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밤 주인공은 나야 나, 나야 나~”
‘늦바람이 무섭다’더니, 뒤늦게 아이돌에 푹 빠진 기자는 오늘도 아이돌 얼굴에서 눈을 떼지 못한다. 몇 년 전만 해도 박보검이나 그룹 ‘샤이니’의 민호처럼 조각 같은 얼굴이 좋았는데, 요즘에는 송중기나 그룹 ‘워너원’의 강다니엘처럼 웃으면 눈이 사라지는 귀여운 얼굴이 호감이다.
‘미남의 기준’이 달라진 건 비단 기자 혼자만은 아닌 같다. 5년 전 ‘국민 호감’이던 스타의 얼굴과 최근 ‘국민 스타’의 얼굴이 풍기는 이미지는 다르다. 인간의 뇌는 어떤 얼굴을 아름답다고 판단하는 걸까. 또 어떤 얼굴에 호감을 갖는 걸까.
‘황금비’ ‘황금마스크’는 거짓말
오래 전부터 과학자들은 인간의 뇌가 어떤 얼굴을 아름답다고 규정하는지 연구해왔다. 그중 가장 잘 알려진 것이 ‘황금비’다. 이집트의 클레오파트라와 중국의 양귀비 등 역사에 미인으로 기록된 인물은 얼굴에 공통적인 비율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이들은 두 눈 사이의 중앙에서 코끝까지의 길이와, 코끝에서 입술까지 길이의 비가 약 1.618대 1, 즉 황금비를 이룬다. 황금비는 이집트 피라미드(피라미드의 높이와, 바닥을 이루는 정사각형 변의 절반 길이의 비)와 밀로의 비너스 조각상(배꼽으로부터 발끝까지 길이와 배꼽부터 머리 끝까지 길이의 비) 등 작품의 예술성이나, 해바라기 씨앗(두 줄로 박혀 있는 씨앗들의 개수의 비), 앵무조개 껍데기(나선형 구조로 가운데로 몰리면서 점차 좁아지는 폭의 비)를 설명할 때도 사용된다. 생명체부터 인공물까지 모든 존재의 아름다움을 황금비 하나로 설명하는 셈이다.
황금비를 이용해 아름다운 얼굴의 기준을 설명하려는 시도 중에는 미국 구강악안면외과 전문의인 스티븐 마커트 박사의 ‘황금 마스크(golden mask)’가 있다. 아그리파 석고상의 얼굴이 떠오르게 하는 황금 마스크는 이마와 눈, 코, 입술, 볼, 턱에 이르기까지 얼굴의 모든 영역에서 일정한 비율에 따라 수많은 선을 긋고, 그것들을 이어 복잡한 다각형으로 나타냈다.
마커트 박사는 자신의 홈페이지(www.beautyanalysis.com)에 황금 마스크를 공개하고 “황금 마스크와 사진을 겹쳤을 때 눈코입 등 각 부위가 들어맞을수록 완벽한 얼굴에 가깝다”고 주장한다.
2008년 4월 성형외과 전문의인 에릭 홀란드 박사는 황금 마스크가 아름다움의 객관적인 기준이 될 수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황금 마스크에 꼭 들어맞는 3차원 이미지를 그린 뒤 그대로 본뜬 얼굴상을 제작했다.
연구 결과 홀란드 박사는 “유럽 여성을 기준으로 봤을 때 황금 마스크는 대중이 생각하는 아름다움과 거리가 멀다”며 “코와 미간은 각이 졌고, 광대뼈와 턱은 남성처럼 크다”고 꼬집었다.
또한 그는 “특히 유럽인과 비율이 전혀 다른 아시아인과 아프리카인 얼굴에는 결코 적합하지 않다”며 “얼굴의 아 름다움을 황금비로 따지는 데에는 함정이 있다”고 비판했다(doi:10.1007/s00266-007-9080-z).
인간의 뇌가 얼굴의 눈코입 등 부위별 생김새에 따라 호감을 느낀다는 연구 결과는있다. 톰 하틀리 영국 요크대 심리학과 교수는 새로운 사람을 만났을 때 첫인상은 얼굴의 특정 부위와 관계가 있다는 연구 결과를 2014년 7월 ‘미국국립과학원회보(PNAS)’에 발표했다(doi:10.1073/pnas.1409860111/-/DCSupplemental).
연구팀은 실험참가자 1000명의 얼굴에 부위별로 점 179개를 찍은 뒤 컴퓨터 알고리즘을 이용해 캐릭터로 나타냈다. 그리고 다른 실험참가자들에게 이 캐릭터를 보여준 뒤 매력도, 카리스마, 친밀도를 점수로 매기게 했다.
