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고생물학자 에드워드 드링커 콥에 따르면, 동물은 진화하면서 몸집이 커지는 경향이 있다(콥의 법칙). 몸집을 키우면 여러 가지 이점이 있기 때문이다. 예컨대, 큰 개체는 포식자를 피해 달아나거나 포식자와 맞서 싸우기에 유리하다. 긴 다리로 겅중겅중 달리면 먹잇감을 잡기에 좋다. 암컷을 두고 싸울 때 경쟁자를 쫓아 내거나, 큰 몸집으로 이성에게 어필하기에도 유리하다.
하지만 큰 몸집이 좋기만 한 건 아니다. 몸집이 너무 비대하면 뼈나 관절에 문제가 생기거나 혈액이나 호르몬이 잘 순환하지 못하는 등 생리적인 문제가 생길 수 있다. 너무 커진 바람에 잘 뛰지 못해서 포식자에게 금방 잡아 먹히거나 짝짓기 경쟁에서 밀릴 수도 있다. 이런 개체는 후대에 유전자를 전달하지 못해, 결국 동물이 커지는 데에 한계로 작용했을 것이다. 동물들이 현재의 크기를 갖게된 데에 과학적인 이유가 숨겨져 있을 거라고 추정되는 이유다.
지구상에서 가장 큰 수염고래의 비밀은 가성비+부력!
지구상에서 가장 큰 동물은 흰긴수염고래(Balaenoptera musculus )다. 대왕고래라고도 불리는 이 고래는 평균 길이가 30m 정도이고, 최대 무게가 190t에 달한다. 그에 비해 육지에서 가장 큰 동물로 꼽히는 아프리카코끼리는 길이가 6m에 불과하다. 난장이두더지나 뒤웅벌박쥐처럼 몸무게가 2g이 채 되지 않는 포유류도 있다.
미국 애리조나주립대 요르단 오키 박사팀은 소위 ‘가성비’가 좋은 동물일수록 크게 진화했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영국 왕립학회보B 2013년 6월 16일자). 연구팀이 고래와 코끼리, 유인원, 설치류 등 다양한 포유류의 최대 크기와 임신 기간, 새끼의 성장 속도 등을 조사한 결과, 몸무게 대비 더 큰 새끼를 낳고 새끼의 성장 속도가 빠른 종일수록 더 크게 진화했다. 연구팀은 이런 특성을 ‘생산력 계수’라고 정의했다. 예컨대, 일년에 단 한 마리의 새끼를 낳더라도 새끼의 크기가 크고 또 빨리 자라면, 즉 생산력 계수가 높으면 더 적은 세대만에 큰 크기에 도달할 가능성이 높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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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래가 육상 포유류보다 커질 수 있었던 이유는 또 있다. 바로 거구를 지탱해줄 수 있는 부력이다. 부력은 물체를 액체 속에 넣었을 때 그 물체를 중력의 반대 방향으로 밀어 올리려는 힘을 말한다. 이 때 부력의 크기는 물체의 부피에 해당하는 물의 무게에 해당한다. 즉, 고래는 자기 몸집에 비례하는만큼 위로 떠오르는 힘을 받는다는 뜻이다. 만약 흰긴수염고래를 물속에서 끌어내면 허파를 비롯해 몸 속 장기가 자기 몸무게에 눌려서 죽고 말 것이다.
체온 유지하고 서식지 확보하고, 바쁘다 바빠!
같은 이유로 육상에 터전을 잡고 사는 포유류는 아프리카코끼리보다 더 크게 진화하지 못했다. 괴짜 물리학자로 꼽히는 미국매사추세츠공대(MIT) 물리학과 윌터 르윈 교수는 저서 ‘나의 행복한 물리학 특강’에서 육상 포유류의 크기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는 아주 간단하고도 재미난 사고실험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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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뉴멕시코대 생물학과 펠리사 스미스 교수팀은 각 대륙에 살았던 주요 육상 포유류들의 이빨 화석을 이용해 최대 크기를 분석했다(사이언스 2010년 11월 26일자). 분석 대상에는 코끼리, 매머드, 마스토돈 같은 장비목과, 말처럼 특이한 발가락을 가진 우제류와 기제류, 아마딜로스와 비슷한 멸종 동물까지 다양한 종이 포함됐다. 그 결과, 공룡과 함께 살던 시절 최대 몸무게가 10kg에 불과했던 육상 포유류는 공룡 멸종 이후 17t 까지 급격히 늘었다. 그러나 이처럼 거대한 육상 포유류는 금세 멸종했다. 연구팀은 각 대륙의 지리적 특성과 관계 없이 기온이 낮아지고 그 종의 서식지가 넓어질수록 종의 몸집이 커졌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이를 반대로 말하면 기온이 꾸준히 높아지고 서식할 수 있는 땅의 면적이 좁아지면서 거대한 육상 포유류가 빠르게 멸종했다는 뜻이다.
