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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나미도 잠재운 산호초의 힘

해양생물 다양성 유지에도 한몫

작년 크리스마스 다음날 인도네시아 수마트라 섬 인근 해저에서 발생한 지진으로 거대한 쓰나미(지진해일)가 남아시아와 동아프리카 해안지방을 휩쓸어 28만명이 넘는 사람들이 사망했다. 인도네시아뿐만 아니라 인도양에 인접한 말레이시아, 태국, 인도, 스리랑카, 소말리아 등도 큰 피해를 입었다. 이런 와중에도 산호초가 잘 보존된 몰디브는 피해가 적었다. 산호초가 쓰나미의 위력을 약화시켰기 때문이다.

산호초는 산호 군체의 골격으로 형성된 암초 또는 섬이다. 아름다운 수중 비경을 간직한 산호초는 스쿠버 다이버들에게 인기가 높지만, 세인들의 관심을 많이 받지는 못했다. 그러나 이번 자연재해로 산호초의 역할과 가치가 크게 부각됐다. 산호초를 만드는 산호란 어떤 생물인가.

산호는 말미잘과 친척

산호를 처음 보는 사람들은 흔히 식물이라고 생각한다. 겉모습이 나뭇가지나 꽃처럼 보이는데다가 바닥에 붙어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산호는 엄연한 동물이다. 산호는 말미잘, 히드라, 해파리와 친척 사이로, 모두 자포동물에 속한다. 이들 자포동물은 몸 가운데 입과 항문 역할을 같이하는 구멍이 있으며, 그 주변에 꽃잎처럼 촉수가 빙 둘러 나있고, 촉수 끝에는 ‘자포’(刺胞)라는 독이 있는 쏘기 세포를 가지고 있다. 자포는 먹이를 잡거나 자신을 방어할 때 쓰인다.

산호는 밤에 은밀하게 산란한다. 대낮에는 산호초 주변에 사는 물고기가 알을 잡아먹기 때문이다. 흔히 보름달이 며칠 지난 밤이 디데이가 된다. 주변에 있는 산호들이 일제히 알과 정자를 방출할 때면 장관이 펼쳐진다. 작은 공처럼 생긴 알은 마치 행사장에서 풍선을 날리듯 떠오른다. 이처럼 주변의 모든 산호들이 같은 시간에 산란과 방정을 하면 알이 수정될 확률이 높아지고, 다른 동물들에게 먹힐 확률이 줄어드는 장점이 있다.

산호는 대부분 암컷과 수컷의 생식기관을 모두 갖고 있는 암수한몸이라 알과 정자를 모두 만든다. 그렇지만 자가 수정은 일어나지 않고, 물속에서 각기 다른 개체의 알과 정자사이에 수정이 이뤄진다. 수정된 알은 부화해 ‘플라눌라’라는 유생으로 플랑크톤 생활을 하다가 단단한 바위나 산호초 등 적당한 곳이 있으면 부착해 폴립으로 자란다. 그러나 산호는 유성생식만 하는 것은 아니고, 몸에서 새로운 폴립을 만들어 번식하는 ‘출아법’이라 불리는 무성생식을 하기도 한다.

호주 대보초는 달에서도 보여

산호 종류에는 산호초를 만드는 돌산호와 산호초를 만들지 않는 연산호가 있다. 돌산호의 석회질 골격은 돌덩어리처럼 보이지만 자세히 보면 아주 작은 구멍들이 뚫려있고, 그 속에 말미잘처럼 생긴 폴립이 들어있다. 이 폴립이 한 개체의 산호이며, 탄산칼슘을 분비해 산호초를 만든다. 말미잘이나 해파리와 달리 대부분 산호들은 수많은 폴립이 모여 군체를 이룬다. 산호초는 종에 따라 모양이 아주 다양하다. 사슴뿔이나 나뭇가지처럼, 버섯이나 탁자처럼, 뇌나 공처럼, 또는 부채처럼 자라는 산호들이 있다. 세계적으로 산호초를 만드는 산호는 약 500종이 알려져 있다.

