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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가한 아침, 평소처럼 30분 일찍 출근한 아무개 씨는 독일의 대표적인 신문인 ‘프랑크푸르트 알게마인’을 펼치고 앉았다. 신문을 다 읽은 다음 그는 무엇을 할까. 영국 사진작가 닉 베시(Nick Veasey)가 찍은 사진을 보면 누구라도 답을 알 수 있다. 아무개 씨는 다 읽은 신문을 접고, 가방에서 삼각 꼴로 자른 식빵 샌드위치 두 조각과 사과 반쪽을 꺼내 간단히 아침식사를 할 것이다. 식사가 끝나면 왼쪽 가슴주머니에 든 휴대전화를 꺼내 누군가와 통화를 하거나, 피곤한 표정으로 안경을 벗고 눈을 비빌지도 모른다.

베시는 X선을 이용해 무엇이든 꿰뚫어 볼 수 있다. 버스에 탄 승객들의 모습은 물론, 크리스마스트리 주변에 놓여 있는 선물 내용물이라든가, 심지어는 노트북이나 휴대전화 같은 기계의 복잡한 내부도 들여다본다. 우스꽝스럽고도 전문적인 취미는 20년 전부터 시작됐다. 그의 여자 친구(현재는 아내)는 방송국에서 TV프로그램을 만들고 있었는데, 어느 날 한 콜라 회사가 내건 추첨이벤트에 대한 내용을 제작하게 됐다. 그래서 콜라 한 더미를 협찬 받았는데, 문제는 어떤 콜라에 당첨 딱지가 들어 있는지 모른다는 것이었다. 당시 평범한 사진작가였던 베시는 여자 친구를 위해 콜라 캔을 X선으로 촬영했다. 결과물을 본 그는 ‘신선한 충격’에 빠졌다. 생각했던 것보다 사진이 꽤 멋있었던 것이다!




[신문에 몰두한 한가한 아침]
신문에 박혀 있는 제목과 광고문구, 신문 뒤쪽으로 보이는 안경과 시계, 휴대전화, 펜, 그리고 가방에 들어 있는 사과와 수첩, 샌드위치, 지퍼손잡이까지…. 훔쳐보는 재미가 있다. 신문을 읽고 있는 아무개 씨는 살아 있는 사람이 아닌 해골표본 ‘프리다’다.




[김빠진 크리스마스]
닉 베시는 크리스마스가 즐겁지 않다. 선물 포장을 뜯지 않고도 내용물이 다 보이기 때문이다. 꼬마가 용돈을 모아 산 구두와 친구가 가져온 와인, 게다가 그가 아내를 위해 준비한 향수도 보인다. 하지만 괜찮다. 가족들에겐 보이지 않으니까.

훔쳐보는 재미에 빠지다

콜라 캔의 속살을 보고 X선 사진에 푹 빠진 그는 주변에 놓인 모든 사물을 꿰뚫어보기 시작했다. 처음에 고른 소재는 꽃이나 열매, 인형 같은 작은 소품이었다. 기기 안에 넣기도 편했을 뿐 아니라 원하는 대로 모양을 잡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X선으로 작품을 촬영하는 작가는 세상에 많지만, 베시의 작품을 들여다보면 소소한 재미가 있다. 그의 작품에는 흥미로운 것들이 잔뜩 숨어 있다. 그는 사진을 더욱 재미있게 꾸미기 위해 포토샵을 이용한다. 흑백으로 이뤄진 X선 사진이 지루해 분홍색이나 파란색을 입히는가 하면, 모델 부분마다 다른 색깔을 입히기도 한다.



[투명인간의 결혼]
어떤 부부의 추억이 깃든 턱시도와 웨딩드레스. 턱시도 옷깃에 달린 부토니아가 아직도 생생하다. 드레스를 풍성하게 펼친 속옷이나 화려하게 반짝이는 비즈가 재미있다.

