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라이브러리











1

사람들은 떨리는 마음으로 전원을 켰다. 긴장할 시간도 없이, 금방 유미의 모습이 나타났다. 두 시간 전에 떠나버린 유미와 완전히 똑같은 얼굴, 똑같은 목소리였다. 다들 환호성을 질렀다.

“유미야!”

“어떡해, 진짜 옆에 있는 것 같아!”

유미는 밝게 웃으며 사람들과 대화를 나눴다. 홀로그램으로 반짝이며 떠 있는 모습은 그냥 유미였다. 사람들은 아무도 어색함을 느끼지 못했다. 유미의 말투, 유미의 생각, 유미의 기억, 유미의 태도. 하지만 정훈은 시스템이 꺼질 때까지 입을 열지 않았다. 건강하게 지내라는 말을 ‘저것’에게 하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다. 저것은 유미가 아니었다. 분명 유미의 얼굴을 하고 있었지만, 그래도 유미는 아니었다. 홀로그램으로 된 반투명한 유미가 정훈을 빤하게 바라보았지만, 정훈은 시선을 느끼면서도 끝내 입을 다물었다.

꼭 떠나야 하느냐고 물었을 때, 유미는 투명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망설임은 없었다. 무슨 의미인지 유미가 모를 리가 없었다. 유미가 얼마나 애타게 기다린 기회인지 모르는 바도 아니었다. 정훈은 다 알았지만, 그래도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이제 다시는 손을 잡을 수도 없고, 만질 수도 없는 곳으로 유미가 가 버렸다. 유미가 떠나기 전날 밤, 오래 입술을 맞대었다. 성적 욕망 같은 것이 아니었다. 정훈의 뺨에 유미의 머리카락이 닿았다. 정훈은 뺨에 간질거리는 유미의 머리카락을 기억하고 싶었다.

“괜찮아, 우리 계속 만날 수 있잖아.”

정훈은 대답하지 않았다.

처음부터 이렇지는 않았다. 장거리를 떠나는 사람들이라고 해도 지구에 있는 사람들과 교신 정도는 할 수 있었다. 결국 지인들은 다 사라지게 마련이었지만, 혼자 우주의 어느 공간을 떠다녀야 하는 사람에게도, 지구에 남아있는 사람에게도 서로를 마주할 시간이 아주 조금은 보장되었다. 그 영국인 남자가 임무를 다 완수하기도 전에 자살하기 전까지는.

너무나 짧은 시간 동안 영국인 남자의 주변 사람들은 늙어갔다. 아직 몸도 마음도 팽팽한 자신을 두고, 급속도로 부모님이 돌아가셨고, 친구들이 늙어갔고, 조카들이 성장했다. 그러다 어느 순간 친구들도 죽어갔고, 조카들도 늙어갔다. 지구를 떠나온지 5년 쯤 지났을 무렵 지구에는 맥주를 좋아하던, 데이비드 보위의 히어로를 곧잘 부르던, 하루 이틀만 두어도 수염이 덥수룩하게 자라던, 비 오는 날 몰래 거리를 맨발로 달려본 적이 있던, 그를 아는 사람이 아무도 남지 않게 되었다. 그는 자신에 대한 길고 긴 리포트를 송신하고 우주선을 남겨둔 채 우주공간 어딘가로 도망쳐 버렸다. 물론 죽었을 것이다.

우주로 가는 사람들과 직접 교신을 하는 것은 금지되었다. 늙어가는 우리의 모습을 직접 보여줄 수는 없게 되었다. 그 대신 서로를 그리워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뇌를 업로딩해서 영원히 대화를 나누기로 했다. 영원히 만날 수 없게 된 사람들은, 서로를 위해 자신을 하나 더 만들었다. 우리가 알고 있는 그 사람 그대로, 언제든 만날 수 있도록. 노화 패턴까지도 정확하게 입력할 수 있기 때문에 유미의 홀로그램은 지구에 남은 사람들과 함께 늙어갈 것이다. 멀리 떠나버린 유미와는 다르게, 지구의 시간을 살게 될 것이다.

“이렇게 있으니까, 너 그냥 안 떠난 것 같다.”

“그거 다행이네. 하루 종일 고생하면서 시스템에 뇌 털어 넣은 보람이 있구만.”

