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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강력 레이저 쏴 인공태양 밝힌다

세계에서 가장 센 192개의 빔

미국 국립점화설비연구소의 레이저 실험이 이뤄지는 타깃 챔버의 모습. 지름 10m에 무게는 13만kg이다. 10cm 두께의 알루미늄 내벽과 30cm 두께의 콘크리트 외벽의 이중 구조다.


영화 ‘스타워즈’에는 거대한 우주기지 ‘데쓰 스타’가 여러 가닥의 녹색 레이저빔을 모아 일격에 행성을 파괴하는 장면이 나온다. 오늘날 지구에서도 비슷한 실험이 진행 중이다. 192개의 초강력 레이저를 작은 캡슐에 집중시키는 실험이다. 단, 그 목적은 행성을 파괴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인공태양을 만들기 위해서다. 과연 레이저는 인공태양의 불꽃을 타오르게 할 수 있을까.



3미식축구장 3개를 합친 커다란 크기에 10층 건물 높이의 시설. 목적은 오로지 하나, 레이저 발사다. 바로 미국 캘리포니아주 리버모어에 있는 세계에서 가장 강한 레이저를 발사하는 국립점화설비연구소(NIF)의 위용이다.

이 연구소는 지난 3월 15일 192개의 레이저 빔을 모아 에너지가 1.875MJ(메가줄, 100만J)에 이르는 신기록을 세웠다고 발표했다. 당시 최고 출력은 무려 411TW(테라와트, 1조W)였다. 411TW는 미국 전역에서 순간적으로 사용하는 전력량의 1000배에 달하는 양이다.

국립점화설비연구소는 이날 “과학적으로 중요한 이정표를 넘었다”고 자평했다. 1.8MJ이 핵융합 반응을 일으키기 위한 레이저의 최소 에너지이기 때문이다. 레이저 핵융합 기술은 1960년대 레이저가 처음 발견된 이래로 1970년대에 들어서야 제창됐다. 또 다른 핵융합 방식인 자기장을 이용한 토카막(Tokamak) 방식보다 역사가 20년 가량 짧다. 우리나라를 비롯해 일본과 프랑스, 중국, 독일 등도 레이저를 이용한 핵융합을 연구하고 있다.
 

타깃 챔버에 목표물을 위치시키고 있다. 사람 머리카락 두께 이하의 높은 정밀도가 필수다.

 

인공태양을 점화하기 위한 조건

도대체 레이저로 어떻게 핵융합 반응을 일으킨다는 걸까. 1955년 영국의 공학자이자 물리학자인 존 로슨은 핵융합 반응을 일으킬 수 있는 조건을 제시했다. 이를 ‘로슨 조건’이라고 하는데 온도는 1억℃ 이상, 매우 높은 압력과 압력이 유지되는 시간의 곱이 일정 값 이상이어야 핵융합 반응이 일어난다.

이 조건을 자연적으로 만족시킨 예가 태양이다. 강력한 중력때문에 형성된 고밀도 환경과 핵융합 반응에서 나오는 열때문에 태양 안에서는 수소가 헬륨으로 변하는 핵융합 반응이 끊임없이 일어난다. 태양은 단 1초 만에 지구상에 살고 있는 70억 인구가 100만 년 이상 쓰고도 남을 정도의 막대한 빛 에너지를 만들어낸다. 이런 반응을 이용해 지구에 인공 태양을 만들려고 하는 것이 바로 핵융합 발전이다.

문제는 지구에서 핵융합 발전이 가능하려면 1억℃라는 고온을 견디는 그릇이 필요하다는 점이다. 세상에 그런 그릇은 없다. 그래서 생각을 확 바꾼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나왔다. 1억℃의 핵융합 물질을 직접 용기에 담는 대신 아무 것도 없는 허공에 띄워 가두자는 것이다. 방법은 2가지, 자기장을 이용하는 것과 초강력 레이저를 이용해 가두는 것이다(자기장을 이용한 핵융합 실험로가 대덕연구단지에 있는 케이스타(KSTAR)다).

