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8년 첫 모듈을 쏘아 올린 국제우주정거장(ISS)이 지금의 모습을 갖춘 건 2010년이었다. 2005년 완공하겠다던 계획은 2003년 우주왕복선 ‘컬럼비아’의 폭발 사고와 2008년 금융 위기 등으로 계속 미뤄졌다.
당초 ISS의 설계수명은 2020년이었다. 완공 10년 만에 미국과 러시아의 공동 작업을 통해 점진적으로 폐기하는 것이 ISS의 정해진 미래였다.
하지만 2015년 미국항공우주국(NASA)과 러시아연방우주청(ROSCOSMOS)은 ISS의 공동 운영을 2024년까지 연장하겠다는 협정에 서명했다. 지금은 기한을 더 늘려 2028년까지 운영을 연장할지 검토 중이다.
수명을 다한 ISS는 어떻게 될까. ISS 폐기 이후의 우주 개발은 어떤 양상으로 전개될까.
ISS 폐기 수순 어떻게 되나
ISS 운영이 끝난 뒤 폐기 처분 방식도 문제다. 2001년 러시아 우주정거장 ‘미르’ 퇴역 당시 러시아는 미르를 해체하지 않고 그대로 지구 대기권으로 추락하면서 마찰로 타게 만들어 소멸시켰다. 하지만 ISS는 길이 73m, 폭 109m, 무게 420t에 이르는 거대한 건축물이다.
미르의 10배쯤 된다. 또 ISS의 궤도가 지구상에서 인구 밀접지역 상공을 지나고 있어 추락은 곧 재난이 될 수 있다. 역사상 가장 큰 우주 비행체가 역사상 가장 큰 우주 쓰레기로 전락할 수 있다(아래 사진).
그렇다면 ISS를 조각조각 분해해 지구로 회수하면 어떨까. 현재까지 인류가 수명이 다한 인공위성이나 우주망원경 등 우주 물체를 우주 공간에서 해체해본 경험은 없다. 일부 수명이 다한 소형 인공위성을 우주왕복선이 가서 지구로 회수해본 것이 전부다.
위험을 무릅쓰고 우주인이 ISS 바깥에서 유영하며 모듈을 해체한다고 하더라도 회수 가능성은 매우 낮다. ISS를 분해한 부품은 우주왕복선으로 27회나 왕복해야 가져올 수 있는 양이다. 한 번 우주선 발사에 200억~300억 원의 비용이 든다는 점을 고려하면 경제적으로나 시간적으로나 불가능한 시나리오다. 무엇보다 현재 가용중인 우주왕복선도 없다.
김해동 한국항공우주연구원 IT융합기술팀장은 “ISS가 고장 나기 전에 지구 대기권으로 본격 진입하는 시점과 장소를 미리 설계해, 소각되지 않고 남아서 지상으로 떨어지는 파편을 바다나 사막 지대로 유도하는 방법이 현실적”이라고 말했다.
ISS를 지구로 복귀시키지 않고 재활용할 가능성도 있다. 가장 간단한 방식은 ISS를 민간에 판매하는 시나리오다. 이미 미국의 항공우주기업 스페이스X를 비롯한 민간 우주기업들은 상업용 우주선을 개발해 ISS에 다녀왔다. 개인 우주관광 상품이 나왔을 때 ISS가 역사의 향수를 품은 우주 호텔로 대변신할 수도 있다.
한편 러시아연방우주청은 러시아가 발사한 ISS의 일부 모듈을 재활용해 ‘미니’우주정거장 ‘옵섹(OPSEK)’을 만들겠다는 구상도 하고 있다. 새로운 모듈을 발사하고 기존 모듈과 조합해 ISS 4분의 1 크기의 유인 우주정거장을 만들겠다는 시나리오다.
ISS의 운영이 종료되면 2022년 중국이 운영 예정인 ‘중국우주정거장(Chinese Space Station)’이 지구 저궤도에서는 유일한 정거장이 된다. 민간 우주개발업체들이 여기에 동참할 것으로 보인다. 미국의 우주개발 스타트업 비글로 에어로스페이스는 2020년 지구 궤도에 ‘B330’이라는 우주정거장 두 대를 띄울 계획이다. B330은 공기를 넣어 풍선처럼 부풀리는 형태로 우주인 6명이 머물 수 있다. 2017년 4월 비글로 에어로스페이스는 ‘비글로의 확장 가능한 활동 모듈(BEAM)’을 ISS에 도킹해 사람이 거주할 수 있는 환경을 구축할 수 있음을 확인했다.
이주희 한국항공우주연구원 책임연구원은 “NASA는 포스트 ISS 시대의 정거장으로 민간 우주정거장과 달 궤도 우주정거장을 고려하고 있다”며 “2024년 이후 ISS의 운영을 민간에 넘기고, NASA는 2030년대 유인 화성 탐사를 대비하기 위해 달 궤도 우주정거장을 건설한다는 시나리오도 있다”고 말했다.
‘라그랑주 점’에 우주정거장을
차기 우주정거장 건설을 위한 요지로 여겨지는 곳은 지구 저궤도 우주 공간이 아니라 달이다. 화성 등 심(深)우주 탐사를 위한 전초기지로 사용하기 위해서다. 이런 의미에서 달 궤도 우주정거장은 ‘심우주 게이트웨이(Deep Space Gateway)’로도 불린다.
