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처음의, 그리고 가장 간단한 무언가는 언제나 그 자체로 의미가 있는 경우가 많다. 세상을 이루고 있는 원소, 그중에서도 현재까지 발견된 118개 원소 중 원자번호 1번을 차지하고 있는 수소 역시 그 자체만으로도 큰 의미를 지닌다. ‘세상을 바꾼 원소’로 불리기에 손색이 없다.
수소 발견, 연금술에서 과학으로
수소는 우주의 모든 원소 중 가장 간단한 구조를 가진 원소다. 원소의 기본 단위인 원자는 일반적으로 양성자와 중성자가 모여 만들어진 원자핵, 그리고 그 주위에 분포하는 전자로 이뤄진다. 양전하와 음전하 간의 전기적인 힘이 균형을 이뤄 안정한 원자로 존재하는 것이다. 수소는 양성자 1개와 전자 1개만으로 이뤄진 매우 간단한 구조다. 이런 간소함 덕분에 수소는 모든 원소 중 가장 작고 가볍다.
수소는 138억 년 전 빅뱅 이후 우주가 진화하면서 생성된 최초의 원소이자, 전체 우주 원소의 90% 이상을 차지하는, 우주에서 가장 많이 존재하는 원소다. 헬륨, 산소 등 이후 탄생한 다양한 원소들은 수소 원자들의 핵융합 과정을 통해 만들어졌다. 따라서 수소는 우리가 사는 우주의 시작부터 현재까지, 우주의 역사에서 가장 오랜 시간을 함께하고 있는 원소라고 할 수 있다.
수소를 처음 발견한 사람은 영국의 과학자 헨리 캐번디시다. 1766년 그는 강한 산과 철이 반응할 때 폭발성 기체가 생성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이 폭발성 기체가 바로 수소다. 이후 이 새로운 기체에 관한 연구를 통해 1778년 프랑스의 과학자 앙투안 라부아지에가 수소를 연소시키면 물이 생성된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수소라는 이름 또한 ‘물의 근원’이라는 뜻에서 나왔다. 수소의 영어 이름인 ‘hydrogen’은 그리스어로 ‘물’을 뜻하는 ‘hydro’와 ‘만들다’는 뜻의 ‘genes’를 합친 말이다.
단순한 실험으로 보일 수도 있겠지만, 수소와 산소를 반응시켜 물이 생성되는 현상을 발견한 사건은 화학의 역사에서 상당히 중요한 전환점으로 평가받는다. 당시에는 물질이 연소하는 현상은 플로지스톤이라는 성분에 의해 일어난다고 여겨졌는데, 이를 뒤집음으로써 화학이라는 학문이 연금술의 영역에서 벗어나 현대 과학의 한 줄기로 자리매김할 수 있었다.
물론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수소의 존재를 직접 체감하기는 쉽지 않다. 상온에서 기체 상태로 존재하고 눈에 보이지도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수소는 지구 어디에나 존재한다.
수소는 단순한 구조 덕분에 탄소, 질소, 인, 황 등 수많은 비금속 원소들과 결합해 화합물을 형성할 수 있다. 우리가 지구상에서 볼 수 있는 수소는 대부분 이런 화합물의 형태로, 이들은 지구를 구성하는 핵심적인 요소다.
특히 단백질, 탄수화물, 지방을 비롯해 에너지원인 포도당, 필수영양소인 비타민, 세포막을 구성하는 인지질 등 생명체를 구성하는 데 필수적인 물질에 수소는 빠지지 않는다. 그만큼 생물학적으로도 중요한 원소가 바로 수소다.
또한 수소는 원자 상태일 때뿐만 아니라 이온 상태로 존재할 때에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수소가 물에 녹을 때는 전자를 잃고 H+(수소 양이온·양성자) 상태로 용액 속에 녹는데, 이 H+는 우리가 흔히 산성도(pH)라고 일컫는 특성을 정의하는 기준이 된다.
H+가 많이 녹아 있을수록 강한 산성을 나타내며, 이런 특성은 화학, 의료, 생물학을 비롯한 과학 전 분야에서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한다. 염산(HCl)이나 황산(H2SO4) 같은 강산성 물질부터 과일 주스 같은 식료품, 위액 같은 소화액까지 수많은 종류의 산이 각자의 위치에서 제 역할을 한다.
1족 지위 놓고 논란
주기율표에서 수소는 1족인 알칼리 금속에 위치한다. 전자가 1개밖에 없어 최외각 전자 또한 1개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른 1족 원소들이 상온, 대기압의 일반적인 상태에서 금속으로 존재하는 것과 달리 수소는 기체로 존재한다. 이 때문에 수소를 1족으로 분류하는 것이 합당한 것인가에 대한 갑론을박이 최근까지도 치열했다.
