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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요기사][SF 소설] 한여름의 투명도감 I 4장 “무더위 속에 빛나며” I

    AI 생성 이미지(Midjourney)

     

     편집자 주 
    과학동아 창간 40주년을 맞아 2026년 상반기, 짐리원 작가의 중편 SF 소설 ‘한여름의 투명 도감’을 연재합니다. 재건축을 앞둔 서울의 아파트 단지에서 투명한 생물들의 이야기를 따라가며, 과학이 반드시 바라봐야 할 생명의 섬세함을 SF로 확장합니다.

     

    “학생들 여기서 뭐 해요? 이 창고, 한참 전에 폐쇄했는데?”
    창문을 내리며 말을 거는 택시 기사의 목소리가 카랑카랑했다. 큰 눈에 호기심이 비쳤다. 노아와 모아는 서로 마주 보았다.
    “아니, 나는 창고 다시 열었나 해서. 궁금해서 와 봤지.”
    “창고 운영할 때 자주 손님 모셨어서”라고 기사는 덧붙였다. 잠시 생각을 해보던 노아가 입을 열었다. 일부러 만든 듯한 가벼운 말투였다.
    “기사님, 포천에 현장 하나 있잖아요.”
    “더바이빌리지?”
    “네, 그쪽으로 부탁드리겠습니다.” 노아가 말했다. 기사가 되물었다. 조금 의문이 담긴 말투였다. “여기 일하는 분들이에요?”
    “아이구, 말하자면 복잡한데. 부모님이 일하셔서요.”
    노아는 얼버무린 뒤 택시 문을 열고, 모아에게 눈짓했다.
     
    당고새를 택시에 태우는 데 시간이 걸렸다. 하지만 차 문을 열고 참을성 있게 기다리자, 결국 두 마리가 머리를 들이밀고 뒷좌석을 살폈다. 검사를 마쳤는지 먼저 꾸엥이 푸드득 올라탔고, 구룩도 뒤를 따랐다. 그렇게 투명한 새들이 올라탈 때까지 운전석 앞 거울에 비친 기사님은 의아한 표정이었지만 그래도 별말 없이 기다려 주었다.
    새 두 마리를 가운데 앉힌 침묵의 드라이브였다. 도시의 총천연색이 뒷좌석을 비출 때마다 새들의 몸이 보였다가 보이지 않기를 반복했다. 인간의 도시에서 이 새들은 꼭 반만 존재했다. 노아의 팔에 감긴 불가살이에 내려앉은 불빛이 액체처럼 비쳤다. 그 모습이 산호초처럼 아름답다고 생각할 때마다 불가살이는 다섯 개 머리 중 하나를 들어 주변을 둘러보았다. 소리 없는 움직임이 섬뜩할 정도였다.

    택시는 서곤륜동 번화가에서 잠시 멈췄다. 모아가 세밑동까지 돌아갈 것 없이 서곤륜역 근처에서 내려달라고 했기 때문이다. 새벽이라 더위도 가셨고, 여기서부터 걸어가면 될 일이었다. 모아가 한 발을 택시 밖에 디뎠다. 차 문 너머로 서곤륜동의 아파트, 백화점, 새로 지은 거대한 쇼핑몰들이 요새처럼 다가섰다. 그 사이사이로 차들이 쌩쌩 내달렸다.
    노아에게 받은 돈도 있으니 여기서 새로 택시를 잡아 세끝아파트로 가면 드디어 씻고 좀 잘 수 있을 것이다. 모아가 내리려다 꾸엥의 까만 눈 때문에 멈칫했다. “끼잉 꾸엥.” 꾸엥이 모아를 보며 말했다.
    “꾸엥이 나랑 갈래? 데리고 가도 돼요?” 택시 기사님 앞에서는 새들이 없는 듯이 행동해야 하는 규칙도 잊고 모아가 말했다. 노아가 고개를 끄덕이며 꾸엥을 들어 모아에게 건넸다. 꾸엥은 몸을 옮기면서도 습관처럼 버둥댔다.
    “구룩도 사실 따라오면 안 되는데….” 노아는 말끝을 흐렸다. 여러 생각이 모아를 스쳤다.