언제나 그렇듯 장난스러운 유미의 말투를 듣자, 정훈은 홀로그램을 끌어안거나 부숴버릴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 벌떡 일어나 자리를 떠났다. 몇몇 친구들이 정훈을 따라왔다.

“야, 왜 그래. 유미 서운하겠다.”

“넌 저게 유미로 보여?”

“업로딩 했으면 유미지. 너 무슨 자연주의자야?”

정훈은 대답하는 대신 성큼성큼 걸어서 홀로그램 보관소를 빠져나갔다. 부아가 치밀었다. 다시는, 다시는 이곳에 오지 않을 것이다. 하늘에서 햇빛이 찬란하게 쏟아졌다. 피할 새도 없이, 초속 3억m의 속도로. 그리고 유미는 초속 3억m 너머에 있었다. 정훈은 도무지 햇빛까지도 믿을 수가 없어, 급하게 차 안으로 몸을 숨겼다.

2
3개월이 넘도록 정훈은 유미, 정확히는 ‘그것’을 찾아가지 않았다. 유미와 정훈이 3개월이 넘도록 만나지 못한 것은, 7년 전, 연애를 시작한 이후 처음이었다. 처음 연애를 시작했을 때는 여느 커플이 그렇듯 이틀을 만나지 못해도 몸살이 날 것처럼 굴었다. 덕분에 몇 개월 지나지 않아 둘은 함께 살기 시작했다. 오랜 시간 동안 함께 있었다. 물론 싸우기도 많이 싸웠고, 어느 밤은 나란히 등 돌리고 누워 한참을 흐느끼기도 했다.

다시는 오지 않으려고 했는데. 정훈은 유미와 함께 살던 집에서 이제 이사를 좀 가보려고 하다가 방구석에 눌어붙은 토한 자국을 발견했다. 3년 전에 죽은 유미의 고양이 슈라의 흔적이었다. 죽기 전에 많이 아팠던 슈라는 걸핏하면 여기저기 몸을 숨겼다. 고양이는 아픈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 하지 않는다더니만, 아마도 사람들에게 토한 자국을 보여주지 않으려고 숨어서 몰래 토악질을 한 모양이었다. 그것도 모르고 유미는 아프면 토한다던데 얘는 왜 토하지도 않느냐며, 그것 때문에 병도 늦게 발견했다고 슈라를 붙잡고 한참 울었다. 토한 자국을 닦으며 정훈은 유미에게 꼭 말해주고 싶다고 생각했다. 이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사람은 아무리 생각해도 유미뿐이었다. 그리고 유미는 알아야만 했다.

차에서 내려서 방문 기록을 작성했다. 저것은 분명 유미가 아니었다. 하지만 유미를 찾아올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기도 했다. 이를테면…… 시뮬레이션 게임 같은 거니까, 괜찮아. 말하고 나서 내 감정이 조금 나아지면 됐지. 몇 번씩 자신에게 괜찮다고 다짐을 하고 나서, 정훈은 홀로그램 실에 들어섰다. 유미의 모습이 빛으로 드러났다. 저번에는 우주인 트레이닝 복 같은 차림이었는데, 이번에는 평소에 좋아하던 베이지색 꽃무늬 원피스를 입고 있었다.

“개 오랜만이다?”

정훈은 자신도 모르게 멋쩍은 웃음을 띄우고 말았다. 익숙하고 반가운 말투, 여전한 표정이었다.

“우리 엄마가 마흔다섯 번, 지예가 열두 번, 광민이가 다섯 번, 영주가 세 번 올 동안 한 번도 안 와? 네가 그러고도 애인이냐?”

“너는…… 유미가 아니잖아.”

그것은 기가 차다는 듯이 큰 소리로 헛웃음을 쳤다. 유미 그대로였다.

“왜 내가 유미가 아니야. 그럼 내가 뭔데. 너, 계속 만날 수 있다고 하는데 대답 안 할 때부터 불안불안하더라. 너 그때부터 업로딩한 건 내가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었지? 내가 한 소리 할까 하다가 말았어. 가기 전날 싸우기 싫어서.”

“……알려주고 싶은 게 있어서 왔어.”

“나한테?”

“유미한테.”

