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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림길에선 한국의 천문 연구

6.5m 광학현미경 도입 절실하다

미국 독립기념일이었던 지난 7월 4일. 이날 미국 항공우주국(NASA)이 보낸 탐사선 ‘딥임팩트’(Deep Impact)와 템펠 혜성의 충돌은 ‘우연’이 아니라 ‘필연’이었다. 이 대대적인 사건은 다시 한번 미국이 우주개발 분야에서 세계 ‘최고’임을 대내외에 천명했다. ‘충돌’이 가져온 ‘충격’이랄까. 첨단우주기술을 과시한 ‘딥임팩트’는 내 가슴에 ‘커다란 충격’을 가져왔다.

그 충격이 채 가시기도 전인 7월 7일, 필자는 한국천문연구원 대표 자격으로 전파천문 협정을 맺기 위해 일본 국립천문대(NAOJ)를 방문했다. 조인식에 참석하기 위해 NAOJ본부를 방문하면서 받은 두 번째 충격 역시 컸다.

만일 한·일간 천문학 수준차이를 축구경기에 빗댄다면 한국이 일본에게 ‘5대 0’ 정도로 지고 있다는 사실을 이번에 확인했기 때문이다. 진짜 축구경기를 1대0으로만 져도 분을 삭이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은 현실을 감안하면 심각한 수준이다.

일본 천문학의 중심 스바루 천문대

하와이 군도에 있는 마우나케아산 정상은 선진국 천문대들의 각축장이다. 천문관측을 하기에 최적의 조건을 갖춘 이곳에는 현재 선진 각국의 천문대가 빽빽이 들어서 있다. 그런 이곳에 미국과 유럽 천문대들에 맞서 당당하게 서있는 것이 바로 NAOJ가 세운 스바루천문대다. ‘스바루’(Subaru)는 일본말로 ‘플레이아데스’(Pleiades)성단을 뜻한다.
 

하와이 마우나케아산 정상에 설치된 일본 천문학계의 자랑 스바루천문대. 직경 8.2m짜리 대형광학망원경으로 우주의 비밀을 캐고 있다.


이 천문대에는 지름이 8.2m에 이르는 거대한 광학망원경이 설치돼 있다. 그 규모는 다른 선진국 망원경에 비해 결코 뒤지지 않는다. 특히 망원경 두 개를 나란히 배치해 대형 쌍망원경이 주도하는 최근 추세를 잘 반영하고 있다. 이에 비해 국내 최대 규모인 보현산천문대의 광학망원경이 고작 1.8m에 머무른다는 사실은 쥐구멍에 숨고 싶을 정도로 부끄럽기 짝이 없다.

지난 수년간 천문연은 외국과 합작을 해서라도 마우나케아산에 천문대를 세우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일찌감치 예산을 확보하지 못한 탓에 그만 그 꿈은 수포로 돌아가 버렸다. 마우나케아산에는 더 이상 빈 봉우리가 남아있지 않기 때문이다.

1888년 설립된 NAOJ본부는 현재 도쿄 미타카 지역에 자리잡고 있다. 한국으로 치면 서울의 위성도시쯤에 자리한 본부 부지는 처음 설립 당시에는 한적한 장소였지만 지금은 번화한 도심 한복판이 돼 버렸다. 수만 평에 달하는 울창한 수목 사이사이로 자태를 드러내는 관측시설들은 NAOJ의 역사를 고스란히 담고 있다. 카이후 노리오 NAOJ대장은 스바루 망원경을 제일 먼저 자랑했다. 역시 스바루 망원경은 현재 일본 천문학을 대표하는 상징이었다.

NAOJ가 보유한 관측시설은 이 뿐만이 아니다. 스바루 천문대의 그늘에 가려 비교적 잘 알려지지 않은 오카야마(岡山)천문대에도 지름 1.88m와 91cm 광학망원경이 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노베야마(野邊山)전파천문대에는 지름 45m전파망원경과 80cm소형전파망원경 84대를 운용하는 태양관측시설이 있다. 일본 전역에 고르게 배치된 관측시설들은 일일이 다 열거하기가 힘들 정도다. 참고로 올해 NAOJ가 사용할 예산은 천문연 예산의 10배에 가깝다는 사실을 밝혀둔다.

천문연은 이번 방문기간 동안 현재 건설중인 한국우주전파관측망(KVN)전파망원경들을 지난 2001년 완공된 NAOJ의 전파망원경(VERA)과 네트워크로 연결해 공동 운영하는 협정을 체결했다. 현재 천문연은 2007년 완공을 목표로 지름 21m짜리 전파망원경 3대를 서울(연세대)과 울산(울산대), 제주(탐라대)에 설치할 계획이다. 다소 늦은 감은 있지만 KVN사업 예산이 승인돼 공사가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음은 한국 천문학 발전과 국가 이미지를 위해서 천만다행한 일이다.

