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첫 번째 질문
머리·얼굴·뼈… 세포 하나가 ‘열일’?
“척추동물에서 유일하게 흥미로운 부분은 바로 신경능세포(neural crest cells)의 존재다.” 영국의 발달생물학자 피터 토로굿이 남긴 유명한 말입니다. 신경능세포가 도대체 어떤 세포이기에 척추동물의 수많은 세포 가운데 가장 매력적인 세포로 꼽힌 걸까요?

배아가 발달을 시작한 뒤 약 한 달이 지나면 뇌와 척수가 될 신경관이 만들어집니다. 신경능세포는 이런 신경관이 표피로부터 떨어져 나올 때 신경관으로부터 빠져나온 세포들입니다. 신경관이 형성되기 전에는 세포들이 벨크로(찍찍이) 역할을 하는 단백질을 발현해서 주변 세포와 촘촘히 연결돼 있는데요. 신경관이 형성되면 신경관 위쪽 세포들이 이런 단백질 형성을 중단하고 세포층으로부터 자유롭게 떨어져 나와 움직입니다. 이런 현상은 배아의 발달 과정 여기저기에서 자주 발견된답니다.

등 → 배 수평으로만 움직이는 세포
배아의 등쪽에 있는 신경관이 머리 끝부터 엉덩이까지 이어져 있기 때문에 신경능세포 역시 배아의 머리, 가슴, 몸통 부분에 모두 존재합니다. 이런 신경능세포의 움직임을 관찰해 보면 하나의 규칙을 발견할 수 있는데요. 세포들이 등에서 배쪽으로 수평 이동할 뿐, 위아래로는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쉽게 말해 머리쪽에서 만들어진 신경능세포가 몸통쪽으로 내려가는 일은 없다는 뜻이죠. 이런 규칙은 배아의 발달 과정에서 매우 중요합니다. 같은 신경능세포지만 머리 부분에 있는 세포와 몸통 부분에 있는 세포는 각기 다른 분화능력을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머리 부분에 위치한 신경능세포는 뼈와 연골로 분화할 수 있는 반면, 몸통에 있는 신경능세포는 스트레스나 위험에 반응하는 교감신경절을 만들어 냅니다.
신경능세포가 제대로 이동하지 않으면 심각한 질병이 발생하는데요. 한 예로 ‘히르슈슈프룽 병’이 있습니다. 장 운동에 큰 역할을 하는 장관신경절세포가 선천적으로 없는 질환입니다. 이 병을 앓고 있는 아기를 보면 음식물이 장에서 내려가지 못해 배가 비정상적으로 볼록하게 튀어나와 있습니다. 장관신경절세포는 신경능세포가 만들어 내는 다양한 세포 중 하나로, 배아 발달 과정에서 신경능세포가 이동을 멈추면 장관신경절세포가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히르슈슈프룽 병은 복부 팽만과 변비를 일으킬 뿐만 아니라, 배출되지 못한 대변에 균을 자라게 해 장염까지 일으킬 수 있습니다. 실제로 미국 필라델피아에 위치한 뮤터의학박물관에는 이 병을 앓다가 극심한 변비로 사망한 환자의 결장이 전시돼 있습니다. 이 결장은 정상적인 장보다 20cm나 더 길고, 사망 당시 약 18kg의 대변이 들어 있었다고 합니다.

두 번째 질문
초파리 다리에 ‘눈’이 생긴 사연?
세포에 있는 많은 유전자 사이에는 계급이 존재합니다. 예를 들어 유전자 A가 발현돼 유전자 B를 발현시키고, 유전자 B가 다시 유전자 C, D, E를 발현시키는 구조죠. 즉 유전자 B, C, D, E의 발현 여부는 유전자 A가 결정하게 됩니다. 유전자 A가 도미노의 첫 블록이라고 생각하면 이해가 쉽겠네요. 이렇게 유전자들의 네트워크 가장 꼭대기에서 지시를 내리는 유전자를 ‘핵심 조절자(Master regulator)’라고 합니다. 일종의 유전자 우두머리라고 할까요.
핵심 조절자는 특정 기관이 발달하는 데 필수적인 유전자인 경우가 많습니다. 핵심 조절자가 발현돼 잠들어 있던 하위 유전자들을 깨우고, 이로 인해 특정한 구조가 만들어지는 식이죠. 돌연변이 등의 이유로 이 핵심 조절자가 발현되지 않으면 해당 기관 전체를 발달시킬 수 없습니다.
날개와 다리에 눈을 만들어내는 능력자
핵심 조절자로 가장 잘 알려진 것 중 하나는 ‘Pax6’ 유전자입니다. Pax6는 초파리에서 처음 발견됐는데요, 이 유전자가 제 기능을 못하면 눈이 없는 초파리가 태어납니다. 눈이라는 기관이 한 종류의 세포로만 이뤄지는 것도 아니고, 여러 가지 기능을 하는 많은 세포들이 모여 만들어지는데 유전자 하나를 지웠다고 눈 전체가 없어진다니 충격이죠.
하지만 더 놀라운 실험이 있습니다. 스위스 바젤대 연구팀은 Pax6를 초파리의 날개와 다리에 발현시켜봤습니다. 그 결과 Pax6의 하위 유전자들이 연이여 발현 되면서 날개와 다리에도 마침내 눈과 비슷한 구조가 만들어졌습니다(doi:10.1126/science.7892602). 이렇게 생긴 눈은 겉모습만 눈과 유사한 것이 아니라, 실제 눈에서 볼 수 있는 다양한 세포와 신경세포들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고작 유전자 하나를 발현시켰을 뿐인데 날개와 다리에 눈을 만들어 내다니 대단하죠?

최영은_yc709@georgetown.edu
미국 바드대에서 생물을 전공하고 하버드대에서 발생학 및 재생생물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외우는 과학이 아닌 질문하는 과학의 즐거움을 나누고 싶어 과학교육에 발을 담그게 됐다. 현재 미국 조지타운대 생물학부에서 유전학, 발생학 등을 가르치며 새로운 대학 과학교육 시스템을 개발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