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 로터리에서 터미널 쪽으로 조금 더 들어가면 요란하고 품위 없는 간판의 술집이 늘어진 먹자 골목이 나온다. 카페 ‘알송달송’은 거기 있었다.
호아가 ‘알송달송’에서 파는 합성 초콜릿 케이크를 좋아하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그곳에서 만나는 일이 잦았다. 호아는 케이크 위에 산처럼 뿌려진 가루설탕을 후두둑 흘려가며 재수 없는 상사나 쪼잔한 회사, 도무지 어떻게 굴러가는지 모를 사회에 대한 막연한 불만 등을 털어놓곤 했다. 그날도 시작은 다르지 않았다. 호아는 최근에 회사가 걸린 소송 때문에 애먼 직원들이 얼마나 고생했는지 열변을 토했다. 찻잔을 기울이던 참이었다.
“맞아. 나 소울링크 매칭 신청하려고.” 넘어가던 차가 기도를 침범했다.
가까스로 찻잔이 넘치지 않게 추스렸다. 목구멍부터 콧구멍까지 불타듯 따끔거렸다. 콜록거리자 호아가 안쓰럽다는 듯 냅킨을 두툼하게 쥐어줬다. 테이블 위에 쏟아진 차를 대강 닦아내고 나서야 고개를 들었다.
“뭐? 갑자기 왜?”
“그냥, 요즘 픽사트 알고리즘에 엄청 나오더라고.” 호아가 이어피스를 두드려 화면 공유를 실행했다. 스마트 렌즈 위로 스크린이 나타났다. 픽사트의 한 계정이었다. 주로 달라붙은 두 사람의 사진이 게시글로 올라왔는데, 둘 다 광대가 동그랗게 말려 보일 만큼 환하게 웃고 있었다. 비슷한 사진들이 내려가는 스크롤을 따라 끝없이 이어졌다. 여기까진 흔히 말하는 ‘럽사트’ 계정과 다름 없었다. 심상치 않은 건 팔로워 수였다.
“150만 명?! 무슨 연예인이야?” “연예인이나 다름 없지. 이 커플, 소울링크 싱크로율이 88%나 돼. 그래서 계정 이름이 88커플이야. 싱크로율도 88, 사랑도 팔팔.”
88%. 얼마 전 애인이 생겼다던 직장 동료가 떠올랐다. 새 애인과의 싱크로율은 60%대나 된다고 수줍게 얘기했더랬다. 그것도 평균보다 높은 편인데, 80%가 넘는다니. 수치만 두고 보면 영혼의 쌍둥이인 셈이었다.
그래서일까, 스크린에 나타난 커플은 옷차림도 취향도, 심지어 이목구비까지 비슷했다. 서로를 바라보는 눈빛마저도 끈적끈적하니, 사랑이 넘쳐나는 것 같았다. 어쩐지 심통이 났다.
“SNS 계정만 보고 어떻게 알아? 쇼윈도일지도 모르지.” “야, 이 눈빛을 봐. 이게 어떻게 연기냐?” “소울매칭 테스트 은근히 비싸지 않아? 한 번에 3, 40만 원은 한다던데.”
“어제 성과급 들어왔어.” 호아가 다니는 회사, 인슈어넷은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보험 평가원이다. 대부분의 보험 제도가 민간 운영으로 돌아선 지금, 수익률이 최우선이 된 보험회사들은 어떤 계약이든 평가원의 의견 없이는 진행하지 않았다. 그 중에서도 양자 시뮬레이션까지 동원한 인슈어넷은 독보적인 계약 순위 1위였다. 사문다리 사건 소송이 진행되는 지금도 그 기세는 밀리지 않는 모양이었다. 적어도 성과급이 밀리지 않을 여유는 있다. 하긴, 이 정도 대기업이 소송 한두 건으로 휘청댈 리가 없겠지만.
“같이 받자.” “뭐?”
“너도 같이 받자. 소울링크 검사. 돈 내가 내줄게.” 마주보는 내내 호아는 눈도 깜빡이지 않았다. 쓸데없이 진지한 태도에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호아는 늘 이랬다. 주변 사람들을 웃게 했다.
