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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 1. 유럽 최고 드론업체 ‘패럿’에 가다

드론과 가상현실(VR)이 만나면?


늦가을 프랑스 파리의 아침은 낭만적이고 아름다울것이란 기대와 달리 춥고 우중충했다. 10월 3일 기자는 유럽 최고의 소비자 드론기업 ‘패럿(Parrot)’의 본사를 국내 언론 최초로 방문했다. 파리 북동쪽 자우레역에 내려 ‘패럿’까지 걸어가는 제마프 강둑은 파리 10구, 대표적인 빈민가였다. 안개 낀 강둑 곳곳엔 노숙자를 위한 이동식 텐트와 공중화장실이 즐비했다. ‘이런 곳에 패럿이 과연 있을까.’ 기대 반 의심 반으로 구글맵을 따라 걸었다. 목적지라고 도착한 곳 174번지에는 6층짜리 허름한 건물이 있었다. 표지판도 간판도 없는 건물의 문을 열었다.

“봉주르!(좋은 아침)” 패럿의 수석부사장인 야니크 레비 씨가 직접 기자를 맞았다. 건물 안은 완전히 딴판이었다. 천장에는 모양과 크기가 제각각인 드론이 곳곳에 매달려있고 벽에는 강렬한 원색의 그림들이 즐비했다. 트레이닝복과 반팔 티셔츠 등 편한 복장을 한 패럿 직원들이 현대식 미술관 같은 건물 내부를 쉴 새 없이 돌아다녔다. 키가 큰 몇몇이 천장에 매달린 드론에 자신의 머리를 부딪히지 않으려 피해 다니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패럿은 1994년 프랑스 기업가 앙리 세이두, 장 피에르 탈바르, 크리스틴 드 투르벨이 핸즈프리 등 자동차용 무선기기를 제조하기 위해 만든 회사다. 장사가 잘돼 2006년 유럽의 전자증권거래소 유로넥스트(현재는 미국 뉴욕 증권거래소와 합쳐짐)에 상장했고 2012년 7월 스위스 드론업체 센스플라이를 인수하며 드론 시장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그러다 2014년 초 출시한 ‘미니 드론’이 시쳇말로 ‘대박’이 났다. 별도 조종장치 없이 스마트폰이나 태블릿PC로 간단히 조종할 수 있어 유럽에서 아이들 선물로 큰 인기를 끌었다.

패럿은 세계 최초로 증강현실(AR)과 같은 가상현실(VR)기술을 구현한 드론을 시장에 내놓기도 했다. VR드론은 드론에 장착된 카메라가 비추는 영상을 실시간으로 조종자에게 전달해 흡사 드론이 돼 하늘을 나는 듯한 생생한 느낌을 주는 기술이다. 지난 9월 출시된 따끈따끈한 VR드론 ‘디스코’는 이런 기술의 집약체였다. 파리까지 왔는데 직접 날려보지 않을 수 없었다.
 




“오 뜬다! 뜬다!” 본사 2층에 마련된 드론 시험장이 쩌렁쩌렁 울리도록 감탄사를 내질렀다. 패럿 글로벌마케팅이사인 세드릭 델마스가 준 헤드셋을 머리에 막 쓴 참이었다. 델마스 이사는 스마트폰과 드론, 헤드셋을 와이파이(Wi-Fi)로 연결했다. 그리고 드론을 이륙시키자 헤드셋에 드론의 시야가 그대로 재생되면서 신기하게도 몸이 공중으로 붕 뜨는 듯했다.

델마스 이사는 제자리 이륙에 이어 드론이 마구 움직이는 2단계 비행도 선보였다. 시험장 구석구석을 정신없이 날아다니는 통에 놀이공원의 360° 열차를 탄 기분이었다. 드론이 벽에 빠른 속도로 접근할 땐 기자의 몸이 벽에 부딪칠 것 같아 오금이 저렸다. 델마스 이사는 “장애물 감지 기능을 가지고 있어 괜찮다”며 웃었다.

이날의 하 이라이트는 ‘ 1인칭 시점( F PV·Fi rst Person View)’ 체험. 델마스 이사는 VR드론을 기자의 머리 정면 위 2m 높이로 띄운 뒤 정지비행했다. 그러자 발 아래로 VR헤드셋을 쓰고 입을 딱 벌리고 있는 기자의 모습이 보였다. 유체이탈 상태나 전지전능한 신이 돼 세상을 내려다보는 기분이었다. 너무 놀라 감탄사조차 나오지 않았다. 델마스 이사는 “드론과 조종 장치, 헤드셋을 와이파이로 연결하기 때문에 전파 간섭이 적어 안정적”이라며 “전용 조종기를 이용해 2km 떨어진 거리까지도 드론을 날릴 수 있다”고 설명했다. 드론이 눈에서 보이지 않는 곳을 날고 있어도 원격조작이 가능하다는 뜻이었다.

VR드론은 컨트롤러를 작동하지 않고 가만히 둘때도 스스로 안정된 자세를 유지하며 떨어지지 않았다. 드론이 공중에서 정지한 듯 비행하는 일명 ‘호버링(Hovering)’ 기술로, 조종하는 사람이 초보자거나, 실수로 조종 장치를 놓치더라도 드론이 자동으로 자세를 제어할 수 있다. 드론에서 전송되는 영상의 화질도 굉장히 안정적이었다. 드론의 프로펠러가 돌면서진동이 발생할 텐데도 영상이 흔들림 없이 선명했다.