진화론의 창시자 찰스 다윈은 1842년 산호초를 거초, 보초, 환초로 분류했는데, 아직도 이 분류법이 쓰이고 있다. 거초( 礁)는 가장자리에 만들어진 암초라는 뜻으로, 섬이나 대륙 주변의 수심이 얕은 해안에 발달한 산호초로 하와이에서 흔히 볼 수 있다. 거초가 크게 자라 육지 사이에 초호(lagoon)가 생기면 보초가 된다. 보초(堡礁)는 둑이나 제방 역할을 하는 암초라는 뜻으로, 호주의 동북부 해안을 따라 최대 폭 145㎞, 길이 2000㎞가 넘게 발달한 대보초(Great Barrier Reef)가 유명하다. 대보초는 생물이 만들어놓은 가장 큰 구조물로 달에서도 보인다고 한다.

환초(環礁)는 고리 모양의 산호초다. 남태평양 대부분 섬은 환초다. 환초는 어떻게 만들어질까? 화산이 폭발해 해수면 위로 섬이 솟으면, 시간이 흐르면서 섬 가장자리에 산호초가 만들어진다. 이렇게 만들어진 거초는 점점 자라면서 보초로 바뀌어간다. 오랜 시간이 흘러 화산이 물속에 잠기면, 섬이 있던 자리 주변에 환초만 남는다.

산호초를 만드는 산호는 수온이 18℃보다 낮으면 살 수 없고, 보통 23~29℃ 수온을 좋아한다. 그렇기 때문에 수온이 높은 열대해역에서만 볼 수 있다. 갈라파고스제도는 적도에 가깝지만, 남쪽에서 찬 해류가 올라오기 때문에 산호초가 없다. 반대로 버뮤다제도는 위도가 높지만 따뜻한 멕시코만류가 지나므로 산호초가 발달했다. 또 산호초는 염분이 32~42‰(퍼밀, 1‰=1000분의 1) 정도로 높은 곳에서 만들어진다. 따라서 엄청난 양의 강물이 바다로 흘러드는 브라질의 아마존 강 하구 부근은 열대지방이라도 산호초를 볼 수 없다.

산호초는 바닷물이 맑고 햇빛이 잘 드는 얕은 바다에서 볼 수 있다. 산호와 서로 도움을 주고받으며 사는 충조류(zooxanthellae) 때문이다. 충조류는 단세포 조류(藻類)의 일종으로 다른 식물처럼 광합성을 하며, 영양물질과 산소를 만들어 산호에게 제공한다. 한편 충조류는 성장에 필요한 이산화탄소와 영양염류, 그리고 안전한 서식처를 산호로부터 얻을 수 있다.

이런 공생관계를 통해, 햇빛이 잘 드는 곳에 사는 산호는 수심 깊은 곳에 사는 산호보다 세배나 빨리 자랄 수 있다. 충조류는 크기가 고작 0.01mm 정도밖에 안되지만 산호의 몸속 1cm³ 당 수백만 개체가 들어있다. 산호가 화려한 색깔을 띠는 것도 충조류가 가지고 있는 색소 때문이다.

비행기에서 내려다보는 열대바다는 산호초마저 없었더라면 삭막했을 것이다. 그러나 군데군데 옥색 보석처럼 박혀있는 산호초가 시선을 끈다. 산호초의 수중경치는 하늘에서 내려다보는 경치에 비할 바가 아니다. 산호초에서 다이빙을 하면 알록달록한 물고기들이 난무하는 황홀한 비경에 매료되고 만다. 산호초는 지구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경관을 가진 곳이다. 그래서 열대 개발도상 국가들은 산호초 관광으로 많은 경제적 이익을 얻고 있다.


뇌의 주름과 너무나 비슷한 뇌산호.


산호초는 물고기 아파트

산호초는 단지 보기에 좋은 것 이상의 중요성이 있다. 만약 산호초가 없었다면, 열대바다 생물의 다양성은 현재 수준에 훨씬 못 미쳤을 것이다. 탁 트인 바다에는 생물들이 숨을 만한 곳이 많지 않다. 그러나 나뭇가지처럼 복잡하게 얽혀있는 산호초에는 물고기를 비롯한 해양생물들이 포식자를 피해 숨을 만한 곳이 많다. 산호초 구석구석 빈틈이 모두 물고기 아파트인 셈이다.