미국은 2020년까지 달 궤도 상에 있는 ‘라그랑주 점(Lagrange Point)’에 우주정거장을 건설하겠다고 밝혔다. 라그랑주 점은 달과 지구의 중력이 균형을 이뤄 중력의 합이 0이 되는 지점이다. 이 지점에 우주정거장을 건설할 경우 어느 쪽으로도 당겨지지 않고 고정된다. 정지된 상태로 한 위치에 머물 수 있단 의미다. 2017년 10월 러시아는 미국의 심우주 게이트웨이 건설에 협력하겠다고 밝혔다. 이로써 ISS에 이어 미국과 러시아가 다시 한번 달 궤도에서 우주 개발 협력을 진행하는 광경을 목격하게 될 전망이다.
심우주 게이트웨이의 장점은 효율성이다. 지구에서 출발한 발사체나 화성 탐사선이 달에 들려 연료를 재충전하고 남은 여정을 떠난다는 것이 현재 생각하는 그림이다. 달의 중력은 0에 가깝기 때문에 지구보다 적은 연료를 사용해도 훨씬 빠르게 화성을 향해 나아갈 수 있다.
이와 관련해 달 표면에 우주기지를 건설한다는 계획도 검토 중이다. 우주기지는 달 정거장에 도착한 발사체나 우주인이 쉬어가는 장소이자 새로운 연료를 공급 받는 주유소가 된다. 물, 산소와 같은 달 현지 자원을 연료로 바꾸는 기술, 이 연료를 수급하는 기술 등이 이미 연구 중에 있다. 중력 덕분에 발사체가 심우주 게이트웨이와 달 표면의 우주기지 사이를 오가는 데 드는 연료도 적다.
한국 연구진도 달 기지 건설에 동참하기 위한 준비가 한창이다. 한국건설기술연구원은 달 우주기지 내 발사체 착륙지점, 차폐벽, 도로 등의 건설기술을 연구하고 있다. 건설에 사용될 재료나 장비를 검증하기 위해 우주 환경을 그대로 시뮬레이션할 수 있는 장비도 세계 최초로 구축했다. ‘더티 진공 챔버(Dirty Vacuum Chamber)’에서는 달, 화성 등 지구 이외 우주 공간의 먼지, 온도, 방사선량 등을 똑같이 모사해 재료의 사용 가능성과 내구성을 평가한다.
신휴성 한국건설기술연구원 극한건설연구단장은 “심우주 게이트웨이 계획은 달의 현지 자원을 최대한 활용하는 것이 관건”이라며 “미국, 유럽 등 우주 선진국들도 아직 개발 초기 단계인 만큼 한국이 적극적으로 동참한다면 선진국의 반열에 오를 것으로 기대되는 분야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韓, 포스트 ISS 시대 준비 활발
국내에서도 포스트 ISS 시대를 준비하는 움직임이 분주하다. ISS가 걸어온 20년의 역사에서 한국의 우주 기술력은 급격히 성장했고, 국제 사회에서의 영향력도 늘었다.
우주 개발에서 후발 주자인 우리나라는 1990년대만 해도 그다지 눈에 띄지 않았다.
1992년 한국 최초의 인공위성 ‘우리별 1호’ 발사, 1999년 최초의 다목적실용위성인 ‘아리랑 1호’ 발사가 1990년대에 이룬 한국 우주 개발 성과의 전부였다. 하지만 2000년대에 들어 ‘과학기술위성’ 시리즈를 발사하고, 방송통신위성인 ‘천리안’ 발사, 한국 첫 우주 발사체인 ‘나로호’ 개발 등으로 우주기술 개발의 범위를 대폭 넓혔다.
이주희 책임연구원은 “현재는 한국형발사체 개발, 차세대 중형 위성 및 정지궤도복합위성 개발, 시험용 달 궤도선 개발 등을 독자적으로 진행 중”이라며 “NASA, JAXA 등과 국제 협력을 통해 ISS를 활용한 우주 실험에도 참여하는 등 ISS 이후의 유인 우주탐사 시대를 위한 토대를 닦고 있다”고 말했다.
정부 주도로 성장한 우주 분야에서 대학과 민간 기관의 참여가 활발해졌다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박일흥 성균관대 물리학과 교수팀은 2017년 8월 15일 순수 국내 기술로 제작한 ‘실리콘 전하량 검출기(SCD)’를 ISS로 보냈다. ISS에 탑재된 첫 한국산 대형 실험 기기로 로봇팔을 통해 ISS의 외부 모듈에 장착됐다. SCD는 ISS에서 진행 중인 ‘크림(CREAM)’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우주에서 지구로 들어오는 고에너지 입자인 우주선(線)의 성분 분석 역할을 맡는다. 현재 ISS에서 검출한 일부 신호를 지상으로 송신 받아 데이터를 분석하고 있다.
박 교수는 “우주 관측 실험 등 우주의 비밀을 풀어내는 기초 분야부터 최첨단 탑재체 개발까지 국내 연구진은 여러 분야에서 영향력을 높이고 있다”며 “포스트 ISS 시대가 기대되는 이유”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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