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편집자주 - 이 기사는 철저히 기술적인 관점에서만 암호화폐를 다뤘습니다. 경제학적인 관점에서 암호화폐의 가격 변동에 대한 부분은 배제했음을 알려드립니다.
2017년 8월, 200만 원대에 머물던 비트코인이 4개월만에 10배 가까운 2000만 원으로 가격이 뛰었다. 그리고 다시 두 달 만에 반 값인 900만 원대로 떨어졌다(2018년 2월 14일 기준). 가격의 파도타기는 비트코인 열풍을 일으켰고, 이는 암호화폐를 둘러싼 각종 소문으로 진화했다. 소문의 진위를 과학적으로 짚어봤다.
소문 1 - 정부 규제로 암호화폐 채굴 중단된다?
NO, 천정부지로 치솟던 비트코인의 가격 상승에브레이크를 밟은 건 거래소 규제에 관한 금융 당국의 발표가 있은 직후였다. 지난해 6월 21일 금융감독원은 “가상통화는 법정화폐가 아니다”라며 암호화폐에 대한 규제를 암시하는 듯한 발표를 했다. 이어서 올 해 1월 11일 법무부는 아예 “가상화폐 거래소를 통한 가상화폐 거래금지 법안을 준비 중이며, 거래소 폐쇄까지도 목표로 하고 있다”며 칼을 빼 들었다.
그러자 2100만 원에 거래되던 비트코인은 1시간 여만에 1400만 원 선으로 폭락했다. 이렇게 정부의 규제가 암호화폐의 가격에 큰 영향을 주다 보니, 정부의 규제가 결국은 암호화폐 시장을, 더 나아가 블록체인 기술을 망하게 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한국 정부의 암호화폐 규제 발표는 결과적으로 암호화폐 가격 하락에 큰 영향을 미쳤다. 하지만 이는 매우 이례적인 경우다. 중국 정부가 지난해 9월 초기코인발행(ICO·Initial Coin Offering)을 중단하고 암호화폐 거래를 중단하겠다는 강한 규제 방안을 발표하면서, 500만 원을 호가하던 비트코인 가격이 순식간에 300만 원대로 떨어졌다. 하지만 같은 해 12월 미국상품선물거래위원회가 시카고 옵션거래소와 시카고 상품거래소의 비트코인 선물 상장을 승인하면서 비트코인 가격은 다시 치솟아 1000만 원대를 훌쩍 넘었다. 한 나라의 규제가 일시적으로 가격에 영향을 줄 수는 있지만, 지속적인 가격하락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보여준다.
올해 1월 10일 미국 월스트리트저널은 “중국의 금융감독 기구가 지방 정부에 암호화폐 채굴 금지 공문을 보냈다”고 보도했다. 중국은 현재 전 세계 암호화폐 채굴에서 상당 비율을 차지하고 있다. 만약 실제로 중국이 암호화폐 채굴 자체를 금지하는 강도 높은 규제를 시행한다면, 전 세계 채굴꾼 수는 눈에 띄게 감소할 것이다. 이 경우 암호화폐는 정상적으로 운영될 수 있을까.
일시적으로 가격이 하락하거나 혼란이 있을 수는 있지만, 시스템 자체는 안정적으로 운영될 수 있다. 채굴 알고리즘에 답이 있다. 예를 들어 비트코인은 블록을 생성하기 위해서 아주 어려운 연산 문제를 풀어야 한다. 정확히는 난수를 생성하는 해시함수를 이용해서 나온 결과 값이 알고리즘이 정해주는 특정한 수(Z) 보다 작으면 통과할 수 있다. 채굴꾼은 해시함수의 입력 값인 ‘난스(Nonce)’를 계속 바꿔가며 Z보다 작은 결과 값을 만들어낸다. 즉, Z가 커질수록 풀기 쉬운 문제가 되고, 작아지면 어려운 문제가 된다.
비트코인의 경우 2주에 한 번씩 만들어지는 블록의 수에 따라 문제의 난이도가 달라진다. 채굴에 참여하는 사람이 많아 블록의 수가 많으면 문제의 난이도가 올라간다. 김형식 성균관대 소프트웨어대 교수는 “중국과 같은 거대 채굴 기업이 빠지게 되면 해시함수의 난이도가 떨어져, 남은 채굴꾼들이 비교적 수월하게 블록을 생성할 수 있도록 설계돼 있다”고 말했다. 즉, 채굴꾼의 수와 관계없이 비트코인은 운영될 수 있다.