    “더바이건설이 정말 업화 건설이면… 큰일이지.”
    서곤륜동 창고로 향하는 길에 노아가 심각하게 말했었다. 업화건설은 투명우산이 보호 중이던 투명동물들을 전부 인수했을 뿐 아니라 투명우산이 조사한 서울의 투명동물 서식 정보까지 다 가져갔기 때문이다.
    “데려가서 어떻게 하려는 건데요?”
    모아의 질문에 노아는 딱히 시원한 대답을 해 주지 못했다. 업화건설 부도 당시에 이 회사가 관리 중이었던 투명동물들이 어떻게 되었는지, 이들이 애초에 왜 투명동물을 수집했는지 알아내지 못했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렇게 큰 대기업을 상대로 우리가 뭘 할 수 있지?’ 이것이 모아의 머릿속을 스친 가장 큰 의문이었다. ‘창고에 가서 더바이건설이 업화건설인 걸 확인하고, 투명동물을 학대하거나… 실험하는 현장을 발견하더라도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있나?’ 
    투명동물이 존재한다는 건 공인된 사실이 아니었으므로 어디 정부 부처에 고발할 수 있을 것 같지도 않았고, 정부가 투명동물을 상대로 한 실험이나 학대를 금지하는지도 의문이었다. 눈에 잘 보이는 동물로도, 어느 회사든 연구소든 동물 실험을 이미 하고 있었으며 동물 학대로 타당한 처벌을 받았다는 뉴스도 본 적이 없었다.
    노아가 분명히 투명우산이 서울의 마지막 투명동물구호 단체라고 말했으니, 다른 시민단체에 도움을 구할 수도 없었고–무슨 국제 투명동물보호연합 같은 게 있나?– 애초에 그린피스 같은 단체가 있는데도 빙하는 계속 녹는 중이었다. ‘원래 이렇지’의 현실주의와 ‘이건 좀 심한데’의 새삼스런 문제의식이 모아의 마음을 교차했다. 아직 한 발 걸친 차 안을 가로지르는 빛과 어둠의 격자처럼.
    사실은 노아가 엄청난 능력을 가진 특수 요원이어서 그 수수께끼의 현장을 혼자 힘으로 제압하고 투명동물들을 구출할지 모른다는 생각도 잠시 들었다. ‘게다가 아까 공장에서만 해도 남의 휴대폰 비밀번호도 풀지 않았나? 그러고 보니 정말 그건 어떻게 했지?’ 하지만 옆에 앉은 노아는 아무리 봐도 비장의 무기나 능력은 없는 것 같았다. ‘그러면 어떻게 되는 거지? 뭘 하려는 거지?’
     
    한 발만 밖에 걸친 택시 뒤로 차들이 경적을 울렸다. 모아는 그 발을 다시 집어넣고 택시 문을 닫았다. 기사님과 노아의 의아한 눈빛이 모아에게 모였다.
    “저, 그냥 가 주세요.”
    서곤륜역 교차로를 빙글빙글 도는 택시에서 20분 정도 노아와 언쟁을 한 뒤에야 조건이 많이 달린 허락을 받았다. “알았어. 넌 진짜 보기만 하는 거야. 확인만 해.”
    설득이 불가능하다고 깨달은 표정으로 노아가 말했다(모아 엄마도 모아에게 종종 짓는 표정이었다. 엄마 말을 충분히 듣고 결정을 했는데 왜 말이 안 통한다는 얼굴인지 모아 입장에서는 알 수 없었지만 말이다.).
    “기사님, 얘 좀 서울까지 꼭 다시 데려다 주세요.”
    기사님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오른손만 들어 보였다. 손가락을 두 개 편 채였다. 노아는 피식 웃었다. “네, 두 배 드릴게요. 약속합니다.”

