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순히 생각했을 때, 동성애는 번식이나 생존에 별 이득이 없을 것 같다. 그러나 놀랍게도 인간뿐만이 아니라 영장류나 다른 많은 동물에서도 동성애 행동이 발견된다.
2010년 외국의 한 언론에 황금원숭이의 동성애에 대한 기사가 실렸다. 황금원숭이는 중국의 3대 희귀동물로 한국의 동물원에서 좋은 대접을 받고 있기 때문에 필자가 자주 접할 수 있었던 원숭이 중 하나다. 당시 연구팀이 관찰한 행위는 황금원숭이 수컷 간의 동성애였다. 수 차례 목격해 확신했다고 한다.
당시 연구팀은 황금원숭이의 사회구조와 함께 이들의 행위를 설명했다. 황금원숭이 사회는 대장 수컷이 다수의 암컷을 거느리고 사는 일부다처제 구조다. 짝짓기 경쟁에 밀려 암컷을 차지하지 못한 수컷들은 따로 무리를 지어 살아가는데, 이들이 동성애 행위를 하면서 살아간다는 것이다. 당시 필자는 연구자들이 너무 당연 한 설명을 한다고 느껴 다소 실망했는데, 결론적으론 영장류의 동성애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가 됐다.
대부분의 영장류 사회에 동성애가 있다
우리에게 친숙한 일본원숭이 무리에서도 동성애가 발견된다. 암컷은 태어난 무리에서 자라고 수컷은 성적으로 성숙하면 다른 무리로 장가를 가는 사회인데, 동성애는 주로 번식기의 암컷 사이에서 관찰된다. 암컷들은 동성애를 즐기는 것으로 보이며, 실제 번식행동을 할 때 보다 더 다양한 체위를 선보인다.
그 덕분인지 일본원숭이들은 암컷 간 유대관계가 끈끈하다. 이로써 서열이 더 높은 수컷들에게 대항할 수 있다. 앞서 7화에서 언급했던 보노보 침팬지와도 비슷하다. 보노보는 무리의 화합을 위해 성적 행위를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암수간 성행위보다 암컷과 암컷, 그리고 수컷과 수컷 사이의 성행위가 더 빈번하게 관찰되는 이유다.
단순히 생각해 보면 동성애적 성향은 생존이나 번식에 큰 이득이 없을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양한 종에서 꾸준히 보전돼 왔다. 유전자 연구 결과에 따르면, 생존이나 번식에 이로운 유전자는 점점 많아지고, 그 반대의 유전자는 점점 사라진다. 예컨대 인간은 시각 정보에 많이 의존하기 때문에 색깔을 구분할 수 있는 유전자가 늘고 있다. 반면 후각 정보는 많이 활용하지 않아서 냄새를 맡는 유전자가 점점 사라지고 있다. 만약 동성애 유전자라는 게 있다면(후보가 있지만 아직 정확히 밝혀지진 않았다), 유전자가 사라지지 않고 선택돼왔다는 얘기다.
이유는 무엇일까. 가장 널리 알려진 가설로는, 남성동성애자 또는 양성애자의 존재가 그들 가족의 번영에 도움을 준다는 설명이 있다. 남성 동성애자 또는 양성애자가 존재하는 가계의 모계 쪽 친척들이 이성애자만 존재하는 모계 쪽 친척들보다 훨씬 더 많은 아이를 낳는다는 얘기다. 결론적으로 남성 동성애자와 양성애자들은 자신들이 직접 아이를 낳지 않지만, 자신의 유전자와 유사한 유전자를 가진 조카들을 많이 낳는 데 도움이 된다.
2015년 영국 포츠머스대 연구팀은 새로운 가설을 제안했다. 동성애적 성향이 인간관계를 매우 돈독하게 만들어 사회 시스템을 유지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는 설명이다. 이는 앞서 언급한 일본원숭이나 보노보의 경우와도 비슷하다. 실제로 이들뿐만 아니라 구세계원숭이(위 분류표 참조)와 유인원의 동성애가 갖는 특징은, 동성끼리 실제 성행위와 비슷한 행동을 함으로써 서로의 유대 관계를 강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들의 동성애에서는 서로 교감이 이뤄지는지가 매우 중요할 것으로 추정된다.
한가지 흥미로운 점은, 암컷 간 동성애와 수컷 간 동성애의 역할이 다소 다르다는 것이다. 예컨대, 영장류사회에서 암컷 간 동성애는 힘이 센 수컷에 대항해 연합을 강화하고 서열을 올리는 효과가 있다. 그러나 수컷간 동성애는 이런 이유 외에도, 짝짓기 경쟁에서 밀려나 성적 대상인 암컷이 부재할 때 나타나는 경우가 있다.