결국 채굴을 하는 데 들어가는 비용보다 채굴을 함으로써 얻는 비용이 더 많으면 채굴꾼들은 계속 이 작업을 수행한다. 문제가 어려워지면 연산을 푸는 연산능력을 의미하는 ‘해시 레이트(Hash rate)’의 값이 올라가고, 그만큼 사용하는 전기와 장비를 냉각하는 데 들어가는 비용도 늘어난다. 반대로 문제가 쉬워지면 투자 비용도 줄어들기 마련이다.
올해 6월 열리는 ‘유럽정보시스템학회(ECIS)’에서 발표되는 미국 텍사스대 연구팀의 보고서에 따르면 초당 14테라해시(1TH는 1012해시)로 장비를 운영할 경우 약 1.3~1.4킬로와트시(KWh)의 전기를 사용하며, 이때 비용은 미국을 기준으로 1300달러(약 140만원) 선이다.
2018년 2월 기준 비트코인 채굴에 필요한 평균 해시 레이트는 초당 20엑사해시(1EH는 106TH)정도다. 국내 최대 암호화폐 거래소 빗썸의 관계자는 “채굴장의 규모와 장비, 전기 요금, 임대료 등에 따라 차이가 크지만, 전문 사업장의 경우 1비트코인을 채굴하는 데 대략 720만~750만 원 정도가 든다”고 말했다.
비트코인의 가격이 이 비용 이상으로만 유지된다면 비트코인의 생산이 중단되는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김 교수는 “문제의 난이도가 내려가면 해시 레이트도 내려가고, 들어가는 비용도 적어지는 구조여서 비트코인의 생산이 멈추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소문 2 - 암호화폐 가격 조작할 수 있다?
YES, 중국, 일본, 미국 등의 거대 채굴업체들이 암호화폐의 가격을 조작할 수 있다는 논란도 있다. 실제로 가격 조작 정황이 포착된 적이 있기 때문이다.
닐 갠달 이스라엘 텔아비브대 교수팀은 2017년 ‘화폐금융저널(Journal of Monetary Economics)’에 거대 채굴업체에 의해 암호화폐의 가격이 급변할 수 있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연구팀은 2013년까지 세계 최대의 암호화폐 거래소였던 일본 마운트곡스의 사례를 연구했다. 당시 마운트곡스는 전체 비트코인 거래의 70% 이상을 처리하고 있었는데, 해킹으로 수천 비트코인이 도난 당하면서 2014년 4월 파산했다.
연구팀은 거래소가 파산하기 직전 비트코인의 가격이 급격하게 오른 현상에 주목했다. 연구팀은 마운트 곡스에서 거래한 이들의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두 명의 의심스러운 트레이더를 발견했다. 비트코인 트레이더는 주식 트레이더처럼 개인 투자자를 대신해 비트코인을 사고 파는 이들을 말한다. 연구팀은 윌리와 마르커스라는 두 명의 트레이더가 비트코인을 스스로 사고파는 자전 거래를 통해 150달러에 이르던 가격을 1000달러까지 약 7배 높인 것으로 분석했다.
연구팀은 마르커스가 활동하던 225일 동안 33만 5898비트코인(약 813억2000만 원)을 사면서, 단 한차례도 거래에 대한 수수료를 지불하지 않았던 점을 근거로 내세웠다. 또 윌리는 49개의 계좌를 이용해 약 27억 원에 해당하는 비트코인을 빠르게 사들였다. 두 명의 트레이더가 2013년 12월까지 사들인 규모는 약 60만 비트코인으로, 마운트곡스 하루 거래량의 20%에 가까운 양이다.
물론 2013년과 현재의 암호화폐 거래량 사이에는 차이가 있다. 빗썸의 거래량을 기준으로 2013년 63건에 해당하던 비트코인 거래량은 현재 1408만113건까지 약 2만 배 이상 증가했다. 이런 상황에서도 조작이 가능할까.