    어릴 적에도 아빠 차로 할머니 댁에 가는 길의 풍경들은 좀 다른 세상처럼 보였다. 그러니까 지금 모아가 처음 서울에서 나온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시간을 때울 핸드폰 없이 나온 적은 없었다. 스크린에서 눈을 떼자, 세상의 온갖 존재가 보였다.
    택시 안에는 가상의 동물들이 가득했다. 자동차 앞 유리에 뚜벅초가 흔들렸고, 글로브박스에는 이상해씨가 붙어 있었다.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 초록색 갈기의 풀 진화 이브이는 차 손잡이에 달려 있었다. 눈썹이 긴 예쁜 용 같은 포켓몬이 명패를 장식한 덕분에 기사님 사진과 성함이 시선을 끌었다. ‘심계수’. 포켓몬 오타쿠인 모양이다. 아무리 봐도 차 안의 모든 포켓몬이 풀 타입이라는 것도 특이했다.
    택시는 강을 거슬러 북동쪽으로 향했다. 강물은 뒤로 흐르고, 앞에는 불이 꺼지지 않는 도시가 보였다.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조차 저 도시는 불이 꺼진 적이 없을 것이다. 빛이 구석구석까지 밝히며 흘러넘쳤다. 도시를 지나치니 검은 숲이 다가왔다. 저 많은 나무가 아직 제 몸을 숨기고 있었다. 도시 가까운 자리에.
    ‘내가 여기서 뭐 하고 있는 거지?’ 이런 생각이 들 때마다 모아는 자신의 결정을 논리적으로 정당화하려 했다. 하지만 아무것도 설명할 수 없었다. 다만 이 밤의 어떤 일도 후회하고 싶지 않았다. 그저 그런 마음이었다.
    구룩은 노아의 다리 사이에서 이것저것 물어뜯다 이제는 지쳤는지 목을 몸에 묻고 있었다. 꾸엥은 노아와 모아 사이에 가만히 똬리를 틀고 다가오는 어둠을 새까만 눈으로 응시했다. 낑낑대는 겁쟁이로만 알았는데 이상한 침착함이 있었다. 차창 밖에서 저에게로 쏟아지는 빛을 눈도 깜빡이지 않고 받아내며 도리어 점점 차분해지는 듯했다. 이 커다란 몸과 꽤나 긴 목이, 규칙적으로 내는 구륵 소리가 기사님에게는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는다는 사실이 가장 비현실적이었다.
     
    어느새 팔 차선이 사 차선, 사 차선이 이 차선이 되고 택시 대시보드에 매달린 휴대폰 GPS에도 텅 빈 지역만 찍히기 시작했다. 기사님은 익숙하다는 듯, 이 근처가 원래 군사시설보호구역이라 그렇다고 설명했다. 본래 국유지였던 이 일대의 땅을 민간에 매각할 때 업화건설이 적극적으로 사들였다는 사실도 곁들였다.
    가파른 산길을 몇 굽이 마저 도니, 산등성이에 달무리가 걸려 있고 양떼 구름들이 펼쳐져서 저 아래 세상이 실제보다도 넓어 보였다. 택시가 마치 달무리를 향해 올라가는 것만 같았다. 창가에 머리를 기댄 모아가 멍해지기 무섭게, 택시가 끼이익 소리를 내며 멈췄다. 아니, 차 바퀴가 덜컹한 것이 먼저인지, 차가 멈춰 선 것이 먼저인지 알 수 없었다.
    “어이쿠.” 기사님은 몇 번 다시 출발하려다가 실패하고, 택시에서 내려 차 앞을 살펴보았다.
    “아이고, 이거 보게.” 어둠 속이어서 확실하지는 않았지만, 차 안에 앉은 모아에게도 어렴풋이 보였다. 덤불인지 쓰러진 나무 둥치인지 모를 것이 길 한가운데를 가로막고 있었다. 기사님은 운전석 문 사이로 머리를 넣고 노아와 모아에게 설명했다.
    “며칠 전에 비가 많이 와서 무슨 나무가 쓰러졌나 봐요. 치울 순 있을 것 같은데 앞에서도 계속 이러면 문제라.” 조금 걸어가서 쓰러진 나무들이 더 있는지 확인하고 오겠다는 것이었다.
     
