트럼의 의문을 풀었다(그림4). 보어가 도입한 불연속성의 개념은 무엇이고, 불연속성을 포함한 양자역학의 개념은 이후 원자구조를 설명하는데 어떠한 영향을 미쳤을까?
수소의 방출스펙트럼 중 가시광선 영역에서 불연속 선스펙트럼이 관측된다. 특정한 파장의 스펙트럼(${H}_{α}$, ${H}_{β}$, ${H}_{δ}$)만 관찰된 이 결과는 보어가 원자구조는 불연속적이라고 설명하는데 기초가 됐다.
원자를 레고처럼 조립한다
어린이들은 볼풀에서 공을 집어서 다른 쪽에 옮겨 놓기도 하고 두 손에 공을 들고 서로 부딪치며 놀기도 한다.이런 일이 원자의 세계에서도 가능할까. 수많은 원자와 분자를 다루는 것이 아니라 옹스트롬(1Å= ${10}^{-10}$m)단위의 원자 한 개, 두 개를 레고 조각처럼 옮기거나 붙일 수 있을까. 원자 하나를 다룰 수 있는 손이 있을까. 나노 과학이 발전하면서 이런 꿈같은 일들이 현실에 가까워졌다. 원자 하나를 다른 장소로 이동하기 위해서는 우선 원자를 ‘볼 수 있어야’한다. 이것은 나노 과학의 출발점이라고 불리는 주사투과현미경(Scanning Tun-neling Microscope, STM)의 발명으로 가능해졌다.
원자로 글자를 쓰거나 그림도 그릴 수 있다. STM의 탐침을 원자를 움직이는 손으로 이용해서 니켈판 위에놓인 크세논 원자를 이동시켜 IBM이라는 글자를 쓸 수도 있고, 구리판에 놓인 철 원자를 가지고 동그라미를 그릴 수도 있다.
분자를 잘 이동시켜 분자 하나와 또 다른 분자 하나를 반응시킬 수 있을까. 물론이다. 분자 하나를 자르는 것도 가능하고 잘린 분자두 개를 반응시켜 하나의 분자로 만드는 것도 가능하다. 이렇게 나노 과학은 우리들의 상상력을 현실로 만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