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기장 환경 : 금이나 은으로 만들어졌으며, 온도는 영하 268℃
경기장 길이 : 약 100nm(0.0001mm)
코스 : S자 형태(20nm 달리기+한 번 턴하기+50nm 달리기+한 번 턴하기+20nm 달리기)
경기 시간 : 최대 38시간
레이스를 시작하기 전에 트랙을 청소하는 시간 : 최대 6시간
주의! 나노카를 미는 행위는 허용되지 않음. 스스로 달려야 함
지난 4월 28~29일 프랑스 국립과학연구소(CNRS)에서는 세계 최초로 나노 크기 자동차들의 경기가 열렸다. 금이나 은으로 만들어진 영하 268℃의 경기장에서 5nm(나노미터, 10억 분의 1m) 이하 크기의 나노카들이 무려(?) 100nm(0.0001mm)의 트랙을 최대 38시간 동안 달렸다. 나노카들은 지난 2016년 노벨화학상을 받은 분자기계와 같은 원리로 만들어졌다. 분자기계는 빛이나 열, 전자와 같은 외부 자극에 반응해 분자가 결합된 부분이 한 방향으로 회전하거나 분자의 모양이 바뀌면서 일정한 기계적 움직임을 할 수 있는 분자 혹은 분자 집합체다. 나노카 레이스는 주사터널현미경(STM)으로 중계됐으며, 나노카들은 STM 탐침에서 나오는 전류로 움직였다.

나노카 레이스의 1등은 미국 라이스대와 오스트리아 그래즈대가 연합한 나노프릭스 팀과 스위스 바젤대의 스위스 팀이 공동으로 수상했다. 나노프릭스 팀의 나노카는 4개의 바퀴가 있으며, 윗부분에도 마치 태엽처럼 돌아가는 둥근 분자를 가지고 있다. 이 나노카는 은으로 만든 경기장을 29시간 동안 1000nm나 달렸다.
스위스 팀의 나노카는 바퀴가 없다. 대신 호버크래프트처럼 공중에 떠서 앞으로 움직인다. 스위스 팀의 자동차는 6시간 30분 동안 133nm를 달리며 경기장을 완주했다. 스위스 팀의 리더인 스위스 바젤대 물리학과 레미 파울락 박사는 “호버크래프트처럼 공중으로 떠서 이동하기 때문에 마찰력이 적은 것이 우승 비결”이라며 “그 대신 나노카가 경기장 표면에서 점프해 사라지는 경우가 종종 있다”고 말했다.
2등은 나노카가 43nm를 움직인 미국 오하이오대 밥캣 나노웨건 팀에게 돌아갔다. 이들이 만든 나노카는 아주 커다란 네 개의 바퀴를 가지고 있는데, 경기에 참가한 나노카 중 가장 큰 크기였다.
3등은 11nm를 움직인 독일 드레스덴대의 나노윈드밀컴퍼니 팀이 차지했다. 나노윈드밀컴퍼니 팀의 나노카는 풍차처럼 생겼는데, 아쉽게도 경기 도중 분자가 파괴돼 더 달릴 수가 없었다.
가장 아름다운 나노카와 정정당당 나노카
경기에 참여했지만 거의 달리지 못한 나노카들도 있다. 프랑스 툴루즈대의 툴루즈 나노모바일클럽 팀과 일본국립물질재료연구기구(NIMS) 재료나노구조공학국제센터(MANA)의 님스마나 팀이다. 나노모바일클럽 팀의 나노카는 300개의 원자로 만든 아주 복잡한 모양을 하고 있다. 하지만 아쉽게도 경기를 시작하자마자 경기장에서 튀어나가 전혀 달릴 수가 없었다. 대신 ‘가장 아름다운 나노카’ 상을 수상했다.

님스마나 팀의 나노카는 바퀴 없이 애벌레처럼 꿈틀거리며 움직인다. 그런데 경기에서는 아쉽게도 컴퓨터의 소프트웨어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 1nm를 달린 뒤 더 이상 움직일 수 없었다. 님스마나 팀은 소프트웨어를 복구하려고 했지만 두 번째로 소프트웨어 문제가 발생하자 다른 팀의 레이스에 방해가 될 것을 우려해 경기를 포기했다. 님스마나 팀은 페어플레이 상을 수상했다.
어떻게 보면 세상에서 가장 느린 자동차 경기다. 나노카 레이스는 왜 열린 걸까. 나노카 레이스의 주최자인 프랑스 국립과학연구소 재료정교화및구조연구센터의 크리스찬 요아킴 선임연구원은 “사람들이 분자 모터 및 분자 자동차에 관심을 갖게 하기 위해 경기를 기획했다”고 밝혔다.
아직은 분자 모터 및 분자 자동차가 생각보다 신통치 않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생각해 보라. 전기모터가 개발되고 세상이 얼마나 바뀌었는지를. 분자 자동차도 우리 세상을 기가 막히게 바꿀지도 모른다. 그게 언제일지는 알 수 없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