“안 해. 연애 생각 없어.” “그냥 재미로 하면 되지.”
“너 혼자 가. 결과 말해줘.” “같이 하자.”
“안 할 거야.” “하자.”
“안 해.” “하자!” “안 한다니까一.”
*
“어서오세요. 팅글 커넥션입니다.”
대기실에 들어가자 먼저 도착한 호아가 보였다. “웰컴 드링크 받았어? 여기 의자도 짱 푹신푹신해.” 호아는 의자의 탄력성을 몸소 보여주려는 듯 앉은 채로 엉덩이를 들썩들썩해 보였다. 프라이버시를 위해서인지 대기실은 예약한 손님 단위로 스마트렌즈와 연동되는 가상 칸막이로 나뉘어져 있었다. 칸막이의 맨 위에 설치된 스크린으로 대기 순서를 확인할 수 있었다. 치과 응접실 같았다. 열대 과일 향기가 나고 소다수를 준다는 점만 빼면.
테이블 위에 안내 팸플릿으로 연결되는 QR 코드가 보였다. 눈을 두 번 깜빡여 접속하자 바로 영상으로 연결됐다. 정장을 입은 국적 불명의 아바타가 전형적인 클립 영상과 함께 설명을 시작했다.
뇌내 시냅스가 광자의 양자얽힘 현상을 사용해 정보를 주고 받는다는, 이른바 뇌내 양자 현상은 중학생도 생물학 시간에 배우는 기초 상식이다. 오랜 시간 동안 전 세계의 양자 관련 기업들은 이 발견을 “진보와 풍요를 위해” 활용하는 데 혈안이었다. 선수를 친 것은 양자 테크 기업 퀀텀테크였다. 자랑하는 행성형 양자 컴퓨터 퀀틱스를 사용해 뇌내 시냅스 흐름을 시뮬레이션하는 과정에서, 사람마다 뇌에서 지문처럼 고유한 파동함수를 만들어낸다는 사실을 알아낸 것이다.
이 파동함수를 활용하기 위해 온갖 분야에서 연구가 진행됐다. 치매 치료, 마인드 업로딩, 의체 연결. 개중엔 텔레파시 같은 황당한 분야도 끼어 있었다. 이 중 대부분은 양자 테크 버블이 터지며 흔적도 없이 사라졌지만 팅글 사의 소울링크는 달랐다. 상용화에 성공했을 뿐만 아니라, 투자금의 1000배를 환수하는 쾌거를 이룬 것이다.
퀀텀테크의 투자를 받은 벤처 기업 ‘팅글’은 광자에서 추산된 파동함수가 개개인마다 고유할 뿐만 아니라, 객체 사이에 일종의 공명을 일으킨다는 점에 주목했다. 뇌내 광자 파동함수 패턴의 상호 호환성에서 두 객체 사이의 ‘싱크로율’을 도출할 수 있었던 것이다. 팅글은 재빨리 이 기술에 ‘소울링크’라는 이름을 붙이고 현존하는 연인, 친구, 직장 동료와 생면부지의 타인들 사이에 적용해 대규모 임상실험에 들어갔다. 결과는 일관적이었다.
‘소울메이트.’
인생을 걸 만큼 강렬한 유대를 공유하는 관계의 대상자들 사이에서 평균값 이상의 싱크로율이 관찰된 것이다. 처음부터 소울링크 싱크로율이 높기 때문에 이런 관계가 된 것인지, 이런 관계를 맺는 과정에서 싱크로율이 높아지는지를 두고는 아직도 학계의 의견이 분분하다. 어쨌든, 높은 싱크로율이 선행된 두 개인 사이에서 보다 우호적인 관계맺기가 이루어진다는 사실은 확실했다. 이중맹검이 적용된 실험과 수천 명대의 샘플을 대상으로 한 현장 환경에서의 연구 모두에서 거듭 확인됐으니 말이다. 현장 연구는 또 다른 놀라운 사실을 밝혀냈는데, 팅글이 단번에 퀀텀테크 업계 3위라는(그러니까, ‘수익성이 높은’이라고 읽는다) 굴지의 사업체가 된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었다.
