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라이브러리









정서 보듬는 음악의 세계

수험생 집중력 높이고, 박태환 선수 긴장감 낮추고

 영화 ‘쇼생크탈출’(1994년)에는 음악이 교도소 수감자들의 꽁꽁 언 마음을 녹이는 장면이 나온다. 주인공인 앤디(팀 로빈스 분)가 주조정실에 들어가 모차르트가 작곡한 ‘피가로의 결혼 중-저녁 바람이 부드럽게’를 전 교도소에 틀었다(물론 규정을 어긴 처사였지만 말이다).

반강제적으로 노역을 하던 수감자들은 이 노래를 들으며 한동안 자유와 평온한 감정을 느꼈다. 곡괭이를 움켜잡은 손을 서서히 풀었고 찡그린 미간도 폈다. 팍팍한 삶을 살던 그들이 동시에 쳐다본 곳은 음악이 흘러나오는 스피커였다.


음악이 사람을 연주한다

40대 중반인 A씨는 세달 전만 해도 만성통증에 시달렸다. 피곤한 몸을 이끌고 퇴근한 뒤 딸아이를 들어 안았는데 어깨에서 ‘뻑’하는 느낌이 났다. 몇 달이 지나도 통증이 가라앉지 않았다. 스트레스가 심각했으며 일상생활을 이어갈 수 없었다. A씨는 병원을 찾아 MRI와 CT를 찍는 등 각종 검사를 했지만 그의 신경과 근육은 정상이었다.

그런데 음악이 그를 고통에서 해방시켰다. A씨의 음악치료를 맡았던 숙명여대 음악치료센터 이주영 음악치료사는 “만성통증 환자 중 상당수는 실제 아픈 것보다 더 아프다고 느낀다”며 “환자가 아프다고 느낄 때 주의를 다른 곳으로 분산시키는 요법이 효과가 좋다”고 말했다. 이 치료법은 음악으로 고통을 떨쳐낸다는 뜻으로 ‘음악 샤워’라고 불린다. 치료결과 A씨는 고통 정도를 재는 단위인 바스(BAS)가 6에서 3으로 떨어졌다. 3바스는 일상적인 생활이 가능한 수준이다.
음악은 자폐아도 치료한다.
자폐아는 사람과 눈을 마주치지 않고 다른 사람이 몸에 손을 대면 싫어한다.
그런데 사진 속 자폐아는 음악을 듣고 음악치료사인 김동민 부원장의 눈을
정면으로 응시하고 손길도 거부하지 않았다.

 
이 음악치료사는 “비슷한 멜로디가 반복되는 곡, 밝은 느낌의 화성, 1초에 1번 정도로 비트가 나는 곡을 반복적으로 들려줬다”며 “주로 자연의 소리가 많이 들어간 뉴에이지 음악과 전통 클래식 곡이었다”고 회상했다. 현재 A씨는 이 음악치료사가 추천한 음악을 들으며 스스로 고통을 조절하고 참을 수 있을 정도로 상태가 호전됐다.

영화‘어거스트 러쉬’에서는 주인공이 기타를 연주하며 잃어버린 아버지와 해후한다.
 음악은 둘을 잇는 고리다.

음악으로 심리치료 효과를 봤다는 경험담은 수없이 많다. 스트레스를 받을 때 조용하고 감미로운 클래식 음악을 들으면 마음이 안정되고 공부를 할 때 전통적인 클래식을 들으면 집중이 잘 된다는 식이다. 이런 ‘소문’은 실제로 과학적 근거를 갖고 있다.

몸은 음악에 반응한다. 특히 뇌가 음악과 ‘화음’을 맞춘다. 미국 하버드대 음악과 뇌 연구센터의 연구에 따르면 자신에게 알맞은 음악을 들으면, 음식이나 약물을 섭취하거나 성욕을 느낄 때 반응하는 뇌 부위인 중격의지핵을 자극해 두뇌활동을 활발하게 만든다. 이는 음악의 요소 중 멜로디, 템포, 음조 등이 맥박, 심박동수, 자율신경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음악의 빠르기 중 모데라토(중간 빠르기)는 보통 사람들의 심장박동수와 정확히 일치한다. 김 부원장은 “음악이 모데라토보다 빠르면 심박동수가 많아지고, 모데라토보다 느리면 심박동수가 느려진다”고 말했다.
만성통증을 앓던 A씨가 들었던 뉴에이지 음악과 클래식도 그의 교감신경을 안정시켜 스트레스를 줄였을 것으로 추측된다.

음악과 심박동수의 상관관계를 이용해 숙면을 유도하는 음악도 있다. 미국의 작곡가인 제프리 톰슨은 1980년대부터 몸과 마음을 안정시켜 잠이 오게 하는 음악을 만들어왔다. 이화여대 음악치료센터 김동민 부원장은 “톰슨 박사가 작곡한 음악은 박자가 안정돼있고 빠르기가 모데라토보다 느리며 멜로디나 화성이 반복된다”며 “이 음악을 들으면 맥박수도 적어지고 마음이 안정될 것”이라고 말했다.

