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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ulture] 우리 개가 자꾸 똥을 먹어요

* 편집자주 - 수의사로 일하다 보면 반려동물에 대한 걱정거리를 안고 오는 사람들을 매일 만나게 됩니다. 아주 사소한 걱정거리부터 때로는 심각한 문제까지, 정말 다양한 사연들이 있습니다. 그 중 많은 반려인이 고민하는 질문을 꼽아 이번 호부터 하나씩 여러분에게 소개하려고 합니다.

 

 

조금 부끄러운 내용인데요. 우리 강아지가 자꾸 똥을 먹습니다. 인터넷에 찾아보니 영양결핍이라고 해서 좋다는 영양제는 이것 저것 다 먹여봤는데, 아무런 소용이 없습니다. 똥을 먹는 걸 발견하고 혼을 냈더니, 구석에서 몰래 똥을 싸고는 얼른 먹어 치워버려요. 그리고는 저한테 와서 뽀뽀를 하는데, 아무리 예쁜 아이라지만 솔직히 뽀뽀하기가 어렵습니다. 강아지 입만 봐도 똥이 떠올라서 괴로워요. 애니멀 커뮤니케이터의 도움을 받아보려고 했지만, 똥이 너무 맛있어서 끊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는 답만 들었습니다. 도대체 왜 이러는 걸까요?

 

똥을 먹는 동물의 행동을 ‘식분증(coprophagia)’이라고 부릅니다. 강아지가 똥을 먹는 건 아주 흔하게 볼 수 있는 모습이죠. 개들은 자기가 싼 똥도 먹지만 다른 개가 싼 똥을 먹기도 하고, 다른 동물의 똥을 먹기도 합니다. 특히, 말이나 고양이가 싼 똥을 선호합니다.

 

 

‘청소부 동물’로 진화해 똥 먹기 시작
개가 이런 행동을 하는 이유는 개의 진화 과정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개들은 이 세상에 태어나자마자 똥을 먹는 개를 만납니다. 바로 엄마 개입니다. 강아지가 태어나면 엄마 개는 강아지의 생식기와 항문을 핥아서, 항문생식반사(anogenital re ex)를 유발해 강아지가 배변하게 하고 그 배설물을 엄마가 핥아 먹습니다. 이것도 식분증의 일종이지만 지극히 정상적인 행동 입니다.

 

개가 이렇게 ‘더러운’ 행동을 하는 이유는 역설적이게도 새끼 강아지가 배변을 가릴 때까지 주변 환경을 깨끗하게 유지하기 위해서입니다. 하지만 새끼 강아지가 배변을 가리게 된 이후 성견이 돼서까지 엄마 개가 계속해서 똥을 먹는 행동을 보이기도 합니다.

 

엄마 개의 이런 행동은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요? 2017년 8월,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개의 기원과 진화에 대한 연구를 쏟아내던 저명한 학자인 레이먼드 코핑거 박사는 그 이유를 개의 진화과정에서 찾았습니다.

 

코핑거 박사는 개가 지금처럼 사람 손에 키워지게 된 것은 과거에 사냥하던 인류가 늑대의 새끼를 데려와 키우며 가축화된 것이라, 야생 개들이 인간이 사는 곳 주변에서 살면서 점점 인간이 만들어내는 쓰레기를 먹으며 인간에게 의존하기 때문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청소부 동물(scavenger)’로 진화했다는 것이죠.

 

청소부 동물이 된 개는 모든 쓰레기, 즉 길가에 버려진 자신의 똥까지도 먹게 된 겁니다. 현재 많은 연구자들이 이 가설을 지지하고 있습니다. 이 가설에 따르면 개가 배설물을 먹는 건 정상적인 행동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실제 2012년 미국수의행동의학회 심포지엄에서 미국 캘리포니아 데이비스대(UC데이비스) 수의대 동물행동의학과 명예교수인 벤저민 하트 박사의 발표에 따르면, 1548마리의 건강한 개 중 16%가 심각한 식분증을 보였습니다. 이 자료를 토대로 하트 박사는 “건강한 개가 보이는 식분증은 정상행동”이라고 주장했습니다.

