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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RN 최초의 여성 소장, 파비올라 지아노티 단독 인터뷰


힉스 입자 발견을 세상에 알린 주인공이었고, CERN의 첫 여성 소장이 됐다. 21세기 입자물리학 변혁기의 중심에 서게 됐다고 할 수 있는데, 기분이 어떤가.

힉스 입자 발견 사실을 발표할 때 아틀라스(ATLAS) 팀의 대변인으로 나설 수 있었던 것은 큰 영광이었다. 하지만 그게 입자물리학계에서 핵심 인물이라는 걸 뜻하지는 않는다. 입자물리학은 이제 더이상 개인의 연구가 아니다. 국제적인 협력과 팀워크가 중요하다. 힉스 입자를 발견한 연구만 해도 수천 명이 함께 했다. 모든 역할이 없어서는 안 되는 필수적인 일이었다. 나는 운이 좋게 대변인과 소장으로 선발됐다. 하지만 내가 여성이기 때문에 특혜를 받은 것은 아니길 바란다. 물리학자로서 내 경력과, CERN 위원회에 제시한 비전 때문에 소장이 된 것이길 바란다.

➔ 지아노티 소장은 자신이 여성이라는 점이 부각되는 것을 바라지 않았다. 과학계에서는 성별이 아닌 전문성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과학자를 꿈꾸는 여학생들에게도 실력을 기르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여성 과학자들이 공정한 경쟁을 할 수 있도록 보육 시스템을 갖추거나 근무 시간을 유연하게 운영하는 등 실질적인 배려가 밑바탕이 돼야 한다고도 말했다.
 


힉스 입자 이야기를 좀 더 해 보자. 힉스 입자를 예측한 두 명의 물리학자가 노벨 물리학상을 탔는데, 입자를 직접 발견한 CERN에서는 수상자가 나오지 않았다. 아쉽지 않았나.

발표 내용을 보면 알겠지만, 노벨 위원회는 CERN의 공로를 분명하게 인정했다. CERN의 모든 구성원은 두 학자가 노벨상을 받게 됐을 때 마치 우리가 상을 받은 것처럼 기뻐하며 흥분했다. 우리가 노벨상을 탈것이라는 기대는 전혀 하지 않았다. 그리고 개인이 아닌 기관에 노벨상을 주는 경우는 평화상이 유일하다. 대규모 공동 연구가 많아진 현대 과학의 흐름에 맞게 규정을 바꿀 필요가 있다고 주장할 수도 있지만, 그건 스웨덴과학위원회가 결정할 몫이다.

작년에 750GeV(기가전자볼트) 에너지 영역에서 아틀라스(ATLAS)와 시엠에스(CMS) 검출기가 동시에 특이한 신호를 포착했는데, 올해 실험 결과 새로운 입자는 아닌 것으로 드러났다. 그 신호는 무엇이었나. 동시에 신호가 포착된 것은 무엇을 의미하나.

입자물리학에서 ‘유레카’라고 외칠 만한 발견의 순간은 매우 드물다. 발견은 오랜 시간 동안 아주 공을 들여, 새로운 신호가 ‘통계적인 요동(오차 범위 내에서 일어날 수 있는 현상)’일 가능성이 거의 없는 명확한 수준에 도달할 때까지 데이터를 축적하는 과정이다. 힉스 입자를 예로 들면, 우리는 힉스 입자가 ‘최종 상태’라고 부르는 단계까지 붕괴했을 때 나타나는 입자들을 찾는 방식으로 연구했다. 하지만 입자물리학에서는 힉스 입자와 같은 양상으로 최종적인 붕괴 상태를 나타내는 과정들이 많다. 그렇기 때문에 확신을 갖기 위해서는 뭔가가 더 필요했다. 우리가 알고 있는 물리 현상으로부터 기대할 수 있는 것을 뛰어넘을 정도로 사건이 많이 발생했다는, 통계적으로 명확한 신호(statistically significant excess)를 찾아야 했다.

그렇게 명확한 신호를 찾는 일은 시간이 걸린다. 어떤 사건이 발생했을 때 생기는 작은 신호는 더 많은 데이터가 모여야 맞았는지 틀렸는지 확인할 수 있다. 힉스 입자 신호의 경우, 통계적인 명확성이 계속 증가해서 결국 자신 있게 ‘발견했다’고 확신할 수 있을 정도가 됐다. 반면 750GeV 신호는 올해 실험에서는 나타나지 않았다. 실망스러울 수 있지만, 놀라운 일도 아니다. ATLAS와 CMS가 함께 동원된 대규모 분석 과정에서 작은 신호를 보는 경우는 종종 일어나는 일이다. 때로는 이번처럼 두 검출기가 같은 에너지에서 신호를 포착하기도 한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런 신호는 대부분 사실이 아닌 것으로 판명된다.
 

CERN에 과학자보다 엔지니어와 기술자가 더 많다는 사실이 놀랍다. 그들의 역할은 물리학자들의 아이디어를 구현하는 것일 텐데, 무엇보다 소통과 협력이 중요할 것 같다.

