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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s & Issue] “나, 실험실 돼지 남다른 돼지가 됐지”


평범한 돼지들이 변하기 시작했다. 어떤 돼지는 헬스트레이너 못지 않은 근육을 자랑하는 ‘근육돼지’가 됐고, 어떤 돼지는 인간의 장기를 갖는 ‘키메라돼지’가 됐다. 이들은 어떻게, 그리고 왜 변신을 거듭하게 된 것일까.



지난해 7월, 학술지 ‘네이처’에 신기한 사진 하나가 실렸다. 사진 속 돼지는 우리가 흔히 보던 돼지와는 다르게 아주 탄탄한 몸을 가지고 있었다. 놀랍게도 딱 하나의 유전자를 변형한 돼지였다. 슈퍼돼지로 불리는 이 돼지는 일반돼지에 비해 근육이 2배 가량 많다. 김진수 기초과학연구원(IBS) 유전체교정연구단장(서울대 화학부 겸임교수)과 윤희준 중국 옌볜대 교수 공동연구팀은 2세대 유전자 가위 탈렌(TALEN)을 이용해 마이오스타틴 단백질 합성을 조절하는 유전자(MSTN)를 편집(교정)했다.

마이오스타틴은 근육 생성을 억제하는 단백질로, 근위축증이나 노인성근감소증과 같은 질병 치료제의 표적이기도 하다.

마이오스타틴 조절 유전자에 돌연변이가 생기면 근육량이 비정상적으로 늘어나게 된다. 이런 연구가 진행되는 건 돼지의 품종개량을 위해서다. 크기가 큰 콩이나 영양분이 많은 콩 등 유전자변형 식물(GMO 식물)은 우리에게 꽤 익숙하지만 GMO동물은 아직 낯설다. 슈퍼돼지는 인간이 섭취할 수 있는 고기의 양이 늘어나는 일종의 GMO 동물이다.

축산업계에서는 이를 반기는 분위기지만, 연구팀은 ‘네이처’와의 인터뷰에서 “아직은 슈퍼돼지로부터 더 많은 고기를 얻기보다는, 건강한 돼지를 만드는 데 도움을 줄 예정”이라고 밝혔다. 슈퍼돼지와 일반돼지의 교배를 통해 태어난 새끼는 염색체 한가닥은 정상 DNA를, 나머지 한 가닥은 MSTN이 망가진 DNA를 가지게 된다. 연구팀은 “이렇게 태어난 돼지는 슈퍼돼지보다 근육량은 적겠지만 일반돼지보다 더 건강할 것”이라며 “축산업자들에게 슈퍼돼지의 정자를 제공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연구팀은 이어 제3세대 유전자 가위인 크리스퍼를 이용해 같은 연구를 진행할 예정이다. 유전체 교정 기술 전문 기업, 툴젠의 연구소장인 김석중 이사는 “크리스퍼를 이용해 슈퍼돼지를 생산하면 더 저렴한 가격에 품종 개량이 가능해 질 것”이라고 말했다.



두 번째 소개할 변신 돼지는 ‘치매돼지’다. 이병천 서울대 수의대 교수팀이 지난 4월 공개한 치매돼지는 간단한 길도 찾지 못하는 등 마치 알츠하이머 치매를 앓는 사람과 유사한 행동을 보인다. 시쳇말로 ‘벽에 똥칠한다’는 표현이 있는데, 이 돼지가 그런 행동을 한다. 이런 행동이 혹시 돼지에게서는 일반적인 행동 이냐고 묻자 이 교수는 “사람에게서만큼이나 매우 드문 현상”이라고 말했다.

