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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평 남짓 될까. 말 그대로 아수라장이었다. 책상만 8개, 각양각색의 스티로폼 모형이 놓여 있었다. 어떤 건 미완성이라 깨끗한 반면, 어떤 건 누군가 애써 붙여 놓았을 나무와 사람 모형이 다 쓰러져 달랑거리고 있었다. 모형일 뿐인데, 실제 도시의 흥망성쇠가 보이는 듯 했다.

 

 

소신있게 건축학도 길 선택


8월 7일 도시재생과 지역공동체 활성화를 연구하고 있는 김현주 한국교통대 충주캠퍼스 글로벌융합대학원 석사과정 연구원을 만났다. 그가 안내한 방은 건축학과 학생들이 공동으로 사용하는 스튜디오. “미처 청소를 못했다”던 그는 곧 “이게 내 실제 생활”이라며 머쓱하게 웃었다.

 

어수선한 틈바구니에서 김 연구원이 현재 작업 중인 자신의 작품을 꺼내 왔다. 두 팔을 한껏 벌려야 가까스로 양끝을 잡을 수 있었다. 현재 도시재생 사업 중인 구충주역 주변 반경 1km 지역을 1000대 1 비율로 축소한 모형이라고 했다. 스티로폼에 꽂아놓은 모형 나무의 이파리들이 ‘토도독’ 소리를 내며 떨어졌다.

 

직업군인인 아버지를 따라 자주 이사를 다녀야 했던 탓에 ‘나만의 공간’에 대한 로망이 생겨 건축학과에 진학했다는 김 연구원. 그의 부모는 건축학과 진학을 반대했지만 소신껏 선택했고, 후회는커녕 자부심이 크단다.

 

“여전히 ‘건축은 남자가 하는 일’ ‘여자는 하기 힘들다’는 편견이 있더라고요. 하지만 제 동기생 중 절반이 여자고, 여학생이 더 잘한다는 얘기도 많이 듣는답니다.”

 

공부를 할수록 건축설계보다 도시재생에 끌렸다.

 

건축학계에서도 이 분야에는 여성 전문가가 적은 편이다. 김 연구원은 “주변 사람들의 우려가 많았지만, 내가 재미있고 좋아하는 걸 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충주시 구도심 재생방안은


김 연구원은 지난해 지도교수이자 충주시 도시재생 총괄코디네이터인 최순섭 교수의 권유로 ‘충주시 공가 및 공점포의 현황 및 특성에 관한 연구’ 제안서를 작성해 한국여성과학기술인지원센터(WISET)의 ‘여대학(원)생공학연구팀제 지원 사업’에 지원했다. 이를 통해 그는 생애 첫 연구책임자로 발탁됐다. 학부 연구생 2명, 여고생 4명과 한 팀을 이뤄 5개월간 충주시 곳곳을 누볐다.

 

“충주시의 구도심이 쇠퇴한 지는 오래예요. 건물들이 많이 낡았고, 도로변 1층 상가들만 유지되는 정도죠.”

 

전공분야가 나오자 시종일관 수줍고 조용하던 그의 태도가 적극적으로 돌변했다. 연구기간 내내 주민들 이야기에 귀동냥을 많이 했다. 외지에서 사람들이 많이 올 수 있도록 주차타워가 필요하다고 얘기하는 주민들이 많았다.

 

 

주변 사람들의 우려가 많았지만,
제가 재미있고 좋아하는 걸 하기로 했어요"

 

 

그는 “주차타워는 주차 외에 다른 기능이 없는 건물인 만큼 도시의 문화나 개성을 해치지 않고 짓기가 쉽지 않다”며 “도시재생은 경제뿐만 아니라 공동체와 문화도 함께 되살리는 걸 목표로 한다”고 설명했다.

