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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역대 멸종 원인 5가지 가상 시나리오

35억년 전부터 지구상에는 갖가지 생물이 번성했다가 사라지곤 했다. 심할 때는 생물종의 90%가 일제히 멸망한 시기도 있다. 집단멸종은 왜 일어난 것일까. 현대 과학자들이 제시하는 집단멸종 원인에 대한 가설들을 점검해 본다.

집단멸종은 왜 일이 났을까. 그 원인을 설명하기 위해 많은 가설들이 제기되어 왔다. 이 가설들이 과학적 신빙성을 가지기 위해서는 전 지구적으로 다양한 생물 분류군의 멸종을 동시에 설명할 수 있어야만 한다.

가령 백악기 말에 있었던 공룡의 멸종 원인에 대한 가설이 설득력을 가지기 위해서는 공룡뿐만 아니라 공룡과 거의 비슷한 시기에 일어났던 전지구적 규모의 해양플랑크톤의 멸종 현상이 하나의, 또는 서로 관련된 연속적 사건에서 기인함을 함께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동안 우리는 집단멸종 현상에 관한 대부분의 가설이 이 조건을 충족시키지 못했기 때문에 짧은 수명으로 끝나고 만 예를 많이 보아 왔다.

집단멸종원인에 대한 연구는 상대적으로 자료가 풍부한 중생대 백악기 말의 집단멸종 사건을 중심으로 많이 이루어지고 있다. 최근 연구는 두 가설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하나는 외계로부터의 거대한 운석, 즉 소행성의 지구 충돌설이며 다른 하나는 대규모 화산의 분출에서 1차적 원인을 찾는 것이다.

전자가 집단멸종을 짧은 기간 내의 파국적 종말로 유도하는데 반해 후자는 집단멸종을 보다 점진적 사건 또는 사건의 연속으로 이해하는 데 차이가 있다. 이밖에도 최근 큰 논란의 대상이 된 '멸종 주기설'과 전지구적 환경 변동의 요인에 관한 연구 결과도 함께 살펴보자.

소행성 충돌설

외계로부터의 어떤 충돌물이 집단멸종의 직접 또는 간접 원인이 되었다는 주장은 1950년 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 주장들은 당시는 단순한 추리에 불과했으며 아무런 근거를 제시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1977년 미국 버클리대의 알바레스(Alvarez) 부자에 의해 이 주장은 고무되었다. 이들은 이탈리아의 작은 읍 구비오의 중생대 백악기-신생대 경계면 (소위 K/T 경계면) 붉은 점토층에서 이리듐의 이상 부화를 발견한 것이다.

이리듐이 검출되는 얇은 점토층은 그후 전세계 1백군데 이상의 육상과 해저에 분포된 K/T 경계면에서 발견되었다. 특히 해저 퇴적층에서 발견된 이리듐을 포함하는 지층은 이 원소가 전지구적으로 매우 고른 분포로 쌓였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백금류에 속하는 이리듐은 지각에서는 매우 희귀한 금속원소. K/T 경계면의 점토층에서는 지각에 존재하는 보통 암석에서 보다 무려 30배의 이리듐이 농집되어 있다.

K/T 경계면의 점토층에서 검출된 이리듐이상치는 운석에서나 기대될 수 있는 수치였다. 따라서 이리듐은 의심할 바 없는 지구 외계로부터의 충격의 산물로 받아들여졌다. 1980년 알바레스는 전 세계의 K/T 경계면에 분포한 이리듐의 양을 추정한 결과 지름 10㎞ 정도의 소행성이 지구에 충돌하여 중생대 말 집단멸종의 직접 동인(動因)으로 작용했다고 주장했다.

최근 컴퓨터에 의한 가상 실험은 이 정도 크기의 소행성이 충돌했을 때 지름 1백㎞ 정도의 크레이터(crater)가 생겨나며 해양에 충돌할 때 지각을 뚫고 맨틀에 닿을 수 있는 운동에너지를 가질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이 발견은 세기의 과학직 대사건으로 환호를 받았으며, 집단멸종에 대한 그동안의 의문을 한꺼번에 해결해 줄 총아로 크게 기대되었다. 그후 지구 곳곳에는 이 충돌의 결과로 생각되는 크레이터가 1백개 이상 확인되었다.