치매돼지는 알츠하이머 치매를 치료하기 위한 목적으로 개발됐다. 알츠하이머 치매로 고생하는 사람이 우리나라에서만 무려 7만여 명(2014년 건강보험통계연보)에 달하지만 치료제에 참여한 김석중 이사는 “신약을 개발할 때 임상시험이 중요한데, 지금처럼 쥐를 이용해 하는 사전 동물시험만으로는 인체 재현성 등에 한계가 많아 임상시험을 할 충분한 근거가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제약회사는 사람을 대상으로 하는 임상시험 전, 쥐를 이용해 약의 독성을 확인한다. 하지만 쥐와 사람의 유전적 거리가 너무 멀어, 쥐에서는 성공적인 결과를 보였더라도 임상시험에서 실패하는 사례가 수두룩하다. 알츠하이머 치료제의 경우는 2002년부터 2012년까지 임상시험 실패율이 무려 90% 이상이다. 임상시험이 실패하면 막대한 손해는 모두 제약회사의 몫이기 때문에 치료제 개발을 위한 과감한 투자가 어려워진다. 김 이사는 “쥐와 사람 사이에 대(大)동물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계속 나오고 있다”며 “대동물로 가장 많이 언급되는 것이 바로 돼지”라고 말했다. 돼지는 인간과 유전적 거리가 비교적 가까운 편인데다가, 다른 동물에 비해 번식력이 뛰어나 연구 동물로 적합하다. 때문에 알츠하이머와 같이 인간과 동일한 질병을 앓는 돼지를 만드는 연구가 세계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이런 질병 모델 돼지를 만드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다. 첫 번째는 서울대 연구팀이 치매돼지를 개발하는 데 사용한 유전자 편집 방법이다. 연구팀은 유전자 가위를 이용해 알츠하이머의 원인으로 꼽히는 베타아밀로이드 단백질의 전구체를 만드는 APP 유전자를 돼지 유전자에 삽입했다. 이렇게 ‘알츠하이머 유전자’가 삽입된 돼지 세포의 핵은, 핵이 제거된 난자와 융합해 새로운 형질을 갖는 배아가 된다. 체세포 핵치환 방법이다. 이 배아는 대리모 돼지를 통해 치매돼지로 태어난다.

하지만 모든 질병 모델 돼지를 이 방법으로 만들 수는 없다. 특정한 질병을 일으키는 유전자가 무엇인지 정확하게 파악해야 하고, 그 유전자를 편집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린다. 더구나 질병 유전자가 있다고 모두 질병이 생기는 건 아니다. 예컨대 유방암 유전자로 알려진 BRCA1이나 BRCA2를 돼지에 이식한다 하더라도 100% 유방암이 생기는 것은 아니다.
 
이런 단점을 보완한 방법이 면역 기능이 없어 인간의 조직을 이식해 실험할 수 있는 ‘면역결핍돼지’다. 김진회 건국대 동물생명과학대 교수팀은 면역세포(T세포, B세포, 자연살해(NK)세포)가 전혀 기능하지 않는 면역결핍돼지를 세계 최초로 만들어 2014년 5월 ‘미국국립과학원회보(PNAS)’에 발표했다. 연구팀은 T세포와 B세포 생성에 관여하는 Rag2 유전자와 Iℓ-2rg 유전자를 없앴다.

면역결핍돼지는 사람의 세포나 조직을 이식해도 면역반응이 일어나지 않기 때문에 손쉽게 인체 조직을 이식해 질병 모델을 만들 수 있다. 간암에 걸린 사람의 간 조직을 떼어다 면역결핍 돼지의 간에 이식하면 간암을 연구할 수 있는 간암 질병돼지가 되고, 아토피에 걸린 사람의 피부를 돼지 피부에 이식하면 아토피 질병돼지가 된다.

송혁 건국대 동물생명과학대 교수는 “면역결핍돼지는 맞춤형 의학을 가능하게 한다”며 “연구나 신약개발에 훌륭한 기폭제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제 막 면역결핍돼지 생산에 성공한 단계기 때문에 사람의 세포를 이식한 사례는 아직 없다. 송 교수는 “내년쯤이면 사람의 조직을 이식한 돼지를 보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돼지의 마지막 변신은 인간의 장기를 가진 키메라돼지다. 사람의 장기이식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이다. 장기이식관리센터의 통계에 따르면, 2014년 기준으로 장기 이식을 한 경우는 이식 대기자의 15% 정도로 턱없이 부족한 상황이다. 이식을 기다리다 사망하는 환자가 미국에서만 하루에 22명이다. 이런 환자의 수를 줄이고자 돼지의 장기를 이식하는 이종간 이식 연구나, 돼지의 몸 안에서 인간의 장기가 자라게 하는, 이른바 키메라돼지 연구가 각국에서 진행되고 있다.

