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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즈 치료제 AZT

노벨상 수상자 4명 배출한 웰컴 연구소의 결실

에이즈 연구가 시작된지 10여년. 웰컴을 비롯한 제약회사들은 끈질긴 노력으로 에이즈 치료제를 개발하고 있다. 이제 이 '불치의 병'을 완전히 제압할 날이 임박한 듯하다.
 

과학자들이 항바이러스제 아시클로버의 효과를 감시하고 있다.


후천성 면역결핍증, 일명 에이즈(AIDS) 환자가 미국에서 처음 발견된 것은 1981년이다. 1983년 프랑스 파스퇴르 연구소 뤽 몽타니에(Luc Montagnier)는 최초로 인간면역결핍 바이러스(HIV)를 전자현미경으로 확인하였고 1984년 미국과학자들은 이를 에이즈의 원인 바이러스로 지목하였다.

HIV는 인체의 면역세포 중 T4 임파구에 침입, 일정한 잠복기를 거친 후 갑자기 복제되어 에이즈 증세를 일으킨다. 면역기능이 손상된 환자는 암과 각종 미생물의 감염으로 사망하게 된다.

에이즈는 이미 발생 초기부터 심각한 전염병으로 인식되었다. 더욱이 이 질병은 아프리카와 같은 후진국 뿐만 아니라 미국과 유럽 등 선진국에서도 문제가 되어, 지금까지 최첨단의 의약연구가 수행되고 있다.

그러나 아직 바람직한 예방 및 치료법이 나오지 않은 상태에서 에이즈 환자는 계속 늘어나고 있다. 세계보건기구의 공식집계에 따르면 현재 HIV 감염자가 2천만명에 육박하고 있으며, 에이즈 환자는 미국 40만명, 프랑스 3만명, 독일 캐나다 영국 각 1만명, 스위스 4천명을 포함히여 1백만명이 넘는다. 이런 추세라면 2000년까지 감염자는 1억명에 달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전세계의 거의 모든 유명 제약회사는 정부의 지원 아래 에이즈 치료제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그러나 에이즈 바이러스가 발견된 후 1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 효과적인 치료제로 인정받는 것은 1987년 미국 식품의약국(FDA)의 신약허가를 받은 AZT(3'-azido-3'-deoxythy-midine)뿐이다. 이 약은 1985년 웰컴(Wellcome) 회사의 연구실이 발견한 것이었다.

방치된 항암제가 에이즈 치료제로

AZT라는 화학물질이 최초로 세상에 나온 때는 1964년이다. 미국 디트로이트 암 연구소 제롬 호르비츠(Jerome P. Horwitz)는 미국국립보건원(NIH) 연구비로 항암제를 찾다가 이 물질을 합성했다. 이 물질은 핵산염기인 티민에 변형된 당이 붙은 가짜 뉴클레오시드이다. 호르비츠는 '이 가짜가 암세포 DNA 합성과정에서 디옥시티미딘 대신 사슬에 들어가 DNA 합성을 정지시키리라'는 가정하에 AZT를 합성했다.

그러나 실험 결과 암세포는 이 물질을 가짜로 인지했다. 즉 암세포의 DNA 합성이 정지되지 않았던 것이다. 결국 이 물질은 그대로 실험대 선반위에 방치되고 있다가 에이즈의 등장으로 빛을 보게 됐다.

에이즈가 HIV의 감염으로 발생한다는 사실이 밝혀지자 이 바이러스를 억제할 수 있는 가능한 모든 방법이 연구되기 시작했다. 과학자들은 이전에 항암제 항바이러스제로 실험했던 물질이 HIV에 효과를 나타내는지 다시 확인하는 것이 제일 빠른 접근법이라고 생각했다. 이 과정에서 웰컴의 과학자들은 AZT가 HIV를 억제한다는 사실을 발견했고 그 결과 최초로 에이즈 치료를 위한 아이디어를 낸 것이다. 이미 1964년에 합성되어 공표된 것이어서 물질특허는 되지 않았으므로 웰컴은 1985년 초에 AZT에 대한 용도특허를 출원했다.