이 중 초강력 레이저를 사용한 방식은 눈 깜짝할 사이에 승부를 본다. 나노초(10억분의 1초) 수준으로 아주 짧게 유지되는 고에너지 레이저를 중수소와 삼중수소를 담고 있는 동그란 구 모양의 연료캡슐(펠렛)에 발사한다. 레이저를 맞은 연료캡슐은 1억℃로 온도가 올라가고 내부가 순식간에 찌부러져 고밀도 상태가 된다. 이렇게 핵융합을 위한 조건이 완성되면 연료에 불이 붙는다.

그런데 캡슐에 레이저를 쏜다고 왜 내부가 고밀도 상태가 될까. 원리는 뜻밖에도 중고등학생들도 배우는 기초 과학 속에 숨어있다. 바로 열을 받으면 부피가 팽창한다는 ‘열팽창’의 원리다. 연료캡슐의 껍질은 폴리에틸렌 등 플라스틱 재질인데, 외부에서 레이저를 쏘면 가열돼 두께가 팽창한다. 팽창은 캡슐의 바깥쪽뿐만 아니라 같은 비율로 안쪽으로도 향한다. 이 힘이 캡슐 내부에 엄청난 압력으로 작용하게 된다. 레이저빔을 맞은 뒤에도 관성 때문에 캡슐은 계속 팽창한다. 이때 내부 밀도는 납의 100배인 약 1000g/cm3에 이르게 된다. 그래서 레이저를 이용한 핵융합을 ‘관성 밀폐 방식’이라고 한다.

국립점화설비연구소의 내부 전경. 레이저를 만드는 빔 라인의 길이는 300m이다.

 


192개의 초강력 레이저로 인공태양을 점화하라

레이저 핵융합은 인공태양이 점화되는 순간 한 번의 폭발과 함께 사라진다. 그런데 아무리 짧은 순간이라 해도 이 때 발생하는 에너지가 20MJ이 넘는다. 연료와 레이저의 효율을 좀 더 개선하면 100MJ의 에너지를 얻을 수 있는데, 국립점화설비연구소의 실험용기가 견딜 수 있는 최대 에너지가 45MJ이다. 이것은 재래식 폭약(TNT) 11kg이 폭발할 때 나오는 에너지와 같다. 이 에너지를 얻기 위해 레이저 핵융합에서 쓴 핵연료의 양은 150μg(마이크로그램, 1μg은 10만분의 1g)에 불과하다.

국립점화설비연구소는 이번 실험에 사용한 초강력 레이저(1.8MJ)를 어떻게 만들었을까. 이 연구소에서 레이저를 만들고 증폭시키는 빔 라인은 길이가 300m로 세계에서 가장 길다. 30KJ(킬로줄, 1000J)의 레이저를 쏠 수 있는 일본의 게코(GEKKO) XII 레이저의 빔 라인 길이가 200m다.

또 이 연구소에는 다른 레이저 시설에서는 볼 수 없는 대구경 고속 스위치가 있다. 이 스위치는 편광을 조절해 나노초 수준의 빠르기로 빛을 통과시키기도 하고 반사시키기도 한다. 이 스위치 덕분에 한 번 만들어진 레이저는 에너지를 증폭시키는 주증폭기를 4번이나 왕복할 수 있다. 레이저를 만드는 효율이 4배 커지는 것이다. 4번 증폭된 레이저는 10KJ의 에너지를 갖는 192개의 레이저 빔으로 분해돼 마지막에 한 점으로 집중된다. 레이저를 이렇게 많은 가닥으로 분리한 이유는 두 가지다. 레이저를 만들고 이동시키는 과정에서 엄청난 열이 발생하는데, 여러 가닥으로 나누면 부담을 크게 줄일 수 있다. 또 레이저 빔의 개수가 여럿일수록 연료캡슐에 여러 방향에서 고르게 압력을 가할 수 있다.