싱크로율은 인접성과 연관이 없었다. 전혀. 무작위라도 해도 좋을 정도였다. 가족, 이웃, 거주지, 국적, 문화권과 주된 사용 언어까지도 싱크로율과 아무런 상관관계를 보이지 않았다. 지구 저 반대편에 내 소울메이트가 살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AI 아나운서가 사라지고, 깨끗한 흰 벽지를 배경으로 한 쌍의 남녀가 등장했다. 자막으로 두 사람은 소울 링크 매칭 서비스로 만나게 됐으며, 현재 10년 넘게 결혼 생활 중이라는 안내가 나왔다.
“5년 넘게 만났던 사람이랑 헤어진 직후였거든요. 아, 끝이다. 내 인생에 더 이상 사랑 같은 건 없어! 그런 마음? 그러다 소울링크에 대해 알게 됐어요.” 활짝 웃는 얼굴로 여성이 말했다.
정말 딱 한 번만 더 기회를 주자. 그런 마음으로 그는 소울링크 서비스에 지원했고, 두 달 뒤 매칭 결과가 나왔다는 연락을 받았다. 그렇게 만난 상대는 호감상이었지만, 이상형과는 거리가 멀었다. 아무래도 잘될 것 같지 않았다. 기술을 앞세운 사기는 아니었을까? 그렇게 생각할 때였다.
“공원을 걷던 중에 소나기가 막 내렸거든요. 애써 꾸미고 왔는데 쫄딱 젖은 거예요. 그때 이 사람이 손수건을 주면서 이러는 거예요. “걱정 마세요. 이 모든 순간이 곧 사라질 거예요. 빗속의 눈물처럼.” 영화에 나오는 대사인데요, ’블레이드 러너’라고. 이게 100년 가까이 된 영화거든요. 영화가 오래되기도 했고 좀 지루해서, 솔직히 이걸 본 사람을 만날 줄은 몰랐어요. 그때 느꼈어요. 아, 진짜일지 모르겠다.”
그 후로는 뻔한 홍보성 이야기가 이어졌다. 심드렁하게 인터뷰 부분을 넘기자 수치와 그래프가 등장했다. 소울링크 서비스로 매칭된 커플 중 90퍼센트는 결혼, 또는 그에 준하는 생애 반려 관계로 이어졌고, 이혼율은 같은 기간 내 결혼한 커플 대비 반의 반도 되지 않았다. 소울링크 서비스가 도입된 이후 저조하던 결혼 시장이 다섯 배 커졌다는 조사 결과도 언급했다.
영상을 꺼버리고 몸을 젖혔다. 푹신한 등받이에 기댄 호아를 보고 있자니, 원피스 차림이 참 잘 어울린단 생각이 들었다. 새삼스럽게. 호아는 뭘 입어도 보기 좋다.
“저 사람들 봐.” 호아가 내 뒤 부스를 가리켰다. 두 사람은 다정하게 서로 머리를 맞대 기댄 채, 세상의 종말이라도 기다리는 것처럼 손을 꼭 맞잡고 있다.
“사이 되게 좋다. 벌써 사귀는 사이 같아.”
“사귀기 시작하고 오는 경우도 있어.”
호아가 성마르게 눈을 깜빡였다. “그러니까, 관계가 더 진지해지기 전에 싱크로율을 확인해야 하잖아. 어쩌다 소울링크 검사 전에 만나기도 하니까. 네 주변엔 그런 사람 없어?”
“저 정도면 서로 잘 맞는 거잖아. 검사 안 해도 되는 거 아냐?” 호아가 뭐라 말하기 전, 대기 명단 맨 위로 우리 이름이 떠올랐다. 호아와 나는 각자 다른 방으로 보내졌다. 락커에서 스마트렌즈와 이어피스를 꺼내고 얇은 가운으로 갈아 입었다. 짧은 복도를 지나자 자동문이 반으로 갈라졌다. 드디어 스캔실이었다. 원목으로 된 바닥과 선반에, 자연광이 비치는 창문처럼 만들어진 디스플레이 벽면. 잔잔한 음악까지 흘렀다. 호텔 객실이나 스파에 온 것 같았다.
