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모든 것을 속였다(He Lied About Everything)’
미국의 다큐채널 ID(Investigation Discovery)는 얼마 전 밸런타인데이에 이런 제목의 다큐멘터리를 첫 방송했다. ‘그’는 이탈리아인 외과의사 파올로 마키아리니 박사다. 마키아리니 박사는 2008년 환자의 줄기세포로 만든 인공 기관(trachea)을 개발한 뒤 2011~2012년 이를 환자에게 이식하는 수술로 명성을 떨쳤다. 국내에는 2013년 TV 다큐멘터리 ‘해나의 기적’에서 한국계 캐나다 여아 해나 워런의 기관 이식 수술을 담당한 의사로 등장하면서 유명해졌다.
하지만 당시 마키아리니 박사에게 인공 기관 이식 수술을 받은 환자는 모두 숨졌고, 논문 내용이 실제와 다른 것으로 밝혀지는 등 심각한 윤리 문제가 발견됐다. 2010년 마키아리니 박사를 고용한 스웨덴 카롤린스카 연구소는 2016년 그를 해고했고, 스웨덴 경찰은 과실치사 혐의로 조사를 벌였다. 그가 발표한 논문 6편은 지난해 10월 모두 철회됐다.
사랑을 전하는 밸런타인데이에 마키아리니 박사가 다시 등장한 건 2014년 미국 NBC뉴스가 그를 조명하기 위해 제작한 ‘맹신(A Leap of Faith)’이라는 특집 다큐멘터리와 관계가 있다.
당시 다큐멘터리 제작을 담당한 NBC뉴스 PD 베니타 알렉산더는 프로그램을 위해 마키아리니 박사와 만나면서 연인 사이가 됐고, 비밀리에 약혼까지 했다. 알렉산더 PD는 NBC뉴스 측에 이런 사실을 숨겼고, 결국 뉴스의 시각이 아닌 연인의 시각에서 제작된 다큐멘터리가 전파를 탔다.
연예전문지 배니티페어는 2016년 이런 사실을 처음으로 폭로했다. 그는 배니티페어와의 인터뷰에서 “취재원과 어떤 형태로든 엮이는 건 저널리즘의 기본 원칙에 어긋난다는 사실을 알았지만, 나는 사랑에 빠져버렸다”며 “나의 가장 큰 불찰은 취재 윤리를 저버린 것”이라고 자책했다. NBC뉴스는 이 보도 직후 다큐멘터리 영상을 홈페이지에서 삭제했다.
둘의 결론도 결혼이 아닌 사기로 끝났다. 교황이 주례를 서고,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 부부와 오바마 당시 대통령이 하객으로 참석할 것이라던 꿈같은 결혼식은 전부 마키아리니 박사가 지어낸 허황된 얘기였다.
속이는 것도 문제지만 속지 않는 것도 중요하다. 줄기세포에 대한 과학계의 열망, 여론에 목마른 미디어, 개인의 그릇된 판단은 마키아리니 같은 가짜를 진짜로 둔갑시켰다. 가짜의 달콤함에 홀리지 않는 가장 단순한 방법이 기본과 원칙임을 다시 한번 생각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