그것은 천장을 보면서 입술을 쭉 내밀어서, 훅, 앞머리를 입으로 불어넘겼다. 거짓말처럼 똑같은 유미. 아니, 유미처럼 똑같은 거짓말. 유미가 여전히 자기를 만날 수 있다면서 한참 설명해 준 이 방식은, 결국 세상에 유미가 둘이 된다는 이야기였다. 그건 가능한 일이 아니었다. 세상에 유미가 둘이 된다면 결국 하나는 복제품일 뿐이다. 심지어는 유미의 육체조차 없는, 감정을 위로해 주기 위해서 만들어 낸 되다 만 장난감이었다. 유미는 유일했다. 하지만 정훈에게 지금 다른 방법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정훈은 나직하게 이사를 하려고 방청소를 하다가 발견한 고양이의 토사물 이야기를 했다. 말라비틀어진 사료가 소화되지 못한 채 그대로 남아있었다고. 아마 우리한테 보여주고 싶지 않아서 숨긴 것 같다고. 유미는 눈을 휘둥그레 뜨고 가만히 이야기를 듣다가, 천천히 정훈의 옆에 앉았다. 정훈은 유미가 앉는 모습을 보았다. 홀로그램인 유미가 의자에 제대로 앉는 것은 불가능했다. 힘을 주어 끌어내려야 하는 의자에 앉을 수가 없는 유미는 대충 정훈의 옆자리에 어정쩡하게 엉덩이를 걸쳤다. 의자 사이를 약간 통과해 있는 유미의 반투명한 몸이 꼭 유령 같았다.

“울었지.”

“응.”

유미는 정훈의 어깨에 손을 얹고 흐느끼기 시작했다.

“슈라야……. 어떡해…….”

어깨에는 아무런 촉감도 느껴지지 않았다. 정훈은 함께 울었다.

“너 걱정할까봐 그랬을 거야…….”

“너무 미안하다……. 난 아무 것도 모르고…….”

어두운 홀로그램실에 울음소리만 가득했다. 정훈은 어깨를 만지는 게 두려웠다. 유미의 손이 안 잡힌다는 것을 차마 확인할 수는 없었다. 무릎에 나란히 양손을 얹고 꼼짝하지 않았다. 정훈의 눈물이 방울방울 손등 위로 떨어졌지만, 유미의 눈물은 액체가 되어 떨어지진 않았다.

3
사람들은 생일 축하 케이크를 들고 유미를 만나러 왔다. 유미가 지예에게 가족이랑 생일파티는 따로 하고 싶다고 미리 전해뒀다고 해서, 이번에는 친구들끼리만 모였다. 정훈에게도 전화가 왔다. 지예는 무척 조심스럽게 생일파티 이야기를 꺼냈다. 업로딩 된 유미를 유미라고 생각 않는다는 이야기를 다른 곳에서 들은 모양이었다.

정훈은 친구들을 만날 때마다, 그건 유미가 아니라고 싸늘한 표정으로 말하곤 했다. 친구들이 정도 없다고 투덜거리면, 너희야말로 유미를 잊어버리고 있는 거라고 쏘아붙였다. 홀로그램실 안에 들어가서 이런 저런 이야기들을 하다가, 나오기 전에 다짐하듯 말을 덧붙였다. 그래도 너는 유미가 아니라고. 처음에는 웃어넘기던 유미는, 하루는 무척 짜증스럽게 대답했다.

“내가 아니라면 넌 왜 찾아오는 건데. 대체 날 뭐라고 생각하는 거야? 다 내가 결정한 문제니까, 너 나름대로도 힘들 수 있을 것 같아서 적당히 넘어가 보려고 했는데. 이게 대체 몇 개월째야? 너 이렇게 계속 내 앞에서 그 따위로 말할래?”

그 질문에는 대답하지 못하고 문을 나섰다. 그게 바로 전날이었다.

걱정 말라고, 같이 갈 거라고 말하자 지예는 무척 안심한 듯 유미가 기뻐할 거라고 했다. 그 말대로 유미는 무척 신이 난 표정으로 등장했다.

“늘 따로따로 오더니만, 생일이라고 간만에 다 같이 왔네.”

“너 좋아하던 그 제과점에서 특별히 주문해서 만든 거야, 이 케이크.”

“오. 짱이네. 근데 못 먹어.”

가볍게 웃음이 터졌다.