파동함수를 추출하기만 하면 되는 소울 링크 검사도 도 양자 현미경을 사용하므로 소량의 방사능에 노출될 수 밖에 없어, 스캐너에 들어가기 전에 니들 파츠를 사용한 약식 혈액 검사를 받았다. 흰 침대처럼 생긴 테이블에 누워 담요를 덮자 스캐너가 작동하는 소리가 울렸다. 얕은 잠과 함께 꿈과 기억이 가물가물 뒤섞였다.
“자유 연애 제도는 새 악몽의 시작이었어요.” 대기실에서 봤던 영상 속 연구원이 말하기 시작했다. “해방을 가져다줬지만 동시에 우리를 딜레마에 밀어넣었죠. 가장 큰 문제 중 하나는 취약성이었어요. 반려자에 대한 책임을 개인이 오롯이 감당해야 하는 구조 속에서, 많은 경우 상대는 신뢰할 이유보다는 경계 해야 할 이유를 제공했어요. 소울링크 서비스가 도입되기 불과 5년 전의 통계를 보세요. 사기, 폭행, 살인까지. 입에 담을 수도 없는 범죄가 친밀한 관계 내에서 발생했죠. 당신이 사랑했던 그 사람. 신뢰를 담아 인생을 바치기로 한 그 사람이, 한순간에 알아보지도 못할 괴물이 되는 것이죠.”
호아와는 대학 시절, 확률 해석 스터디에서 만났다. 스터디를 주선한 건 나였다. 호아와 나 외에 다섯, 여섯쯤 되는 사람들이 있었다. 처음에는. 한두 사람씩 건강이 나빠지거나 과제가 바빠지더니 한 달도 지나지 않아 호아만 남았다. 이런 적이 처음도 아니었지만, 애써 빌린 스터디룸에 한 사람만 덩그러니 앉아 있는 걸 보니 어쩔 수 없이 맥이 빠졌다. 호아는 아무렇지도 않게 교재를 펼치고 오늘 복습할 부분을 읽고 있었다. 나는 호아의 앞으로 가, 탁자 위에 손을 얹었다.
“가셔도 돼요. 그쪽도.”
호아는 눈을 동그랗게 뜨더니, 농담이라도 들은 듯 소리내어 웃으며 말했다. “자격증 포기하시게요?”
“공부는 계속 할 거예요. 그냥, 이제 따로 공부해요. 스터디하는 의미가 없잖아요. 저희 둘밖에 없는데.”
“둘이나 있는 거죠.” 호아가 책장을 넘겼다. “진도도 반이나 나갔고.”
“언제 내게 폭력을 행사하거나, 애정이라는 이름으로 나를 착취할지 모르는 상대에게 인생을 맡기는 건 바보 같은 짓이었어요.” 연구원이 말했다. “소울링크는 바로 이 문제를 해결했어요. 처음부터 깊은 관계를 맺어도 안전한 후보를 찾을 수 있게 된 것이죠. 속임수 없이 드러난 거예요. 인품의 영역이.”
인품이라.
말주변 없고 사교성도 떨어지는 데다가 성격까지 나쁜 나와 호아는 딴판이다. 정말로 소울링크가 인품에 따라 사람을 걸러낸다면 나와 호아의 싱크로율은 처참하기 짝이 없을 것이었다. 정말이지, 오는 게 아니었다. 4년간의 짝사랑으로 충분했다. 호아를 막을 순 없었다. 호아는 본인에게 걸맞는 완벽한 단짝을 만날 자격이 있으니까. 하지만 내가 그 사람이 아니라는 걸 새삼스럽게 깨닫는 건 다른 문제였다. 지금이라도 스캐너에서 나가자. 갑자기 배가 아프다고 핑계를 대자.
“박재현 님, 장호아 님. 고생 많으셨습니다. 두 분 다 문제없이 끝나셨어요.” 팅글 소속의 매칭 전문가, 통칭 ‘커넥트 매니저’가 앉은 자리에서 회전의자 바퀴를 돌려 우리를 맞았다. 상담실은 고전적인 북유럽풍의 하얗고 기하학적인 인테리어였다.