나의 영원한 모델, 프리다

베시의 작품을 소개할 때 꼭 빠지지 않는 인물(?)이 있다. 산 사람보다 용감하고 작가가 원하는 대로 포즈를 취하는 최고의 모델, 프리다(Frida)다. 프리다는 의대에서 실습할 때 사용하던 해골표본이다. 언젠가 살아 있는 사람이었고 죽은 뒤에는 학생들에게 사람 뼈에 대한 정보를 낱낱이 가르치고 있었다. 그러던 중 베시와 만났고, 그의 모델이 되었다.

베시가 프리다를 모델로 선택한 이유는 X선이 산 사람에게 해롭기 때문이다. 그가 사용하는 X선 기기는 병원에서 사용하는 것과 원리는 같지만 세기는 더욱 강력하다. 병원에서는 몸속 정보를 얻는 동시에 환자가 X선에 최소로 노출되게 해야 하지만, 베시는 가능한 한 뚜렷하고 정교한 이미지를 얻어야 한다. 그래서 그는 공업용으로 만들어진 강력한 X선 기기를 이용한다.



[이번엔 네가 모델이야~]
베시가 사진을 찍는 동안 모델도 카메라를 들었다. 카메라 내부의 모습도 신기하지만 카메라를 들고 있는 손의 모양도 흥미롭다.



[마감을 연주하는 손놀림]
탁탁탁, 마감에 임박해 쇼팽의 즉흥환상곡보다 더 빠르게 키보드를 두드리는 기자의 손을 꿰뚫어본다면 아마 이럴 것이다. 자잘한 것 없이 휑한 스크린과 복잡하게 얽혀있는 부품들이 신기하다.



[5층 건물의 정체모를 속사정]
이것은 인형의 집일까, 실제 건물일까. 사물들이 가지런히 놓여 있는 깔끔한 구조에 모형처럼 느껴지다가도 오르락내리락~ 정교한 엘리베이터나 바쁘게 움직이는 사람들을 보면 실제 건물로 보인다.

모든 것의 영혼을 들여다보라

베시는 점점 큰 모델을 원하게 되었다. 인형의 집이 아니라 실제 집을 담을 순 없을까. 비행기와 기차는 어떻게 찍을까. 그는 부분적으로 찍은 다음, 사진들을 이어 붙여 하나의 작품으로 완성하는 방법을 생각해냈다.

그는 비행기 한 대를 찍기 위해 수백 번이나 X선을 쏘았다. 500개가 넘는 부품을 하나하나 찍어 붙여야만 정교한 내부를 재현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완성된 작품이 한 장의 사진처럼 매끄럽게 이어지도록 붙이는 일에도 상당한 집중력이 필요했다. 이 세상에 꿰뚫어보지 못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으리라, 그는 용기가 생겼다.

베시는 “사물의 내부를 하나하나 들여다볼 때마다 놀라웠다”면서 “X선 작품을 만들기 시작하면서 겉을 보고 속을 판단할 수 없음을 깨달았다”고 말했다. 그래서 그는 “사람이든 사물이든 겉모습만 보고 판단하는 현대인에게 물음을 던져주고 싶다”고 밝혔다. 그가 찍은 모델들이 우리가 상상했던 것보다 더 복잡하고 신기한 것처럼, 겉만 보고는 아무것도 알 수 없기 때문이다.

베시가 전하고자 하는 세상의 느낌은 아름다우면서도 기묘하고, 단순하면서도 복잡하다. 또 화려하면서도 공허하다. 오늘도 베시는 슈퍼마켓에 들러 모델을 찾는다. 생각보다 복잡한 것도, 의외로 단순해 실망을 주는 것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모든 사물은 놀라운 세계를 내면에 숨기고 있다’는 그의 생각은 변치 않는다.



[굴삭기를 운전하는 프리다(위)]
이번에는 프리다가 굴삭기에 앉았다! 굴삭기는 어떤 원리로 흙을 퍼 올리는 것일까. 사진을 오랫동안 들여다보니 알 것도 같다.

[프리다는 혼자 놀기의 달인]
부앙~ 노련하게 버스를 모는 운전기사, 손잡이를 꼭 붙잡고 있는 중절모를 쓴 노인, 이번 역에서 내리려고 미리 계단에 내려 서 있는 사람…. 모두 프리다가 연기한 뒤 포토샵으로 합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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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5월 과학동아 정보

  • 이정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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