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고 진한 향의 에스프레소 한 잔과 딱 어울리는 크루아상. 프랑스어로 ‘초승달’이라는 이름답게, 통통하면서도 양 끝이 뾰쪽하게 말려 있는 모양이 친숙합니다. 손으로 집으면 무척 가볍고, 손끝에 약간만 힘을 줘도 껍데기가 얇게 부서져 가루가 날립니다. 그런데 속살은 무척 부드럽습니다.
크루아상을 반으로 잘라 단면을 들여다보면 그 이유를 짐작해볼 수 있습니다. 종이보다 훨씬 얇은 빵 층이 겹겹이 쌓여 있습니다. 버터를 머금은 밀가루 반죽을 네 번 접어 밀대로 밀면 54개 이상의 층이 생깁니다. 얇은 빵 층 사이사이에는 공기가 들어 있어, 부피가 같은 다른 빵에 비해 무척 가볍습니다.
크루아상의 식감은 딱 잘라 말하기 어렵습니다. 바삭바삭 하면서도 촉촉한, 어찌 보면 역설적인 식감의 비밀은 버터에 있습니다. 크루아상을 만들 때는 먼저 밀가루 반죽을 도마 위에 얇게 밀어 펼쳐놓고, 그 위에 차갑게 얼린 버터를 얹고 반으로 접습니다.
이 반죽을 밀대로 얇게 민 다음, 반죽을 삼등분으로 접습니다. 이후 냉장고에 휴지시켰다가 다시 삼등분으로 접습니다. 이 과정을 수없이 반복하면 밀가루 반죽층과 버터층이 반복되는 얇은 층이 생깁니다. 얇게 편 반죽을 이등변삼각형 모양으로 잘라 돌돌 말은 다음, 양끝을 살짝 구부려 초승달 모양으로 빚으면 완성됩니다.
이렇게 셀 수 없이 많은 층 사이사이에 버터가 발라진 반죽을 오븐에 구우면, 버터는 녹아내리고, 그 사이에 있던 밀가루 반죽이 더 많은 층을 만듭니다. 겉은 바삭하고 속은 촉촉한 ‘외강내유(外剛內柔)’의 식감이 크루아상을 더욱 맛있게 합니다.
크루아상처럼 바삭한 껍질 안에 촉촉한 사과가 들어 있는 애플파이도 외강내유의 대표적인 음식입니다. 애플파이는, 냉동실에서 차갑게 얼린 뒤 잘게 썬 버터와 체에 곱게 친 밀가루를 섞어 손으로 살살 비비면서 반죽합니다. 파이껍질 모양을 다듬은 뒤, 사과필링(사과를 얇게 저미고 설탕과 시나몬가루를 조금 뿌려 졸여낸 재료)으로 채운 다음 오븐에 구우면 완성입니다.
하이드록실기 사이를 연결한 특수 전분
세상에서 가장 부드러운 식재료인 버터를 넣었는데, 크루아상이나 애플파이의 껍질이 오히려 바삭해지는 데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식빵이나 시골빵 등을 만들 때에는 밀가루에 물을 조금씩 넣으면서 손이나 기계를 이용해 오랫동안 치댑니다.
이렇게 치대는 동안 밀가루 반죽 안으로 공기가 들어가고, 단백질인 글리아딘(gliadin)과 글루테닌(glutenin) 사이에서 환원성이 강한 설프하이드릴기(-SH)가 산화되면서 이황화 결합(S-S)이 생깁니다. 글루텐이라는 새로운 단백질이 생기면서 단백질 사이사이에 튼튼한 그물 구조가 만들어집니다.
이 구조 때문에 글루텐은 매우 쫄깃합니다. 즉, 쫄깃한 빵이나 국수를 만들려면 글루텐이 많이 생겨야 하고, 그만큼 오랫동안 반죽하는 게 좋습니다.
하지만 크루아상이나 애플파이는 식빵이나 국수에 비해 쫄깃한 식감이 거의 없습니다. 글루텐이 거의 없기 때문입니다. 버터가 밀가루 반죽에 골고루 섞여 들어가 단백질 사이사이에 이황화결합(S-S)이 형성되지 못하도록 방해하기 때문입니다. 결국 외부 열을 만나 구워지는 동안 수분이 날아가 바삭해지거나, 수분을 머금어 촉촉한 속살이 됩니다.
아무리 크루아상이 맛있어도 시간이 지나면 눅눅해지고 통통했던 몸집은 폭삭 가라앉습니다. 모락모락 피어오르던 김이 사라질 무렵에는 이미 바삭했던 표면이 물렁물렁하게 변해있습니다. 이에 비해 애플파이는 꽤 오랫동안 바삭함을 유지합니다. 심지어 아침에 만든 애플파이가 해가 질 무렵이 될 때까지도 겉은 바삭하고 속은 촉촉한 상태를 유지합니다. 크루아상은 안이 비어 있는 반면, 애플파이는 촉촉한 사과필링으로 가득 차 있는데도 말입니다. 사과필링이 담고 있는 수분이 왜 파이껍질에까지 스며들지 않는 걸까요.
그 이유는 사과필링을 만들 때 특수전분을 넣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사과필링의 질감이 더욱 풍부해질 뿐만 아니라 파이에서 윤기가 나고, 오븐에서 고온으로 구울 때 질감이 안정적으로 유지됩니다.
특수전분은 화학적으로는 전분분자에 있는 하이드록실기(-OH)를 통해 인산기(-PO3) 등과 결합된 ‘가교결합 전분’입니다. 덕분에 전분 분자가 구조적으로 단단해지고, 분자들 사이에서 물 분자가 쉽게 빠져 나오지 못합니다. 사과필링에 담겨 있는 수분이 파이껍질로 스며들지 않게 만듭니다. 또 가교결합 전분은 고온이나 산성에서도 물성이 변하지 않고 화학적으로 안정적이어서 애플파이뿐만 아니라 피자 소스나 바비큐 소스를 만들 때에도 사용됩니다.
신원선
연세대에서 식품영양학을 전공하고 일본 교토대에서 단백질 구조 및 기능 특성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1995년부터 11년간 한국식품연구원에서 선임연구원으로 재직하며 식품분석법을 연구했다. 2006년부터 한양대 식품영양학과에서 식품화학과 분자미식학을 연구하고 있다. hime@hanyang.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