이와 거의 동시에 AZT는 미국국립보건원에 보내져 보다 자세한 연구가 진행했다. 국립보건원은 듀크대학 연구진과 공동으로 즉시 AZT의 HIV 억제효과를 발견했고 5-6개월내에 소규모 임상실험 결과도 얻어냈다. 웰컴 및 다른 기관에서도 임상실험이 실시됐다. 그 결과 AZT는 HIV 감염자가 에이즈 환자로 변화되는 과정을 억제하고 에이즈 증세가 악화되지 않게 한다는 점이 밝혀져 1987년초 미국식품의약국의 신약허가를 받았다. 약이 발견되고 안정성과 효능성이 완전히 입증된 뒤 신약허가를 받기까지 10년 이상 걸리는 일반관례에 비해 파격적으로 단축된 기간이었다.

RNA 바이러스인 HIV는 자체 함유물인 역전사효소(reverse transcriptase)를 이용, 숙주세포 내에서 DNA 복사체를 만든다. 이 DNA는 복제되어 순환되다가 감염세포의 DNA에 융합된다. 이 때 AZT는 체내에서 역전사효소의 작용을 억제하여 바이러스 DNA의 형성을 막는 것이다.

항바이러스제 조이락스의 개발에 기여한 쉐퍼


웰컴의 고집스런 연구전통이 찾아낸 AZT

AZT의 미국 특허는 2005년까지 유효한데 최근 미국 국립보건원이 다른 회사에 발매를 허용할 움직임을 보여 문제가 발생했다. 국립보건원의 HIV 억제 실험결과가나 온 시기가 특허출원일자와 거의 일치하므로 웰컴의 용도특허 출원이 국립보건원의 연구결과를 참고한 것이 아니냐는 문제가 제기된 것이다. 그렇다면 웰컴만이 발명자가 아니라는 것이 국립보건원의 주장이었다.

국립보건원의 의도는 보다 싼 값으로 약을 공급하려는 것이었다. 그러나 웰컴은 자존심을 가지고 국립보건원에 맞섰다. 결국 1994년 법원은 AZT가 웰컴연구소의 창의적인 발명이라는 판결을 내렸다.

여기서 강조하고 싶은 것은 웰컴의 AZT 발견이 우연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핵산의 대사 과정을 차단하는 화학요법제 연구가 처음 이루어진 곳이 바로 미국 버로우즈 웰컴(Burroughs Wellcome)이며 이에 공헌한 조지 히칭스(George H. Hichings)와 저투르드 엘리온(Gertrude B. Elion)이 1988년 노벨의학상을 받았기 때문이다. 즉 에이즈치료제 AZT와 현재 사용되는 많은 항암제 항바이러스제는 웰컴 연구소 덕분에 발견된 것이었다.

웰컴은 고집스럽게 기초연구를 통해 약을 개발한다는 철학을 가진 회사이다. 창업자인 헨리 웰컴(Henry Wellcome)의 이 경영철학은 웰컴을 가장 많은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한 제약회사로 만들었다.

1906년 영국 웰컴의 생리학연구소 소장이 된 헨리 데일(Henry Dale)은 보리에 기생하는 곰팡이의 일종인 맥각(麥角)은 연구하는 과정에서 아드레날린 히스타민 아세틸콜린과 같은 중요한 생리활성물질을 철저히 연구하였고 1914년 의학연구위원회로 옮겨간 후에도 아세틸콜린 연구를 계속했다. 그 결과 1936년 오스트리아 그라츠 대학의 오토 뢰비(Otto Loewi)와 공동으로 아세틸콜린의 신경전달 역할을 밝힌 공로로 노벨 의학상을 받았다. 1973년 웰컴 그룹 연구개발 책임자로 취임한 영국의 존 베인(John Vane)은 프로스타글랜딘 연구를 계속하여 1976년 혈소판응집 억제 효과를 가진 프로스타시클린을 발견하였다. 이 발견으로 그는 1982년 노벨 의학상을 수상했다. 1988년 히칭스와 엘리온의 수상은 이를 이은 것이다.