“선물 받는 사람이 몸 없는 거 배려 좀 하고 살자.”

“홀로그램 케이크는 어디 가서 주문을 못 해요.”

책, 액세서리, 그릇, 커피, 립스틱, 다양한 선물들이 쏟아졌다. 책은 정보값으로 입력해달라고 요청하면 되니까 두고 가라고 했다. 하지만 이왕이면 다음부터는 편하게 파일로 달라고 덧붙였다. 귀고리는 인식기에 잠깐 넣어두라고 했다. 짧게 윙, 소리가 들리더니 홀로그램으로 된 유미의 손에 귀고리가 들렸다. 유미는 슥슥 귀에 귀고리를 끼워 넣었다.

저런 게 되는 줄 알았으면, 전에 입던 옷이나 선물 같은 것도 좀 가지고 올걸. 정훈은 약간 속상한 기분이 되어서 이런 저런 선물들을 챙기는 유미의 홀로그램을 바라보았다. 조금 망설이는 목소리로 지예가 말을 꺼냈다.

“유미야, 정훈이 오랜만에 보는 거 아니야?”

유미가 어깨를 으쓱했다.

“뭔 소리야. 얘 그제도 왔다 갔어. 너희 중에 제일 많이 와.”

친구들이 웅성거렸다. 뭐야, 안 오는 것처럼 그러더니만. 절대로 유미 아니라며. 무슨 우리가 시뮬레이션 게임에 놀아나는 사람들인 것처럼 그러더니. 요즘 시대에 이런 자연주의자 없다고. 뒤에서 왜 혼자 호박씨야. 너도 유미 보고 싶었던 거잖아. 정훈의 어깨를 두드리며 장난치는 손들 사이로 유미의 목소리가 다시 들렸다.

“정훈이는 나한테도 유미 아니라 그래. 어제 참다참다 한 소리 했어.”

분위기가 가라앉았다.

“아, 뭐…… 나 아닌 것 같아도 자주 오면 됐지 뭐. 그래도 정훈이가 제일 많이 온다니까. 나중에 다시 싸울 테니까 오늘은 그냥 놀아.”

자리가 파하고 나서 정훈은 다시 친구들에게 붙들렸다. 이번에는 잔소리를 하기 위해서였다. 지예가 울먹이며 어떻게 유미 앞에서 그런 말을 할 수 있느냐고 했다. 네가 보기에 아닌 것 같다고 해도 앞에서 그런 말을 하면 어떻게 하느냐고. 심각한 말투로 화를 내던 친구들은, 다시는 유미 앞에서 그런 말을 하지 말라고 여러 번 엄포를 놓고 나서야 헤어졌다.

다음 날, 가장 먼저 유미를 찾아온 건 정훈이었다.

“미안해.”

“애들이 갈궜냐?”

“아니, 그게 아니야.”

“됐어. 유미 아닌데 왜 자꾸 찾아오는데?”

“유미야.”

“뭐?”

“너 유미 맞잖아.”

유미는 입술을 비죽이다가 주먹을 쥐고 가볍게 정훈의 가슴팍을 밀쳤다. 물론, 밀쳐지지 않을 것이었다. 가슴팍으로 살짝 주먹이 통과하려는 찰나, 정훈은 비틀거리며 밀쳐진 시늉을 했다. 유미의 입꼬리가 약간 일그러지면서 올라갔다.

4
애인 생겼지.”

정훈은 고개를 급하게 들어올렸다.

“뜨끔했구만.”

“아니야.”

“아니긴 뭐가 아니야. 내가 너랑 7년 동안 같이 살고, 3년 동안 여기서 보고, 도합 10년을 봤다. 딱 보니까 애인 생겼네. 쯧, 하긴 언젠가는 이럴 줄 알았어. 내가 밖으로 나갈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여기서 영화 보고 뉴스 같이 보고 수다 떨고 이러는 데이트에도 한도가 있지. 버추얼 애인 3년 더 사귀었으면 너도 할 만큼 했다.”

“진짜 아니라니까!”

“그럼 뭔데.”