하지만 이 연구소가 실제로 인공태양을 점화하려면 아직 넘어야 할 산이 많다. 국내에서 레이저 핵융합을 연구하고 있는 한국원자력연구원 양자광학연구부 임창환 책임연구원은 국립점화설비연구소를 권투선수에 비유하여 “기초체력은 이제 탄탄히 다졌지만 아직 스파링이 남았다”고 설명했다.

국립점화설비연구소는 1.8MJ이 넘는 에너지를 쏟아내기 위해 레이저 빔 192개를 이용했다. 사방팔방에서 발사되는 192개의 레이저는 지름이 2mm에 불과한 연료캡슐 표면을 매우 정밀하고 균일하게 가열해야 한다. 만약 조금이라도 흐트러지면 안에 들어 있는 연료에 균일하게 압력을 가할 수 없고 점화는 실패한다. 임 연구원은 “실험이 예정된 올해 말까지 레이저의 출력과 발사 과정을 안정화하는 작업이 추가적으로 필요할 것”이라고 말했다. 물론 이후에도 실제로 상업 핵융합 발전을 하려면 수십 년 이상이 걸릴 것이다.




초강력 레이저 이동 경로: 주발진기에서 출발한 레이저는 전치증폭기에서 증폭된 후 빔이 192개로 갈라진다. 갈라진 빔은 공진기 거울을 통해 주 증폭기로 전송되며 주 증폭기에서 4번 왕복한다. 최종 광학계에서 자외선으로 변환된 레이저가 타깃 챔버 안으로 들어간다.

레이저 핵융합 발전 방식: 연로캡슐 발사기가 1초에 10개의 연료캡슐(펠렛)을 타깃 챔버에 발사한다. 연료캡슐이 정확한 위치에 도달했을 때 고에너지 레이저가 발사되고 캡슐 안의 핵연료가 핵융합반응으로 폭발한다. 폭발로 뜨거워진 타깃 챔버 안 액체금속이 중력 때문에 아래로 흘러내려온다. 고온의 액체금속은 열교환기에서 물을 끓게 해 발전기의 터빈을 돌린다. 다시 식은 액체금속은 위쪽 구멍을 통해 타깃 챔버 안으로 다시 흘러들어간다. 발전기에서 만든 전기 중 일부는 레이저를 다시 구동하는데 사용한다.


 

펨토초 레이저로 인공태양 고속 점화 한다

이번 실험에 사용한 레이저는 에너지가 너무 높다. 다른 나라들이 미국과 같은 방식으로 레이저 핵융합에 도전하려면 자국 설비에서 쏠 수 있는 레이저의 에너지를 100배 이상 높여야 한다. 좀 더 낮은 에너지의 레이저를 사용해 핵융합을 일으킬 수 없을까.

레이저는 에너지가 순간적으로 집중되는 구간인 펄스를 더 짧게 할수록 순간 출력이 높다. 미국 연구진이 사용한 레이저의 펄스 길이는 23나노초. 만약 레이저의 펄스 길이를 나노초의 10만 분의 1인 펨토초(1펨토초는 1000조 분의 1초) 수준으로까지 짧게 한다면 훨씬 더 출력이 높은 레이저를 만들 수 있다.

그런 레이저를 다루는 곳이 우리나라에도 있다. 광주과학기술원 고등광기술연구소도 그 중 하나다. 이 연구소의 펨토초 레이저가 가진 에너지는 30J에 불과하지만 펄스 길이가 30펨토 초밖에 되지 않기 때문에 순간 최대 출력은 무려 1PW(페타와트, 1000조W)에 이른다. 미국에서 192개 레이저로 만든 순간최대 출력인 441테라와트보다 2배 이상 더 강하다. 하지만 펨토초 레이저를 연료 캡슐에 그대로 발사할 수는 없다. 레이저가 연료캡슐을 압축하는데 오히려 방해가 되기 때문이다.