 

주민과의 공감대 없이 도시재생 사업을 진행하면 오래 지속하기 어렵다. 이 때문에 도시재생 사업을 진행한 뒤에 또다시 쇠퇴한 경우도 많다. 이 경우 도시재생 전보다 빈 공간이 더 많아지기도 한다. 김 연구원은 “도시재생 사업 이후의 실패 원인을 분석해서 ‘도시재생 사전 가이드라인’을 만들고 싶다”고 밝혔다.

 

사진 촬영을 위해 매무새를 만져주는데, 머리카락 색이 특이했다. 한창 유행인 ‘애쉬그린’이었다. 스트레스가 많이 쌓일 때 미용실에 가면 마음의 평안을 얻는다고. 그러고 보니 1992년생, 20대 중반 나이다. 대한민국 20대 여성의 삶의 고민은 뭘까.

 

“나중에 결혼하고 출산한 뒤에도 경력을 이어나갈 수 있을까요? 예측도 안 되고 불안하네요. 지금은 다른 생각 없이 연구에만 집중하려고 합니다. 장기 계획만큼 오늘을 성실히 사는 것도 중요하니까요.”

 

 

 야생 영장류 연구자에서 과학정책 전문가로 

 

‘매일 새벽 6시, 인도네시아 자바 섬 주민 세 명으로 꾸려진 팀과 함께 열대우림에 나갔다. 무전기만 들고 흩어져 야생 자바긴팔원숭이를 찾았다. 한 가족을 찾으면 네 명이 한 개체씩 맡아 15분 간격으로 하루 종일 행동을 기록했고, 똥도 주워 모았다. 시료를 보관하기 위해 옆 마을 냉장고까지 4km를 걸어 다녔다. 인생에서 가장 괴롭고도 행복했던 13개월이었다.’

 

 

인도네시아 열대우림에서 야생 원숭이 연구


8월 8일, 그 열대우림과 가장 비슷한 국립생태원 에코리움 열대관에서 고은하 국립생태원 연구원을 만났다. 그가 내민 낡은 수첩에는 2010년 당시 관찰 기록이 빼곡했다. 사진 촬영을 하기 위해 현장연구를 할 당시의 옷과 장비를 갖춘 그는 “너무 오랜만에 이 옷을 입으니 설렌다”고 했다.

 

고 연구원은 이화여대 분자생명과학과 1학년에 재학 중이던 2005년 장이권 에코과학부 교수의 권유로 왕귀뚜라미와 청개구리 연구를 시작했다. 이후 야생 영장류로 관심이 확대됐고, 에코과학부 동물행동생태학 전공 석박사통합과정에 진학해 2010년 인도네시아 자바섬 열대우림으로 떠났다. 그곳에서 자바긴팔원숭이의 일부일처제와 사회구조를 연구했다.

 

연구는 재미있었지만 힘든 순간도 많았다. 하루는 팀원들과 임금 협상 문제로 갈등을 빚었고, 어리고 여자라고 무시하는 것 같아 남성적으로 보이고 싶어 외려 강하게 했더니 그를 숲에 남겨두고 떠났다.

 

나침반에 의지해 겨우 돌아올 수 있었다. 그 때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남자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이 경험을 한 뒤로 굳이 남성적으로 행동하지 않기로 했어요. 대신 타인에 대한 관찰력과 공감능력이 뛰어난 저만의 장점을 활용하기로 했죠.”

 

모두가 만족할 만한 근무 시스템을 만들기 위해 노력했고, 연구가 끝날 무렵엔 팀원들이 그를 가장 인상깊은 과학자로 꼽았다. 협력이 잘 되니 연구 성과도 만족스러웠다. 한국 영장류학계 최초로 위를 절개하거나 피를 뽑지 않는 방법(대변)으로 야생 자바긴팔원숭이 암컷의 호르몬을 분석하는 데 성공했다.

