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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과동키즈] “우리의 목소리를 외계로 전하는 과학을 상상합니다”

     

    안녕하세요, 언해피서킷(Unhappy Circuit)이라는 이름으로 활동 중인 작가 원종국이라고 합니다. 저의 작업은 주로 학제간 예술 또는 뉴미디어 예술로 분류되며 언어학, 인류학, 천문학, 생태학 등 다양한 분야의 이론이나 관점을 결합하고 이를 예술의 영역에서 표현하는 방식으로 이뤄집니다.

     

    저는 2014년에 전자음악 앨범을 발표하며 언해피서킷이라는 이름으로 데뷔했습니다. 활동한 지 올해로 만 10년이 됐죠. 데뷔 당시 제 음악은 전기 회로가 만드는 소리를 이용한 다소 우울한 분위기의 음악이었던 까닭에 ‘우울한 회로’라는 이름이 썩 잘 어울린다고 느꼈습니다. 또한 저는 우리 삶의 상당 부분이 행복의 순간을 기다리는 ‘언해피함’으로 이뤄졌다고 봤어요. 그래서 모두가 자신의 진정한 행복이 무엇인지 고민하며 그 답을 찾기 위해 노력 중이라고 생각해요.

    우주의 그대에게 보내는 우리의 메시지

     

    최근 몇 년간 저는 ‘METI’란 분야에서 작업을 진행했습니다. 외계 지적 생명체 탐사(SETI嘄earch for Extra-Terrestrial Intelligence)’에 비해 METI는 다소 생소하실 듯합니다. SETI가 우주로부터의 전자기 신호들에서 외계지성체의 흔적을 찾는 전파천문학의 분야라면, Messaging to Extra-Terrestrial Intelligence의 약자인 METI는 지구에서 외계지성체에게 전하기 위한 일종의 정보 또는 데이터를 개발하고, 우주로 전송하는 것을 시도하는 분야입니다. SETI가 외계지성체를 찾기 위해 우주로부터의 신호를 계속 ‘듣는’ 것에 집중한다면, METI는 우리의 존재를 우주에 먼저 ‘알리는’ 것에 집중하는 분야입니다.

     

    METI 분야의 연구자로서 제 목표는 외계지성체에게 ‘인간의 언어’를 알려줄 방식을 찾는 것입니다. 인간에게 언어란 의사소통 수단을 넘어서, 사고 자체와 밀접한 연관이 있습니다. 또한 인간은 다른 문화권의 인간, 더 나아가 다른 종의 언어를 이해함으로써 상대의 존재를 보다 깊이 이해해가고 있죠. 그래서 저는 외계와의 소통에서도 서로의 언어를 이해해야하는 때가 결국엔 반드시 올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래서 지난 몇 년간 인류 언어에 대한 기본적 정보를 외계지성체에게 전하기 위한 메시지 개발에 집중했습니다. 2023년에 발표한 ‘사람의 언어와 삶에 대한 우주언어인류학적 데이터’ 프로젝트도 그중 하나입니다. 이 프로젝트의 목표는 외계지성체가 지구의 옛 노래인 ‘노를 저어라’의 가사를 이해할 수 있도록 일종의 ‘언어 사전’을 구성함으로써, 인류 언어의 기본적 특징부터 ‘삶’에 대한 인류의 관념까지 외계지성체에게 전하는 것입니다.

     

    외계지성체는 생물학적 특징, 사고방식, 문화, 언어 등 모든 면에서 인류와 공통점이 전혀 없을지도 모릅니다. 그럼에도 138억 년이란 우주의 광대한 시간에 비하면 결국 아주 짧은 시간만 사는 유한한 존재라는 사실만큼은 우리와 같을 수 있습니다. 이 프로젝트의 궁극적 목표는 바로 이런 ‘삶’에 대한 메시지를 외계에 전해서, 이 우주에서 함께 사는 모든 외로운 존재들 간의 ‘우주적 공감대’를 형성하는 것입니다.