지난 6월 6일, 미국 UC데이비스 연구팀은 췌장이 자라지 않도록 크리스퍼로 유전자를 편집한 돼지 배아에 사람의 유도만 능줄기세포(iPS)를 주입시킨 뒤, 대리모 돼지의 자궁에 착상시키는 데 성공했다. iPS세포는 2006년 일본 교토대 야마나카 신야 교수팀이 만든 줄기세포로, 체세포를 역분화시켜 여러 다른 조직으로 분화할 수 있게 한 줄기세포다. 연구팀은 돼지의 배아가 배반포 시기일 때 인간의 iPS세포를 주입했다. 박정규 서울대 의대 미생물학교실 교수는 “연구팀의 돼지 배아에는 췌장을 만들 수 있는 유전 정보가 없기 때문에 그대로 발생시키면 유산된다”며 “하지만 췌장의 정보를 가진 iPS세포가 있기 때문에(이론적으로) 췌장으로 분화될 수 있다”고 말했다. 사람-돼지키메라 배아의 입장에서 보면 췌장의 정보를 가진 세포가 iPS세포 밖에 없기 때문에 이것이 췌장으로 분화할 수 밖에 없다는 의미다.

하지만 무사히 인간의 췌장이 만들어진다고 하더라도 바로 간에게 이식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췌장세포는 인간의 것이지만 췌장에 연결돼 있는 혈관들은 여전히 돼지의 것이기 때문이다. 돼지에게는 인간은 가지고 있지 않은 알파 1, 3 갈락토오스 전달효소(α-1, 3 galactosyl transferase)가 있는데, 이 때문에 돼지의 혈관 내피세포의 세포막에는 특이한 당이 존재한다. 인간을 포함한 영장류는 이 당에 대한 항체를 태어날 때부터 가지고 태어난다(자연항체). 때문에 돼지의 혈관이 연결된 장기를 인간에게 이식하게 되면 초급성면역거부반응이 일어나 빠르면 수분 이내에, 길어도 수 시간 이내에 이식된 장기가 파괴된다. 박 교수는 “아마 다음 단계는 혈관을 만드는 유전자를 편집한 돼지 배아에 인간의 iPS세포를 주입하는 실험이 진행돼야 할 것”이라며 “실험이 성공한다면 돼지가 인간의 혈관을 가지게 되니 면역문제가 어느 정도 해결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종 간 이식에 큰 가능성을 열어준 연구지만, 윤리적인 문제로 찬반논란이 뜨겁다. 미국국립보건원(NIH)은 지난해 9월 인간 줄기세포를 낭배기(세포들이 조직과 기관으로 분화를 시작하는 발생의 한 단계) 이전의 다른 척추동물 배아에 주입하는 연구는 연구비 지원을 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인간의 줄기세포가 다른 동물의 배아 안에서 다른 조직으로 분화하거나, 혹은 다른 기관에(극단적인 예를 들자면 돼지의 뇌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연구팀은 이런 문제를 의식해서인지 인간-돼지 배아를 대리모의 자궁에서 28일간만 성장시킬 계획이라고 밝혔다.

미국 UC데이비스 파브로 로스 교수는 영국 BBC와의 인터뷰에서 “물론 우리는 이것이 사람의 뇌로 자라날 가능성은 극히 낮다고 생각하지만, 반드시 조사해 봐야 할 부분”이라는 입장을 발표했다. 박정규 교수 역시 “기초연구가 좀 더 진행되고, 줄기세포연구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선행돼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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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07월 과학동아 정보

  • 최지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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