 

 

육아도 연구도 잘하고 싶은 열혈연구자


2014년 8월 고 연구원은 국립생태원에 입사했다. 야생 영장류 연구를 계속하고 싶었지만 건강이 나빠져 그럴 수 없었다. 지금은 박사논문을 준비하는 동시에 중장기 연구계획을 세우고 심의와 평가를 하는 연구기획관리 업무를 하고 있다. 이 외에도 대중강연과 과학대중서 집필 등으로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한국여성과학기술인지원센터(WISET) 취업탐색 멘토링 그룹의 11년차 멘티이자 2년차 멘토로 후배 과학자 양성에도 열심이다. 지난해에는 ‘올해의 멘토상’을 받았다.

 

취미로 축구를 하고 대한축구협회 1급 심판인 남편을 따라 경기를 촬영하기도 한다. 고 연구원은 “생태학의 가장 중요한 키워드는 ‘관계’”라며 “운동장이란 공간에서 선수들이 서로 경합을 벌이는 모습이 행동생태학 연구의 축소판처럼 느껴진다”고 말했다.

 

인터뷰 내내 웃음이 끊이지 않던 그였지만, 진로 고민이 크다며 속내를 털어 놓았다. 원래 전공인 야생 영장류 연구에서 멀어졌기 때문에 앞으로 어떤 경력을 만들지 고민이라고. 최근 연구기획관리 업무를 하며 정책에 관심이 생겨서 박사논문을 쓴 뒤에는 환경정책을 새롭게 공부할 계획이다.

 

올해 서른 두 살인 그는 그 사이에 결혼도 했고, 지금은 뱃속에 14주차 태아가 자라고 있다. 임신이 주는 영향은 생각보다 크다. 고 연구원은 “임신한 뒤 가장 많이 들은 말이 ‘박사 졸업을 포기했냐’는 거였다”며 “이미 겪은 선배들은 출산 전에 꼭 박사논문을 완성하라고 조언했다”고 말했다. 사실 환경정책 공부를 올해 하반기부터는 바로 시작할 계획이었는데, 몸에 어떤 변화가 생길지 몰라 미뤘다.

 

“지금은 출산과 육아가 가장 큰 고민이에요. 어떤 엄마가 될지 궁금합니다. 흙에서 놀고 동물과 함께하는 환경을 만들어 주고 싶어요. 물론 또다시 저의 성장도 도모해야겠죠.”

 

 

 사람 살리는 소프트웨어 개발자 

 

“지금은 의사가 뇌 자기공명영상(MRI)을 눈으로 보고 종양을 따라 그려요. 그 뒤에 진단하고 치료 계획을 세우죠. 시간이 오래 걸리고 자칫 실수를 할 수도 있어서, 이 과정을 자동화하려는 겁니다.”

 

8월 10일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 의학연구혁신센터에서 이명은 서울대 차세대융합기술연구원 책임연구원을 만났다. 그는 영상처리 전문가로, 뇌 자기공명영상에서 종양의 위치와 크기, 모양을 파악해 자동으로 3차원 종양 그림을 만드는 소프트웨어를 개발하고 있다.

 

 

3차원 뇌 종양 그림 자동 추출하는 소프트웨어


이 책임연구원은 국립목포대 전자공학과(현 전자·정보통신공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영상처리를 주제로 2007년 박사학위를 받았다. 전남대에서 박사후연구원으로 일하던 중 서울로 직장을 옮길 기회가 찾아왔다. 경기 고양시 킨텍스에서 개최된 의료영상 관련 학술대회에서 발표를 했는데, 그걸 본 김종효 서울대 의대 영상의학교실 교수가 이직을 제안했다.

 

이를 계기로 전남대에서 계약교수로 일하던 2011년 서울대 의대 의학연구원 방사선의학연구소에서 선임연구원으로 일을 시작했다. 2013년 9월부터는 서울대 차세대융합기술연구원 의료IT융합기술연구실 책임연구원으로 일하고 있다.

