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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쉬운것 ·잃는것·그늘진것

 

류현경(서울대 사대 생물교육과 3년)


중학교 시절만큼은 예외였다. 그 땐 새록새록 알아가는 기쁨을 맛보는 것이 좋았다. 더욱이 왕성한 지적 욕구를 충족시켜 줄 수 있을 정도로 시간적 여유도 중분했다. 비록 여고 시절을 '공부때문에 아무 것도 못한 학생'으로 지냈지만 적어도 중학교 시절은 그렇지 않았다는 얘기다.
한마디도 알찬 시기였다. 책을 읽기도 하고 캔버스와 이젤을 매고 학교 근처 언덕에서 그림을 그리기도 하고, 친구 몇명과 함께 '문집경연대회'에 참가하기 위해 밤 늦도록 글을 쓰기도 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내 인생을 진정으로 살찌운 공부는 바로 그런 것들이었다.

당시 나는 어느 한 분야에 어렴풋한 매력을 느끼고 있었다. 인체와 다른 생물체의 생명현상, 내적 질서를 유지하는 힘, 삶과 죽음의 의미에 관한 것이었다. 그래서 의학을 전공하겠다는 생각을 품기도 했다.

그런 나의 관심을 가속시켜 준 것은 TV의 특집 프로그램이었다. '자연의 다큐멘터리', '동물의 왕국', '생물의 신비'와 같은 프로그램이 생명과 생물에 대한 나의 흥미를 배가시켰던 것이다. 바다 거북이 알을 낳아 해변의 모래 구덩이에 묻어 두는 장면, 사자의 사냥하는 모습, 침팬지의 영특한 행동, 조류의 특이한 구애 장면…. 이런 것들은 시간이 많이 흐른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이 난다.

그 땐 어떤 확고한 의지보다는 '그것 참 흥미로운데…' 하는 정도였다. 어찌 생각하면 어설프기조차한 '미래의 선택'이었지만 난 지금도 내 전공을 좋아하고 있다. 자신이 좋아하는 학문을 한다는 사실 하나 만으로도 나는 행복한 것이다.

중학교 시절과는 달리, 고등학교에서의 공부는 그만 입시의 수단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그러기에 공부는 나에게 기쁨보다는 불안과 압박감을 주었다. 사실 고등학교 2년 이후로는 특정 과목에 관심을 갖는다는 것은 허용되지 않았고, 전 과목을 골고루 열심히 해야했다. 특별히 잘 해야 할 과목이 있었다면 단위가 높은 국 영 수 뿐이었다. 흥미만점이었던 생물도 그만 뒷자리로 밀리고 말았던 것이다. 벌써 먼 옛날처럼 느껴지는 고3시절을 회상해본다.

그렇게 힘겨웠던 고3시절도 이미 3년 전의 과거로 묻혀 버렸다. 돌이켜보면, 그때 나의 가장 큰 적은 나태함이나 쏟아지는 잠보다는, '이제 나는 수험생이다', '난 이제 고3이다'라는 지나친 긴장과 불안이었다.

대학의 교육학 시간에 어느 정도의 불안은 중요한 성취동기가 되지만, 지나친 불안은 실패의 원인이 된다고 배웠다. 난 천성적으로 느긋하지 못하기 때문에, 모의고사가 실시될 때마다 마음의 안정을 찾기 어려웠다. 시험성적이 뜻하는대로 나오지 않을 때는 무력감에 빠져 방황하기도 하였다.

또 고등학교 1, 2학년 때, 학교수업에만 충실했을 분, 특별히 영어 수학을 준비하지 않았기 때문에 더욱 애를 먹었다. 영어, 수학은 고1, 2 때 확실히 기초를 다져두는 것이, 고3 수험기간동안 여유를 가질 수 있다는 사실을 몸으로 체험한 것이다.

첫 모의고사를 치기 전에 가장 걱정했던 과목은 제2 외국어와 과학교과였다. 그 당시는 지금과 달라서 이과반의 경우, 과학 4과목이 전부 필수과목이었다. 4과목이 모두 만만하지 않았기 때문에 걱정이 되었으나, 1학기 동안은 수업 진도에 따라 예습, 복습만 철저히 했고 나머지 대부분의 시간을 국 영 수에 투자했다.

과학 과목의 공부는 여름방학과 함께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그중 가장 어렵게 느꼈던 것은 물리였다. 그래서 개념이나 공식의 원리에 대한 설명이 자세히 나온 두꺼운 참고서를 택하여 이해하는데 중점을 두었다. 무엇보다 물리식(式)의 사고를 터득하려고 노력했다. 물리는 공부를 하면 할수록 점점 그 깊은 맛을 느낄수 있었지만 아까운 시간을 많이 요구했다.

