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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uture] ‘잘 나가던’ 소프트로봇이 발목 잡힌 이유

소프트로봇은 딱딱한 금속을 쓰지 않고 실리콘처럼 부드러운 재료로 만드는 일종의 생체모방로봇이다. 안전하고, 관절이 없어 자유도(기계가 움직일 수 있는 방향의 개수)가 높다는 장점이 있다. 또, 복잡한 알고리즘 없이도 유체의 압력을 이용해 단순하게 움직일 수 있으며, 그만큼 속도도 빠르다. 이처럼 다양한 장점을 가진 덕분에 2006년 처음 개발된 이후 유망미래기술로 각광받았고, 지난 10년간 애벌레, 뱀, 지렁이, 물고기, 문어 등을 본 딴 수많은 소프트로봇이 개발됐다. 논문 저자인 미국 ‘엠파이어 로보틱스’ 사의 엔지니어들은 2012년 이 같은 소프트로봇의 일종인, 다양한 크기의 휴대전화를 집을 수 있는 로봇 손을 개발했다.

6억 매출 내고도 문 닫은 이유? ‘시장이 없어서’
7개 사업계획대회 우승 상금 150만 달러, 민간투자 50만 달러 등 총 200만 달러(약 23억 원)의 자본금으로 시작한 엠파이어 로보틱스 사는 50만 달러(약 5억7000만 원)의 매출을 올리고 작년 봄 4년 만에 문을 닫았다. 이유는 ‘지속가능한 비즈니스를 찾지 못함’. 김정 KAIST 기계공학과 교수는 “시연 단계에서 다양한 크기의 휴대전화를 집을 수 있다는 걸 보였지만, 자동화 설비 가운데 이런 기능을 필요로 하는 경우가 잘 떠오르지 않는다”고 말했다.

논문은 제품화 과정에서 직면했던 여러 기술적 문제를 나열하고 있다. 예컨대 이런 식이다. 초기 모델의 내구성 테스트 결과, 집기 동작을 1000번 반복하면 수명이 다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재료 성능을 개선해 수명을 10만 번으로 늘릴 수 있다 해도, 공장에서 1일 8시간 분당 3회 작동시킨다고 가정(비교적 단순한 경우다)했을 때 70일 후에는 제품을 교체해야 한다는 계산이 나왔다. 부드러운 재료로 만든 탓에 쉽게 마모되고 열화(절연체가 내·외부영향으로 물리적·화학적 성질이 나빠지는 현상)가 일어났기 때문이다. 이를 방지하고자 단단한 재료로 바꾸면 원래 목표로 했던 성능이 잘 나오지 않았다. 이는 기술을 제품화하는 과정에서 흔히 직면하게 되는 문제다. 김 교수는 “연구 단계에서는 한 가지 성능만 잘 구현하면 되지만, 실제 상용화를 할 때는 (때론 모순되기도 하는) 다양한 요구조건을 만족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문제는, 소프트로봇을 연구하는 학자나 개발자들이 상용화의 성패를 가르는, 사소해 보이지만 사실은 매우 중요한 요소들을 자주 무시한다는 점이다. 예컨대 소프트로봇은 동력으로 유체의 압력을 많이 이용하는데, 필요사양의 유압을 제공하려면 제품보다 몇 배는 더 큰 유압기기가 필요하다. 그러나 이 사실을 (굳이) 논의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임현의 한국기계연구원 나노자연모사연구실장은 “비단 소프트로봇만의 문제는 아니다”라며 “예를 들어 최근 인공피부에 대한 논문이 엄청나게 쏟아져 나오는데, 이를 시연할 때 고성능 컴퓨터나, 기본 가격이 1000만 원 이상인 정밀측정기기가 필요하다는 사실은 보여주지 않는다”고 말했다.

 

‘ 엠파이어 로보틱스’ 사 연구팀은 논문에서 “상용화는 소프트로봇의 장기적인 영향을 결정하는 주요 장애물”이라고 밝혔다. 로봇공학의 새로운 대안처럼 각광 받아온 소프트로봇이 이 같은 문제에 직면한 이유는, 장점이 곧 단점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실리콘 같은 유연한 재료로 만들어 안전하지만, 그만큼 내구성이 약하고 쉽게 마모되며 큰 힘을 내기 어렵다. 딱딱한 로봇은 다리에 연결된 모터를 한 바퀴 감았다가 풀면 진행한 만큼 정확히 제자리로 돌아오는데, 소프트로봇은 재료가 부드러워서 복원이 정확히 안 된다. 관절이 없고 유압을 사용해 어느 방향으로든 자유자재로 움직일 수 있지만, 원하는 방향으로 제어가 잘 안된다는 문제도 있다. 요컨대, 소프트로봇은 딱딱한 전통적인 로봇보다 상용화가 더 어려울 수 있다는 얘기다.


상용화 막는 요소 잘 드러내지 않는 게 문제
요컨대 위 논문은 로봇공학의 연구개발 방법에 대한 새로운 논의의 물꼬를 튼 것이다. 2006년 애벌레 로봇을 개발해 소프트로봇 분야를 연 미국 터프츠대 생물학과 베리트림머 교수는 보도자료에서 “첨단 소프트로봇 기술로 새로운 비즈니스를 창출하려면 사람들이 로봇에 대해 생각하는 방식을 바꿔야 한다”며 “이 논문이 좋은 예”라고 밝혔다. 조규진 서울대 기계항공공학부 교수도 “학계에서 거의 다루지 않는 설계시 신뢰도와, 상용화를 할 때 고려해야 할 여러 요소에 대한 논의를 제공했다는 데 의의가
있다”며 “기술을 제품화할 때 참고하기 좋은 논문”이라고 말했다.

물론 연구라는 건 늘 응용분야와 시장이 뚜렷한 경우에만 할 수 있는 게 아니고, 또 그래서도 안 된다. 그러나 공학, 특히 로봇공학은 특성상 상용화와 분리해 생각할 수 없는데도, 그간 이와 관련된 논의가 적었다는 아쉬움이 남는다. 앞으로 이 같은 논의가 활발하게 진행돼 더 많은 기술이 세상으로 나오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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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03월 과학동아 정보

  • 우아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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