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많이 하는 말이 있다. “너 내가 그럴 줄 알았다!” 보통 이런 경우다. 컵에 욕심껏 주스를 가득 담아 아슬아슬하게 걸음을 옮기다가 전부 쏟았다든지, 엄마 말 안 듣고 텔레비전을 가까이에서 보다가 결국 안경을 쓰게 됐다든지, 스카이다이빙을 하겠다고 고집을 부려 겨우 도전했는데 결국 다쳤다든지 등. ‘엄마’는 다가올 미래를 알고도 ‘나’에게 알려주지 않은 걸까?
답은 명백하다. 어떤 사건도 정확히 예측하기는 불가능하다. 그럴수도 있지만,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언제나 가능성, 즉 확률의 문제다. 숫자와 확률은 인간 전체가 노출된 위험의 최종 수치를 보여준다. 큰 사고가 가까운 이에게 일어나도 놀랍지 않은 건, 어디에선가 늘 사고는 일어나고 누군가는 그 사고를 겪기 마련이라고 통계와 확률이 말해주기 때문이다. 마치 사후세계와 저승사자가 있어서, 늘 일정한 수만큼 뽑아 데려가는 것 같달까.
그런데 이 확률이란 게 참 기발하다. 우리가 흔히 아는 확률이 저승사자의 일이었다면, 사실 확률은 이와 정반대의 세계관도 포함한다. 삶을 아주 자세히 들여다 보면 개인에게 위험의 가능성이 현실로 바뀌는 순간은 전혀 예측하지 못했던 ‘기이한’ 사건이라는 관점이다. 예컨대 전체 인구 중 3분의 1은 꾸준히 암에 걸리지만, 사실 모든 암은 전혀 예측하지 못한 돌발적인 세포 변이에서 시작된다. 다시 말해, 위험에는 두 얼굴이 있다. 멀리서 인구 전체를 숫자로 파악하는 관점과, 가까이서 개개인의 인생을 맥락의 미로로 보는 관점. 이 때 문에 우리는 함정에 빠질 가능성이 있다. 확률의 숨겨진 두 얼굴은 우리에게 공포를 주기 때문이다.
이 책에는 스쿠버다이빙, 행글라이딩, 출산, 살인, 마라톤, 보행사고, 전신마취 등 일생에서 만날 수 있는 각종 위험에 대한 자세한 통계와 확률이 담겨 있다. 그러나 이들이 얼마나 위험한지 밝히거나, 혹은 통계가 거짓일 뿐이라고 폭로하는 내용은 아니다. 그보다는 위험에 대한 가능성을 대하는 우리의 심리를 파헤친 책이다. 위험의 두 세계관 중 어느 편에 설 것인가.
세계관의 충돌을 보여주기 위해 저자는 가상의 인물을 창조해냈다. 사소한 위험에도 극도로 민감하게 대응하는 소심 씨, 위험에 아랑곳하지 않고 일을 저지르고 보는 대범 씨, 위험을 합리적으로 판단하고 관리한다고 믿는 보통 씨다. 27가지 위험을 기준으로 이들이 태어나 자라고 죽음에 이르는 일생을 비교•분석한다. 결론은? (스포 주의) 셋의 삶에는 큰 차이가 없다. 숱한 위험이 이들의 주변을 스쳐갔지만, 별 탈 없이 수명을 누리다 세상을 떠난다.
모든 위험은 가능성일 뿐이다. 삶의 불확실성이 어디에서 유래하는지 중요치 않다. 진정 중요한 질문은 우리가 삶에 대해 어떤 태도를 취할 것인가다. 매사에 조심스럽게 행동하면서 확실성을 얻으려 노력할 것인가, 대범하고 때론 무모하게 행동하면서 불확실성을 즐길 것인가, 아니면 당신의 삶은 도박과 같을 뿐이라고 결론 내릴 것인가. 답은 당신만이 알고 있을 것이다.
그랬구나, 많이 아팠구나
‘인간으로서의 도리’. 최근 몇 년간 대형 사고와 충격적인 사건이 잇달아 터지고 그 때문에 새로운 사회적 갈등이 빚어지는 걸 목격하면서, 이 문구를 숱하게 읊조려야 했다. 사랑하는 이를 잃은 아픔을 보듬지 않는다면, 우리는 언제 어디에서 인간으로서의 도리를 발휘할 수 있을까.
같은 사람끼리도 이런데, 하물며 동물의 가족 잃은 슬픔을 헤아리는 게 지금 우리에게 가당키나 할까. 호주 출신의 철학자 피터 싱어가 ‘동물해방론’을 통해 도덕적 이해관계를 갖는 피동자의 범위에 동물을 포함시킨 게 꼭 70년 전이지만, 여태 먼 나라책 속에만 존재하는 이야기일 뿐이다.
이 책이 우리 사회에 던지는 메시지가 묵직한 건 그래서다. 세계적인 자연주의자이자 사회생물학자인 에드워드 윌슨은 수 년 동안 아프리카 모잠비크의 고롱고사 국립공원을 드나들며 생태를 기록했다. 윌슨과 함께 고롱고사 국립공을 누빈 아프리카 코끼리의 대가 조이스 풀은, “나이 든 개체들은 물론, 씨족의 어린 구성원들에게 ‘모든 사람이 나쁜 것은 아니다, 우리는 믿을 만하다’라는 것을 알려주려고 애썼다.”(69쪽) 모잠비크 내전이 터지면서 굶주린 군인들이 코끼리를 닥치는 대로 사살했고, 이를 목격한 코끼리들은 외상후스트레스증후군을 겪고 있었다. 그들은 코끼리와의 거리를 날마다 아주 조금씩 좁혀가면서, 그저 앉아 대화를 나눴다.
담담하지만 시적인 윌슨의 글과 화려한 사진을 보고 있으면, 부러움이 앞선다. 동물의 아픔에 공감할 줄 알고 무리하지 않으면서, 고귀한 생명을 온전히 지키려는 그 마음이 느껴져서. 총 11장으로 구성된 이 책은 고롱고사 국립공원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아프리카의 대자연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자연과 조화롭게 공존하기 위한 고롱고사 사람들의 노력도 보여준다. 지속 가능한 자연보호를 위해 우리가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실마리를 준다. 책이 표방한 목표는 여기까지지만, 이 책이 우리에게 말하는 바는 비단 자연보호에 그치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