“이제 간단한 설문 조사만 마치시면 바로 매칭에 들어갈 거예요.” 매니저가 건네준 조사지를 훑어봤다. 연간 평균 소득과 종사하는 직종, 연령과 출신지, 최종 학력. 뻔한 내용을 묻는 빈칸이 줄줄이 이어졌다. 묵묵히 입력하고 있자 묵음 처리된 채팅 알림이 화면 가장 자리에 떴다. 바로 옆에 앉은 호아였다.
[평균 수입은 왜 묻지? 돈 더 버는 사람한테선 수수료 더 받나?] 후기에 이런 얘기는 안 나왔나? 거주 지역 항목을 입력한 후, 호아에게 답장을 적어 보냈다. [매칭할 때 파라미터에 들어가.]
[??? 진짜?]
[정말 몰랐어?]
[그렇게 다 골라 사귈 거면 싱크로율은 왜 검사해?]
[여러 가지를 고려해보는 거지.]
[. ] 채팅창에 입력중 표시가 떠오르다가 사라졌다. 조사지를 전송했다. 내내 미소를 유지하던 매니저의 눈꼬리가 미세하게 경련을 일으켰다. 매니저는 한 번 더 스크롤을 내렸다 올리곤 호아에게 고개를 돌렸다.
“고객님, 응답이 저장되지 않은 것 같아요. 죄송하지만 다시 입력해주시겠어요?” 내 등골이 서늘해지는 소리였다.
호아는 뻔뻔하게 웃고 있었다. “아, 일부러 대답 안 한 거예요. 그거 없이 매칭해주세요.”
매니저는 최대한 부드러운 말투를 유지했다. “매칭 범위가 다소 넓어질 수 있는데, 괜찮으시겠어요?”
“상관 없어요.” 매니저는 결국 포기했다.
“평균값을 도출하는 데 시간이 좀 걸려서, 대체로 한 달 정도 후에 매칭 결과가 나온다고 보면 돼요.”
“아, 저 매칭은 기다려도 되는데,” 호아가 끼어들었다. “이 친구와의 싱크로율이 더 궁금하거든요. 사람 둘이 오면 그런 것도 검사한다면서요. 그것만 지금 볼 수 있나요?”
매니저는 흔들림 없었다. “그것도 평균값을 기준으로 산출되기 때문에 당장은 나오기 어려울 거예요. 가끔, 정말 높은 싱크로율이 발생할 경우 금방 결과를 보기도 하지만一”
차임벨 소리가 울렸다. 다음 예약 손님이 올 시간인가 싶어 들어왔던 문을 돌아봤지만, 등 뒤는 썰렁했다. 벨 소리는 매니저의 이어피스에서 울렸다. 매니저는 눈에 띌 정도로 당황하고 있었다.
“어머.” 짧게 뱉고, 매니저가 허공에 손짓을 시작했다. 화면에서 바로 상세 분석을 할 때의 동작이었다. 화면을 한참 응시하던 매니저가 다시 입을 열었다. “어떻게. ”
“뭐 잘못됐나요?”
“아니, 아니예요.” 입꼬리를 파르르 떨며 그렇게 대답하고, 매니저는 한 번 더 스크롤을 올렸다 내리길 반복했다. 조그맣게 “오류인가?” 하고 중얼거리는 것을 들은 기분도 들었다. 우리가 불안한 표정으로 응시하는 것을 발견하고 매니저는 상황을 수습하기 시작했다. “생각보다 매칭이 빨리 되셨네요. 싱크로율도 많이 아니, 제가 본 것 중에 가장 높은 수치고요.”
“정말요? 얼마나 되는데요?” 호아가 짝, 박수를 쳤다. 이윽고, 매니저가 속삭였다.
“구십 ” 잘못 들은 건가? 당황한 건 호아도 마찬가지인 모양이었다. 호아가 매니저 방향으로 고개를 기울였다. “죄송한데, 잘 안 들렸나 봐요. 다시 말해주시겠어요?”
“구”
“네?”