    풀벌레 소리만 가득한 밤. 차가 멈춰 선 도로는 사실상 일 차선이었다. 모아는 언제부터인가 반대쪽에서 오는 차가 한 대도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몸이 찌뿌둥했다. 모아는 밖에 나가 기지개를 켰다. 얼마나 깊은 숲에 들어왔는지 비로소 실감했다. 코끝에 서늘하게 와닿는 풀 냄새. 수학여행 냄새였다. 풀이 서늘한 세상을 만들었는지, 서늘한 세상이 식물을 키웠는지는 알 수 없었다. 수학여행은 코로나 직전에 한 번 가 봤을 뿐이다. 그 후로는 제3 감염병이니 총기 난사에 폭탄 설치 예고이니 해서, 한 번도 학교 밖 활동을 경험한 적이 없었다. 그러므로 이 풀 냄새는 모아가 거의 살아 보지 못한 과거에서 흘러 들어오는 것만 같았다. 역대급 더위 이전의 세상. 감염병과 총기 난사 이전의 세상.
    모아는 차를 가로막은 장애물이 얼마나 큰지 직접 보고 싶었다. 하지만 차 앞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눈을 비비고 다시 보아도 잔가지들만 몇 개 떨어져 있었다.
    “어?” 모아의 의아한 목소리에 노아가 차 밖으로 고개를 내밀었다.
    “아무것도 없어요. 진짜 아무것도 없는데?” 모아가 말했다. 그들은 아저씨가 사라진 방향으로 차도를 따라 얼마간 걸었지만 아저씨는 흔적도 보이지 않았다. 하늘로 솟았거나 땅으로 꺼진 것이 아니라면 몇 분 전에 떠난 사람이 보일 거리였는데 말이다. 구름밭 사이로 달빛이 환했다.
    “어디 가신 거지…?”
    모아는 점점 더 의아했다. 노아의 표정이 심각해졌다. 조금 당황한 것 같기도 했다.
     