크레이터는 화산 폭발에 의한 칼데라와 유사한 점도 있다. 그러나 칼데라와 같이 지하에 뿌리가 있지는 않고, 단순한 동심원적 부챗살 형태를 띤다. 크기는 지름 수십m에서 최대 1백40여㎞에 달하는 것까지 있다. 대부분 육상에서 발견된 것이며, 작은 규모거나 오래된 크레이터일수록 풍화와 침식 때문에 보존이 불량하다.

크레이터가 지구 외부로부터의 충격에 의한 산물이라는 데는 이견이 없다. 그러나 그것이 소행성인지 그렇지 않으면 혜성에 의한 것인지 알 수는 없다. 충격물의 잔해가 고압과 자체 내의 휘발성 성분으로 인해 대부분 기화되어 대기로 흩어지고 크레이터에는 거의 남아 있지 않기 때문이다.

이 모든 증거를 통해 소행성 충돌이 중생대를 마감했는지는 확인할 수 없지만, 적어도 백악기 말 거대한 외계 물질이 지구에 충돌한 사실이 있음을 부인할 수는 없다.

그러나 외계물질 지구충돌 가설은 1980년대 중반 이리듐 이상치가 화산 분출에 의해서도 설명이 가능하다는 일단의 지질학자들의 반론이 제기되면서 오랜 논쟁으로 휘말리게 된다.

이리듐은 운석과 같은 외계 물질뿐만 아니라 지구 내부의 맨틀에도 상당량 농집되어 있으며, 맨틀의 상부에서 생성된 마그마에 포함된 이리듐이 화산활동을 통하여 지표로 분출될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 최근 하와이의 킬라우에아(kilauea) 화산 분출 때 생성된 화산재에서 정상치의 1만배에서 2만배에 이르는 이리듐의 농집이 확인되었으며, 이때 확산된 이리듐이 멀리 떨어진 오스트레일리아나 남극의 얼음판에서까지 검출된 일이 있었다.

알바레스의 가설이 화산 분출에 의해 나타날 수도 있다는 반격을 받게 되자 미국 지질조사소 연구원들은 소행성 충돌 가설을 옹호하는 새로운 증거를 찾아냈다. 그들은 이리듐 이상치가 검출된 K/T 점토층에서 특별한 표면조직과 미세구조를 가진 석영(Planar Deformation Feature)의 미세한 파편들을 보고했다.

7.5에서 30Gpa 사이의 충격압에서 생성되는 것으로 알려진 이 '충격석영'은 운석 충돌에 의해 생겨난 크레이터 주위에서도 흔히 발견된다. 그 후 '충격석영'은 전세계 대부분의 K/T 경계면 점토에서 발견되었으며 충격가설의 강력한 증거로 주장되고 있다.

카터(1986)가 인도네시아 토바(Toba) 화산에서, 그후 다른 화산에서도 '충격석영'과 유사한 특징의 석영입자를 발견하면서 '충격석영'이 화산활동에 의해 생성될 수도 있다는 재반론을 제기하기도 했으나 두 석영 사이의 굴절률과 미세조직 등에서 일정한 차이가 있음이 밝혀지고 있다.

이리듐이 검출된 몇몇 점토층과 크레이터에서는 스티쇼바이트라고 하는 충격에 의해 생성될 수 있는 또 다른 광물이 발견되어 소행성 충돌 가설을 뒷받침하고 있다.

화산분출설

K/T 경계면에서 관찰되는 다른 중요한 지질 기록은 대규모 화산활동과 관련된다. 과거 인도는 지금은 세이셸(Seychelles) 제도가 되어 있는 대륙의 일부로부터 분리되었다. 여기에는 지금도 과거에 그랬던 것처럼 맨틀로부터의 열점(hot spot)이 있다. 열점은 지구 내부로부터 열류가 집중된 곳으로 흔히 격렬한 화산활동이 나타난다. 예를 들어 하와이나 미국의 옐로 스톤이 여기에 속한다.

