맑고 투명한 푸른색 바다. 그 바다와 함께 펼쳐진 모래 알갱이에 햇빛이 반사돼 반짝인다. 말 그대로 백사장. 어떠한 것에도 오염되지 않고 깨끗하게만 보인다. 하지만 모래 속에는 우리눈에는 보이지 않는 ‘불청객’들이 우리를 맞이할 준비를 하고있다. 우리 몸을 노리면서.
1. 피부사상균 | 피부 각질과 음식물로 번식
2011년 부산시 보건환경연구원의 조사에 따르면 부산 해운대와 광안리, 송정해수욕장의 24개 지점에서 채취한 모래에서 세균수가 모래 1g당 1000만 마리 가까이 검출된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식수 기준(1mL당 100마리 이하)의 10만 배에 이르는 수치다. 뜨거운 햇볕과 염분 때문에 박테리아나 곰팡이가 살기 힘들 것으로 생각되지만, 오히려 이런 고온과 고염분 환경이 이들에게는 번식에 안성맞춤이다.
이 중 사람이 가장 감염되기 쉬운 것은 곰팡이다. 곰팡이의 일종인 피부사상균은 인체 피부의 모든 부위에 침범할 수 있다, 주로 손이나 발, 손발톱, 사타구니 등 외부와 접촉이 용이하거나 피부끼리 맞닿아있어 습한 부위에 잘 감염된다.
피부사상균이 가장 많이 일으키는 질병이 백선, 즉 무좀이다. 발 무좀, 손발톱 무좀뿐만 아니라 완선(각질이 생기고 붉어지는 피부병)이나 어루러기(갈색 반점 형태의 피부병) 등을 일으킨다.
서울대병원과 대구보건대 공동연구팀이 ‘대한임상검사과학회지’ 2016년 12월호에 발표한 논문에 따르면 2015년 6월 부산 해운대 백사장에서 모래시료 100개를 채취해 균 배양검사를 진행한 결과, 21%에서 피부사상균 23종이 검출됐다.doi:10.15324/kjcls.2016.48.4.343
연구진은 부산 해운대해수욕장의 백사장과 바다에서 모래시료 100개를 채취한 뒤 멸균 소독한 모발을 깔고, 25도에서 1개월간 배양했다. 피부사상균은 주로 피부나 모발, 손발톱 속 케라틴을 영양원으로 삼는다는 점을 고려해 모발을 이용했다.
피부사상균은 주로 바닷물에 젖은 모래보다는 젖지 않은 모래에서, 또 사람들이 덜 붐비는 곳보다는 많이 붐비는 지역에서 더 많이 검출됐다. 검출된 피부사상균 중 43%로 가장 많은 종은 석고상소포자균(Microsporum gypseum)으로 나타났다. 이 균은 모든 환경에서 골고루 발견됐다. 반면 35%로 두 번째로 많이 검출된 크리소스포리움 속(Chrysosporium)은 주로 사람이 많고 마른 모래가 있는 곳에서 발견됐다. 사람이 몰리는 부산지역 바닷가에서 피부 질환을 유발하는 진균을 확인한 건 이 연구가 처음이다.
연구를 총괄한 김소진 서울대병원 의생명연구원 신경외과 연구교수는 “바닷가에 서식하는 피부사상균은 인간의 몸에서 나온 각질과 인간이 버린 음식물 등을 섭취하며 번식한다”며 “이 실험에서 발견된 균주는 흙 속에 상주하는 토양 친화적인 종류라 사람에게는 잘 감염되지는 않지만, 어린이나 노인처럼 면역력이 약한 사람은 감염될 수 있다”고 말했다.
2. 슈퍼박테리아 | 염분에 내성 있어 살아남아
항생제도 듣지 않는 ‘슈퍼박테리아’도 요주의 대상이다. 켈리 굿윈 미국 국립해양대기청(NOAA) 환경미생물학연구소 연구원은 캘리포니아주 해안에서 ‘메티실린내성 황색포도상구균(MRSA)’을 검출해 국제학술지 ‘워터 리서치(Water Research)’ 2012년 6월 13일자에 발표했다.doi:10.1016/
j.watres.2012.04.001
황색포도상구균은 그람양성 세균의 일종으로 공기가 있는 곳에서 자라는 세균이다. 일반적으로 사람이나 동물의 피부와 코 안(비강) 표면에 상주하며 식중독이나 화농성 감염증 등을 일으키기도 한다.