수정 씨가 정훈을 좋아한다는 걸, 정훈도 알고 있었다. 두 사람과 한 시간만 함께 있어도 누구나 알 수 있을 것이었다. 회사 사람들은 당연히 모두 알고 있었다. 그걸 알면서도 수정 씨와 단둘이 술을 그렇게 오랫동안 마신 건 분명 정훈의 책임이었다. 취한 수정 씨가 손을 뻗었을 때 덥석 그 손을 잡은 것도 정훈이었다. 심지어, 같이 집에 가자고 말을 꺼낸 것도 정훈이었다. 정훈은 수정 씨의 허리를 끌어안았고, 수정 씨의 입술이 정훈의 입술에 부드럽게 닿았다. 정훈이 얼굴을 부비자, 수정 씨는 정훈의 얼굴을 가슴팍에 꼭 끌어안았다. 다음 날 아침, 눈을 뜨자 수정 씨는 정훈의 방에 걸려 있는 시계를 가만히 보고 있었다. 정훈과 유미의 이름이 나란히 새겨진 시계.

“여자친구가, 우주비행사라고 들었어요. ……마인드 업로딩 했다면서요?”

정훈이 우물쭈물 하고 있을 때, 수정 씨는 마치 인파이트 복서처럼 말을 뱉어냈다.

“안 외로워요?”

이 이야기를 전부 유미에게 할 수는 없었다. 정훈은 망설이다가 모든 이야기를 다 무지르고, 단순하게 한 마디만 뱉어냈다.

“그냥, 어쩌다가, 잤어.”

유미는 심상한 표정으로 정훈의 고백을 들었다. 그리고 아무 말이 없었다. 정훈은 죄지은 사람처럼 고개를 숙이고 유미의 말을 기다리고 있었다. 한참의 침묵 끝에, 유미의 목소리가 들렸다.

“벗어 봐.”

“뭐?”

“나 너 벗은 거 너무 오래 못 봤어.”

정훈은 진심인지 의심스러운 눈으로 유미를 바라보았다. 유미는 여전히 심상한 표정이었다. 정말 괜찮을 때도 저렇게 심상한 표정을 짓지만, 화가 많이 났을 때도 저렇게 심상한 표정을 짓는다. 정훈은 어느 쪽인지 알 수가 없어 갈팡질팡하다가, 일단 옷을 벗기 시작했다. 설마 누가 들어오지는 않겠지. 셔츠와 바지, 팬티까지 다 벗고 홀로그램 앞에 서 있자니 무척 바보스러운 기분이 들었다. 눈을 가늘게 뜨고 유미가 정훈의 몸을 훑자, 정훈은 귓불이 달아오르는 걸 느꼈다.

“너 많이 늙었다. 배도 나오고. 엉덩이도 처졌고.”

“야, 너는…… 프로그램으로 되어 있으면서 몸이 있는 나랑 비교하면 반칙이지.”

유미는 피식 웃더니, 훌렁훌렁 옷을 벗어던지기 시작했다.

“나도 시간 되면 늙게 프로그래밍 되어 있거든?”

3년 만에 보는 유미의 나신. 3년이 지나긴 했지만, 유미는 별로 변한 게 없어보였다. 꺼떡꺼떡, 정훈의 성기가 치솟아 오르자 유미는 알몸인 채로 낄낄대기 시작했다.

“야, 넌 만지지도 못하는 여자 보고도 잘 선다. 어때? 만질 수 있는 여자랑 하니까 좋든?”

“아니, 그, 놀리지 마.”

“여전히 꼬추 짧네.”

“놀리지 말라니까.”

“배 나오면 꼬추 더 짧아 보여. 운동 좀 해.”

유미는 슬그머니 정훈을 향해 손을 뻗었고, 정훈은 마치 유미의 손길이 느껴지는 것 같은 환각을 잠시, 아주 잠시 느꼈다. 물론 금방 환각이라는 걸 깨달았다.

“정훈아, 나도 외로워.”

정훈은 돌아오는 길에 수정 씨의 연락을 받았다. 잠깐 보자는 말에, 정훈은 미안하다고 대답했다. 그냥 아닌 걸로 하자고 했다. 수정 씨는 더 답장하지 않았다. 집에 돌아와서 정훈은 허공을 향해 한 번 발차기를 하곤 평소보다 빨리 잠이 들었다.

5
“나 어디까지 갔을까.”

“응?”

“벌써 16년이나 지났잖아. 이제 나 꽤 멀리 갔겠지?”

‘저’ 유미에 대한 이야기였다.