열점이 대륙이 갈라져 떨어지는 곳에 위치할 때 넓고 긴 열극으로부터 용암이 분출하여 육지의 광대한 지역을 덮게 된다. 인도가 세이셸로 부터 분리되면서 막대한 양의 용암이 흘러나와 인도 대륙 서부를 덮어 소위 '데칸트랩'(the Deccan Trap)이라 부르는 거대한 용암층을 만들고 (그림 3), 해저로 흘러들어 광활한 용암 대지를 형성했다.

현재 이 '데칸트랩'은 50만㎢나 되는 지역을 덮고 있다. 지역에 따라 2㎞ 두께로 나타나는 곳도 있다. 당시 분출된 용암의 양은 해저 용암 대지를 포함하여 지금 남아 있는 화성암체의 양보다 적어도 두배 이상이었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 용암의 분출은 흥미롭게도 백악기 말에서 시작되어 신생대 초에 이르는 최장 1백만년 동안 계속되었다.

'데칸트랩'이 형성될 당시 분출된 연무(aerosols)와 화산재가 성층권에 도달했으리라는 데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데칸트랩'을 형성시킨 열점은 오늘날 활동이 둔화된 채 인도양 지각 아래로 옮겨가 있다.

한편 최근 일부 연구자들은 이 거대한 화산분출이 하나의 사건, 즉 소행성 충격으로 촉발되었다는 가설을 제기하고 있다. 두 거대한 독립적 사건들을 하나의 연속된 사건으로 묶는 이 가설은 사실 양쪽으로 갈라선 채 가열된 논쟁을 계속하고 있는 두 과학자 집단의 목소리를 부분적으로 낮출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이들 중에는 데칸트랩을 달 표면의 어두운 부분처럼 용암이 흘러 채운 크레이터로 해석하는 조심스런 견해까지 나오고 있다. 그러나 인도로부터의 자료는 아직 데칸 분출이 소행성이 충돌한 시점에 앞서 이미 시작되었다는 데 멈추어져 있어 이 새로운 견해가 타당성을 얻는데 걸림돌이 되고 있다.
 

(그림3)'데칸 트랩'의 분포(검게 표시된 부분, 타원은 당시 열점의 위치)


집단멸종 주기설

1984년 미국의 일부 연구자들이 적어도 고생대말 이후의 전지구적 집단멸종 사건들은 2천6백만년 주기로 반복되어 왔다는 주장을 제기한 후 이 주장을 뒷받침할 많은 가실이 제시되었다. 그러나 동시에 그 신빙성에 문제를 제기하는 수많은 가설과 자료들도 등장했다.

소행성 충돌에 의한 백악기 말의 집단멸종설을 처음 주장한 버클리대 연구 그룹이 전지구적 집단멸종이 주기적인 '혜성소나기'에 기인한다는 가설을 발표하여 주목을 끌었다.

그들의 모델에 따르면 지구상에 주기적인 '혜성소나기'를 내리게 하는 것은 가상의 태양의 쌍성 '네메시스'라고 한다. '네메시스'는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복수의 여신에서 그 이름을 딴 것이다.

우리 은하계 안의 많은 별들은 짝을 이루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들을 쌍성이라 부른다. 각각의 쌍성은 공동의 중력 중심을 가운데로 하여 공전한다. 이 가실에 의하면 '네메시스'는 태양계 주위로 2천 6백만년 주기의 거대한 타원 궤도를 그리며 도는데 이것이 태양계에 가장 접근한 시점에 소위 '오르트 혜성구름'을 교란시켜 지구와 태양계 다른 행성에 '혜성소나기'를 내리게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네메시스는 아직 그 존재가 확인되지 못했으며, 만일 존재한다 하더라도 너무 멀리 떨어져 있고 아마 적색 또는 갈색왜성일 것이기 때문에 식별이 매우 어려울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오르트 혜성구름' 역시 존재가 확인된 바 없다.

