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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 2. 암호화폐 없는 블록체인 가능한가

 

암호화폐는 신세계를 열어줄 것인가, 투기로 사회를 혼란에 빠트릴 것인가.

 

최근 암호화폐를 둘러싼 찬반 논란이 거세다. 양측은 기술적, 경제적, 사회적인 측면에서 상반된 주장을 하고 있다. 특히 암호화폐와 블록체인의 관계에 대해서는 의견이 첨예하게 갈라진다. 암호화폐 없는 블록체인이 가능한가, 즉 암호화폐와 블록체인이 서로 분리돼 발전할 수 있겠냐는 것이다.

 

블록체인은 공개형과 비공개형으로 구분


암호화폐와 블록체인은 동시에 등장했지만, 엄연히 다른 개념이다. 블록체인은 2009년 사토시 나카모토라는 인물이 비트코인을 개발하기 위해 만든 분산 데이터 저장 기술이다. 블록체인은 인터넷에서 관리 주체 없이 사용자끼리 신뢰하는 방식으로 설계된 만큼 향후 다양한 분야에서 응용이 가능할 것으로 기대된다.

 

여기서 ‘관리 주체가 없다’라는 말은 블록체인의 동작을 임의로 제어하거나 관리하는 사람 또는 단체가 없다는 뜻이다. 또 ‘사용자 사이에 신뢰할 수 있다’는 말은 인터넷에서 일면식도 없는 사용자들이 블록체인에 저장된 데이터를 믿을 수 있다는 뜻이다. ‘분산 데이터 저장’은 블록체인을 하나의 저장소에 저장하지 않고 블록체인에 참여하는 사용자들의 컴퓨터에 각각 하나씩 저장한다는 말이다.

 

비트코인은 블록체인을 이용해 이런 특성을 구현한 디지털 화폐다. 최근 한 TV 프로그램의 암호화폐 토론회에서 나온 것처럼, 블록체인이 건축 기술이라면 비트코인은 그 기술을 토대로 쌓아 올린 집으로 비유할 수 있다.

 

처음 탄생부터 함께 했던 암호화폐 없이 블록체인이 발전할 수 있을까. 답은 그렇기도 하고, 그렇지 않기도 하다. 블록체인의 종류에 따라 답이 달라진다.

 

블록체인은 사용자의 참여 방식에 따라 공개형(public) 블록체인과, 비공개형(private) 블록체인으로 구분된다. 비트코인, 이더리움 등 대부분의 암호화폐는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공개형 블록체인이다. 그 누구도 참여자를 걸러 내거나, 누가 참여하는지 확인하기 어렵다.

 

경기도는 2017년 ‘따복공동체 주민제안 공모사업’을 결정하는 투표에 블록체인을 도입했다. 주민들이 휴대전화로 사업설명을 시청한 뒤 투표하면 그 결과가 블록체인에 투명하게 기록된다.

 

 

반면 비공개형 블록체인은 참여자를 관리하는 주체가 존재하며, 많은 경우 해당 서비스를 사용하기 위해 사용자 관리가 필요하다. 예를 들어 사용자 아이디와 패스워드를 검증하고, 이를 통해 참여가 허락된 이들만 비공개형 블록체인을 사용할 수 있다.

 

적절한 보상이 공개형의 특징


공개형 블록체인에서 신뢰 관계가 없는 사용자들은 블록체인에 담긴 데이터를 어떻게 믿을 수 있을까. 은행이 승인한 거래 기록은 일말의 의심 없이 믿을 수 있지만, 아무도 관리하지 않는 장부인 블록체인에 쓰인 거래 기록을 믿는 것은 큰 도박일 수 있다.

 

블록체인은 합의 알고리즘을 이용해 신뢰를 쌓는다. 이 합의 알고리즘에 따라 암호화폐와 블록체인의 관계가 떼려야 뗄 수 없는 사이가 되기도 하고, 독립적인 관계가 되기도 한다. 공개형 블록체인은 누구나 합의 과정에 참여하고 합의 알고리즘을 실행해 사용자 사이에 신뢰를 갖는 데이터를 만든다.

 

대표적인 공개형 블록체인에 해당하는 암호화폐 가운데 비트코인과 이더리움은 ‘작업증명(PoW·Proof-of-Work)’이라는 합의 알고리즘을 사용한다. 특정 문제를 가장 먼저 푼 사람이 블록을 생성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동시에 두 개의 블록이 만들어질 확률은 매우 낮다. 만약 두 개의 블록이 만들어졌다고 하더라도 그 다음 블록이 또 동시에 만들어질 확률은 더더욱 낮다.

 

2014년에 개국한 사이버국가 ‘비트네이션’. 비트네이션은 블록체인의 스마트 계약 기능을 이용해 시민권, 보안 ID, 평판 시스템 등의 국가적 공공서비스를 제공한다. 에스토니아는 2015년 12월 부터 비트네이션과 협력해 결혼, 출생 증명, 사업 계획서까지 중개기관 없이 진행하는 블록체인 행정 시스템을 구축했다.

 

 

즉, 실질적으로 동시에 생성된 블록 중 하나에 연결 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이를 수학적으로 계산하면 블록 6개가 동시에 대립하게 될 확률은 0.1% 이하다.