    노아는 어쨌든 차에서 멀어지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다. 사라진 기사님이 업화건설 사람인지 아닌지는 몰라도,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 벌어진 것은 분명했으므로. 차도는 너무 눈에 띄었고 차에 치일 수도 있었으므로, 차선 옆 덤불 속으로 걷기로 했다.
    꾸엥과 구룩은 길지 않은 다리로 잘도 따라왔다. 모아의 걸음을 방해하고 다리에 쓸리는 긴 풀들이 꾸엥과 구룩에게는 아무렇지 않은 듯했다.
    “왜 이렇게 사람을 좋아하지.” 모아는 혼잣말을 했다.
    “얘들은 왜 이렇게 사람을 좋아해요?” 이제는 질문이었다.
    “좋아하는 거라고 생각해?” 노아가 되물었다. 모아는 다시 생각했다. 그러고 보니 마치 당연하다는 듯 이 새들이 사람을 좋아한다고 단정했다. 
    “좋아하는 게 아니에요? 그냥 무서워하지 않는 건가?” 노아는 그 말에는 동의한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보기에 본능적으로 인간을 두려워하거나 피하지 않는 것은, 인간보다 훨씬 앞서서 진화를 마친 생물들의 특징 같다는 것이었다. 인간 이전의 지구를 알기 때문에, 이 투명생물들이 세상을 보는 눈은 인간과 다를 수밖에 없었다. 일반적으로 이런 유전적 특징은 그 특징을 지닌 생물종의 멸종 요인이었지만, 당고새의 경우에는 투명생물이라는 점, 엄청난 잡식성, 자동차를 위험으로 인식하고 잘 피하는 민첩성 등이 인간을 피하지 않는 특징과 겹쳐서 현대 도시에서 생존하는 데 오히려 장점이 되었다.
    “원래 많았던 것도 있겠지만. 원래 많았던 동물들도 순식간에 줄어들거든.” 고대 한반도, 특히 한강 유역에는 지금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당고새가 많았고 많은 촌락에서 인간과 당고새가 사실상 같이 생활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했다. 당고새 소리 때문에 잠을 못 잔다는 향가까지 있었을 정도다. 겨울에 사람들이 몸을 덥히기 위해 당고새를 껴안고 잤고, 길을 찾을 때도 도움을 받았다. 당고새는 보기보다 기억력이 대단히 좋았던 덕분이다. 셋으로 나뉜 발 모양에서 삼발새라고도 불렸고, 은혜도 원한도 잊지 않는다고 해서 은원새라고도 했다.
    “바보같이 생겼는데….”
    모아는 앞장서서 가는 꾸엥의 셋으로 갈라진 발을 보고 중얼거렸다. 더운지 겉옷을 허리에 묶고, 부러진 나뭇가지를 마법사 지팡이처럼 짚고 가던 노아가 말했다.
    “얘네가 얼마나 똑똑한데. 눈을 봐 눈을. 공룡의 눈인데. 바보 같다니. 그렇게 말하는 사람은 너랑 산하밖에 없는 거 알지.”
    “산하? 그게 누군데요?”
    모아는 되물었다. 노아는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몇 발짝 앞서 있어서 그 표정을 제대로 볼 수 없었지만 방금 한 말을 후회하는 듯도 했다. 그러니까 더 궁금해졌다.
    “산하가 누군데 말을 안 해 줘요? 여자친구예요?”
    모아는 자기가 말해놓고 가슴이 철렁했다. 이유는 몰랐지만. 그때였다. 길모퉁이에서 노아가 멈춰 섰다. 뒤따라온 모아도 같은 풍경에 시선이 꽂혔다. 골짜기 아래로 펼쳐진 도시가 너무 눈부셔서 사뭇 초현실적이었다. 요즘에 많이 짓는 주상복합단지를 생각나게 했다. 서울에서 인기 있던 모든 가게에 드럭스토어와 편의점에 대형 생활용품 매장까지 집어넣고 계절마다 냉난방을 최대 출력으로 가동하는 세계의 미니어처와 같은 건물. 더바이빌리지였다. 심계수 아저씨가 완전히 거짓말쟁이는 아니었던 모양이다.

    환한 빛을 뿜어내는 도시는 보이는 것보다 훨씬 멀었다. 금방 닿을 것 같았지만 그 근처까지 가는 데만도 한참이 걸렸다. 차도를 따라가면 골짜기를 거의 돌아야 해서, 모아와 노아는 그 길을 벗어나 산 능선으로 내려섰다. 내리막은 경사가 생각보다 가팔라서 덤불을 잡고 바위를 더듬으며 겨우겨우 걸음을 옮겼다. 다 내려오니 팔과 다리가 긁힌 상처 투성이였다.
    처음에는 더바이빌리지 깊은 곳까지 들어갈 생각은 없었다. 주위를 관찰하며 투명동물의 흔적만 확인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이 도시는 생각보다 넓었고 바깥에서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망원경으로 들여다보아도 아무 소득이 없었다. 어디에도 창문이 없었고, 유리처럼 보이는 부분들도 바깥에서는 안이 보이지 않는 재질이었다. 더더욱 이상한 것은 아무리 지켜봐도 하얗게 빛나는 건물들 사이를 돌아다니는 사람이 전혀 없었다는 사실이다. 더바이빌리지에는 아무도 없었다. 적어도 야외에는.
    “아무래도 들어갔다 와야겠다.”
    노아가 당고새 두 마리를 맡기며 말했다. 물론 구룩은 노아의 말을 듣지 않았고 실랑이 끝에 모아까지 함께 몇 블록만 들어가 보기로 했다. 무단 침입을 알리는 사이렌이라도 울릴 줄 알았는데 도시는 불가사의한 침묵 속으로 그들을 그대로 받아들였다.
     