왜 그럴까. 펨토초 레이저는 출력이 매우 높은 만큼 강력한 전자기장을 동반한다. 이 전자기장은 핵융합 연료인 중수소와 삼중수소에서 전자를 떼어낸 뒤 모두 양이온으로 만든다. 핵융합 반응이 일어나려면 높은 압력으로 고밀도 상태를 만들어야하는데 같은 극끼리는 밀어내는 척력이 발생해 고밀도 상태가 되기 어렵다.

하지만 1996년 미국 로렌스 리버모어 국립연구소(LLNL)의 물리학자 맥스 타박의 아이디어 덕분에 펨토초 레이저는 천덕꾸러기 신세를 면하게 됐다. 국립점화설비연구소가 추진 중인 ‘중심 점화’ 방식은 연료 캡슐을 고에너지 레이저로 온 방향에서 균일하게 가열해 점화시키는 방식이다.

타박 박사가 제안한 ‘고속 점화’ 방식은 연료캡슐에 금으로 만든 깔때기를 꽂았다. 기존 방식처럼 나노초의 고에너지 레이저를 발사하는 동시에 추가로 펨토초 레이저를 금 깔때기에 발사한다.

펨토초 레이저의 강한 전자기장 때문에 금에서 튀어나온 고속의 전자는 연료캡슐 안의 연료와 충돌하게 된다. 그 결과 더 낮은 출력의 에너지로도 점화할 수 있다. 고속 점화 방식을 사용할 경우 필요한 레이저의 에너지양은 1.8MJ의 10분의 1에 불과한 200KJ 이하로 줄어든다. 이번에 사용한 에너지의 10분의 1로도 핵융합 발전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고속 점화를 위한 연료캡슐. 연료캡슐에 금으로 만든 깔때기가 달려있다. 펨토초 레이저를 쐈을 때 깔때기에서 튀어나오는 고속의 전자가 핵융합 반응을 돕는다.
 
 
한국에 두 개의 인공태양이 뜰까

영국, 프랑스, 스페인 등 유럽 7개국은 실험용 레이저 핵융합 발전 시설인 ‘하이퍼(HiPER)’의 건설을 제안했다. 하이퍼는 고속 점화를 기본으로 실험뿐만 아니라 에너지 생산까지 목표로 두고 있다. 프랑스는 별도로 7조 원의 예산을 투입해 ‘레이저 메가줄’이라는 핵융합 시설을 건설 중이며 2013년까지 완공할 예정이다. 이 시설은 미국의 국립점화설비연구소에 대항하기 위한 것으로 이름처럼 2MJ 급의 거대 레이저 설비다. 이에 대응해 국립점화설비연구소도 이번 실험에 사용한 고에너지 레이저 외에 고속 점화를 위한 펨토초 레이저를 추가로 보유할 계획이다.

그러나 세계에서 추진 중인 레이저 시설의 규모는 여전히 거대하다. 크기와 투입되는 예산을 줄이기 위해 새로운 노력이 계속되고 있다. 한국원자력연구원은 미국과 일본에 이어 세계에서 세 번째로 ‘충격 점화’ 기술을 추진 중이다. 충격 점화란 레이저의 펄스 형태를 자유자재로 변형해 연료캡슐을 효율적이고 안정적으로 압축하는 기술이다. 임창환 연구원은 “고속 점화와 충격 점화를 동시에 이용하면 더 적은 에너지로도 점화 시킬 수 있다”고 말했다.

원자력연은 현재 1KJ급의 고에너지 레이저를 보유 중이며 향후 출력을 높여가며 관련 실험을 할 계획이다. 원자력연이 레이저를 이용한 핵융합 실험에 성공하면 자기장을 이용한 케이스타(KSTAR)와 함께 한국에서 두 개의 인공태양이 불을 밝힐 것이다.

한국 원자력연구원의 타깃 챔버. 4개의 고에너지 레이저빔을 발사할 수 있다.

2012년 5월 과학동아 정보

  • 이우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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