 

하지만 이런 합의 과정에 참여하는 것과 신뢰성이 확보된 블록체인을 사용하는 것은 전혀 다른 일이다. 공개형 블록체인의 사용자는 많은 노동과 자본이 필요한 합의 과정에 참여하지 않아도, 그 결과로 만들어진 블록체인의 데이터를 사용하며 혜택만 누릴 수 있다. 누구도 합의 과정에 참여하라고 강제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 비트코인에는 1만 명 이상의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심지어 블록을 더 먼저 생성하기 위해 문제를 빨리 풀 수 있는 전문 장비를 사는 데 돈을 아끼지 않는다.

 

그 이유는 적절한 보상이 있기 때문이다. 현재 하나의 블록이 만들어질 때마다 작업증명의 문제를 푼 사용자는 약 13.4비트코인(BTC)을 받는다(2018년 2월 기준). 블록체인 내에서 자동으로 생성돼 주어지는 12.5BTC에, 블록에 담길 거래자들의 수수료 평균값인 0.9BTC를 합친 값이다.

 

1BTC를 1000만 원이라고 가정한다면, 블록 하나를 생성할 때마다 작업증명에 참여한 누군가에게 약 1억 3400만 원이 보상으로 주어진다. 평균 10분마다 하나 씩 블록이 만들어지는 비트코인은 하루에 144개가 만들어지고, 약 192억9600만 원이 보상을 위해 사용된다. 이 돈으로 비트코인이 동작하고 신뢰성과 안전성이 유지되는 것이다.

 

결국 공개형 블록체인은 비트코인 같은 적절한 보상이 없이는 데이터의 신뢰성을 유지하기 어렵다. 반드시 암호화폐의 형태가 아니더라도, 이 정도의 동기 부여가 될 수 있는 보상이 있어야 발전할 수 있다.

 

관리 주체가 운용하는 비공개형 블록체인


반면 비공개형 블록체인에서는 관리 주체가 합의 과정에 참여할 대상을 선정한다. 그렇다 보니 공개형 블록체인에 비해 합의 알고리즘에 참여하는 컴퓨터 수가 적다. 널리 사용되는 합의 알고리즘은 ‘위임된 지분증명’이 있으며, 21명 이상의 참여자만 있으면 실행이 가능하다.

 

 

비공개형 블록체인은 주로 금융권에서 많이 활용된다. 가령 지금은 모든 은행이 한국인터넷진흥원(KISA)이 발행한 공인인증서를 사용하고, 그에 대한 사용료를 지급한다. 하지만 은행들이 블록체인을 이용해 인증시스템을 공유한다면 더 이상 사용료를 지급하지 않아도 된다. 블록체인에 사용자의 이름과 발급 날짜, 발급 은행 등과 같은 인증서 정보를 올려놓고, 모든 은행들이 이 시스템에 참여하면 굳이 국가가 공인한 공인인증서를 사용할 필요가 없다. 이렇게 서로의 필요에 의해 운영되는 비공개형 블록체인에는 보상이 필요하지 않다.

 

온라인 게임 서비스를 운영하는 기업도 마찬가지다. 아이템을 거래하거나 게임의 승패 등 기록을 투명하게 관리해야 하는 게임 기업이 자체적으로 블록체인을 이용해 서비스를 운영할 수 있다. 자신들이 보유한 컴퓨터를 이용해 비공개형 블록체인을 구축하고 서비스를 제공하는 경우에도 보상 없이 충분히 블록체인 시스템이 운용될 수 있다. 게임 사용자들은 블록체인에 참여할 필요 없이 게임만 즐기면 된다.

 

암호화폐와 분리된 블록체인 생태계


현재까지는 비공개형 블록체인을 기반으로 한 서비스가 주를 이루고 있다. 즉, 암호화폐와 독립적으로 다양한 블록체인이 개발되고 있다. 증권 거래, 송금, 상품 거래소 등에 적용된 블록체인은 대표적인 비공개형 블록체인 기반 서비스다. 영국, 필리핀, 중국 등은 국가 암호화폐를 비공개형 블록체인으로 개발할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한정된 사용자들만을 위해 운영되는 비공개형 블록체인은 어디까지나 폐쇄적인 서비스를 지향한다. 인터넷에 연결된 모두를 위한 개방된 블록체인 서비스를 원한다면 공개형 블록체인이 답이지만, 아직까지는 암호화폐 이외에 제대로 된 적용 사례를 찾지 못하고 있다.

 

처음 블록체인이 등장할 때 내세웠던 ‘탈중앙화’와 같은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정부나 기업 주도의 폐쇄적인 서비스를 위한 기술로 블록체인을 제한하지 않아야 한다. 이를 위해 공개형 블록체인의 동작과 안전성이 만들어내는 블록체인 경제 생태계와 암호화폐를 통한 보상 제도에 대한 고찰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비트코인 개발자가 우리에게 선사한 것은 암호화폐만은 아닐 것이다. 그가 우리에게 보여준 것은 사용자들의 자발적 참여를 보상 제도로 이끌어내고, 그 결과로 동작과 안전성을 확보하게 되는 선순환적인 글로벌 경제 생태계 플랫폼으로서의 블록체인일 것이다.

 

 

이종혁
상명대 소프트웨어학과에서 교수로 근무하고 있다. 2009~2013년 프랑스 국립정보자동화연구소(INRIA)연구원, 프랑스 그랑제꼴 브르타뉴텔러콤대 교수로 근무했다. 인터넷표준문서 두 편의 저자이기도 한 그는 2017년 11월 대한민국 인물대상(학술 소프트웨어분야), 2017년 12월 해동신진학술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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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03월 과학동아 정보

  • 이종혁 상명대 소프트웨어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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