제약 연구에서도 기초연구가 중요하다. 그러나 약의 개발이 쉽게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며 기초연구의 성과가 다른 기업체에 공유되는 경향이 강하므로, 기초연구의 치중은 제약 경영에서는 손해보는 접근방법인 셈이다. 최근 제약기업이 기초연구를 하지 않고 대학이나 정부 연구소의 기초연구 결과를 기다리거나 다른 기업체의 연구결과를 모방하려 한다는 미국소비자단체의 지적은 이런 상황을 잘 설명해주고 있다.

웰컴이 기초연구를 할 수 있었던 것은 개인 기업체였던 영국 모(母) 회사(웰컴재단)의 모든 수익을 대학 등에서 행해지는 의약연구의 지원에 쓰도록 유언을 남긴 창업주의 철학과도 관계가 있다. 무수히 많은 연구실과 실험장비가 대학에 제공되었고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세계적인 제약기업의 창업주는 공통적으로 이윤추구만이 아니라 '병든 사람의 고통을 염두에 두어 의약 연구를 하면 자연히 이윤이 생긴다'는 철학을 가졌다. 이 점에서 헨리 웰컴은 연구를 통한 자선정신으로 제약기업을 경영한 인물이다.

새로운 화학요법제의 발견자 히칭스와 엘리온

히칭스는 1933년 하버드대학에서 생화학 박사학위를 받고 9년간 대학에서 가르치다 1942년 미국 웰컴의 생화학 연구 책임자가 되었다. 그는 1944년 화학자 엘리온을 채용하였다. 그녀는 1937년 헌터 칼리지 졸업 후 대학원에서 공부를 계속하기 위하여 15개대학에 원서를 보냈으나 한 곳도 장학금을 주지 않아 학업을 포기했다. 성차별의 냉대 속에서 그녀는 7년간 보잘것 없는 화학실험실 일을 하면서 파트타임으로 공부, 1941년 뉴욕대학에서 석사학위를 받았다. 엘리온이 웰컴에 들어온 것은그녀의 행운이었으며 히칭스와 40년 이상 계속된 공동연구의 시작이었다.

히칭스는 '무엇이든 아이디어가 있으면 발전시켜보라'는 웰컴의 전통에 따라 핵산대사를 연구과제로 택했다. 히칭스와 엘리온은 정상 인체 세포와 암세포 바이러스 박테리아 등에서 일어나는 핵산의 합성 및 분해과정간의 차이를 밝혀 항암제 항바이러스제 항균제를 발견할 것을 목표로 삼았다.

이들의 연구는 1950년대에 결실을 맺어 1950년과 1951년 사이 최초의 백혈병 치료제인 메르캅토퓨린(mercaptopurine)과 티아구아닌(thioguanine)이 발견되있다. 이들의 연구가 발표되기 시작하자 많은 제약회사에서 유사한 접근으로 항암제를 찾기 시작하였다. 1957년 로슈(Hoffmann-La Roche)에서 합성한 플루오로우라실(fluorouracil)이 그 중 하나다. 이것은 위장관암에 많이 쓰이는 약이 되었다.

한편 항바이러스제 연구도 본격화되어 1950년대 말부터 많은 유용한 약이 발견되었다. 이 중 가장 최근에 개발된 2개의 항바이러스제를 살펴보자.

아시클로버(acyclovir)는 미국 웰컴의 하워드 쉐퍼(Howard Schaeffer)가 합성하고 엘리온이 그 작용 메커니즘을 밝힌 약이다. 쉐퍼는 버펄로 약대를 나오고 플로리다대에서 1955년 약화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 후 그는 대학교수로 근무하다 1970년 웰컴 연구소에서 일하기 시작했다.