매니저는 조용히 숨을 들이마시는 듯 하더니, 단번에 내뱉었다. “구십팔 점 삼 퍼센트.” 정적이 흘렀다. 나도, 호아도, 매니저도. 꼬리물기를 하듯 서로가 서로의 눈치를 보고 말 한마디 꺼내지 못했다. 제일 먼저 눈싸움에서 진 것은 매니저였다. 그가 이어피스를 두드렸다.
“그, 결과지를 보여드릴게요. 어차피 유선으로 공유드리게 되어 있으니까. ” 호아가 결과지를 읽는 동안, 어쩐지 심장이 요동쳤다. 방금, 98%라고 했어? 50 이상만 되어도 높은 수치다. 그런데 98. 가장 처음 든 생각은 기기 오류가 아닐까, 였다. 혹시. 아냐, 아닐거야. 하지만 또 모르잖아. 어쩌면. 같은 시간에 스캔을 받았으니까. 가장 먼저 싱크로율을 대조해서. 그래서.
주위의 소리가 멀게 들렸다. 화면 말고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정적 속에서 호아의 탄성이 고막에 박혔다. “이구월 대리님?!” 귓가에서 들리던 북소리가 삐익, 하는 이명으로 바뀌었다. 아냐. 내가 아냐.
당연했다. 매칭 상대가 나였다면 내 쪽으로도 호아의 이름이 적힌 결과지가 공유됐을 것이다. 뻔한 사실도 눈치채지 못하고 김칫국을 한 사발 들이켰다니. 한 계절 정도 말 한마디 없이 잠만 자고 싶은 심정이었다. 기대한 것도 절망한 것도 들키고 싶지 않았다. 부끄러웠고, 사라지고 싶었다.
매니저의 목소리에서 감추지 못한 흥분이 묻어나왔다. “아는 분이세요?”
“네, 같은 회사 다녀요.”
“어머, 어머! 어쩜, 운명이 따로 없네요!” 호아가 어설픈 소리로 웃었다. 5초 정도 멍하니 책상을 응시했더니 실망에서 온 쓰라림이 무뎌지는 것도 같았다. 6초 이상 가는 감정은 없다고 한다. 나머진 두뇌의 착각이란 것이다.
그 말이 사실인지, 호아를 바래다주고 집에 돌아갈 즈음엔 정말로 괜찮아지는 것이 느껴졌다. 현관에 들어설 때엔 산뜻하기까지 했다. 잘 생각해보면 오히려 잘된 일이었다. 미련한 감정은 버릴 때였다. 이건 계기였다. 새 출발의 시간이 찾아온 것이다. 나 박재현, 학창 시절부터 매력도 재능도 없었지만, 절제와 노력만으로 이겨내왔다. 이번이라고 다를 것도 없었다. 궁상을 떨어선 안된다. 호아의 행복을 생각해서라도. 프로젝트에 매진하자. 내친 김에 미뤄뒀던 보안 설계 공부도 시작하고, 수영 훈련도 2500m대로 늘리고, 새 취미도 만들자. 베이킹 같은 거. 지금 당장.
*
술을 마셨더니 속이 울렁거려 책상 위에 엎드렸다. 진짬뽕 냄새를 풍기는 신물이 메슥메슥 올라왔다. 디스플레이에서 틀어놓은 인터넷 방송 소리가 웅웅 울려 퍼졌다. 고민 상담 전문 BJ였다. 술 탓인지 오늘따라 채팅창으로 손이 갔다. 되는 대로 채팅을 입력하고 있는데, 갑자기 마이크가 연결됐다. BJ가 방송에 날 초대한 것이었다.
“네, 실연을 당하셨다고요?” 지금이라도 수습할 수 있었다. 유야무야 넘어가자. 별거 아니라고 해. 별거 아니라고.
“네에에.” 망할 놈의 술. 몸을 조종하는 핸들이 통째로 빠진 것 같았다.
“상대가 누구에요? 애인?”
“그런 건 아니고 그냥 친구인데 짝사랑하던 사람인데요. ” 딸꾹질이 나왔다. 수도관이 터져버린 것처럼, 쌓였던 얘기가 술술 흘러나왔다. 주정뱅이의 두서없는 이야기인데도 BJ는 사려심 깊게 들어주었다. 하지만 이어지는 말은 가차없었다.