KVN과 VERA만 비교하면 어쩌면 한국이 일본에 불과 7~8년 뒤쳐졌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스바루 광학망원경과 노베야마 전파망원경의 규모를 놓고 보면 두 나라의 격차는 15년으로 벌어진다. 한국이 ‘거북이’라면 일본은 ‘토끼’에 빗댈 만도 하다. 문제는 토끼가 낮잠도 안 잔다는 것이다. NAOJ본부에만 길이가 300m이상인 중력파 안테나가 2대나 설치돼 있다. 최근 NAOJ는 남아메리카 안데스산맥 아타카마 사막에 전파망원경 80대를 주축으로 하는 아타카마밀리미터파관측시설(ALMA)준공을 앞두고 있다. 카이후 대장은 “30m급 광학망원경과 우주 적외선 및 초장기선간섭계 망원경, 길이만 3km인 중력파 안테나 도입도 이미 눈앞에 두고 있다”며 자신에 차 있었다.
 

미국 뉴멕시코 새크라멘토산맥 정상의 슬론디지털스카이서베이(SDSS)천문대에서 운용중인 지름 2.5m 디지털광학망원경. 30억 광년 이내의 우주를 입체로 측량한다.


연구 수준 가늠하는 망원경 직경

마우나케아산 정상에 천문대를 설치하는 일이 좌절된 뒤 한국의 천문학자들은 새로운 대안을 찾기 시작했다. 오랜 논의 끝에 얼마전 연구자들은 지름 6.5m짜리 광학망원경을 멕시코와 공동으로 설치한다는 한국형대형망원경(KLT, Korean Large Telescope)프로젝트안을 내놨다.

이 대형 관측망원경이 설치될 장소는 캘리포니아 반도 중간쯤 위치한 멕시코의 산 페드로 마티르(San Pedro Matir)로 결정됐다. 마우나케아산 못지않은 최적의 관측지였다.

하지만 대형 광학망원경을 처음으로 설계해 제작하기란 녹록치 않은 작업이다. 그만큼 모험이 뒤따른다. 하지만 미국 마젤란천문대에서 현재 운용 중인 6.5m쌍망원경을 모방할 계획이기 때문에 위험 부담과 예산이 대폭 줄어든다.

더욱 고무적인 일은 이미 대형 광학망원경을 운용하고 있는 미국과 멕시코가 공동으로 재원을 투입해 KLT 바로 옆에 똑같은 모델의 망원경을 세울 계획이라는 점이다. 결국 KLT는 쌍망원경으로 운용할 수 있게 되고 우리 지분도 자연히 50%가 될 것이다.

물론 망원경이 같다고 해서 연구 성과까지 같은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우리 천문학자들이 광시야 다천체 분광 기술을 잘만 활용하면 직경 8~10m짜리 망원경이 관측하지 못하는 어두운 천체를 얼마든지 관찰할 수 있다.

KLT는 장기적인 관점에서 바라봐야 한다. 사업이 순조롭게 진행돼 2006년부터 건설이 시작된다고 해도 2012년경에야 본격적인 관측을 시작할 수 있다. 그때까지 소요될 예산은 약 800억원에 이를 것으로 추산된다. 올해 삼성프로야구단이 국내 자유계약선수를 싹쓸이하기 위해 들인 돈만 150억원에 이른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향후 7~8년에 걸쳐 이 사업에 투자될 800억원은 그리 많지 않은 액수다.

하지만 최근 수년간 예산심의 과정에서 ‘불요불급하다’는 이유로 번번이 천문 예산이 퇴짜를 맞은 상황을 보면 답답하기 짝이 없다. 그런 판단을 내린 사람은 아마 5년 뒤에도 대형 광학망원경을 세우는 일이 불요불급할것이다. “도대체 왜 큰 망원경이 필요해요? 별을 보면 밥이 나와요, 빵이 나와요?”라고 묻는 사람이 더 이상 없기를 바란다.

다른 나라들은 돈이 남아돌아서 경쟁적으로 커다란 망원경을 세우겠는가? 국민의 일부가 굶어 죽는 상황에도 불구하고 우주개발에 박차를 가하는 국가들도 있다.

‘새로운’ 프로젝트로 스트레스만 쌓여가는 필자가 어느 날 마침내 다음과 같이 호통을 치는 국회의원을 만났다. “이봐요, 천문연구원장! 당신은 우주를 연구한다는 사람이 왜 그렇게 배포가 작소. 세상에 6.5m가 뭡니까! 65m짜리 계획 세워서 다시 올려 봐요!” 그러나 깨어보니 꿈이었다.
 

스바루천문대 8.2m 광학현미경에 들어간 광학렌즈. 설치직전에 촬영한 것이다.

 

2005년 08월 과학동아 정보

  • 박석재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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