빗썸 관계자는 “비트코인이나 이더리움처럼 거래량이 많은 암호화폐는 조작이 어렵겠지만, 소규모 암호화폐는 확신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갠달 교수도 논문에서 “당시 80여 개 수준이었던 암호화폐의 종류가 지금은 843개까지 늘었다(2018년 2월 기준 1000개 이상)”며 “그만큼 투자가 분산되고 암호화폐별 시장이 매우 얇아져, 조작이 2 가능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소문 3 - 암호화폐 가격은 시장이 정한다?
NO, 비트코인 가격이 가파르게 상승하기 시작한 것은 2017년 8월부터다. 그 시기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수많은 환경 요인이 있겠지만, 가장 큰 사건은 비트코인의 ‘하드 포크(hard fork)’다.
개발자들은 이전 버전의 소프트웨어에서 보안상 심각한 취약점이 발견되거나, 소프트웨어에 새로운 기능을 추가할 때 업데이트를 진행한다. 암호화폐도 예외는 아니다. 하지만 어떤 것을 수정하는지에 따라 전혀 다른 일이 일어난다.
발행량이나 블록 사이즈 등 기존 소프트웨어의 핵심 규칙과 관련한 사항은 건드리지 않고 성능 개선에 필요한 부분만 업데이트를 하는 경우를 ‘소프트 포크(soft fork)’라고 한다. 기존의 블록체인을 그대로 이어나가는 셈이다.
하지만 핵심이 되는 규칙을 바꾸고자 할 때에는 기존의 블록체인을 더 이상 사용할 수 없기 때문에, 기존의 장부는 인정하되 새로운 암호화폐가 만들어진다. 이를 하드포크라고 한다. 육상 선수가 기존 방식에서 달리기를 더 잘 할 수 있도록 식단 조절, 근력 강화 프로그램, 정신 수양 등의 방법을 추가해 실력을 향상시키는 시스템을 도입하는 것이 소프트 포크라면, 하드 포크는 아예 육상 선수의 몸 자체를 바꿔버리는 것으로 비유할 수 있다.
문제는 블록체인의 특성상 암호화폐에서는 이 과정이 아주 민주적인 절차에 의해 일어난다는 점이다. 가령 마이크로소프트에서 윈도우 업데이트는 매우 간단한 절차다. 개발자가 프로그램을 수정한 뒤 사용자에게 일괄적으로 뿌리면 된다. 하지만 비트코인은 연산을 가장 먼저 푼 채굴꾼이 블록을 생성하기 때문에 절대적인 권력자가 없다.
하드 포크가 일어나면 기존 블록체인과 하드 포크로 생긴 새로운 블록체인이 더해져 두 갈래의 블록체인이 존재하게 된다. 만약 비트코인에 절대적인 권력자가 있다면 새로 생긴 갈래의 블록체인에만 계속 블록을 이어 나가게 하면 된다. 하지만 이에 반대하는 채굴꾼들이 다른 갈래의 체인에 블록을 이어나가면 결국 두 개의 비트코인이 발생하게 된다.
지난해 8월 발생한 비트코인의 하드 포크 역시 개발자와 채굴꾼의 입장 차이로 두 개의 코인으로 나뉘어 졌다. 비트코인의 거래량이 증가하면서 거래 속도가 느려져 업데이트가 필수였는데, 채굴꾼들은 블록의 크기를 키우기를 원했다. 블록이 커지면 기록할 수 있는 거래 내역의 양이 늘어나고 그만큼 거래 수수료가 많아져 채굴에 대한 보상이 커지기 때문이다.
반면 비트코인 개발자들은 블록 크기를 키우면 보안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이유로 블록의 저장 효율부터 개선하자고 주장했다. 결국 양측의 뜻이 좁혀지지 않아 비트코인은 개발자가 업데이트한 새로운 ‘비트코인’과 채굴꾼들이 원래 1메가바이트(MB)였던 블록의 크기를 2~8MB까지 확장할 수 있도록 만든 ‘비트코인 캐시’로 나뉘었다.