항공사인 아시아나는 이 원리를 이용해 숙면유도 음악을 기내에 적용하고 있다. 비행기를 탄 승객은 불안감을 느끼고 소음 때문에 예민해지기 쉽다. 비행기의 진동으로 잠을 청하는 일은 더욱 힘들다. 이런 환경에서 톰슨의 음악을 들으면 규칙적인 멜로디와 느린 박자 때문에 마음의 안정을 얻을 수 있다.


신경증 환자에겐 특정 음악이 독일수도

그러나 한 종류의 음악이 모든 사람에게 같은 효과를 낸다는 믿음은 경계해야 한다. 김 부원장은 “시중에 나오는 심신안정 음반들은 과학적으로 검증되지 않은 경우가 많다”며 “간질환자, *틱장애 환자, 만성 스트레스 증후군 환자들은 전문가의 의견에 따라 음악을 골라 들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틱장애* 의도하지 않게 근육을 움직이거나 의미 없는 소리를 내는 장애로 주로 얼굴, 목, 어깨에서 나타난다.

음악은 잘 쓰면 ‘약’이 되지만 잘못 쓰면 ‘병’이 된다. 음악을 잘못 쓴 사례는 주로 신경증 환자에게서 발견된다. 예를 들어 음악신경학자로 유명한 올리버 색스 박사는 2007년 발간한 그의 저서 ‘뮤지코필리아’에서 2005년 상담한 실비아라는 환자에 관해 이야기했다.

실비아는 나폴리 민요를 들을 때마다 발작을 일으켰다. MRI로 뇌를 촬영한 결과 측두엽에 문제가 있다는 사실이 발견됐다. 색스 박사는 실비아의 음악유발성 발작이 측두엽과 관련된 것으로 결론내리고 측두엽 부분 제거 수술을 받도록 했다. 이후 실비아는 음악유발성 간질 공포에서 벗어나 나폴리 민요를 들을 수 있었다.


공부할 땐 가사 없는 음악 들어야
김 부원장은 “음악치료를 시작할 때 내담자의 음악 선호도부터 조사한다”며 “어떤 음악을 기피하고 선호하는지 철저히 조사한 뒤 음악치료를 시작한다”고 말했다. 무조건 클래식이 좋다든지 뉴에이지 음악이면 좋다는 태도는 옳지 않다는 말이다.

이 때문에 모차르트 효과의 상업화에 대한 비판이 거세다. 모차르트 효과는 미국 위스콘신대 프랜시스 로셔 교수가 1993년 모차르트의 곡인 ‘두 대의 피아노를 위한 소나타 D장조’를 들은 참가자의 공간추론능력이 좋아졌다는 연구결과를 ‘네이처’에 실어 유명세를 탔다.

로셔 교수는 실험 참가자를 세 그룹으로 나눠 실험했는데, 9분 동안 모차르트의 음악을 들은 그룹의 IQ가 아예 음악을 듣지 않거나 다른 음악을 들은 집단에 비해 8~9점 높았다. 이 결과를 토대로 ‘아기나 임신 중인 엄마가 모차르트 음악을 들으면 아이의 머리가 좋아진다’는 ‘모차르트 효과 상품’이 CD를 중심으로 봇물을 이뤘다.

숙명여대 음악치료대학원 김영신 교수는 “로셔 교수의 연구는 표본집단이 너무 적어 문제였다”며 “1999년 로셔 교수의 실험방법 그대로 피실험자 수를 늘려 실험한 결과 모차르트 음악이 공간지각력을 높여주는 게 아니라는 연구결과가 외국에서 발표됐다”고 반박했다. 또한 지난 3월 20일 영국 일간지 텔레그래프의 보도에 따르면 모차르트 효과는 한시적이다. 모차르트 음악을 듣고 공간추론 점수가 향상된 것은 약 20분뿐이었다.

공부할 때도 음악이 약이자 독이 될 수 있다. 이주영 음악치료사는 “가사가 없는 음악이 좋다”고 말했다. 가사가 있는 음악을 들으면 공부할 때 사용하는 뇌 부위와 가사를 처리하는 뇌부위가 같아 상충효과를 일으킨다. 집중력이 떨어진다는 말이다.

베이징올림픽 수영 400m 자유형에서 금메달을 딴 박태환 선수는 “큰 경기에서 긴장하지 않고 제 실력을 발휘할 수 있었던 이유는 경기 직전까지 좋아하는 음악을 들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주로 국내 댄스가요나 발라드를 듣는다고 한다. 이렇듯 음악은 귀로만 듣는 단순 행동이 아니다. 니체가 ‘우리는 음악을 근육으로 듣는다’라고 썼듯, 음악에는 신경과 근육, 호르몬까지 반응한다. 음악은 다양한 신경질환을 앓고 있는 사람에게 치료 효과를 내기도 하지만 일상생활에서도 마음을 안정시키거나 슬픔을 물리칠 때 효력을 발휘하기도 한다. 음악을 빼놓고서는 살 수 없다는 말은 곧 음악이 인간 정서에 미치는 영향이 그만큼 크다는 뜻이 아닐까.