패럿이 VR드론 분야를 선도하게 된 데는 특별한 이유가 있다. 패럿은 센스플라이를 인수해 본격적으로 드론을 생산하기 전부터 AR 기술을 적용한 장난감과 게임을 만들어왔다. 2010년 1월 9일 열린 국제전자제품 박람회(CES)에서는 세계 최초로 무선조종할 수 있는 헬리콥터와 증강현실 게임 ‘AR.Race’를 발표했다. 카메라가 내장된 헬리콥터를 무선으로 조종하면서 카메라에 비치는 가상의 에일리언과 싸우는 게임이다(몇달 전 세계적으로 큰 화제를 모았던 증강현실 게임 ‘포켓몬 고’ 게임과 원리는 유사하다). 이 아이디어를 그대로 드론에 적용한 것이 VR드론이다.

레비 패럿 수석부사장은 “단순히 드론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스마트폰으로 손쉽게 조종할 수 있는 드론을 개발하는 전략이 유효했다”고 평가했다. 실제로 드론 조종 경험이 전무한 기자도 스마트폰을 기울이고 회전시키는 것만으로 직관적으로 드론을 조종할 수 있었다. 원리는 간단했다. 스마트폰에 탑재된 GPS, 가속도 센서, 자이로 센서가 스마트폰이 중력방향 기준으로 얼마나 기울어져 있는지를 정확한 값으로 나타내고, 이것을 와아파이로 드론에 전달한다. 그러면 드론에 있는 소형 컴퓨터가 드론의 비행자세를 잡는다. 패럿은 이같이 드론 조종에 필요한 스마트폰 어플리케이션을 개발할 수 있는 키트를 공식 커뮤니티에 무료로 공개했다. 매력적인 앱이 많을수록 VR드론의 인기가 높아질 수 있다는 걸 간파한 것이다. 실제로 앱스토어를 보면 패럿 사의 ‘FreeFlight Pro’ 외에도 다양한 드론 조종용 앱이 개발돼 있다.

패럿은 또 AR이나 VR 기술을 드론에 구현하기 위해 영상 같은 큰 데이터를 고속으로 전송할 수 있는 무선통신 기술에도 힘써왔다. VR드론에는 사진과 영상을 송신할 수 있는 와이파이 송신기가 장착돼 있다. 이것들은 2.4GHz와 5GHz 두 가지 대역의 와이파이를 이용해 초당 30프레임의 720p 해상도를 가진 동영상을 헤드셋에 스트리밍한다. 패럿의 일부 드론은 드론, 스마트폰, 헤드셋에 하나씩 있는 안테나를 두 개씩으로 늘린 ‘MIMO(Multiple Input Multiple Output)’ 통신방식도 지원하고 있다. 안테나를 여러개로 늘리면 데이터를 여러 경로로 전송할 수 있고, 각각의 안테나에 수신된 신호를 서로 비교해 간섭도 줄일 수 있다. 기존의 무선랜은 54Mbps 전후의 속도를 가진 반면, MIMO기술을 탑재한 제품은 250∼500Mbps의 속도를 낸다.
 


 

미니, 롤링스파이더, 비밥, 디스코 등 패럿의 드론은 세계 곳곳에서 큰 인기를 끌고 있다. 레비 부사장은 “현재까지 150만 대의 드론이 팔렸고, 사업이 매년 100%씩 성장하고 있다”고 말했다. 2015년 매출은 한 해 전보다 34% 늘어난 3억2630만 유로(약 4050억원)를 기록했다.

현재 패럿은 생산기지를 중국 선전과 스위스 로잔두 곳으로 분리해 DJI, 이항, 시마, JYU 등 중국 드론 업체의 공세에 맞서고 있다. 비밥과 VR드론처럼 대중에게 인기가 많은 취미용 드론은 중국에서, 농업용 드론 ‘eBee SQ’처럼 대당 수천만 원을 호가하는 전문가용 드론은 스위스에서 생산하는 식이다. 패럿의 성장세를 눈여겨 본 파리 시도 지난해 패럿에 300만 유로(37억2000만 원)를 투자했다. 레비 부사장은 규제나 배터리 문제 등으로 택배 등 드론 산업화가 지연되고 있는 것 아니냐는 기자의 질문에 “프랑스를 비롯한 유럽에는 취미로 즐기는 VR드론부터 전문가용 드론까지 수요가 충분히 형성돼 있다”며 “수요가 많으면 정부가 나서서 규제 문제를 빠른 속도로 해결할 것”이라고 낙관했다. 그는 “세계 드론업계의 가격 경쟁이 치열해져 올해에는 작년만큼 높은 성장률을 기록하기 힘들 것”이라면서도 “VR드론처럼 경쟁사가 쉽게 따라하지 못하는 하이엔드 제품을 통해 앞으로도 시장을 선도하겠다”고 강조했다.


[무선통신 기술이 발전하면서 드론을 2km 떨어진 거리까지도 날릴 수 있게 됐다.]
 




 
 

2016년 12월 과학동아 정보

  • 이영혜 기자
  • 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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