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당혹스러웠다. 400년도 더 전에 비행기가 날았다고 했다. 연도 아니고 글라이더도 아니고 무인기도 아니라고 했다. 동력기였고, 사람이 탔다. 그리고 하늘을 날았다. 그것도 조선 하늘을. 일본군에 포위된 진주성을 새처럼 날아 넘어가 사람을 구했다고 했다. 이런 이야기를 진지하게 연구해 책을 쓴 젊은 항공공학자가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이상하게도 황당하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오히려 진지하게 파고들어 공학적 가능성을 탐구해 보는 과학기술자 한 명쯤 나올 때도 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5월 13일, 서울 신촌의 오래된 찻집에서 조선의 비행기 ‘비거(飛車)’ 연구가 이봉섭 씨를 만날 수 있었다. 러시아 모스크바국립항공대와 모스크바국립기술대에서 박사과정까지 수료한 그는 항공기 설계 연구가이자, 스포츠용 경량항공기를 설계하는 1인 기업의 대표다.
“비행기 설계 중 저만의 ‘색’을 고민하던 차에 비거를 만났습니다.”
초등학교 3학년 때 글라이더를 날리며 항공기에 매료됐던 소년은 고등학생 때부터 경비행기를 몰았다. 대학도 한국항공대를 택했고, 항공기제작연구회에 가입해 손수 항공기를 만들기 시작했다. 하지만 아무리 만들어도 허전했다. ‘이게 아닌데.’ 그러던 차에 2002년 처음 비거를 만났다. 고원태 작가의 소설 ‘잊혀진 우리 나래 비거’에서였다. 이 씨는, 당시 조선의 기술과 환경 조건에서 하늘을 나는 항공기를 만들 수 있을지 그 가능성을 극한으로 탐구했다. 열정은 유학을 간 뒤에도 변하지 않았다. 조선의 공학 기술을 연구하며 비거를 현실에서 날게 할 아이디어를 모았다.
“직접 나무를 구해 자르고 옻칠을 하니 러시아 친구들이 도대체 뭘 하냐며 신기해 하더군요. 나중에는 그런가 보다 하는 눈치였지만요.”
그는 그간의 비거 연구 결과를 모아 5월 말 ‘조선의 비행기, 다시 하늘을 날다’를 펴냈다. 책의 백미는 역시 항공공학자이자 설계자인 이 씨가 좌충우돌하며 비거 모형을 복원하는 과정이다. 논증 과정이 꽤 꼼꼼하고 기발해 다큐멘터리를 보듯 흥미롭다. 예를 들어 하늘을 날 수 있는 날개에 대한 힌트는 우리나라 전통배의 돛에서 얻는다. 마주 오는 바람이 불 때 돛을 풍향에 수평하게 돌리고 활대를 둥글게 만드는 운항법을 보고(비행기 날개가 양력을 얻는 방식과 비슷하다) 항공기 날개를 복원하는 식이다. 책 한 권이 이런 내용으로 빼곡하다.
이 씨는 자신의 연구가 비거에 대한 현대 항공공학자의 세련된 주석으로 읽히길 바란다. “저는 문제를 제기한 거지 결론을 내린 게 아닙니다. 아마 무리한 부분도 있겠지요. 누군가 제 아이디어의 한계를 제기하고, 그렇게해서 잊혀진 비거의 진실에 다가갈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