그중 MRSA는 메티실린 항생제에 내성이 있는 황색포도상구균으로 메티실린 뿐만 아니라 아목실린, 옥사실린, 디클로옥사실린 등 베타락탐계 항생제 전체에 내성을 갖고 있어 한번 감염되면 치료가 쉽지 않다.
연구팀은 말리부 등 캘리포니아주 남부 해안지역 세 곳에서 바닷물과 백사장을 채취해 황색포도상구균 검사를 시행했다. 그 결과 모래 시료 중 53%에서 황색포도상구균이 검출 됐으며, 2.7%에서는 MRSA가 검출됐다. 굿윈 연구원은 “모래사장 속 MRSA가 인체에 얼마나 위협이 될지 정확히 알 수 없다”면서도 “혹시 모를 감염을 막기 위해서는 해수욕 뒤 반드시 깨끗이 씻어내는 게 좋다”고 강조해다.
김응빈 연세대 생명시스템대학 시스템생물학과 교수는 “황색포도상구균이나 MRSA는 다른 박테리아에 비해 염분에 상대적으로 내성이 있다”며 “해수욕장을 찾는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사람으로부터 유입된 박테리아들이 백사장에서 검출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3. 대장균&장구균 | 모래찜질 했다가 배탈 날 수도
바다에서 신나게 놀고 와서 배가 아픈 경우가 있다. 이 역시 어쩌면 해수욕장에 숨어 있는 세균이 원인일 수 있다. 실제로 크리스토퍼 히니 미국 노스캐롤라이나대 역학과 연구원(현재 미국 존스홉킨스대 역학과 교수)이 이끄는 연구팀은 해수욕장에서 모래와 접촉한 뒤 복통을 호소하는 경우가 잦다는 연구 결과를 전염병 관련 국제학술지인 ‘미국 역학 저널’ 2009년 6월 18일자에 발표했다.
doi:10.1093/aje/kwp152
연구팀은 미국 7개 지역의 해변을 찾은 2만7365명을 대상으로 모래를 파내거나 모래에 몸을 묻는 등 바닷가에서 모래와 직접적으로 접촉한 적이 있는지 설문조사를 진행했다. 이후 10~12일 뒤 전화 조사를 통해 해변을 방문한 뒤 신체적으로 이상이 있었는지 확인했다.
그 결과 ‘모래에 접촉한 적이 없다’고 응답한 경우보다 ‘그렇다’고 응답한 경우 배탈이나 설사 등이 발병할 확률이 유의미하게 높은 것으로 분석됐다. 다만 연구팀은 “이 연구만으로는 모래 때문에 복통이 발생한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고 단서를 달았다.
백사장에서 배탈을 일으키는 균에 감염될 가능성을 보여주는 연구결과는 그 이후에도 나왔다. 알렉산드라 보엠 미국 스탠퍼드대 도시환경공학과 교수팀은 캘리포니아 주 백사장의 모래에서 대장균과 장구균을 검출했다고 ‘응용 및 환경 미생물학’ 2012년 1월 13일자 온라인판에 발표했다.
doi:10.1128/AEM.06185-11
대장균과 장구균은 인체의 장내에 서식하는 세균으로, 일반적으로는 인체에 해를 끼치지 않지만 O-157 등 일부 돌연변이 세균이 복통과 설사, 구토 등 식중독 증상을 일으킨다. 또한 요로에 침입할 경우 요로감염이나 방광염을 일으키기도 한다.
연구팀은 캘리포니아주 53개 지역의 해변에서 채취한모래 시료를 분석해 균의 유무를 조사했다. 그 결과 시료의 68%에서 대장균이 발견됐다. 장구균은 시료의 94%로 거의 대부분에서 검출됐다. 바닷물뿐만 아니라 백사장에서도 충분히 대장균과 장구균에 노출될 수 있는 셈이다.