‘되고송’은 ‘뇌벌레송’
‘생각대로 하면 되고~’ 한 통신사의 광고음악인 일명 ‘되고송’이 유행이다. 이상한 것은 이 멜로디가 뇌리에서 떠나지 않는다는 것. 다른 일에 집중하기도 어렵다. 간단한 멜로디가 귀에 쏙쏙 박힌다. 이화여대 음악치료센터 김동민 부소장은 “‘되고송’은 음이 4개뿐”이라며 “간단한 음악일수록 뇌리에 강하게 남는다”고 말했다. 이것은 일명 ‘뇌벌레’ 현상으로 불린다.

미국 신시네티대 제임스 켈라리스 교수팀 연구결과에 따르면 뇌벌레 현상은 인지적인 뇌 가려움 현상이다. 켈라리스 교수는 “피부를 가렵게 하는 히스타민 처럼 뇌에 인지적인 가려움 현상을 일으켜 같은 음이 계속 반복돼 긁게 만든다”며 “반복적이고 간단하고 예상치 못한 음이 나왔을 때 뇌벌레 현상이 일어나기 쉽다”고 설명했다.

광고음악은 뇌벌레 현상을 겨냥하고 작곡되는 경우가 많다. 항간에 유행한 노래 ‘텔미’도 후렴구인 ‘텔미 텔미 테테테테테테~엘미’, 포카리스웨트의 ‘라라라라라라라’, 짜파게티의 ‘짜짜라짜짜짜짜짜 짜파게티’도 음이 겨우 3개뿐이다. 이런 음악은 짧은 시간에 소비자에게 강한 인상을 남기기에 효과적이다.

음악으로 내 기분 조절한다
한 가지 노래가 모든 사람에게 동일한 효과를 내지는 않는다. 그러나 보편적으로 특정 노래가 특정 감정을 이끌어내는 경우가 있다. 노래는 자율신경계를 자극하기 때문에 맥박수와 호흡수를 변화시킨다. 이를 이용해 활력을 되찾아야 할 땐 교감신경을 활성화해 맥백수를 늘려주는 음악을 듣고, 안정을 찾아야 할 땐 부교감신경을 활성화해 맥박수를 줄이는 음악을 들으면 좋다. 이화여대 음악치료센터 김동민 부소장이 상황별 효과가 좋은 음악을 추천했다.


<;아침을 열기에 좋은 음악 - 몸과 마음에 활력을 주는 음악>;
몸과 마음에 활력을 주기 위해서는 템포가 빠르고 리듬의 변화가 많아야 한다. 뒤에 이어지는 리듬이 예상과 다르다면 뇌가 자극돼 깨어난다. 새로운 음악에 적응하기 위해서다. 이 음악은 교감신경을 자극해 심박동수를 늘려 혈액이 온몸에 흐르도록 돕는다.

엘가 / 사랑의 인사(Salut D'amour)
Eddie Higgins Trio / Bewitched
Jane Monheit / Taking a Chance on Love
Lisa Ono / Salade de Fruits

<;잠자리 준비에 좋은 음악- 몸과 마음에 안정을 주는 음악>;
템포가 비교적 느리고 한 가지 리듬이 반복되는 곡이다. 몸과 마음에 안정을 주려면 다음에 이어질 리듬을 예측할 수 있어야 한다. 또한 감마파가 나오는 음악은 숙면에 도움을 준다. 아래 음악은 들었을 때 뇌에서 감마파가 많아지는 곡이다.

Debussy / Clair de Lune
JS Culture / Until Flow Up The Stream
Norah Johns / Be Here to Love Me
Sting / My One and Only

<;슬플 때 위로가 되어줄 수 있는 음악>;
슬플 때는 신나는 댄스음악을 듣기보다는 감정상태와 비슷한 음악을 들은 뒤 조금씩 밝은 음악으로 바꿔 듣는 것이 기분 전환에 좋다고 알려져 있다.

Bruch / Kol Nidrei
Rachmaninov / Vocalise 중 첼로 연주
신관웅 / Cry me a River
Randy Crawford / Almaz
Renee Fleming / My Charie Amour

<;화가 많이 났을 때 기분전환하기 좋은 음악>;
화로 쌓인 에너지를 분출할 수 있는 음악이 좋다. 곡의 음이 높거나 비트가 강한 음악을 들으면 감정을 해소하는 데 도움이 된다.

Ravel / Bolero
Tuck&Patti / Comfort Me
Pat Metheny / Day Trip
Baha Men / Who Let The Dogs Out
Black Eyed Peas / Where is Love



▼관련기사를 계속 보시려면?

노래 가사 태반이 사랑 타령인 이유
정서 보듬는 음악의 세계

2008년 09월 과학동아 정보

  • 목정민 기자

🎓️ 진로 추천

  • 심리학
  • 의학
  • 음악
이 기사를 읽은 분이 본
다른 인기기사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