 

사실 영상처리는 여성 전문가가 적은 분야다. 1990년대만 해도 소프트웨어 개발은 지금처럼 성황이 아니었고 남자만 하는 일이라는 고정관념도 강해서 여성 인재가 쉽게 발을 들이지 않았다. 지금도 연구실에서 8명 중 유일한 여성이다. 그는 “많은 여성 후배들이 환경이나 분위기에 적응하지 못하고 떠났다”며 “나도 외로운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다행히 최근에는 연구할 ‘맛’이 난다. 빅데이터와 인공지능, 헬스케어가 화두가 되면서 소프트웨어와 의학을 융합한 자신의 연구가 더 재미있어졌다고. 그는 “의료영상 처리는 생명과 직결되는 만큼 정확하고 치밀해야 한다”며 “나의 꼼꼼한 성향을 강점으로 발휘하고 있다”고 말했다.

 

 

비정규직 연수 프로그램으로 한 단계 도약


어렸을 적 그의 장래희망은 선생님 또는 교수였다. 학부 때 교직과목을 이수하고 교생실습도 나갔다. 국립대 최초 자교 출신 여교수를 꿈꾸며 국립목포대 대학원에 입학했다. 자신감은 충분했는데, 현실은 쉽지 않았다.

 

현재 이 책임연구원은 1년마다 계약을 갱신해야 하는 비정규직 신분이다. 언제고 일자리를 잃을 수 있어서 불안하다. 한 단계 도약할 기회를 만들고 싶어 지난해 한국여성과학기술인지원센터(WISET)의 문을 두드렸다.

 

‘비정규직 학회·연수 프로그램’에 지원했고, 세계 최고의 암 병원 중 하나로 꼽히는 미국 메모리얼 슬론 케터링 암센터에서 한 달간 연수할 기회를 얻었다.

 

이곳은 IBM과 손잡고 암 진단 인공지능(AI) ‘왓슨’을 공동개발하고 최초로 도입한 병원이다. 그는 연수를 통해 중견연구자로서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많이 배웠다. 그 덕인지 최근엔 좋은 일도 생겼다. 한국연구재단 ‘한-EU 연구자 교류 협력 사업’에 선정돼 독일 막스플랑크 인간인지및뇌과학연구소(MPI-CBS)에서 올해 10월부터 1년 동안 뇌 영상처리를 연구하게 됐다. 출국까지 두 달 정도 남았는데, 열심히 준비해 괄목할 만한 성과를 내고 싶단다.

 

“지금은 연구 생각뿐이에요. 좋은 성과를 내기 위해 준비, 그리고 성과를 유지하기 위해 또 준비하죠. 힘들 때는 이 연구를 왜 해야 하는지 스스로를 설득해요. 계속 그렇게 걷고 싶습니다.”

 

 

류안나 (주)워터앤라이프 대표가 대학을 졸업하고 캄보디아에 잠시 머물 때였다. 어느 날 집 뒷마당에 작은 물웅덩이가 있어 봤더니, 빨래를 막 끝낸 세탁기에서 흘러 나오는 세제 섞인 물이 그대로 땅으로 스며들고 있었다. 집 앞마당에 있는 펌프 우물에서 똑같이 희뿌연 색깔의 물이 나온다는 게 더 충격적이었다.

 

한국에 돌아온 그는 적정기술을 연구하기로 결심했다. 워터앤라이프 정수기의 씨앗은 이미 그때 심어진 셈이다. 올해 초 광주과학기술원(GIST) 창업진흥센터에 둥지를 튼 류 대표를 8월 9일 만났다.

 

 

샴푸도 못 쓰게 한 어머니의 영향


류 대표는 한동대 건설도시환경공학부(현 공간환경시스템공학부)를 졸업하고 GIST 지구·환경공학부에서 수(水)처리 기술을 주제로 2011년에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가 유년기를 보낸 1980년대에는 환경에 대한 인식이 그리 높지 않았는데, 어머니는 당시부터 일회용품을 못 쓰게 하면서 어린 그에게 “네가 나중에 분해되는 비닐을 개발하라”고 말했다. 특히 “개발도상국 사람들은 깨끗한 물을 먹지 못한다”며 샴푸를 못쓰게 했다. 류 대표는 자연스럽게 수처리 기술에 관심을 갖게 됐다.