“그건 예의가 아니죠.” “네?” “짝사랑 오래 가져가는 거, 전 그거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하거든요. 가망이 없을 것 같으면 일찌감치 포기하고 잊든가. 정 그게 안되면 죽이 되던 밥이 되던 고백이라도 해보든가. 나는 상상도 못하고 있는데, 쟤는 몇 년이나 혼자 날 좋아했다? 입장 바꿔서 생각해보세요. 당혹스럽지.”
“어. ” “와, 근데 98퍼센트가 나왔어요? 뉴스에도 나오겠는데?” “중요한 건 그게 아니라. ” “신기해서 그러죠. 봐요. 다들 신기하다고 그러네.” 채팅창에는 어느새 98.3이라는 숫자와 감탄사가 구호처럼 도배되어 있었다.
“정말 사랑하면 그냥 응원해줘요. 소울링크, 아니다 싶은 사람은 처음부터 매칭도 안 되니까.” “아니다 ”
인품을 걸러준다고 했지. BJ 말이 맞았다. 가슴이 쓰라리긴 해도 일리가 있었다. 궁상떠는 것도 오늘까지다. 아무리 괴로워도, 호아를 위해서라면 응원해주는 게 맞았다. 얼굴을 문지르며 고개를 들었다. 인터넷 방송 화면 옆으로 무의미하게 띄워둔 포털 화면이 반짝였다. 자동으로 새로고침 되면서 새 콘텐츠가 업로드 되려는 모양이었다. 화면 구석 뉴스 영역의 한 기사 제목이 눈길을 끌었다. ‘지명 수배’라는 단어. 어디선가 들어본 이름. 이구월.
“이구월 대리님?!” 술기운으로 몽롱했던 정신머리가 찬물을 끼얹은 듯 확 깨어났다.
“미친!” “네?” “아니, 그, 저. 죄송합니다! 나갈게요!” 놀라서 뭐라고 말하려는 BJ를 뒤로한 채 접속을 끊고 기사를 열었다. 두 시간 전 기사였다.
30대 초반, 인슈어넷 소속 직원 ‘이구월’. 근 5년에 걸쳐 수십 억대 금액을 횡령. 비트코인 환전 기록 발견. 세 시간 전 신용카드로 항공권 구매한 정황 포착. 현재 공항 및 친인척 주변에 경찰력 배치. 신고 시 포상금 있음.
“횡령범.” 호아와 98%의 매칭률을 자랑했던 사람이 범죄자라니. 몇 번이고 기사를 다시 읽고, 오해한 부분이 없는지 확인한 후에야 벗어뒀던 이어피스를 걸었다. 호아에게 알려줘야만 했다. 호아가 알아야만 했다. 그 녀석이 정체를. 그 녀석이 왜 안되는지를.
통화 메뉴를 선택하려던 손이 문득 멈췄다. 이게 맞나? 호아를 위해서라고 얘기하고 있지만, 사실은 나 좋자고 하는 일은 아닐까? 솔직히, 기뻐하는 건 아니야? 얼굴에 감각이 멀었지만, 입꼬리가 옅게 올라간 기분도 들었다. 객관적으로 나한텐 잘된 일이잖아. 호아가 다른 사람이랑 이어질 일이 없게 됐으니까.
통화 버튼 위에 둔 손끝이 둥글게 말렸다. 결국 난 이것밖에 안 되는 인간이었다. 호아의 행복을 빌어주자고 마음먹은 지 5분도 안 지나서 이렇게 본성이 드러난 것이다. 진정시킨 위액이 다시 스멀스멀 올라왔다. 이어피스가 진동했다. 긴장한 탓에 깜짝 놀라, 의자에서 뒤로 넘어질 뻔했다. 전화를 걸어온 사람은 호아였다.
“밤 늦게 미안해. 지금 와줄 수 있을까?” 호아가 전화를 끊기도 전에 나는 현관문을 나서고 있었다.
유소정
SF동화작가.
황당한 이야기를 읽으며 자라 고만만한 글을 쓰고 있다.
저서로 ‘지구를 어나는 13가지 방법’ ‘그리고 펌킨맨이 나타났다’를 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