네메시스 가설에 대한 다른 문제는 2천6백만년이나 되는 긴 공전 주기는 쌍성에서 결코 관측되지 않을 뿐 아니라, 3광년이나 떨어져 있다는 태양과 네메시스 사이에서 중력에 의한 인력(gravitational attraction)이 두 별을 쌍성으로 유지하기에는 너무 약하며 따라서 네메시스는 궤도 밖으로 벗어날 수 밖에 없다는데 있다.

그 논리적 취약성에도 불구하고 네메시스 가설은 언론의 집중적 호기심을 불러 일으켰으며, 여전히 TV에 등장하는 가장 인기있는 공룡멸종 원인이다. 네메시스 가설에 대한 기대가 희석되고 그 과학적 신뢰성이 의심받기 시작하면서 이에 대치할 새로운 가설 '행성 X설'이 등장하게 되었다. '행성 X'는 일부 천문학자들이 해왕성과 천왕성 운동의 섭동현상을 설명하기 위해 이미 19세기말 무렵부터 해왕성 바깥에 그 존재를 예견해왔다. 이 가상의 행성은 태양을 중심으로 5천 6백만년 주기의 기울어진 타원 궤도를 공전한다고 한다.

따라서 이 '행성X'는 매 한차례 공전시 2천8백만년 주기로 두차례 해왕성의 공전궤도밖에 있는 '오르트 혜성구름'을 통과하게 되는데 이때 지구에 '혜성소나기'를 내리게 한다는 것이다.

네메시스와는 달리 '행성 X'는 상당한 질량을 가져야만 한다. 따라서 관측이 상대적으로 용이할 것이나 지금까지는 최신 적외선 천문 위성(IRAS)으로도 그 존재가 확인되지 않았다. 최근 한 컴퓨터 모델은 '행성 X'가 주기적인 '혜성소나기'를 발생시킬 수 없음을 보여주었다.

현재로서는 이 집단멸종의 주기설을 뒷받침할 수 있는 어떤 믿을 만한 증거나 자료도 없다. 그 주기도 연구자에 따라 2천6백만년에서 3천2백만년까지 많은 차이가 있고, 지금으로서는 화석 기록에서 어떤 주기성을 확인할 수 없다는 치명적 약점을 지니고 있다. 따라서 주기 가설은 객관적이고 충분한 자료가 모아진 후 다시 논의되어야 할 것으로 믿어진다.

그밖의 원인설

백악기 말 소생성 충돌이나 대규모 화산 분출은 기후변화를 일으켜 집단멸종의 한 원인이 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기후변동은 다른 원인들에 의해서도 가능하다.

백악기의 대부분 기간 동안 전지구적으로 높은 해수면이 유지되고 있었음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해수면 변동은 지구 역사를 통하여 반복되어 온 사실로 그 원인에 대하여 여러 학설이 제시되어 있다. 그 가운데 가장 가능성이 큰 것은 해저 확장 운동과 빙하 현상이다.

해저 확장이 빠른 속도로 진행될 때 맨틀로부터 열과 새로 만들어진 지각 물질이 중앙해령계를 융기시켜 엄청난 양의 물을 대륙 위로 밀어 올린다고 생각할 수 있다. 한편 해저 확장의 속도가 느려졌을 때 이미 상승한 해수면이 하강하여 대륙 상에 해퇴(海退) 현상을 일으킨다.

지판을 움직이게 하는 힘이 무엇인지 아직 밝혀진 바 없으나, 전지구적 조산운동과 해침이 활동적인 해저 확장과 때를 같이하여 나타나며, 이 기시는 상대적으로 해수면이 상승해 있었던 시기와도 일치하는 양상을 보인다.

지질기록은 백악기 말에 전지구적 규모로 해수면 강하가 있었음을 나타내고 있다. 그 원인이 무엇이었건간에 해수면이 낮아지면 수온도 낮아진다. 이는 해표면 플랑크톤에 밑변을 둔 해양 생태계의 먹이사슬을 교란했을 것으로 보인다.

해수면 강하는 또한 오늘날의 엘니뇨현상과 같은 적도해류의 변화와도 직접 관계가 있다. 1956년 이후 네 차례의 엘니뇨 현상을 겪은 페루 연안의 어류와 바다새 생태계가 심각하게 파괴된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

백악기말 해수면 강하와 함께 당시 유라시아대륙을 향하여 서북향 항진을 계속하던 인도대륙이 적도해류의 흐름에 변화를 준 원인이 되었다는 설도 있다.