“그렇겠지.”

“괜히 간다 그랬나 봐.”

정훈은 어이가 없어서 유미를 빤하게 바라보았다. 가지 말라고 할 때는 귓등으로도 안 듣더니만, 지금 와서 이게 무슨 소리야.

“나는 꼭 우주 끝까지 가고 싶었는데.”

“그래서 갔잖아.”

“나는, 못 가고…… 나만 갔지.”

정훈은 이게 무슨 소리인가, 생각하다가 약간 늦은 타이밍에서야 무슨 말인지 이해를 했다. 이제 더 이상 정훈은 이 홀로그램이 유미가 아니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유미는 틀림없이 유미였다. 하지만 그렇게 유미를 멀리 보내는 바람에, 이 유미는 떠나지 못했다.

“이럴 거라는 얘기는 계속 들었어. 다 예측하고 있었던 거야. 교육도 많이 받았지. 몸이 없으면 뭐가 힘들고, 얼마나 외로울 것이고, 대신에 프로그램이 되면 몸이 없어도 얼마나 자유로울 것이고, 정보의 바다가 있고, 사람들과도 계속 접촉할 수 있고, 친구들도 계속 만날 수 있고…… 너도, 계속 볼 수 있고.”

“나 때문에 한 것처럼 말한다.”

“너 때문에 한 거 맞아. 정말이야. 헤어지기 싫었단 말이야.”

“내가 그건 아니라고 그때도 그랬잖아. 그래도 네가 강행한 거잖아. 안 떠나는 게 어렵다면…… 그냥 서로 못 보는 거 감수하고 헤어지는 선택지도 있었어. 지금 와서 후회해서 뭐 어쩔 거야.”

“너도 헤어지는 거 싫었으면서 센 척 하지 마.”

사실이었다. 가지 말라고 더 졸라볼 것을, 괜히 보냈다는 생각도 많이 했다. 정훈은 입을 다물었고, 유미는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 사진 몇 개를 화면 위에 펼쳐놓았다.

“이거 봐봐.”

상상조차 해 본 적이 없던 광경이었다. 있을 수 없는 형태와, 있을 수 없는 색채였다. 저런…… 게 세상에 존재할 수 있다고?

정훈은 사진에 압도당해서 넋을 놓고 화면을 들여다보다가, 유미를 보았다. 유미는 울고 있었다. 존재하지 않는 몸에서 존재하지 않는 액체가 흘러나왔다. 마흔 여섯 살이 된 유미의 주름진 눈이 자꾸만 젖었다.

“나도 이런 걸 보고 싶었어. 내가 너무 부러워.”

우주 반대편에 있는 유미는 아직 어렸다. 처음 보는 광경에 찬탄하며 사진을 찍을 유미를 생각했다. 유미가 힘들까봐 나도 마인드 업로딩을 하겠다고 했을 때, 유미는 절대 안 된다고 했다. 아무 것도 못 하고 계속 갇혀있는 셈인데, 유미 때문에 그렇게 살게 둘 순 없다고 했다. 그렇게 따지면 너도 업로드 하면 안 되는 거 아니냐고 하자, 우주에 가고 싶은 건 자신이니까 괜찮다며 웃었다. 정훈은 입술을 깨물었다. 역시 유미의 말은 무시하고 그냥 업로드 하는 게 좋았을 것이다. 광막한 우주 공간에서 분명 유미는 외로울 것이었다. 정훈의 앞에 있는 유미도, 외로워하고 있었다.

지예는 딸을 둘 낳았다. 결혼했을 때까지만 해도 한 달에 두세 번은 꼭꼭 찾아오던 지예도, 육아에 바빠지면서 유미에게 찾아오는 시간이 압도적으로 줄어들었다. 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는 유미가 모두에게 간곡하게 부탁을 해서 기기를 장례식장으로 옮겼다. 아주 조심해야 했고, 때문에 너무 품이 많이 드는 일이었다. 유미는 그 기기를 장례식장 한 구석에 두고, 상복을 입은 채 사람들을 맞았다. 음식을 나를 수도 없고, 같이 술 한 잔 할 수도 없는, 반투명한 상주와 사람들은 맞절을 했다. 유미는 끝까지 빈소를 지켰지만, 장지에는 따라갈 수 없었다. 장지까지 안전하게 기기를 옮기는 것은 불가능했다. 유미는 다시 원래 있던 곳으로 돌아갔다.