CERN은 전세계에서 온 다양한 물리학자들이 사용하도록 만든 가속기 시설이다. 우리의 역할은 각국의 대학과 연구소에서 온 학자들이 자신의 실험을 할 수 있는 기반시설을 제공하는 것이다. 이런 일을 하는 사람들은 대개 엔지니어와 기술자다. 그래서 우리는 물리학자보다는 엔지니어를 더 많이 고용한다. 시설을 만들고, 운영하며, 사용하는 사람들이 원활하게 소통하게 하는 것이 정말 중요하다. 현재 소통을 전담하는 물리학자를 뽑아서 그 역할을 맡기고 있다.

➔ 그는 CERN에 대한 자부심이 컸다. 특히 CERN의 성공 비결로 ‘장기적인 연구 안정성’을 꼽았다. 5년 단위로 엄격하게 연구를 계획하지만, 한번 정한 목표는 좀처럼 변경하지 않고 진행한다. 한국 과학계의 연구 현실이 떠오르는 대목이었다.

한국 과학자들이 제안한 연구도 진행 중이다. 현황이 어떤가. 향후 한국 과학자들과의 협력 계획에 대해서도 알고 싶다.

CERN에는 굉장히 다양한 연구 프로그램이 진행되고 있다. 그 가운데 자기홀극(monopole)을 찾는 모에달(MoEDAL) 실험과, 액시온(AXION) 입자를 찾는 실험은 한국 물리학자들과 공동으로 진행하고 있다(액시온은 우주 전체 에너지의 약 26.8%를 차지하는 암흑물질의 주요 후보 입자 중 하나다). 우리는 이처럼 다양한 연구를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앞으로도 계속 이런 철학을 유지할 것이다. 이미 한국 과학자들과 긴밀히 협력하고 있지만, 향후 더 많은 한국 과학자들이 CERN의 프로젝트에 참여할 수 있도록 관계를 강화하고 싶다.

거대강입자충돌기(LHC)가 낼 수 있는 에너지에는 한계가 있다. 그보다 높은 에너지가 필요한 실험은 할 수 없다. ‘LHC 시즌2’에서 우선순위로 생각하고 있는 목표는 무엇인가. CERN의 미래를 위해 어떤 준비를 할 계획인가.

LHC는 이미 에너지를 기존의 1.6배까지 끌어올린 상태다. 현재 에너지 수준에서도 새로운 발견을 할 가능성이 높다. 전보다 많은 힉스 입자를 만들어내기 때문에 힉스 입자에 대해 더 정밀하게 연구할 수 있다. 향후 몇 년 동안 LHC의 휘도(luminosity, 상호작용하는 공간 안에서 입자가 충돌하는 횟수)를 5배까지 높일 계획이며, 2035년까지 ATLAS와 CMS 검출기가 지금보다 50배 많은 정보를 생산하게 할 것이다.

CERN에서는 LHC 이후 시대에 효과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다양한 기술을 개발하고 있다. 미래형원형충돌기(Future Circular Collider) 연구에서는 100TeV(테라전자볼트)의 에너지를 내는 양성자 충돌장치의 가능성을 탐구하고 있고, 전자-양전자 충돌로 힉스입자를 생산하는 장치도 연구하고 있다. 또 3TeV의 에너지로 작동하는 고에너지 선형충돌기 기술도 연구하고 있다. 이 가운데 무엇이 과학계의 필요에 부합할지는, 향후 수 년 동안 LHC와 다른 가속기들을 통해 무엇을 배우는가에 달려 있다. 장기적으로는 아주 흥분되는 연구개발 계획도 있다. 어웨이크(AWAKE) 프로젝트는 플라즈마를 이용해 입자를 가속시키는 고에너지 충돌기를 연구한다. 충돌기의 크기를 줄일 수 있고 건설비를 절약할 수 있다.

힉스 입자를 비롯한 다양한 발견에 참여했다. 위대한 발견에 필요한 핵심 요소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어려운 질문이지만, 호기심과 창의성이 중요하다고 말하고 싶다. 그리고 인내력이 있어야 하고, 겸손해야 한다. 무엇보다 마음을 단단히 먹어야 한다. 위험을 감수하는 용기를 가져야 한다.

입자물리학에 관심이 많은 한국의 독자들, 특별히 학생들에게 조언을 부탁한다.

무엇을 하며 살지를 결정하는 젊은 학생시절, 나는 우리가 살고 있는 멋진 우주를 이해하고, 지식의 진보에 기여하는 것이 삶에서 가장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게 내가 입자물리학을 선택한 이유다.

입자물리학은 모든 과학 분야 중에서 가장 기초가 되는 학문이다. 대단히 보람 있는 삶이다. 비록 우주를 완벽하게 이해할 수는 없을지라도, 발견의 여정은 정말 매력적이다. 끊임없이 새로운 통찰과, 우리의 삶을 개선하는 혁신을 얻는다. 만약 여러분이 (입자물리학이 아니라도) 과학자가 된다면, 무언가 새로운 것을 최초로 알아내는 사람이 될 기회가 많다. 그건 정말, 말로 표현할 수 없는 특별한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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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11월 과학동아 정보

  • 최영준 기자
  • 사진

    CER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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