백악기 집단 멸종의 시나리오들

소행성 충돌이나 화산분출 사건이 백악기 말에 집단멸종을 일으키는 과정에 대해서는 여러가지 시나리오가 만들어져 있다.

● 자연발화 시나리오

우선 시카고대 연구그룹을 중심으로 시종일관 주장되어 온 자연발화설을 살펴보자. 이 주장은 K/T 경계면에서 발견된 점토층의 구성 성분에 근거한 것으로, K/T 경계면 점토는 소행성 충격에 의해 생성된 것이며 1년 안에 쌓였다는 것이다.

충돌에 의한 먼지가 대기권을 교란하여 광범한 지역에서 자연 발화에 충분한 벼락을 일으키는데 필요한 정전기를 생성했으며, 자연 발화에 의한 매연은 공기 중의 충격에 의해 생성된 먼지와 섞이면서 확산돼 지구 곳곳에 쌓였다.

이 주장에 대한 반박도 만만치 않다. 우선, 점토층에서 검출된 탄소의 양이 자연발화로 인한 삼림 연소 때문이라고 보기에는 너무 많으며, 대부분 K/T 경계면에서 점토층이 화만재로 시작해서 퇴적된 사실을 설명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전지구적 규모의 삼림 연소도 기대하기 힘들다. 한 예로 인류가 기억하는 가장 큰 산불이었던 1910년의 시베리아 삼림의 대화재도 시베리아 내에 한정된 미미한 기후 변동을 일으켰을 뿐 광범위한 영향은 미치지 못했다.

반론에 의하면, 특히 열대 우림에서 대규모 자연 발화가 일어나기는 어려우며, 광범위한 지역으로 확산되는 일은 더욱 기대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자연발화 시나리오는 너무나 많고 특정한 가상적 자연현상의 연속을 전제하는 것이라 요즘은 큰 주목을 받지 못한다.

● 소행성 충돌에 의한 시나리오

소행성 충돌에 이어질 사건에 대한 추측은 비교적 단순하다. 직경 5-10㎞에 달하는 소행성이 지구에 충돌했을 때 기화된 암석과 수증기 덩어리가 폭풍에 의해 대기권 위로 막대한 먼지 구름을 생성할 것이며, 일주일 또는 몇 달에 걸쳐 대기권 안으로 서서히 퍼지게 될 것이다.

이 시나리오는 핵전쟁의 결과로 예상되는'핵겨울' 상황과 유사해서 특별히 관심과 검증의 대상이 되어왔다. 소행성 충돌의 여파인 먼지와 연기는 태양광선을 몇주 또는 몇달 차단했을 것이며, 육상식물과 해양의 식물성 플랑크톤의 광합성을 불가능하게 만들었을 것이다.

먼지와 연기는 또한 일정 기간 기온을 얼어붙게 했을 것이다. 이 결과는 사실 극지나 심해에 사는 동물들에게는큰 영향을 끼치지 못할 것이나, 대부분 육상 생물계에는 파국적 재앙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

또한 소행성 충돌이 막대한 양의 산화질소를 생성시켜 오늘날의 산성비에 비교할 수 없는 정도의 강산성비를 내리게 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 산성비의 산도가 자동차의 배터리액 정도에 달했을 것이라는 일부 계산도 나와 있다.

그 직접 영향은 공기 호흡을 하는 동물들을 질식시키기에 충분했을 것이며, 식물의 잎을 파괴하고, 해안이나 담수 환경에 사는 조개 등 생물의 골격을 녹여낼 수 있었을 것이다.

2차 효과로서 공기와 해양의 이산화탄소 평형을 파괴하여 기후 변동을 초래, 적어도 20년 이상 연안 환경은 어떤 생물도 살아남기 어려운 불모지가 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집단멸종 주기설을 주장하는 일부 연구자들 가운데는 한두개의 거대한 혜성이 지구에 접근, 지구를 둘러싸고 있는 대기권을 가열하여 생물들이 견딜 수 없을 정도로 만들었거나 맹독성의 시안화물(청산염화물)비를 내리게 하여 해양생태계를 죽음으로 몰고 갔다는 시나리오를 내놓는 사람들도 있다.