그 결과 얼굴 부위의 생김새에 따라 첫 인상이 다르게 나타났다. 가령 미간이 짧고 턱선이 날렵할수록 카리스마가 있고, 눈썹이 길고 눈과 홍채가 크며 턱이 작을수록 매력적이며, 콧방울이 크고 인중이 짧으며 입술이 양옆으로 길고 두툼할수록 친밀하다고 느꼈다.
‘부드러운 미소년’과 ‘동안 여성’이 대세
수년 간 사회학적인 관점에서 아름다운 얼굴을 연구해온 이승철 성형외과 전문의(전 동국대 의대 성형외과 교수)는 “미인상을 황금비 등으로 딱 잘라 정의할 수 없는 이유는 나라와 인종, 그리고 문화마다 미인이라고 여기는 얼굴이 다르기 때문”이라며 “심지어 한 나라에서도 시대와 세대에 따라 미인상이 다르다”고 말했다.
이 박사는 ‘현재 한국인이 선호하는 미인상(2016년 기준)’을 연구해 올해 9월 ‘대한성형외과학회지’에 발표했다(doi:10.5999/aps.2017.44.5.390). 그는 지난해 성형외과 전문의와 일반 대중 290명에게 ‘현재 가장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연예인’과 그 특징을 묻는 설문조사를 진행했다. 연예인은 김태희, 전지현, 설현, 혜리 등 한국에서 활동하는 배우나 가수 등 여성연예인 39명을 대상으로 했다.
조사 결과 얼굴이 작고, 턱은 U자나 V자 형이며, 커다란 눈과 좁은 코, 긴 입술, 깨끗한 피부 등의 특징이 호감을 얻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박사는 본인이 개발한 뷰티 인공지능 프로그램(bapa.co.kr)을 이용해 이들 특징을 합성해 ‘우리나라 대표 여성 미인상’을 만들었다. 이 박사는 “이미 2006년에 동일한 방식으로 만들었던 미인상과 비교해 눈썹과 눈 사이 거리가 멀어졌고, 눈은 더 크고 동그란 형태이며, 입은 더 얇아졌다”고 밝혔다.
이 박사는 “이런 특징은 동안의 특징과 유사하다”며 “동안은 턱이 작고 눈이 둥글며 얼굴이 작은 편”이라고 덧붙였다. 특히 아이돌의 데뷔 나이가 점점 어려지는 현상에 대해서 이 박사는 “동안을 선호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영향을 미쳤을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2006년 당시 10대 청소년과 20세 이상 성인을 대상으로 선호하는 남성 미인상도 도출했다(doi:10.1007/s00266-006-0157-x). 2006년 당시 성인은 눈썹이 진하고 콧날과 턱선이 뚜렷한 얼굴에 호감을 느끼는 것으로 나타났다. 배우 송승헌, 장동건과 비슷한 얼굴이다.
반면 청소년은 얼굴은 좀 더 길지만 폭이좁고 턱이 짧으며, 광대가 부드럽고 입술이 얇은 곱상한 미소년 얼굴을 선호했다. 즉, 성인층에서는 씩씩하고 강인한 남성상이 대세였다면 청소년층에서는 인상이 부드럽고 착해 보이는 남성상이 인기를 끈 셈이다.
시대에 따라, 또는 세대에 따라 미인상이 다른 원인에 대해 이 박사는 “여성의 사회적인 지위가 올라가면서 남녀 미인상에 대한 기준이 모호해진 것도 한 가지 이유일 것”이라며 “최근 남성이 화장을 하고, 모성애를 자극하는 미소년 이미지가 인기를 끄는 것도 이런 영향일 수 있다”고 말했다.
2020 미인상은 ‘표정 미인’
앞으로는 어떤 얼굴이 호감을 얻을까. 이 박사는 “지금까지 ‘정적인 얼굴’이 미인상이었다면 앞으로는 ‘동적인 얼굴’이 대세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얼굴의 구조보다는 표정이 아름다운 얼굴이 뜬다는 얘기다.
그는 “국내 성형수술 수준이 발달하고 최근 10년 동안 비슷한 얼굴의 미인이 많아지면서 이런 얼굴에 더 이상 호감을 느끼지 않는 것 같다”며 “최근에는 웃을 때 입 꼬리가 올라가거나, 보조개가 들어가는 등 표정을 동적으로 만드는 시술을 받는 사람이 많아졌다”고 말했다.
고유한 개성을 띤 얼굴도 미인상으로 떠오르고 있다. 이 박사는 “외모보다는 능력이나 이미지로 평가받는 사회가 되면서 개성 있는 얼굴이 인기”라며 “앞으로는 몇 가지 특징으로 꼽을 수 없이 미인상에도 다양성이 나타날 것”이라고 기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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