국내에서는 각 시·도 보건환경연구원이 매년 해수욕장의 수질과 모래를 검사하고 있다. 수질의 경우 대장균과 장구균 수치를 검사해 대장균은 100mL당 500마리 이하, 장구균은 100mL당 100마리 이하인 경우에만 개장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반면 모래의 경우 납, 카드뮴 등 중금속 5종에 대해서만 검사하고 있다.
김 교수는 “대장균과 장구균이 발견됐다는 것은 해당 지역이 분변으로 오염됐음을 나타내는 지표”라며 “사람뿐만 아니라 반려동물, 야생동물 등이 분변을 남기면서 해변에 대장균과 장구균이 자리 잡은 것”이라고 말했다.
4. 비브리오패혈증 | 치사율 40~50%로 높아
해수욕장에 다녀온 다음 날, 배탈과 함께 으슬으슬 떨리고 열까지 난다면 최대한 빨리 병원에 가야 한다. 치사율이 절반 가까이에 이르는 비브리오패혈증에 걸렸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비브리오패혈증은 바닷물에 서식하거나 어패류에 기생하는 ‘비브리오 불니피쿠스균(Vibrio vulnificus)’에 의해 발생하는 감염성 질병이다. 주로 이 균에 오염된 바닷물이나 해산물을 먹고 감염되지만, 피부에 난 상처를 통해 바닷물 속의 비브리오균이 체내에 침투하기도 한다. 올해는 3월 전남 여수시 바닷물에서 처음으로 비브리오균이 검출됐으며, 현재 경남과 울산 지역의 바닷물에서 지속적으로 검출되고 있다.
비브리오패혈증은 1~2일의 잠복기를 거친 뒤 급성 발열과 오한, 혈압 저하, 복통, 구토, 설사 등의 증상을 나타낸다.
또 증상이 시작된 지 24시간 안에 팔과 다리에 부종. 홍반, 수포, 궤양, 괴사 등 병변이 나타난다. 비브리오패혈증은 면역력이 약한 어린이나 노약자에게서 주로 발생한다. 간질환, 당뇨병 등 만성질환을 앓고 있거나 면역력이 떨어진 환자의 경우 치사율이 40~50%로 높다.
질병관리본부에 따르면 2013~2017년 비브리오패혈증 환자는 총 253명이 발생했으며, 그중 120명이 사망했다. 올해는 6월 12일 첫 비브리오패혈증 확진 환자가 발생했다. 이윤희 질병관리본부 감염병관리과 역학조사관은 “현재 각 지방 검역소를 중심으로 특별 감시를 진행하고 있다”며 “첫 번째 환자 발생 이후 대국민 홍보를 통해 위험성을 알리고 있다”고 설명했다. 7월 중순 현재 비브리오패혈증 확진 환자가 추가로 발생하지는 않았다.
5. 개회충 | 반려동물과 주인, 구충제 복용해야
최근 국내에서는 해수욕장에 반려동물을 동반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 2016년 강원도 양양에는 ‘멍비치’라는 애견 전용 해수욕장까지 생겼다. 하지만 반려동물의 해수욕장 입장과 관련해 논란이 있다.
외국에서는 이미 수십 년 전부터 이 문제가 대두됐다. 1990년 프랑스 국립위생보건국(CSHPF)의 보고서에 따르면, 마르세유 지방 해변의 모래사장을 조사한 결과 백사장 속에서 발견된 기생충 중 개회충(Toxocara canis)이 가장 많은 양을 차지했다.
개회충은 회충과에 속하는 기생충으로 주로 개를 숙주로 삼지만, 사람도 감염될 수 있다. 개회충의 알을 사람이 삼키면 유충이 장벽(腸壁)에 침입해 장, 간, 신장 등에 염증을 일으킨다.
박희명 건국대 수의대 수의내과 교수는 “우리나라의 경우 반려견의 야외활동이 상대적으로 적고, 또 구충제를 철저히 복용하는 편이라 반려견이 개회충을 해변에 옮길 가능성은 높지 않다”며 “다만 야생동물이나 야외에서 사는 개들이 옮긴 기생충은 번식할 수 있는 만큼 반려견이나 주인 모두 구충제를 복용하는 것이 좋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