    SF 키즈의 ‘절친’ 과학동아

     

    제가 METI에 관심을 가진 것은 내가 만든 뭔가를 우주로 보낸다는 행위 자체가 예술로서 아주 매력적으로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외계의 존재를 향한 메시지 개발이 여러 학문을 아우른다는 점도 과학을 좋아하는 예술가인 제겐 매력적이었습니다.

     

    저의 이런 취향이 만들어진 데는 어릴 때부터 즐겼던 SF 작품의 영향도 컸습니다. 그중에서도 ‘외계와의 접촉(First Contact)’을 다룬 작품들에 특히 매료됐죠. 초등학교도 입학하기 전에 봤던 ‘울트라맨’부터 제 어린 시절 영웅이었던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ET’ 같은 작품을 거쳐, 청소년기에 ‘스타트렉’ 시리즈와 ‘콘택트’ 같은 작품들에 깊이 빠졌습니다. 특히 ‘콘택트’는 SETI와 이 작품의 원작자인 칼 세이건이란 천문학자를 제게 처음 알려준 작품입니다. 세이건처럼 외계와의 접촉 또는 소통을 과학적 방식으로 진지하게 연구하고, 우주로 메시지를 보내는 과학자들이 실재한다는 사실에서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제가 SF에 진지하게 몰입하기 시작했던 1990년대와 2000년대만 해도 한국은 SF 키즈로 살기에 외로운 곳이었습니다. 일단 SF에 관한 정보와 작품들이 충분치 않았어요. 그 무렵 과학동아에 연재된 SF평론가 박상준 님의 SF 칼럼들은 제게 가뭄의 단비처럼 소중했죠. ‘라마와의 랑데부’ ‘중력의 임무’ ‘타우 제로’ 같은 작품들은 모두 이때 과학동아 덕분에 접했습니다. 지금 이렇게 과학동아에 글을 쓰는 감회가 남다른 이유입니다.

    방황하던 젊은이가 우주를 향하는 예술가로

     

    저는 어릴 때 만화가나 코미디언 또는 우주비행사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하며 자랐습니다. 그러다 SF에 점점 심취하다보니 관심이 자연스레 과학으로 옮겨갔고, 우주의 비밀을 파헤치는 일이 너무 멋져 보여서 물리학자, 천문학자를 꿈꿨죠. 수학과 과학 자체에 큰 재능은 없었던 것 같지만 그 과목들은 꽤 재밌었고, 첫 대학도 물리학과에 진학했습니다. 하지만 막상 물리학을 별로 열심히 공부하진 않았어요.

     

    이후 방황하는 시간을 보내며 예술가가 되고 싶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20대 중반에 미대에 진학해 금속공예를 전공했죠. 하지만 새로운 미디어와 기술을 이용한 SF적인 주제의 작업을 하길 원하면서 다시 방황했습니다. 결국 전자음악을 작곡한 음반으로 2014년에 데뷔했죠. 이후 현재까지 뉴미디어 아트 분야에서 작품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동시에 학점은행제로 남은 학사 과정을 마무리하고 아트&테크놀로지 대학원에 진학해 석사 과정을 마쳤습니다. 석사 학위를 받은 논문도 METI가 주제였죠. 무엇보다 한국에서 METI를 연구한 경험 자체가 큰 행운이라고 생각합니다.

     

    제 궁극적인 목표는 저의 예술로 인간과 우주를 잇는 것입니다. 광대한 우주에 비해 인간은 본질적으로 유한하고 미약하며 외로운 존재입니다. 그래서 우리 인간은 우주와 연결되길 바라는 본능이 있습니다. 자신의 삶은 찰나와 같지만 이 우주에서 어떤 의미로서 남길 바라죠. 모든 인간은 우주에서 시작됐지만 우리에게 우주는 여전히 먼 곳이기도 해요. 제 예술이 인간의 삶과 정신, 존재의 의미를 우주와 다시 연결하는 가교가 되길 바라며 창작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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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년 04월 과학동아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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