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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아몬드 손’ 가진 과학자 최희욱 교수

시각단백질 옵신 구조 밝혀 ‘네이처’에 연거푸 실려

‘네이처’ 7월 10일자에 옵신 구조 규명. ‘네이처’ 9월 25일자에 옵신 복합체 구조 규명.
세계 톱 저널에 두 달 간격으로 연거푸 논문을 실어 화제가 된 전북대 화학과 최희욱 교수. 그런데 논문을 보면 뭔가가 이상하다. 논문 저자 대부분은 독일 베를린 훔볼트의대 소속이고 최 교수만이 전북대 소속이다. 그럼에도 최 교수는 논문에 책임을 지는 위치인 교신 저자의 한 사람이다. 뭔가 사연이 있겠다 싶은 생각에 기자는 전북대를 찾아 전주행 기차에 올랐다.




독일에 진출한 간호사와 결혼
“천천히 커피 한 잔 하면서 얘기합시다. 커피는 몇 스푼이나…?”
오래된 건물인 자연과학대1호관 4층에 있는 최 교수의 연구실에 들어서자 반백(半白)에 단구(短軀)인 최 교수가 반갑게 맞으며 손수 커피를 타줬다. 다소 냉철한 연구자의 모습을 상상했던 기자는 동네 아저씨 같은 수수한 모습에 적잖이 당황했다.

“이번 논문은 14년에 걸친 연구의 결과입니다. 1994년 처음 시각에 관여하는 단백질의 구조를 밝히는 연구를 시작했으니까요.” 논문 저자들의 구성이 좀 이상하다는 기자의 질문에 고개를 끄덕이는 최 교수는 30년을 거슬러 결코 평범하지 않은 자신의 삶을 담담히 풀어놓았다.

1948년생으로 올해 환갑을 맞은 최 교수는 30세이던 1978년 인생의 전환점을 맞았다. 당시 전북대 화학과 석사 졸업학기였던 그에게 은사 한 분이 조카를 소개해줬던 것. 1972년부터 독일에서 간호사로 일하던 여성이었는데 부친 회갑을 맞아 귀국한 김에 최 교수와 선을 봤다. 첫 만남에 ‘필’이 꽂힌 두 사람은 한 달 만에 결혼을 했다. 하지만 신부는 다시 독일로 떠났다.

최 교수는 독일어를 공부해 1980년 아내가 있는 베를린의 베를린자유대로 유학을 떠났다. “아직 독일어가 서툴러 준학생 신분이었습니다. 실험실마다 한두 달씩 머물며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찾았습니다. 그러다 마침내 단백질 결정학을 만나게 됐죠.” 생명체에는 수만 가지 단백질이 있는데 그 기능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구조를 알아야 한다. 단백질 분자가 규칙적으로 배열된 결정을 만들어 X선을 쪼여 나타나는 회절패턴을 분석하면 단백질을 이루는 원소 수만 개의 공간좌표를 구할 수 있다. 단백질의 3차원 구조가 밝혀지는 것이다.

“단백질 결정에서 분자의 입체구조를 알아낼 수 있다는 게 너무나 멋져보였습니다. 뒤에 저의 석·박사 지도교수가 된 볼프람 쟁어 교수의 실험실이었는데 쟁어 교수는 이 분야의 거장이죠.” 1982년 자진해서 석사과정부터 다시 시작한 최 교수는 루비스코(RuBisCO)라는 식물 단백질의 결정을 만드는 연구를 시작했다. 1984년 박사과정에 들어가서는 RNA의 특정 부분을 자르는 RNase T1이라는 효소의 유전자를 화학적으로 합성해 대장균에서 발현시키는 연구에 뛰어들었다.

