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엎드리세요.” “예?”
“엎드린 후 양 팔을 활짝 펴고 움직여보세요.”
9월 28일 가상현실(VR) 비행 시뮬레이션 분야의 권위자인 스위스 취리히예술대 인터랙션디자인학과 맥스 라이너 교수는 자신의 연구실에 있는, 안마기 같은 요상한 흰 기계 위에 다짜고짜 엎드릴 것을 권했다. ‘헤드셋과 선풍기까지 연결된 이 기계의 정체는 무엇일까’ 반신반의하며 초면인 그 앞에서 ‘대(大)’자로 엎드렸다. 헤드셋을 쓰고 두 팔을 벌리자 기자의 몸은 미국 뉴욕 맨해튼 시내를 훨훨 날고 있었다. 뾰족하게 솟은 마천루들의 윤곽이 생생히 다가왔다. 머리카락이 날릴 정도로 시원한 바람이 부는 것도 느껴졌다.
몸을 조금 숙이자 마천루 사이로 스카이다이빙을 하는 기분이 들었다. 조금 더 숙였더니 살짝 머리로 피가 쏠리면서 추락에 대한 공포감이 확 몰려왔다. 덜컥 헤드셋을 벗자 맨해튼 풍경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진짜 새가 된 것 같죠? 가상현실(VR) 비행 시뮬레이터 ‘버들리(Birdly)’입니다.”
2014년 버들리를 개발한 라이너 교수는 현재 드론과 가상현실 비행의 결합을 추진하고 있다. 그는 이유를 설명했다. “지금 본 맨해튼 풍경은 비행기에서 촬영한 사진을 렌더링한 그래픽 영상이지만, 드론과 버들리를 결합하면 해당 드론이 실시간으로 촬영한 영상을 바로바로 볼 수 있어요. 훨씬 생생한 경험이 가능하죠.” 즉 조종자가 가보고 싶은 지역에 직접 드론을 띄우고, 이 드론이 촬영한 영상을 인터넷 생중계 하듯 버들리로 전송하면 굳이 해당 지역에 가지 않아도 집에서도 생생한 영상을 볼 수 있다는 뜻이다. 물론 무선통신 기술이 지금보다 더 발전해야 한다. 라이너 교수는 “28GHz의 초고대역 주파수를 사용하는 5세대 이동 통신(5G) 기술 개발이 완료되면 가능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라이너 교수는 드론이 상용화되기 전인 2000년대 초부터 드론 조종을 즐겼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조이스틱을 이용하는 조종이 시시하게 느껴졌다. 진짜나는 기분이 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는 2년간 개발에 매달린 끝에 조종기 대신 날개로 하늘을 날 수 있는 버들리를 내놓았다. 그는 “버들리의 3차원 경험은 가난하거나 건강하지 못한 사람들도 세계 곳곳을 누비도록 만들어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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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주장을 하는 사람이 라이너 교수만은 아니다. 9월 25일 독일 쾰른에서 만난 광학장비회사 ‘자이스(ZEISS)’의 프란츠 트로펜하건 시니어 매니저도 기자에게 “1인 1드론 시대가 오면 여행의 개념이 완전히 달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지난 6월 시판된 가상현실 헤드셋 신제품 ‘VR ONE Plus’의 제작을 총괄했다. VR ONE Plus는 중국의 DJI나 프랑스 패럿 등이 생산한 드론과 쉽게 호환할 수 있는 가상현실헤드셋이다. 여기에는 VR드론이나 일반 카메라가 촬영한 영상을 인간이 더욱 생생하고 실감나게 느낄 수 있도록 만들어주는 특수 렌즈가 들어갔다. 트로펜하건 매니저는 “시야각이 100°로 사람 눈(120°)과 유사하고 별도로 초점 거리를 조정하지 않고도 가까운 곳과 먼 곳을 동시에 잘 볼 수 있는 렌즈”라고 설명했다. 트로펜하건 매니저는 “사용자들은 끊임없이 더 생생하고 더 진짜같은 경험을 원한다"며 "이 지점에서 새로운 시장이 생겨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