 

 

똥이 맛있어서 먹는다?
하지만 하트 박사가 주장한 사실에는 중요한 전제가 있습니다. ‘건강한 개’가 보이는 식분증이라는 점입니다. 간혹 몸에 이상이 있어 식분증을 보이는 개들도 있기 때문입니다. 식욕을 증가시키는 내분비계 질환이나 내부기생충 감염증, 영양흡수 장애, 췌장효소결핍증, 비타민·미네랄 결핍증이 있는 경우에 식분증을 보일 수 있습니다. 또는 나이가 들어 치매가 걸리게 된 경우에도 식분증을 보일 수 있습니다.

 

아주 직관적인 이유로 똥을 먹는 개들도 있습니다. 똥이 ‘맛있어서’입니다. 간혹 사료가 잘 소화가 되지 않을 경우 똥에서 소화가 덜 된 사료의 맛과 냄새가 날 수 있습니다. 전체 영양소 중 개가 필요한 최소 단백질 요구량은 새끼 강아지에서는 22.5%, 성견에서는 18%입니다. 보통 고단백 사료가 좋다고 알려져 있지만, 너무 단백질 함유량이 많은 사료는 신장에 무리가 되고 소화가 덜 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똥에서 단백질의 맛과 냄새가 나게 되는 것이죠.

 

이는 개가 고양이의 똥을 선호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개와 고양이가 함께 사는 경우, 개가 고양이 화장실에 몰래 숨어 들어서 고양이 똥을 훔쳐먹는 모습을 종종 볼 수 있는데요. 고양이 모래까지 붙어있어 과자를 씹듯이 오도독오도독 맛있게 먹습니다. 고양이 사료는 일반적으로 개의 사료보다 단백질 함량이 높습니다. 그래서 고양이 똥에는 개들이 좋아하는 단백질 맛, 즉 고기 맛이 많이 납니다. 그래서 개들이 자신의 똥보다 고양이 똥을 더 맛있게 먹는 것입니다.

 

간혹 반려인에게 관심을 끌기 위해서 혹은 혼나지 않기 위해서 똥을 먹는 경우도 있습니다. 하루 종일 케이지 안에 갇혀있는 개들에게는 매일 새롭게 만들어지는 물건은 똥뿐입니다. 똥을 가지고 놀고, 먹고 하는 것이 일종의 놀이행동인 셈입니다. 더구나 똥을 먹으면 누군가 관심을 가지고 다가오니 개의 입장에서는 심심함을 탈피할 수 있는 아주 좋은 방법입니다.

 

 

배변훈련이 잘 안 된 개들이 집안 여기저기에 똥을 싸놨다가 혼이 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를 발견한 반려인은 개를 사건 현장으로 데려가 “누가 이랬어? 화장실에 싸야지!”라고 혼을 내곤 합니다. 그럼 개들은 바닥에 똥이 있으면 엄마가 화난다고 인식하게 됩니다. 그래서 바닥에 똥을 싸놓고 나서 혼나지 않기 위해 스스로 먹어버리는 것이죠.

 

건강한 개가 보이는 식분증이라면 문제행동이 아닌 정상적인 행동입니다. 하지만 반려인의 입장에서는 큰 골칫거리죠. 그렇다면 개의 이런 행동을 참고 견디는 게 좋은 방법일까요?

 

우리 개가 어떤 이유로 똥을 먹는지를 우선 이해해야 합니다. 질병에 의한 것인지, 사료가 잘 맞지 않는 것인지, 지루한 것인지 등 원인을 알아야 정확한 치료를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만약 개가 마냥 지루해 한다면 충분한 두뇌 운동과 신체 운동을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줘야 합니다. 만약 혼이 나서 식분증을 보이는 개라면 배변을 하고 똥이 그대로 있는 상태에서 칭찬과 간식을 주는 등 역조건화를 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개가 스트레스를 받지 않도록 하면서 식분증을 고쳐주는 방법을 찾는 것이 가장 좋습니다.

 

 

김선아_viaabc@daum.net
충남대에서 수의학을 전공하고 수의사가 된 뒤, 서울대에서 동물행동의학 및 야생동물의학 전공으로 석사학위를 받고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국내 최초로 동물의 정신과 진료를 전문으로하는 비아동물행동클리닉을 운영했고, 해마루케어센터 센터장으로 동물정신과와 호스피스 진료를 했다. 현재는 미국 데이비스 캘리포니아대(UC데이비스)에서 동물행동의학과 전문의 과정을 밟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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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01월 과학동아 정보

  • 김선아 수의사(미국 UC데이비스 수의과대 동물행동의학과 전문의과정)
  • 에디터

    최지원
  • 기타

    [일러스트] 정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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