    모아는 더바이빌리지에 들어서서야 이것은 도시라기보다 아주 거대한 하나의 건물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별개로 보였던 건물들이 구름다리와 중간의 사이사이의 건물들로 모두 연결되어 있었다. 엄마와 함께 사실구에 새로 생긴 카르믹파이어 어쩌고 하는 이름의 거대 주상복합단지에 장을 보러 갔다가 한참 헤맸던 날이 떠올랐다. 그때 모든 문제는 그 복합단지 후문을 찾은 데서 시작되었다. 뒤쪽이 모아네 세끝아파트에서 훨씬 가까웠기 때문이다. 앱 지도에는 사실역 쪽 정문만 표시되어 있었지만, 뒷문이나 옆문이 있을 거라는 엄마의 말에 모아도 동의했다. 하지만 모아와 엄마는 30도가 넘는 날씨에 땀을 뻘뻘 흘리며 주차장과 거대한 벽만 이어지는 건물 뒤쪽을 한참 헤맸다. 사람이 걸어서 움직일 수 없는 거리였다. 결국 문은 못 찾았다. 지금도 꼭 그때 같았다. 아무도 걷지 않을 미래를 위해서 설계한 길.
    걷기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땀이 맺혀서, 이곳이 산속이고 시간은 밤이라는 사실을 잊을 정도였다. 여름이 끝나고 있다는 것도. 대기는 실외기의 열풍만 가득했고, 포장된 바닥도 하얀 열기로 달구어져 있었다. 이렇게 온통 끈끈한 더위는 아랑곳없이 더바이빌리지만 홀로 아름다웠다. 유령이나 미로 같은 아름다움이었다. 아니 반대인가. 유령이나 미로 같아서 아름다운 걸까. 그렇다면 아름답기 위해서 이렇게 빛을 밝히고 불을 지피는 건가. 모아는 생각했다.
    다음 순간, 노아가 모아를 잡아당기면서 둘은 벽에 붙었다. 다가오던 자동차는 그들을 못 본 듯이 지나갔다. 너무 하얀 조명 속에 검은 점이라고는 그들뿐이어서 못 봤을 리가 없는데도. 건물 사이를 지나가는 속도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거침없었다. 너무 순식간에 지나가서 제대로 보지도 못했지만 운전석은 비어 있었던 것 같았다. 빈 운전석 이야기를 하니, 노아는 자율주행 자동차 같다고 했다. 직접 본 것은 처음이라, 귀신에 홀린 기분이었다.
    그렇게 미로를 내내 헤맸지만 그들은 문 하나 창문 하나 찾지 못했다. 가끔 뒷문처럼 보이는 틈은 있었지만, 정작 손잡이가 없었다. 무엇이든 있지만 어디로도 통하지 않는 도시. 확실한 것은 실외기와 벽, 그리고 스치는 자동차들의 행렬뿐이었다. 

