얇은 다운점퍼도 보온력은 비슷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한국 겨울에 패딩이 꼭 필요한 건 아닙니다. 의류의 보온성은 ‘클로(Clo)’라는 단위를 쓰는데요, 바람이 초속 0.1m로 불고 주위 온도가 21도일 때 사람이 안락함을 느낄 수 있는 보온 상태(1m2당 열 58와트(W) 발산)를 1클로로 정의합니다. 0클로는 아무것도 입지 않았을 때, 2클로는 영하 10도에도 안락한 의복을 말하죠.
그런데 한국인의 겨울철 복장은 두꺼운 패딩 덕분에 2클로가 훌쩍 넘습니다. 가장 추운 1월 강원도의 평균 기온이 영하 5도가 채 안 되는데, 현재 한국인의 복장은 시베리아 수준인 셈입니다.
의복생리학을 연구하는 이주영 서울대 의류학과 교수는 “한국 날씨에는 패딩이 불필요하다”고 말했습니다.
아이가 ‘나는 추위를 많이 타는 체질’이라고 주장하나요? 이를 어쩌죠, 두껍고 긴 패딩이 따뜻할 거라는 생각도 사실은 선입견에 불과합니다.
이 교수팀은 2015년 한국의류학회지 제39권 제1호에 발표한 ‘공기주입형 의복의 보온력 측정 및 다운재킷의 보온력과의 비교’ 논문에서 점퍼에 든 다운(새의 솜털)의 중량이 절반 이어도 보온력은 비슷한 수준이라고 발표했습니다.
연구팀은 사이즈와 재질이 동일하고 다운의 중량만 350g, 140g으로 다른 두 종류의 점퍼를 마네킹에 입힌 뒤 30분간 온도를 재는 실험을 했습니다. 그 결과, 보온력 차이가 5% 정도로 미미했죠.
그 이유는 다운 점퍼의 원리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다운은 중심 핵으로부터 수많은 보푸라기가 뻗어 나와 마치 민들레 씨처럼 동그란 모양을 이루는데요, 이 보푸라기들이 공기를 머금어 체열이 빠져나가는 걸 막습니다. 즉, 다운이 형성하는 공기층의 두께가 두꺼울수록 보온력은 높아지죠.
그러나 두께가 어느 정도 수준이 되면 오히려 의복 내 대류가 활성화될 수 있습니다. 열이 빠져나갈 수 있어 보온력이 더 증가하지 않습니다.
日 겨울 교복이 반바지인 이유
사실 다소 서늘하게 입는 게 건강엔 더 좋습니다. 일본에서는 오래 전부터 이 같은 연구가 많았는데요, 예를 들어 옷을 얇게 입는 어린이 집단이 옷을 많이 입는 집단보다 야외에서 노는 시간이 길고 그 집단의 운동능력이 더 우수했다는 보고가 있습니다. 이 교수는 “이를 바탕으로 일본은 겨울 교복도 반바지로 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습니다.
추위에 지속적으로 노출되면 추위에 대한 적응력을 키우는 데에도 유리합니다. 1970년대 중반 이전만 해도 한국 해녀는 면으로 된 수영복 하나만 걸치고 물질을 했습니다. 이 교수팀이 한국생활환경학회지 2015년 제22권 제3호에 발표한 ‘고령 제주 해녀의 행동성 체온조절과 내한내열성의 변화’에 따르면, 손가락 끝의 혈관 확장을 통해 추위를 참는 능력을 검사하는 한랭혈관확장반응(CIVD)에서 고령 해녀군은 20대 도시 여성군보다 생리적으로 더 우수했습니다. 차가운 바닷물에 뛰어들면 몸에서 더욱 많은 열을 내고, 그 열이 피부 근처로 잘 전달된다는 뜻입니다.
또 생리학자들의 분석 결과, 겨울철 실내 권장온도인 19도에서 서늘하게 입으면 젊은 성인의 에너지 대사량이 10% 가량 증가했습니다. 이를 8시간으로 환산하면 하루 평균 밥 2~3공기에 해당하는 600킬로칼로리(kcal) 이상입니다.
어린이는 세심한 체온관리 필요
그렇다고 무작정 얇게 입으란 얘기는 아닙니다. 열 손실이 적은 몸통 부위는 두껍지 않게 옷을 착용하고, 공기와 접촉면이 넓은 얼굴과 손, 발은 따뜻하게 하면 얇게 입고도 추위를 적게 느낄 수 있습니다.
특히 체중당 면적 비율이 높은 어린이는 좀 더 세심한 체온관리가 필요합니다. 사춘기 이전의 어린이는 어른에 비해 몸집은 작지만 체형은 비슷하기 때문에 체중당 면적 비율이 더 높습니다. 열을 잃기가 더 쉽다는 뜻이죠. 따라서 옷차림을 기온에 따라 세분화해야 합니다. 가령 11월이나 12월 초, 2월이나 3월 초 영상의 기온에는 옷을 가볍게 입혀 아이가 추위에 적응할 수 있게 하는 것이 좋고, 날씨가 영하로 떨어지는 12월 중순부터 1월까지는 손과 발의 보온에 신경을 써야 합니다.
유행에 따라 롱패딩을 사달라는 아이와 실랑이를 벌이는 과정은 지난하겠지만, 과학동아와 함께 과학적 근거를 갖고 이야기하면 더 좋은 타협점을 찾을 수 있을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