 

학부를 졸업하고 적정기술을 본격적으로 연구하고 싶어 토양으로 하수처리를 하는 GIST 연구실에 지원했다. 그런데 엉뚱하게도 나노기술과 관련된 연구과제를 담당하게 됐다.

 

“주변 사람들이 흙을 퍼 날라야 하는 하수처리 연구는 힘들 거라고 했어요. 여성이니까 섬세한 나노기술 연구를 잘 할거라고도 했죠. 제가 진짜 하고 싶은 건 하수처리 연구였는데 말이에요.”

 

류 대표는 결국 이렇게 적정기술과 멀어지는 건가 낙담했지만, 개발도상국에 깨끗한 물을 공급하고 싶다는 꿈 하나만 보고 견뎠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서 기회는 다시 찾아왔다. 그는 “과거 적정기술은 ‘로테크(Low Tech)’, 즉 비교적 단순한 기술을 의미했다”며 “그러나 이제 적정기술은 첨단과학기술을 현지에 어떻게 적용할지 연구하는 개념이 됐다”고 설명했다. 개발도상국도 이제는 인터넷으로 첨단기술을 접하는 기회가 늘어 기존의 단순한 기술에 만족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하수 중력식 막여과 기술, 정수기에 도입


졸업 후 무역 사업을 하던 그에게 지난해 8월 새로운 기회가 생겼다. GIST 지구·환경공학부 김경웅, 이윤호 교수가 식수 정수기용 중력식 막여과 기술을 개발한다는 소식을 들은 것. 중력식 막여과 기술은 말 그대로 전기펌프를 쓰지 않고 순수하게 중력만으로 물이 필터를 통과하게 하는 기술이다. 펌프로 압력을 가하는 기존 정수기 방식과 비교해 오염입자가 필터의 미세한 구멍을 덜 막기 때문에, 고가의 필터를 자주 갈아 끼울 수 없는 개발도상국 주민들에게 안성맞춤이다.

 

 

"주변 사람들이 흙을 퍼 날라야 하는 하수처리 연구는 힘들 거라고 했어요
여성이니까 섬세한 나노기술 연구를 잘 할 거라고도 했죠
제가 진짜 하고 싶은 건 하수처리 연구였는데 말이에요"

 

 

사업화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번뜩 들었고 약 4개월 만에 일사천리로 회사를 설립했다. 박사학위를 가진 전문가라 투자자들도 기술력에 대해서는 걱정하지 않는다고. 올해 한국여성과학기술인지원센터(WISET) 창업경진대회에서 최우수상도 받았다. 지금은 양산 방안을 고심하는 중이다.

 

“저는 진취적인 사람이에요. 서른 아홉이라 결혼도 고민이긴 한데, 조금 더 나중에 생각하려고요. 사업을 시작했으니 꼭 성공시키고 싶습니다.”

 

 

 이경미 

국립수산과학원 서해수산연구소 해양수산연구사

 

 

 물고기 ‘육아’ 고민하는 과학자 

 

지난해 8월, 계속된 폭염으로 바다 수온이 최고 섭씨 30도를 넘어가면서 충남 천수만 가두리 양식장에서 우럭 10t(톤)이 집단폐사했다. 인천 을왕리해변 인근 국립수산과학원 서해수산연구소 양식산업동에서 만난 이경미 양식산업과 해양수산연구사는 “최근 수온이 매년 섭씨 1도씩 오르고 있다”며 “폭염에 반복되는 어류 폐사 피해를 어떻게 막을지 연구 중”이라고 말했다.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로 경력 단절


이 연구사는 부경대 화학공학과를 졸업하고 부경대 수산과학대 생물공학과에서 해양미생물 연구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2002년 일본 문부과학성 연구장학생으로 선발돼 도쿄대 어류 생리학연구실 박사과정에 입학했다. 참복과 물고기인 자주복이 어떤 원리로 체내 삼투압을 조절하는지 연구해 2005년 박사학위를 받았고, 같은 연구실에서 하나의 연구 프로젝트를 담당하는 특임연구원으로 자리도 잡았다.