하지만 아이작 실버라 미국 하버드대 물리학부 교수팀은 영하 260도, 490만 기압의 초저온, 초고압 환경에서 광택을 보이는 금속 상태의 수소가 형성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고 국제학술지 ‘사이언스’ 2017년 2월 17일자에 발표하며 수소의 1족 분류에 대한 근거를 제공했다. doi:10.1126/science.aal1579
또 지난해 3월에는 트리스탄 기요 프랑스 코트다쥐르천문대 책임연구원이 이끄는 국제 공동연구팀이 미국항공우주국(NASA)의 목성 탐사선 ‘주노’와 토성 탐사선 ‘카시니’의 조사 결과를 토대로 목성, 토성 등 거대 행성 내부의 초저온, 초고압 환경에서는 수소가 금속 상태로 존재할 수 있다고 예측했다. doi:10.1038/nature25775 이런 연구들 덕분에 현재 수소는 1족 알칼리 금속으로 확고히 자리를 잡고 있다.
양성자 1개와 전자 1개로만 이뤄진 단순한 구조 덕분에 수소는 원자의 구성과 특성을 연구하는 데 널리 활용됐다. 특히 현대 물리학의 핵심을 이루는 양자역학의 탄생과 발달 과정에서 수소는 혁혁한 공을 세웠다. 닐스 보어를 비롯한 물리학자들이 수소 연구를 통해 원자의 구조, 오비탈, 이온화 에너지 등 과학적으로 중요한 사실들을 밝혀낼 수 있었다.
또한 수소는 인간이 더 높은 곳을 정복하는 데도 공을 세웠다. 일반적인 환경에서 수소 기체의 밀도는 약 0.090g/L로 공기의 밀도(1.225g/L)에 비해 극도로 낮다. 이 때문에 수소는 지구 중력을 쉽게 이겨낼 수 있다. 사람들은 이런 가벼운 성질을 이용해 비행선을 하늘로 띄우는 충전재로 수소를 활용했다.
그러나 수소는 매우 낮은 에너지에서도 폭발을 일으키기 때문에 정전기만으로도 폭발 사고가 발생할 위험이 있다. 실제로 수소를 충전재로 사용한 독일 비행선 ‘LZ129 힌덴부르크’는 1937년 5월 6일 미국 뉴저지주 레이크허스트에 착륙하던 중 폭발해 36명에 이르는 사망자를 내기도 했다.
하지만 수소는 안전하게 다룰 수만 있다면 적은 무게와 에너지로도 큰 폭발에너지를 만들 수 있어 로켓의 연료로 사용됐다. 지금은 퇴역한 미국 우주왕복선은 액체 수소와 액체 산소를 연료로 썼다. 수소가 없었다면 하늘과 우주를 향한 인류의 도전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연료전지부터 핵융합까지
최근 수소는 미래 에너지원으로 새롭게 주목받고 있다. 화석연료는 매장량이 한정돼 있고 연소 과정에서 대기오염과 지구온난화를 촉발하는 기체를 배출한다. 하지만 수소는 구하기 쉽고 연소 이후 부산물로 물만 배출하는 등 친환경적인 만큼 장기적인 측면에서도 미래와 직결돼 있다.
이 때문에 전 세계 수많은 연구팀이 수소를 이용한 신에너지 기술 연구에 매진해왔다. 그중 수소연료전지를 탑재한 전기자동차, 그리고 수소 자체를 연소시키는 수소 내연기관 자동차는 현재 상용화 직전 단계다. 특히 연료전지 분야의 경우 가볍지만 많은 부피를 차지하는 수소를 경제적으로 저장하는 기술을 먼저 개발하기 위한 경쟁이 치열하다.
수소를 에너지로 쓰는 기술 중 백미는 단연 핵융합이라고 할 수 있다. 핵융합은 고온에서 가벼운 원자핵끼리 융합해 더 무거운 원자핵을 만들면서 에너지를 발산하는 반응이다. 태양과 같은 항성이 내뿜는 막대한 에너지가 핵융합 반응의 대표적인 사례다. 지구로부터 약 1억5000만km(1AU) 떨어진 태양이 지구를 향해 쏟아내는 빛과 열의 양을 생각해보면 핵융합 반응의 효율성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핵융합 반응이 상용화에 성공한다면, 기존의 원자력 발전을 완벽하게 대체할 수 있다. 1986년 체르노빌 원전 사고나 2011년 후쿠시마 원전 사고 등 원자력 발전은 에너지 생산 효율이 높은 대신 방사성물질 누출, 방사성 폐기물 처분 등 안전에 관한 잠재적인 위험성을 갖고 있다. 하지만 수소 핵융합을 이용한 에너지 생성은 이런 우려 없이 안전하면서도 훨씬 더 많은 에너지를 얻을 수 있다.
수소 핵융합 반응에서 생성되는 헬륨도 자원으로 활용할 수 있다. 헬륨은 자기공명영상(MRI) 기기의 초전도체 냉각제로 사용되는 등 활용도가 높다. 하지만 지구에 매장된 양만으로는 20~30년 안에 모두 고갈될 것이라는 우려가 있어 수소 핵융합이 이에 대한 해결책으로 떠오르고 있다.
138억 년 전 탄생한 최초의 원소, 수소. 가장 간단한 화학 구조를 가졌지만 하는 일은 가장 많고, 눈에 보이지 않지만 우리 주위에 있는 모든 물체에 존재한다. 주기율표의 1번에 걸맞은 ‘작은 거인’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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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어정리
-플로지스톤(phlogiston). 18세기 초 연소를 설명하기 위해 제시했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