● 화산분출에 의한 집단멸종 시나리오

화산분출은 소행성 충돌과 여러 면에서 유사한 영향을 나타낼 것이다. 화산 분출은 화산재뿐만 아니라 화산재보다 더 오래 공기 중에 머물 수 있는 많은 양의 극히 작은 황산 알갱이로 된 연무질을 생성하는데, 이것이 기후에 오래 영향을 미친다.

1815년 인도네시아의 탐보라(Tambora)화산 폭발은 30㎢의 지역에 화산재와 먼지를 분출했다. 성층권을 타고 지구 위에 확산된 분출 물질이 태양광선을 차단, 다음 해인 1816년 유럽에서 '여름 없는 해' 현상을 나타냈다. 이 해 지구 전북반구 지역에서 곡식의 수확이 없었고 대규모 기근으로 이어졌다.

탐보라 규모 정도의 화산 분출은 '데칸 트랩'과는 비교조차 안되는 것이다. '데칸 트랩' 분출이 전지구적 규모의 산성비, 오존 고갈, 온실 효과와 냉해 현상을 일으키기에 충분했으리라는 데는 이견이 없다.

● 생물 생태계 변화에 의한 집단멸종 시나리오

육상 퇴적층에서 K/T 경계면이 인식되는 북미대륙의 남부에서 캐나다 중부에 이르는 지역에서 태평양을 건너 일본에 이르기까지 K/T 경계면 점토층에서는 육상 식물계의 이변을 암시하는 매우 독특한 식물화석 분포가 기록된다.

피자식물의 꽃가루화석이 갑자기 사라지고 양치식물의 포자화석이 나타나는데, 이 양치식물 포자화석의 급증은 이리듐 함량의 이상 가중치와 시간적으로 정확히 일치하는 매우 흥미로운 대조를 보인다(그림 1).

이 기간은 또한 해양 퇴적물 내에 나타나는 해표면 플랑크톤의 화석이 격감하는 '이변'의 시기이기도 하다. 비록 이 '이변'의 시기가 짧았다 하더라도 육상식물과 해표면 플랑크톤 격감은 생태계의 먹이사슬 붕괴에 결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이 '이변'의 시기에 곧 이은 익룡, 공룡과 대형 바다 파충류의 멸종은 이 시나리오의 설득력을 높이는 요인이다.
 

(그림1)미국 몬태나주에 분포된 K/T경계면 점토층에서 기록된 이리듐의 양과 식물화석 꽃가루와 포자비의 변화(피자식물 꽃가루화석의 감소는 양치식물 포자화석의 증가를 나타낸다ㅏ)


● 집단멸종 시나리오에 대한 의심들

앞서 이야기한 화산 분출이나 소행성 충돌 등이 백악기 말 집단멸종의 필요조건이 아니었음을 시사하는 몇몇 증거들도 있다. 예를들어 1천5백만년 전 독일 리즈(Ries)에 충돌한 운석은 거대한 바위 덩어리를 1백㎞ 밖으로 날렸으며 충격에 용해된 '암석 안개'가 수백㎞까지 확산되었다. 그러나 인근에 살던 포유류 집단에 조차 어떤 영향도 미치지 못했다.

1883년 인도네시아의 크라카타우섬에서 일어났던 화산 분출은 섬 위에 살고 있던 모든 생명을 앗아갔으며, 인근 수백㎞ 내의 자연 생태계에 심각한 타격을 입혔다. 그러나 그 재앙으로부터 완전한 복구에 이른 시간은 1백년이 채 걸리지 않았다.

대규모 화산활동의 결과 중생대 쥐라기 때 남아프리카에서 있었던 칼루현무암이나 신생대 들어 일어났던 북미 서부지역의 소위 컬럼비아 고원현무암의 분출도 지역적인 멸종과 아무런 인과관계를 찾아볼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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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년 05월 과학동아 정보

  • 이동진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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