    무엇이 드론 출동의 발단이었는지 모아 일행은 몰랐다. 지나간 차들 중 하나에 카메라 같은 것이 실려 있었고 그 영상을 어떤 프로그램이나 사람이 판독했는지, 건물 안 어떤 지점에서 외부를 관찰하고 있었는지, 아니면 구룩이 푸드득대며 낸 소리가 방범 시스템을 작동시켰는지. 귀 바로 옆에서 모깃소리처럼 들리던 것이 금방 말벌 소리로 바뀌었고, 이내 위협적인 위이잉 소리가 되었다. 실외기 소음 속에서도 착각할 수 없는 소리였다. 처음에 합의한 대로는 이제 더바이빌리지 밖으로 도망쳐야 했지만, 이미 너무 깊이 들어온 상태였다.
    눈이 커진 구륵과 꾸엥은 둘 다 위이잉 소리에 놀랐는지 꼼짝도 안 하려 했다. 벽으로 뒷걸음질 치는 날개가 바짝 굳어 있었다. 이미 도망치기를 포기했는지 아직 침착해서인지는 몰랐지만 노아는 당고새들을 챙기기에 여념이 없었다. 드론에 포착되면 무슨 일이 일어날지는 몰랐지만 그대로 가만히 있을 수도 없었다. 뭐라도 해야 했다. 모아는 조금 전 살펴보았던 손잡이 없는 문을 온 힘으로 두드리고 잡아당겼다.
    “저기요! 열어 주세요! 네?” 그때 사람 목소리가 들렸다. “이쪽이에요! 왼쪽!”
    모아는 두리번거렸다. 모퉁이 쪽 벽의 작은 문이 열려 있었다. 안쪽에서 문을 미는 손이 보였다. 노아를 부르려 했지만 드론 소리가 너무 컸다. 모아는 노아를 손으로 잡아끌다시피 하며 문까지 내달려서 그 안으로 몸을 던졌다.
     
    문은 당고새의 꽁무니 뒤로 쾅 닫혔다. 문안은 익숙한 실내였다. 인간 걸음에 맞는 크기의 계단과 적당히 사람이 다녀서 낡고 더러워진 손잡이가 있었다. 조금 텁텁했고 적당히 어두웠다. 그것이 이상할 정도로 안도감을 주었다.
    경악한 얼굴의 당고새들은 문간에서 거의 부둥켜안다시피 했다. 눈썹도 없고 부리가 가로막아서 새의 표정은 읽기 어렵다고 생각했는데, 그저 평소에 무표정했던 것뿐이었나 보다.
    문을 닫아준 사람의 등에는 검은 색 바탕에 붉은 기 도는 황금색으로 TBV 자원순환관리사라고 쓰여 있었다. 그는 노아만큼 키가 컸고, 마스크와 고글에 우비나 우주복 같은 보호복을 입고 있었다. 그는 손가락을 입에 대며 모아 일행에게 마스크와 고글, 그리고 우비를 하나씩 건넸다. 두 사람이 주섬주섬 옷을 다 걸치자 이어서 카트도 하나씩 건넸다. 처음에는 보지 못했는데 자원순환관리사 옆에도 금속 카트 같은 것이 있었다. 자원순환관리사가 카트를 조작하자 지이잉 소리를 내며 변신 로봇처럼 움직였다. 눈으로 보고도 믿을 수 없는 변신 끝에, 카트 안에서 똑같은 카트 두 대가 더 밀려 나왔다.
    자원순환관리사의 다음 행동은 멀뚱멀뚱 그 모든 광경을 보던 꾸엥과 구룩을 번쩍 들어 이 카트에 넣는 것이었다. 그도 투명동물을 볼 수 있었다. 우연인지 기술인지, 꾸엥과 구룩을 들어 올릴 수도 있었고 말이다. 투명동물을 볼 수 있다는 것이 좋은 사람이라는 보장은 아니라고 노아는 말했었다. 그 뜻은 모아도 충분히 이해했지만, 지금은 지구 반대편에서 곤경에 처했을 때 한국인을 만난 듯한 안도감이 있었다. 이 근거 없는 동질감이라도 붙들어야 했다.
    그는 카트를 밀라는 듯한 수신호를 했다. 노아는 여전히 망설이는 눈치였지만 모아가 그의 옷소매를 잡아당겼다. 오른쪽 소매 밑에서 (어쩐지 아까보다 1.5배는 부풀어 오른 듯한) 불가살이가 꿈틀대는 것이 느껴졌다.
     