사실, 고3처럼 바쁠 때 물리공부를 처음부터 시작하려하니 벅차게 느껴졌다. 고2 때 배우는 부분들은 그때 그때 소화해 놓았더라면 그 고생은 안했을텐데 ….

화학과 생물은 내가 참 좋아했던 과목이었기 때문에 공부하는데 큰 어려움은 없었다. 그러나 많은 분량을 한꺼번에 보기란 결코 쉽지 않았다. 그래서 학교에서 지정한 문제집 한권만을 반복하여 훑어보았다.

흔히 생물은 암기할 것이 너무 많아 어렵고 귀찮다고 하지만 근본 개념을 파악하고 이해하면 외울 것이 그리 많지 않았다.

화학은 간단한 개념과 공식을 이해한 후, 이미 출제되었던 문제들의 유형에 익숙하려고 노력하였다. 특히 탄소 화합물에 관한 단원은 외울 것이 무척 많긴 했지만, 그 때 철저히 공부해둔 탓에 지금 유기 화학이나 생화학을 배우는데 많은 도움을 받고 있다. 화학은 물리와 마찬가지로 문제를 많이 풀어보는 것이 좋은 방법이라는 생각이 든다.

지학은 책 한권 안에 너무 여러 가지 분야가 섞여 있었기 때문에, 공부하기에 쉽지 않았다. 지질학, 천문학, 해양 기상학 등이 '지학'이라는 한 과목에 모두 포함되어 있어 까다롭고 복잡한 학문으로 느껴졌다.

과학 과목의 공부에 있어 무엇보다 '원리'를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된다. 또 과학이란 실제로 자연에서, 즉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는 현상들을 간단한 수식이나 기호로 나타내려는 학문이므로, 실제 현상과 연관시키고 적용시켜 보는 것이 과학과 가까워지는 지름길이라고 생각된다.

물론 고3 때처럼 조급하고 초조할 때 원리와 개념을 하나하나 짚어가며 공부하기란 쉽지 않았다. 하지만 그런 식으로 공부하는 것이 오히려 수고를 더는 방법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흔히들 고등학교 과학 교육의 문제점 때문에 우리가 과학식 사고를 익히는데 실패한다고 보는데, 나도 전적으로 같은 생각이다. 적어도 중학교와 고1, 2학년 시기에는 이론 교육과 실험이 충실하게 병행되었더라면 나의 과학 공부가 고생스럽지는 않았을텐데…

이같은 입시 준비때문에 나의 여고시절에 그늘이 드리워지긴 했지만, 수험생활만 제외하면 그때는 여전히 그립기만 하다.

순수한 마음으로 서로를 신뢰하며, 세상의 모든 것이 아침 햇살처럼 분명하게 보이는 진실한 인간적 교류가, 그 때 있었기 때문이다.

대학은 학문을 하거나, 자기 원하는 가치를 추구하는 측면에선 매우 매력적으로 느껴지기도 했지만, 늘 새로운 문제가 도사리고 있는 무서운 곳이기도 했다.

대학은 낭만이 흐르고 자유가 넘치는 유토피아라고 생각했던 나는 곧 환상에서 깨어나야 했다. 적어도 내가 대학 1학년 때 느낀 대학의 모습은 모든 가치가 불분명하고 혼란스럽기만 한, 가치관의 춘추전국시대와 같았다.

하지만 그것은 성숙한 대학생으로 발돋음하기 위해 마땅히 거쳐야 할 과정이었다. 지금은 가치의 혼란속에서의 방황이 시간낭비가 아니라 나의 길을 찾기 위한 진지한 노력이라고 생각한다. 그때 겪은 진통의 깊이만큼 우리는 성장하게 된 것이다.

난 이 과정을 곤충의 탈피에 비유하고 싶다. 우리의 몸크기보다 작아져버린 기존의 껍질을 벗어버리고, 새 껍질을 취해야 한다는 얘기다.

벌써 꽤 오래 대학생으로 지내왔지만, 주체적 진리를 찾기엔 경험의 폭이 너무 좁고, 깊이가 얕았다. 이는 무척 후회할 만한 일이다.

난 여고 때 만큼이나 공부를 중시하면 대학생활을 하고 있다. 그것을 깨뜨릴 수 없은 확고한 신념이었지만, 그 신념을 지키면서 잃게 된 또 다른 가치들이 너무나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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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8년 08월 과학동아 정보

  • 김광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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