“한 2년 열심히 실험하고 있는데 일본 연구진이 같은 주제의 연구결과를 실은 논문을 냈습니다. 결국 석사 때 결정을 만들어놨던 루비스코로 돌아와 그 구조를 분석하는 연구로 박사논문을 썼습니다.” 이때 짬을 내서 FIS 단백질이라는 DNA에 결합하는 단백질의 결정도 만들었다. 1989년 41살 나이에 박사학위를 받은 그는 이듬해 전북대 화학과에 전임강사로 부임했다.

1990년 귀국할 때 부인과 자녀들은 독일에 남았다. 대신 여름방학, 겨울방학 때 최 교수가 독일로 날아가 2달씩 가족과 함께 했다. 이때마다 쟁어 교수 실험실에 머물며 FIS 단백질 구조연구를 계속했다. 1992년 FIS 단백질의 구조를 밝힌 연구결과가 ‘네이처’에 실렸다.

“전북대에서도 실험실을 꾸몄지만 제대로 된 실험을 하기가 어려웠습니다. 1994년 안식년을 기회삼아 새로운 연구주제를 찾아 독일로 떠났습니다.” 안식년에 1년 휴직을 더해 2년 동안 최 교수는 독일 율리히중앙연구소 게오르크 뷜트 교수팀에서 방문교수로 지냈다. 이곳에서 어레스틴(arrestin)이라는 단백질의 결정을 만들고 구조를 밝히는 연구를 수행했다. 어레스틴은 빛을 감지하는 단백질인 로돕신에 결합해 빛의 신호 전달을 차단하는 단백질이다.

“이때부터 시각신호전달에 관여하는 단백질들을 연구하기 시작했습니다. 커다란 소의 눈알에서 망막을 떼어내 시각세포를 분리하고 단백질을 추출해 결정을 만드는 쉽지 않은 작업이었죠.”
결정을 만들고 기초적인 분석을 마친 뒤 최 교수는 귀국했고 연구소의 동료들이 작업을 마무리해 논문을 1998년 ‘네이처’에 실었다.

“다음 단계로 시각신호전달의 출발점이자 핵심인 빛수용체 로돕신(rhodopsin)의 구조를 연구해보기로 했습니다. 세포막에 박혀 있는 단백질이기 때문에 당시까지 결정을 만들기는 불가능하다고 알려져 있었죠.” 역시 예상대로 결정이 잘 만들어지지 않았다. 1년에 4개월만 실험을 할 수 있는 상황(방학 때 독일에서)이 답답했다. “물론 우리나라에서도 실험을 하려고 했죠. 그런데 소 눈을 사려고 도축장에 갔더니 눈만은 따로 팔지 않고 소머리를 통째로 사야한다더군요.” 결정을 만들기 위해서는 로돕신 단백질이 많이 필요하기 때문에 이렇게 해서는 비용을 감당할 수 없다. 결국 최 교수는 2000년 다시 휴직을 신청하고 독일로 향했다. 아무리 연구도 중요하지만 대학 교수로서 다소 무책임한 모습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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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대에도 직접 실험해
“그런 측면이 있다는 건 인정합니다. 하지만 국내에서는 이처럼 오랜 시간이 걸리는데다 실패할 위험성이 큰 연구는 하기 어려운 게 현실입니다.” 최 교수가 국내에서 연구비 신청을 잘 하지 않는 이유도 성과가 바로 나오는 연구를 해야만 하기 때문. 이런 방향으로 주제를 찾다보면 결국 남이 해놓은 일을 조금 개선하는 연구가 고작이다.

이번엔 독일 베를린 훔볼트대의대에서 머물기로 했는데 대학원생을 데리고 갔다. 지금까지 최 교수의 실험실에서 석사과정을 보낸 학생이 8명이었는데 이 가운데 4명이 이런 식으로 자연스럽게 독일로 유학을 떠났다. 낯선 외국에서 유학생활을 시작할 때 고국의 지도교수가 옆에 있으니 학생들로서는 행운인 셈이다.