하드 포크가 가격에 영향을 주는 이유는, 하드 포크가 일어날 경우 기존 암호화폐의 가치에 따라 새로운 가상화폐를 지급하기 때문이다. 이를 ‘에어드롭’이라고 한다. 신규 암호화폐 거래를 활성화하기 위한 마케팅 수단으로 거래소가 임의로 신규 코인을 구입해 제공하는 경우도 있지만, 코인을 발행하는 재단에서 프로모션 차원으로 진행하는 경우도 있다.
지금까지 일어난 모든 하드 포크에서 에어드롭이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비트코인과 이더리움 등 주요 암호화폐에서 발생한 대규모 하드 포크에서는 에어드롭이 있었다. 빗썸 관계자는 “하드 포크가 일어나기 전 에어드롭에 대한 기대감으로 비트코인 사재기 등 부작용이 생겼고, 결과적으로 하드 포크가 비트코인의 가격을 높이는 역할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소문 4 - 암호화폐 해킹, 거래소 소행이다?
NO, 2월 12일 이탈리아의 암호화폐 거래소인 ‘비트그레일’에서 1850억 원 규모의 해킹이 발생했다. 신생 암호화폐인 ‘나노’ 1700만 개가 무단으로 인출된 것이다. 국내에서는 지난해 12월 19일 거래소 ‘유빗’이 해킹으로 약 172억 원의 손실을 입고 파산 절차를 진행했다.
암호화폐 거래소의 골칫거리 중 하나는 해킹이다. 일각에서는 해커의 소행이 아니라 거래소의 자작극이라는 의심의 눈초리도 보낸다. 이상엽 빗썸 홍보실장은 “대부분의 거래소 해킹은 거래소 내부 시스템보다는 악성코드를 이용해 사용자의 단말기를 해킹해 암호화폐를 다른 지갑으로 이동하는 방식으로 이뤄지는 것으로 파악된다”며 “거래소 시스템의 통신 경로와 로그 분석을 통해 해커를 추적한다”고 말했다.
규모가 작은 거래소의 경우에는 해킹에 속수무책이다. 김승주 고려대 정보보호대학원 교수는 “최근에는 북한으로 추정되는 해킹 세력까지 가담한 것으로 알려지는 등 해킹 기술은 나날이 진화하고 있다”며 “보안장비가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작은 규모의 거래소는 해킹 경로 추적 조차 어렵다”고 말했다.
해킹 경로를 추적하기 어려운 이유는 한 가지가 더 있다. 암호화폐 중에서도 특히 익명성에 초점을 맞춘 ‘익명 암호화폐’가 사라진 경우다. 모네로, 지캐시, 피벡스, 대시 등 일부 암호화폐가 이에 해당한다. 이들은 보내는 사람과 받는 사람의 주소를 암호화하고, 프록시 서버나 믹서 서버를 이용해 누가 누구에게 보냈는지 알 수 없게 만든다.
김 교수는 “비트코인과 같은 일반적인 암호화폐는 보내는 사람의 이름을 실명이 아닌 가명으로 사용하게 할 뿐, 암호화를 하는 건 아니다”라며 “만약 해킹을 당한다면 컴퓨터 보안 기술을 이용해 해커의 가명과 실명을 일정 수준으로 유추해낼 수 있다”고 말했다. 익명 암호화폐는 이 과정이 불가능하다.
또 믹서 서버는 암호화 된 주소마저 무작위로 섞어버린다. 가령 A, B, C라는 사람이 100코인을 D, E, F라는 사람에게 각각 보냈다고 할 때, 보내는 사람의 주소는 암호화된 상태로 믹서 서버에 들어간다. 이 서버에서는 입력된 300코인을 합쳐 새로운 주소로 D, E, F에게 각각 100코인씩 보낸다. 보낸 사람의 정보가 완벽하게 보호된다. 심지어 돈을 받는 사람조차 누가 보냈는지 확인할 수 없다. 자신에게 들어온 돈의 액수만 알 뿐이다.
이런 익명 암호화폐를 사용하는 경우 현재로서는 추적이 불가능하다. 이종혁 상명대 소프트웨어학과 교수는 “아직은 익명 암호화폐에 대한 기초연구만 진행되는 단계”라며 “지속적인 연구를 통해 해킹 경로를 파악할 방법을 강구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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