돌아와서 전원을 다시 넣자, 몸이 없는데도 유미는 무척 지쳐보였다.

“지금 나는 몸이 없어도 정보들 사이로 어디든 갈 수 있지만, 그래도 사람들을 만나고 싶어. 이곳은 납골당 같아.”

유미의 친구들은 더 자주 찾아오지 못해서 미안하다고, 더 자주 찾아오겠다고 약속했지만 약속이 지켜지는 건 쉽지 않았다. 어딘가에서 유미는 우주를 보고 있었다. 몸을 잃어버린 유미가 우는 동안, 앞으로 정훈이 다시는 만날 수 없는 유미가 우주 어딘가에서 사진을 찍고 있었다.

6
유미는 눈썹부터 세었다. 눈썹이 하얘지는 걸 놀리자, 유미는 이걸 어떻게든 유미에게 알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럴 줄 몰랐단 말야. 알면 어떻게든 대응을 하겠지.”

“눈썹이 세는데 염색하는 거 말고 무슨 대응을 하냐.”

“이건 아니지, 어떻게 눈썹부터 셀 수가 있어. 섣날 그믐날에 잠든 사람도 아니고!”

정훈은 웃으면서 오른손으로 무르팍을 투덕투덕 두드렸다. 요즘 무릎이 많이 아팠다. 아주 많은 일이 있었고, 아주 많은 시간이 지나갔다. 유미의 볼에 패인 주름만큼, 정훈의 눈가에도 주름이 패였다. 거동하기가 많이 힘이 들어서, 예전만큼 유미를 만나러 찾아오는 것도 힘에 부쳤다. 신체의 고통이 전혀 없는 유미는, 입력된 대로 늙어보이게 출력되기는 하지만 전혀 힘들어 보이진 않았다.

“야, 아파서 너 못 찾아오겠다. 내 나이에 이렇게 멀리까지 자주 다니는 사람이 어디 있냐.”

조금 망설이다가 유미는, 깜짝 놀랄만한 말을 했다.

“복제 떠가.”

“뭐?”

“나 복제 떠가라고. 이젠 너 말고는 찾아오는 사람도 없는데 뭐.”

인격을 그런 방식으로 여러 개 생성하는 것은 분명 금지되어 있을 터였다. 여러 명의 동일한 인격이 난립했을 때 발생할 윤리적 충돌을 막기 위해서라고 알고 있었다. 더욱이 복제를 떠가서, 정훈이 더 이상 찾아오지 않으면 여기에 있는 이 유미는 어떻게 된단 말인가. 정훈이 그건 안 된다고 말하려던 찰나, 유미가 한심하다는 듯이 먼저 입을 열었다.

“제발 뉴스도 좀 보고 사세요, 할아버지. 법 개정 작년에 됐거든요? 제가 업로드 된 지 벌써 35년이 지났는데요.”

유미가 보여준 뉴스에는 복제가 가능한 조건이 명시되어 있었다. 복제를 업로드 된 인격 자신이 결정할 것, 복제본을 만든다면 원본은 폐기할 것. 원본을 폐기한다고, 분명히 쓰여 있었다.

“원본을…… 폐기한다는데.”

“뭐, 둘이 있으면 그렇잖아.”

“그래도…… 어떻게 폐기를 해.”

“복제해도 나잖아. 이제 알잖아.”

“당연히 너겠지만, 그건…….”

정훈은 말을 이어나가려다 입을 다물었다. 유미 자신이 가장 잘 알고 있을 이야기였다. 유미가 다른 유미로 옮겨가는 것이 아니다. 유미가 여럿이 되는 것이고, 어느 유미는 사라지는 것이었다. 죽어버리는 것이었다. 물론 그건 유미의 결단이었지만, 정훈은 도무지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그래서 정훈은 유미의 제안을 거부하고 계속 유미를 찾아왔다. 무릎 관절이 저리고, 몸이 점점 무거워지더라도 할 수 있는 한은 끊임없이 찾아올 생각이었다. 정훈이 도저히 안 되겠다는 생각에, 유미의 선의를 받아들이기로 한 것은 5년이 더 지난 다음, 홀로그램실에 들어서다 엉덩방아를 찧은 다음이었다. 그때엔 유미는 늙었다고 정훈을 놀릴 수 없었다. 정훈은 그대로 한 달이 넘는 시간 동안 병원에서 일어나지 못했다. 정훈은 다리를 절게 되었다.