신세계원숭이는 또 완전히 다르다. 영장류의 동성애 행위는 실제 성행위와 동일한 올라타기 행동과, 성기를 보여주는 행동으로 나뉜다. 유인원이나 구세계원숭이와 달리, 신세계원숭이에게서는 주로 후자가 나타난다. 다람쥐원숭이 수컷들은 서로 눈을 마주치지 않은 상태에서 흥분된 성기를 서로에게 보여주기만 한다. 마모셋 원숭이 수컷들은 꼬리를 높이 들어 숨겨져 있던 성기를 보여준다. 이것이 과연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아직 미지수다. 구세계원숭이나 유인원과는 동성애의 사회적 역할이 다를 가능성이 크다. 더 많은 연구가 필요하다.

유인원, 구세계원숭이 순으로 자주 관찰돼
그렇다면 얼마나 많은 영장류 사회에서 동성애가 관찰될까. 전세계적으로 영장류는 300여 종이 있다. 모두 영장목(目)에 속한다. 그 중에서도 침팬지, 보노보, 고릴라, 오랑우탄, 긴팔원숭이는 인간과 함께 유인원으로 분류된다. 아시아와 아프리카 대륙에 사는 원숭이는 원시원숭이를 제외하고 대부분 구세계원숭이에 속한다(일본원숭이, 개코원숭이 등). 아메리카대륙에 사는 원숭이는 신세계원숭이로 분류한다. 이런 분류가 중요한이유는, 유인원-구세계원숭이-신세계원숭이-원시원숭이 순서로 우리 인간과 좀 더 많은 DNA 서열을 공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즉, 진화적으로 유연관계가 높다.
흥미로운 점은, 우리와 유전적으로 가까운 종일수록 동성애 행위가 더 자주 관찰된다는 것이다. 유인원의 경우 거의 대부분의 무리에서 동성애가 관찰됐다. 침팬지, 보노보, 고릴라에서는 수컷 간 동성애와 암컷 간 동성애가 모두 관찰됐고, 오랑우탄은 어린 수컷 사이에서만 동성애가 관찰됐다. 긴팔원숭이에서는 수컷 간 동성애만 발견됐다.
일본원숭이나 황금원숭이가 속해 있는 구세계원숭이의 경우, 24개 속 가운데 17개 속(71%)에서 동성애가 관찰됐다. 신세계원숭이는 더 적다. 19개의 속 중 단 3개 속(16%)에서만 관찰됐다. 인류와 진화적으로 가장 먼 원시원숭이의 경우, 여우원숭이상과(科)에 속한 13개 속 가운데 오직 한 개의 속에서만 동성애가 관찰됐다. 광대원숭이상과와 안경원숭이상과에 속한 9개 속에서는 현재까지 동성애가 한 차례도 발견되지 않았다.
여기까지만 본다면, ‘동성애 행위와 고등영장류로의 진화 사이에 어떤 관계가 있지는 않을까’라는 합리적인 의심을 하게 된다. 영장류와 관련된 대부분의 행동 연구에서 연구자들이 선호하는 결론이기도 하다. 고등영장류로 갈수록 인간과 유사한 특징이 나오고 원시영장류로 갈수록 인간과 멀어지는 결과가 도출되길 바란다는 얘기다.
그러나 아직은 성급하다. 다른 요인도 고려해야 한다. 예를 들면, 위 결과는 얼마나 많은 연구자가 각 종을 관찰해 왔는지가 반영된 결과일 수 있다. 실제로 영장류연구자들은 인간과 가까운 종들을 연구하는 데에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왔다. 우리와 유연관계가 먼 다른 종을 연구하는 데엔 인색했던 게 사실이다.
영장류를 비롯한 동물의 행동 연구는 명쾌하게 해석되는 경우가 많지 않다. 인간을 대상으로 하는 연구처럼 질문을 하고 답을 들을 수 있다면 좋겠지만, 그렇지 못해 연구자들은 답답할 뿐이다. 어쩌겠는가, 더 다양한 원숭이를 관찰해 개별 결과를 모아 종합적으로 분석하는 수밖에 없다. 전세계 많은 영장류학자들이 연구에매진하고 있으니, 어쩌면 머잖아 동성애에 대해서도 한걸음 더 이해할 날이 올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