빨리 날고 싶은데, 깃털이 왜 이리 안 자라지?
육상 포유류뿐만이 아니다. 하늘을 나는 새도 과거에 비해 몸집이 왜소해졌다. 신생대 마이오세에 살았던 거대한 맹금류 아르젠타비스는 몸무게가 70~120kg에 달했다. 반면 잘 알려진 맹금류인 안데스대머리수리는 큰 개체가 15kg에 불과하고, 쉽게 떠올릴 수 있는 다른 새는 이보다 훨씬 작다(위 그림).
미국 워싱턴대 생물학과 시베르트 로워 연구팀은 ‘털갈이’ 때문에 새의 몸집이 더 커지기 어렵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PLOS 생물학 2009년 6월 16일자). 새들의 깃털은 자외선에 계속 노출되고 박테리아에 오염되면서 비행성능이 떨어진다. 털이 군데군데 빠진 배드민턴 공이 멀리 나가지 못하는 것과 같은 원리다. 따라서 주기적으로 털을 갈아줘야 한다.
연구팀은 새의 종류별로 몸무게와 깃털의 길이, 그리고 털갈이 시기 동안 털이 자라는 속도를 비교했다. 그 결과, 깃털의 길이는 몸무게의 31 제곱에 비례한 반면 깃털이 자라는 속도는 몸무게의 61 제곱에 비례했다. 즉, 몸무게가 10배 더 나가는 새의 경우, 깃털의 길이는 2배였던 반면 다시 자라는 속도는 1.5배에 불과했다. 이런 새들은 털갈이를 자주 하지 못했고, 한번 털을 가는데 시간이 오래 걸렸다. 털갈이 시기에는 제대로 날지 못하기 때문에 아무래도 생존에 불리하다. 따라서 몸집을 일정 이상 키우지 못했던 것이다. 연구팀은 깃털이 자라는 속도가 너무 빨라지면 비행에 필요한 주요 깃털에 구조적 결함이 커질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라고 추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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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공룡이 살던 시대에는 곤충도 엄청난 몸집을 자랑했다. 과거에 살았던 ‘메가네우라’라는 거대한 곤충은 날개를 펼친 길이가 70cm에 달했다(위 화석 사진). 지금은 대부분의 곤충이 손바닥 하나 크기를 넘지 못한다.
과학자들은 곤충이 몸집을 줄인 이유가 지구 대기 중의 산소 포화도가 줄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 이유는 곤충의 호흡 방식에 있다. 곤충은 기공이라는 구멍을 통해 숨을 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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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공을 통해 들어간 산소는 몸 곳곳으로 퍼진다. 몸집이 크면 호흡하기가 더 어려워지는데, 대기 중 산소 포화도가 높으면 몸집을 좀 더 키워도 호흡의 효율을 유지할 수 있다. 반대로 얘기하면, 산소 농도가 떨어지면서 호흡하기 어려운 커다란 곤충은 사라지고 작은 곤충만 남았다는 의미다. 지구의 산소 농도는 고생대 말기부터 높아지기 시작해 중생대 쥐라기에 다시 낮아지고, 백악기에는 다시 지금보다 높아졌다. 실제로 거대 곤충이 살았던 시기와 이 시기가 일치한다.
물론 산소 포화도가 곤충의 몸집을 좌지우지한 전부는 아니다. 일본 도호쿠대 생태학 및 진화생물학과 오카지마 료코 박사팀이 산소 분압으로 예측한 과거의 곤충 크기와 실제 곤충의 화석을 비교한 결과, 이론으로 예측한 것보다 실제 곤충 화석의 최대 크기가 작다는 것을 발견했다(고생물학 학술지 ‘레타이아’, 2008년 4월 10일자).
산소 농도에 반응해 몸집을 키우는 정도도 곤충 종에 따라 다르다. 미국 애리조나주립대 존 반덴브룩스 교수팀이 바퀴벌레, 잠자리, 메뚜기, 딱정벌레 등 다양한 곤충을 각각 산소 포화도가 다른 환경에서 키우는 실험을 한 결과, 높은 산소 농도에서 잠자리는 가장 빠른 속도로 큰 개체로 자란 반면, 바퀴벌레는 여전히 느리게 자랐고 성체의 크기도 더 커지지는 않았다(2010 미국지질학협회 연차총회 11월 1일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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