 

일본 기업에서 일하던 지금의 남편을 만나 결혼해 2009년에는 아들을 출산했다. 다른 가족 없이 남편과 둘뿐이었지만, 도쿄대 안에 보육시설이 있어서 육아휴직을 하지 않았다. 이 연구사는 “생후 9주 된 아이를 보육시설에 맡겨 마음은 아팠지만, 아이에게 무슨 일이 있거나 모유 수유할 시간이 되면 언제든 가볼 수 있는 분위기였기 때문에 연구를 계속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한창 활발하게 연구를 이어가던 2011년 3월 동일본 대지진으로 후쿠시마 제1원자력발전소에서 방사성 물질이 누출됐다. 아들은 겨우 생후 20개월. 어린 아들의 건강이 염려됐지만, 자리를 쉬이 포기할 수는 없었다. 서둘러 아이를 부산 부모님 댁에 맡기고 돌아왔다. 그러다 둘째를 임신했고, 결국 2011년 10월 말 일을 그만두고 귀국했다. 한국은 오히려 아이 맡길 곳을 찾기가 어려웠다. 남편은 한국 기업으로 옮긴 뒤 야근이 늘었고, 어린 두 아들을 돌볼 사람은 그뿐이었다. 육아에 전념했다. 그렇게 연구 경력이 끊겼다.

 

폭염 속 물고기 지키는 기술 개발


이 연구사는 한국여성과학기술인지원센터(WISET) ‘여성과학기술인 R&D 경력복귀 지원사업’ 수혜를 받아 2년 만에 연구자로 복귀했다. 지금은 주로 충남 서산 천수만 가두리 양식장을 오가면서 높은 수온에 의한 폐사 피해를 막는 기술을 연구 중이다. 수온이 치솟으면 용존산소량이 감소해 물고기가 죽기 때문에 그늘막과 산소 공급기 등을 설치한다.

 

다시 연구를 할 수 있게 돼 행복하지만, 이게 끝이라거나 성공이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앞으로 어떤 연구를 할지 고민이 크다. 10년 넘게 어류 생리에 대한 기초연구를 했는데, 지금은 어민들에게 도움이 되는 양식 기술을 주로 연구하고 있다.

 

“앞으로 20년은 더 연구자로 살아야 하잖아요. 저만의 연구 주제를 찾아, 훗날 그 분야에서만큼은 사람들이 가장 먼저 떠올리는 전문가가 되고 싶습니다.”

 

지치지 않는 노하우를 묻자, 자신의 취미를 아이들과 공유한다는 답이 돌아왔다. 휴일엔 바다로 나가 이 연구사가 좋아하는 스노클링을 함께 하고, 집에는 어항을 두 개나 놓고 물고기를 키우고 있다.

 

“저만의 버킷리스트가 있어요. 두 아들이 아직 어려 엄두를 못 내고 있을 뿐이죠. 언젠가 꼭 스킨스쿠버 자격증과 보트 조종 면허를 딸 거예요.”

 

 

"저만의 연구 주제를 찾아, 훗날 그 분야에서만큼은

사람들이 가장 먼저 떠올리는 전문가가 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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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ro. 과학계에 부는 ‘걸크러시’

Part 1. 너와 나의 연결고리 ‘과학자 언니’

Part 2. 5人 5色 인터뷰

Part 3. “나는 ‘과학자 엄마’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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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09월 과학동아 정보

  • 충주=우아영 기자
  • 사진

    이서연, 현진, 남윤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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