오랫동안 유미와 길고 긴 대화를 나누고 나서, 정훈은 결국 유미를 복제해 달라고 요청했다. 40년 전에는 하루 종일 걸리던 작업이 이제는 아주 짧은 시간에 완료되었다. 유미는 작은 디스크에 담겨 정훈의 손에 쥐어졌다. 이제 원본을 폐기할 시간이었다. 하얀 눈썹의 유미가 약간 흔들리는 동공으로 정훈을 바라봤다.

“정훈아, 나…… 좀 무서워.”

“……미안.”

“아니야, 나, 계속…… 정훈아, 잘 지내. 난…….”

유미는 눈을 질끈 감았다. 그리고 스스로 전원을 차단했다. 폐기는 전문가들이 해 줄 일이었다. 정훈은 하루 동안 유미를 켜지 못하고 울었다. 하루가 지나고 전원을 켜자, 그저께 본 것처럼 눈썹이 하얀 유미가 빙그레 웃었다.

7
“진짜로 갈 거야?”

“갈 거야.”

유미가 불안한 표정으로 지켜보는 가운데, 정훈은 업로드를 앞두고 있었다.

“들키면 어떻게 해?”

“괜찮아, 잘 숨길 수 있어.”

해커들은 한 번도 해 본 적은 없는 작업이지만, 해낼 자신은 있다고 말했다. 메커니즘에 대한 설명을 모두 듣고 나서, 정훈은 할 수 있을 거라는 확신을 했다. 뭐, 안 되면 안 되는 거지. 해커들은 홀로그램 형태의 출력은 기본 값으로 제공받을 수 있지만, 업로드된 인격의 코드 안에 다른 인격을 숨겨서 가면 출력이 망가질 수도 있다는 경고를 했다. 그건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하지만 카메라 류의 입력 장치 형태로라도 시야 확보는 할 수 있도록 해 달라고 요청했다. 우주선엔 다 연결되어 있을 테니 걱정 말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평생 꿈꿔왔던 찬란한 광경을 유미 뿐만 아니라 유미도 볼 수 있어야 했다.
계획대로 유미가 지구에 돌아오려면 지구 시간으로 80년이 더 남아 있었다. 정훈은 늦은 업로드를 신청했다. 정훈에게는 늦은 업로드지만, 우주 어딘가에 있는 유미에게는 그렇게 늦은 업로드가 아니었다. 이제 나이가 다 들어서, 살날이 얼마 남지 않았으니 몸이 있는 유미를 만나러 가겠다고 하자 먼 미래에 있는 유미에게서 오케이 사인이 도착했다. 정훈은 유미에게 가는 길에, 유미를 숨겨서 함께 가기로 했다. 사람은 편집할 수 없어도 데이터는 편집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업로드 되기 직전, 유미가 물어왔다.

“그러면 우리는 정훈이야, 유미야?”

“잘 모르겠는데. 둘 다 거나, 둘 다 아니지 않을까?”

“우리가 가면 유미는 우리를 뭐라고 받아들일까?”

그 질문을 마지막으로 청각이 없는 정훈이 태어나기 시작했다. 정훈은 또 하나의 자신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또렷하게 감각했다. 감각이 사라지는 과정을 감각할 수 있다니, 대단해. 정훈은 차곡차곡, 새로운 정훈으로 구성되었다. 해커들은 업로드가 되자마자 빠른 속도로 데이터를 편집했다. 정훈의 내부에는 정훈과 함께 긴 시간을 살아 낸 하얀 눈썹의 유미가 틀어박혔다. 아주 짧은 시간 동안 정훈과 유미는 데이터 속에서 충돌하지 않고 하나로 위치를 찾아가기 시작했다. 통합된 데이터로 정훈과 유미는 우주 저편을 향해 빠르게 전송되기 시작했다. 새롭게 태어난 그 인격은 초속 3억m의 속도를 타고 달리면서 중얼거렸다.

“아마도…… 유미의 연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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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03월 과학동아 정보

  • 이서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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