1971년 쉐퍼의 아시클로버 합성과 엘리온의 약리 연구를 거쳐 조비락스(Zovirax)라는 상품명의 항바이러스제가 1982년 발매되었다. 이약은 생식기를 포함한 피부 및 점막조직의 단순포진 바이러스(herpes simplex virus)에 효과가 커 1994년 15억달러 이상이 판매, 전세계적으로 4번째로 많이 팔리는 약이 되었다.

다른 하나는 신텍스(Syntex)사의 줄리안 베르헤이덴(Julian Verheyden)이 합성한 갠시클로버(ganciclovir)이다. 이 약은 1988년 시토벤(Cytovene)이라는 상품명으로 영국에서 처음 발매되었는데, 에이즈나 다른 면역결핍 증상과 함께 나타나는, 시각 및 생명을 위협하는 거대세포봉입 바이러스(cytomegalovirus) 감염에 효과가 크다.

비관적이 아닌 에이즈 치료제 개발

에이즈 예방약과 치료제의 연구가 시작된 지 10여년이 지났으나 아직도 획기적인 약이 출현하지 않은 것을 안타깝게 생각하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그러나 HIV와 같이 새로 발견된 바이러스를 제압할 무기를 개발하는데 10년 이상의 연구가 필요하다는 사실은 이상할 것이 없다. 즉 대상의 정체를 파악하고 공격의 틀을 설정하는 데 최소한 10년의 시간이 걸리는 것이다. 그러나 그 뒤 이를 완전히 제압할 수 있는 약의 출현은 시간문제일 수 있다. 따라서 앞으로 5년간이 효과적인 약 출현 시기에 해당된다고 봐야 할 것이다.

현재 연구중에 있는 에이즈 백신 및 개발은 궁극적으로 유전공학의 도움을 받을 것이다. 일부 임상실험 중에 있는 백신은 20세기가 지나기 전에 약으로 나올 것으로 기대된다.

에이즈 치료제로 AZT외에 DDI(2', 3'-dideoxyinosine) 및 DDC(2', 3'-dideoxy cytidine)가 신약허가를 받았다. 그리고 3TC의 허가가 임박해 있다. 이들 뉴클레오시드 동족체는 AZT와 유사하게 역전사효소를 억제하는 메커니즘을 갖는데, 아직 AZT보다 획기적인 진전을 이룬 것은 아니다.

브리스톨마이어즈 스퀴브(Brisotol-Myers Squibb)사에서 개발한 DDI는 AZT에 효과가 없거나 내약성의 문제로 AZT를 사용할 수 없는 환자에 추천되고 있다. 로슈사에서 개발한 DDC, 글락소(Glaxo)사에서 개발한 3TC는 AZT와 함께 사용된다.

요즘 강력한 에이즈 치료제로 기대되는 것은, HIV가 복제될 때 피막단백질의 형성에 관여하는 단백질분해효소를 억제하는 물질들이다. 이 계열 물질은 높은 HIV억제 효능을 가지고 있으므로 AZT와 함께 사용하면 HIV에 이중으로 타격을 주게 된다.

이와 같이 바이러스의 내성을 극복하고 항바이러스 효과를 높이기 위하여 2개 이상의 약을 함께 사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 때 각 약물의 개발기업은 임상시험 등에서 서로 협조할 필요가 있으며 이 목적으로 미국과 유럽의 15개 제약회사는 이미 협동체제를 갖추어 놓고 있다.

현재 웰컴은 연간 매상액 35억달러인 세계 18위의 제약회사다. 이 회사의 종업원수는 1만7천명, 연구개발비는 5억달러 이상을 쓰고 있다. 한국에서 제일 큰 제약회사의 연간 매상액은 3억달러인데 이중 반은 드링크류 판매에서 비롯된 것이다. 연구개발비는 1천만달러 정도. 이를 미루어 볼때 가히 세계 제약기업의 연구개발능력을 짐작할 수 있다.
 

실험실에서 백신을 대규모로 생산하는 모습
 

1995년 09월 과학동아 정보

  • 강건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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