    모아와 노아가 카트를 잡자 그는 계단 끝의 문을 열었다. 센서가 깜빡이는 무인 카트들이 좁은 복도를 오갔다. 자원순환관리사는 어지럽게 서로를 피하는 카트의 흐름을 빠르게 가로지르며 두 사람을 이끌었다.
    그들은 수많은 박스가 드높이 쌓인 방을 지났고, 모든 조리사가 우주복에 고글과 마스크를 쓰고 일하는 부엌, 쓰레기인지 재료인지 모를 것들이 꿈틀대는 뒷부엌을 지났다. 엘리베이터 몇 개를 탄 다음에는 거대한 문에 이르렀다. 손목과 허리춤의 카드를 몇 번이나 스캔한 끝에 요란한 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
     
    문 너머 펼쳐진 풍경에 모아는 눈을 의심했다. 해변에서나 볼 법한 태양 빛이 실내에 쏟아져 내렸다. 럭셔리 여행 유튜브에서나 보던 고급 휴양지의 풍경이었다. 자원순환관리사는 미끄러질 듯이 깨끗한 복도로 카트를 밀며 걸어갔다. 그는 맨 끝 객실 앞에서 또 카드를 여러 차례 스캔했다.
    아직 준비 중인 듯한 객실이었다. 복도와 마찬가지로 어딘가 초현실적인 빛이 들어왔고, 방 전체에 은은한 햇볕에 오래 구워진 나무 같은 향기가 감돌았다. 세련된 느낌이 들었지만 가구가 아직 군데군데 비어 있었고 전자기기도 하나도 설치되지 않았다. 창문은 어디에도 없었다.
    TBV 자원순환관리사가 마스크를 벗었다. 짧은 파마머리의 여자였다. 머리는 부동산 아저씨가 기르는 화분의 나무들처럼 제멋대로 뻗쳐 있었고, 나이를 짐작할 수 없었다. 주름이 많지도 않았는데 어쩐지 옛날 사람 같았다. 모아의 엄마 세대나 할머니 세대 정도가 아니라 그보다 훨씬 옛날의 느낌. 전깃불이 들어오고 나라 이름 같은 것이 생기기도 전부터 이 땅에 살았던 사람들의 얼굴.
    눈썹이 처져서 얼핏 보기에는 인상이 부드러웠지만 마주 보고 얘기할수록 그 눈동자가 새처럼, 공룡처럼 반짝였다. 자원순환관리사는 가벼운 한숨을 쉬며 말했다.
    “다행인 줄 알아요. 360도 보안시스템이 이번 주말에 전면 구축되고 다음 주에 정식 가동되는데, 며칠만 늦게 왔어도 저도 이렇게 못 했어요. 사정이야 짐작이 가지만….”
    “저희는….” 노아가 뭐라고 설명하려는 찰나, 문에서 똑똑 소리가 들렸다.
    “나가요! 유니폼 오염. 환복 중입니다.” 자원순환관리사가 밖에 대고 말했다. 그녀는 빠른 속도로 모아의 귀에 많은 정보를 속삭였다. 협탁 서랍에 손님 통행용 마그네틱 카드가 있고 캐비닛에는 옷이 있다는 것이었다. 예상 못 한 조언도 하나 있었다. 씻든지 향수를 쓰든지 냄새를 감추라는 것이었다.
    “여기에 동물 냄새가 나는 사람은 없으니까요.”
    같은 이유로 투명한 새들은 이 객실에 두라고 했다. 두고 가면 정체를 들킬 가능성이 확실히 줄어든다는 것이었다.
    “나를 믿을 수 있다면 말이지만요. 날 믿기로 했다면 정오에 이 방으로 다시 와요. 얘기는 그때.”
    그녀는 나가다 말고 노아 팔의 불가살이를 물끄러미 바라봤지만 별다른 말은 없었다. 

     

     

    필자 소개


     짐리원
    ‘올림픽공원 산책지침’으로 2023년 제3회 문윤성 SF 문학상 중단편 부문 우수상을 수상했고, 과학동아 2024년 8월호에 ‘기억과 사회’를 기고했다. 기후변화와 환경 오염, 서울에 대해 계속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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