그래서 산호초의 생물다양성은 육지에서 가장 다양성이 높은 열대우림을 능가한다. 예를 들어 호주의 대보초에는 350종이 넘는 산호, 4000종의 연체동물, 1500백종의 물고기, 240종의 바닷새들이 살고 있다. 전 세계 산호초에는 말미잘, 해면, 이끼벌레, 대왕조개, 군소, 갯지렁이, 게, 바다가재, 불가사리, 해삼, 성게, 물고기를 비롯해 4만~6만 종의 해양생물들이 살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아직까지 밝혀지지 않은 산호초 생물은 이보다 훨씬 더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산호초는 면적으로는 전체 바다의 1%도 채 안되지만, 해양생물 종의 25%가 서식하고 있는 훌륭한 자연사박물관이다. 또 세계 어획량의 10%정도가 잡히는 황금어장이다.

산호초는 해저지진이나 태풍으로 생긴 엄청난 파도나 강한 해류로부터 육지를 보호해 준다. 만약 산호초 대신 인공적으로 방파제를 세운다면, 1㎞ 당 100억 원 이상의 공사비가 들 것이라 한다. 한편 산호는 대기 중의 이산화탄소 농도를 낮춰 지구온난화를 경감시키는 데도 일조를 한다. 대기 중의 이산화탄소는 바닷물에 녹아 들어가고, 산호는 바닷물에 녹아있는 칼슘과 이산화탄소를 갖고 탄산칼슘 성분의 석회질 골격을 만들기 때문이다. 산호는 이처럼 자연재해 방어벽이나 지구환경문제 해결사의 역할을 한다.

최근에는 산호에서 유용물질을 추출해 항암제, 항생제, 소염제 등 의약품으로 개발하려는 연구가 활발하며, 탄산칼슘으로 된 산호의 골격은 사람의 인공뼈로도 이용되고 있다. 산호초에 사는 생물들은 천적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다양한 화학물질을 갖고 있어, 이를 폭넓게 활용할 수 있다. 예를 들어 고둥으로부터 진통제를, 해면으로부터 에이즈 치료제를 얻을 수 있으며, 다양한 생물로부터 살충제, 영양제, 화장품 등을 만들 수 있다. 산호초는 금세기의 약품 창고이자, 단단한 뿔산호나 흑산호는 보석으로 이용되니 보물창고이기도 하다.
 

산호초에 사는 가장 위험한 물고기인 덴드로키루스 비오셀라투스(Dendrochirus biocellatus). 쏨뱅이의 일종으로 날개 같은 지느러미 아래 치명적인 독침을 숨기고 있다.


산호초 훼손 심각

산호는 이렇듯 우리 생활에 다양한 혜택을 준다. 그렇지만 산호초 생태계는 훼손되기 쉽다. 산호초가 있는 109개국 가운데 93개 나라에서는 이미 산호초가 인간 활동에 의해 훼손된 상태다. 이와 같은 추세로 간다면 향후 수십 년 내에 절반 이상의 산호초가 파괴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산호초는 연안개발에 따른 토사나 오염물질 유입, 폭발물을 사용한 어로활동, 무분별한 관광, 지구온난화에 다른 수온 상승, 왕관가시불가사리 등 천적생물의 증가 등으로 인해 큰 피해를 입고 있다. 급속히 훼손되는 산호초를 보호하기 위해 1995년에는 국제산호초회의가 열려 산호초 생태계의 중요성과 훼손 원인을 파악하고, 보호활동을 활발히 하고 있다.

우리나라 연안해역에서 연산호는 볼 수 있으나, 아쉽게도 산호초를 만드는 돌산호는 볼 수 없다. 그러나 한국해양연구원은 산호초의 천국 마이크로네시아공화국에 ‘한·남태평양 해양연구센터’를 설치해 산호초에 살고 있는 해양생물의 다양성과 생태를 조사하고, 이들로부터 신물질을 추출해 이용하려는 연구를 하고 있다. 한편 흑진주 생산, 어류 양식, 관상어 개발, 해양에너지 자원 개발, 해저지형도 작성 등을 위한 연구도 아울러 하고 있다. 산호는 무한한 효용가치를 갖고 있으므로, 앞으로 자연재해 또는 병마로부터 우리의 생명을 지켜줄 수도 있다.
 

한국해양연구원이 마이크로네시아에 세운 한·남태평양 해양연구센터 전경. 산호초의 생태계를 연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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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04월 과학동아 정보

  • 김웅서 책임연구원
  • 사진

    박흥식 선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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