“그런데 2000년 미국의 연구진이 로돕신의 구조를 밝힌 논문을 발표했습니다. 다들 감탄하며 실험을 재현해봤지만 되지 않더군요.” 당시 박사 후 과정으로 미국에서 일하던 일본인 오까다 박사가 이 실험을 주도했는데 논문에는 결정성장의 비밀을 정확하게 쓰지 않았던 것. 최 교수는 실패를 거듭하면서도 로돕신 결정을 만드는 연구를 계속했다. 남이 이미 해놓은 일에 왜 이렇게 매달렸을까?

“오까다 박사가 밝힌 로돕신 구조는 빛이 없을 때 시각세포 막에 있는 ‘비활성’ 상태입니다. 이때 로돕신은 옵신(opsin) 단백질 속에 시스-레티날(11-cis-retinal)이라는 분자가 들어있는 구조죠.” 그런데 여기에 빛이 닿으면 시스-레티날이 트랜스-레티날(all-trans-retinal)로 구조가 바뀌면서 빠져나가 옵신 구조가 ‘활성’ 상태가 돼 빛의 신호가 신경으로 전달되는 시발점이 된다. 옵신의 빈자리에 다시 시스-레티날이 들어와 ‘비활성’ 상태의 로돕신으로 바뀌어 다음 빛 신호를 기다린다. 최 교수팀은 활성 상태의 옵신 구조를 밝히는 일을 최종 목표로 삼았다.

“레티날이 빠져나간 옵신은 구조가 불안정해져 결정이 만들어지지 않는다고 생각했죠. 오까다 박사팀도 실패했으니까요.” 2004년 다시 안식년을 맞은 최 교수는 독일로 날아가 옵신 결정을 만드는데 심혈을 기울였다. 결정을 만드는 그의 능력은 쟁어 교수조차 “당신은 다이아몬드 손을 가졌구만!”이라고 감탄할 정도다. “사실 결정은 손이 아니라 눈으로 만듭니다. 단백질이 녹아있는 용액을 적당한 조건에 두면 결정이 자라는데 그 조건을 찾을 때 눈썰미가 필요하죠.” 즉 단백질이 엉켜 결정이 아니라 침전이 생기는 상태를 적절히 변형하면서 규칙적으로 쌓이게 하는 조건을 찾아야 한다.

“마침내 옵신 결정을 만드는데 성공해 구조를 분석한 결과 기존의 비활성상태인 로돕신과 상당히 다르다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활성상태가 돼도 구조에 큰 변화는 없을 거라던 관련 연구자들의 예상이 틀린 것이죠.” 그 뒤 최 교수팀은 빛의 자극이 신경신호로 전달되는 과정에 관여하는 G단백질의 G알파 단위체의 조각이 옵신에 결합된 상태의 결정도 만드는데 성공했다(9월 25일자 논문). 옵신에 G알파 단위체가 붙은 활성 상태인 옵신의 구조는 단위체가 결합하지 않은 옵신 구조(7월 10일자 논문)와 거의 같았다.

최 교수는 1992년 1편, 1998년 1편, 2008년 2편 이렇게 논문 4편을 ‘네이처’에 실었다. “논문수도 중요하지만 어려운 주제를 잡아 평생 매달리는 일도 멋지다고 생각합니다. 안타깝게도 우리나라에서는 이런 식의 연구를 하기 어렵죠.” 연구비를 받으면 어떻게 해서라도 여러 편의 논문을 내야 성과로 인정받는 우리나라 풍토에 안주했다면 이처럼 획기적인 결과를 내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교수들이 좋아하는 일을 할 수 있게 조건 없이 최소한의 연구비를 주는 시스템이 있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면 지금처럼 진짜 의미 있는 일은 해보지도 못한 채 연구자로서의 삶을 보내는 모습이 줄어들지 않을까요.”
머리가 허옇게 샌 초로(初老)인 최 교수의 안경너머 보이는 눈빛은 어느 젊은이의 눈빛 못지않은 생동감으로 반짝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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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12월 과학동아 정보

  • 전주=강석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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